예수에게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그리고 복음서 저자 요한과 구별하기 위하여 세례 요한이라고 불리는 이 인물은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자벳이라는 여인과 사제인 자카리아 사이의 아들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중략).”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중략)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루카 복음서 1장 39절~70절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마태오 복음서 3장 1절~6절

 

여기 묘사된 것처럼 요한은 거친 광야에서 여러 해 동안 수행한 인물로 전통적으로 털가죽을 걸치고 야윈 모습으로 표현된다.

 


왼쪽부터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바르디 제단화Bardi Altarpiece(1484)의 세례 요한 부분, 티치아노Tiziano의 세례 요한(1542), 엘 그레코El Greco의 세례 요한(1600).

 

티치아노의 그림은 별로 그렇지 않지만 보티첼리와 엘 그레코의 세례 요한은 수척한 몸을 하고 있고 공통적으로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 텁수룩한 수염, 털가죽으로 된 옷 등으로 이 성인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다. 세 그림 모두에서 십자가 모양의 지팡이를 지니고 있으며 보티첼리를 제외한 두 그림에서는 양이 등장한다. 어린 양은 세례 요한의 상징 동물이기 때문이다.

 

좀 특이한 취향의 소유자라면 모를까 이런 야인의 모습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이 성인을 묘사한 그림들이 존재한다.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

세례 요한St.John the Baptist(1603-1604)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37 x 51 1/2 inches (94 x 131 cm)

국립 고미술관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a

 

광야에서 잠들었던 요한은 무언가에 놀라 잠이 깬 것 같다. 카라바조는 특유의 빛과 어둠을 다루는 솜씨로 밤의 어두운 배경 속에서 청년의 흰 육체를 부각시켜 놓았다. 어린 양도, 요한의 특징인 털가죽도 없고 그가 두른 붉은 천만이 요한의 피부색과 대비된다. 제목이 아니라면 이 그림에서 성스러움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 갑작스레 떠오른 흰 육체는 와일드의 희곡에 나오는 살로메의 대사를 연상시킨다.

 

요카난, 난 그대의 몸을 갖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네 몸은 한 번도 손질한 적 없는 들에 핀 흰 백합 같아. 유대의 산 꼭대기에 쌓였다가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눈과 같아. 아라비아 여왕의 정원에 핀 장미도 네 몸처럼 하얗진 않을 거야. 아라비아 여왕의 정원에 핀 장미도, 아라비아 여왕의 향초 정원도, 나뭇잎에 비쳐드는 새벽빛도, 바다에 안겨드는 달의 가슴도… 네 몸처럼 흰 것은 세상 어디도 없어. 네 몸을 만지고 싶어 죽을 것 같아.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세례 요한은 어떤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 (1486-1530)

세례 요한 St. John the Baptist(1528)

나무에 유채Oil on wood, 37 x 26 3/4 inches (94 x 68 cm)

갈레리아 팔라티나(팔라초 피티)Galleria Palatina (Palazzo Pitti), Firenze

 

요한은 여기서도 젊은 청년으로 등장하는데, 복음서에 묘사된 대로 털가죽을 두르고 있지만 카라바조에서와 마찬가지로 붉은 천을 함께 두르고 있는 당당한 모습이다. 십자가 모양의 야곱의 지팡이가 세례 요한을 상징하고 있지만 그는 성인이라기보다는 젊은 영웅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불가사의한 것은 레오나르도의 세례 요한 그림들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

광야의 세례 요한(바쿠스)St John in the Wilderness(Bacchus) (1510-1515)

Oil on panel transferred to canvas, 177x115 cm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 Paris

 

이 그림은 세례 요한의 상징물이 없고 특유의 이교적 분위기 때문에 종종 바쿠스로도 불린다. 젊은 바쿠스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주인공이 걸치고 있는 옷도 낙타 가죽이 아니라 표범 가죽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인물은 정체가 확실히 드러난 다음 그림의 인물과 너무 닮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

세례 요한St John the Baptist(1513-1516)

Oil on panel, 27.17 x 22.44 inches [69 x 57 cm]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 Paris

 

역시 표범 가죽처럼 보이는 가죽을 두르고 야곱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이 인물은 확실히 세례 요한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한 손은 가슴에, 한 손은 레오나르도가 즐겨 쓰는 포즈인 하늘을 가리키는 모양을 하고 입가에는 묘한 미소를 띄고 있는 이 인물은 내가 본 중에 가장 성인의 이미지와 멀리 있는 인물인 것 같다. 모나리자보다는 더 확실하지만 모나리자 만큼이나 뜻을 알 수 없는 미소하며 광야에서 긴 세월 살아 온 사람 같지 않게 풍성하고 완벽한 웨이브 하며, 카라바조나 델 사르토의 요한보다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도 수염 한 올 없는 중성적인 외모까지…

이 인물이 매력적이며 관능적으로까지 보인다는 사실은 우리를 다소 당황스럽게 한다. 와일드 또한 살로메의 입을 통해 세례 요한의 매력을 늘어 놓는다. 그의 희디흰 살결, 칠흑처럼 검은 머리, 꽃잎보다 붉은 입술을 원한다고, 살로메는 고백한다. 이것은 두 사람의 성적 취향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와일드는 동성연애로 유죄를 선고받고(그 당시 영국에선 동성연애도 범죄였다!) 복역했었고, 레오나르도 역시 동성애자였을 것이라는 강력한 추측들이 존재한다(그가 실력보다는 외모로 제자들을 뽑았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어쨌든 레오나르도의 세례 요한을 보고 있노라면, 실제로 세례 요한이 이런 미소를 가진 남자였다면 살로메가 그를 사랑하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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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8-02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고 갑니다. 글 참 잘 쓰시네요. ^^

수영 2006-08-03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자주 놀러 오세요.

어멍 2011-06-1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흥미롭군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