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 프로이트전집 18 프로이트 전집 18
프로이트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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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정신 분석의 공통점은 사람의 마음을 다룬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는 프로이트는 글도 참 잘 쓰는 사람이었고, 이 책에서는 문학적 재능 풍부한 그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문학에 관한 에세이라고 할 만한 이 책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혹은 알지 못하는 작품들을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에 입각해 재해석해 준다.

여기서 우리는 괴테 자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가 흥미진진하게 해석되는 걸 보기도 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성에 대해 고찰하기도 하며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 옌젠의 '그라디바'와 같은 흥미로운 문학 작품들을 읽는 심리적 방법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에세이 중에서도 내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세 상자의 모티브'였다.

동화나 신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모두들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 예를 들어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미녀, 프쉬케의 이야기 등등을 읽으면서 왜 하필 막내만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착하며 마지막에 선택되는가를 궁금해했었다. 여자 삼형제가 나오는 이야기 뿐 아니라 남자 삼형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의문에 프로이트는 매우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다.

늘 한데 묶여져 나오는 이 셋은 그리스 신화의 모이라이(운명의 여신들)의 투사라는 것이다. 이 셋중 막내는 바로 아트로포스로 '불가피한 것' 즉 죽음을 가리킨다. 이렇게 보면 가장 아름답고 마지막에 선택받는 인물이 죽음이라는 것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논의를 읽어 나가면 결국에는 이 해석이 매우 그럴듯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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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 보르헤스 전집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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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르헤스를 어떻게 처음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들이 내게 준 영향은 지대하고, 처음 읽은 이후 몇 년이 지나고 읽어도 이 이야기들은 그 신선함을 잃지 않는다. <알렙>은 <픽션들>과 더불어 그의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집이다. 게다가 쉽게 읽힌다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이게 쉽게 읽힌다고?- 이렇게 반문할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나 <픽션들>은 먼저 읽은 독자의 입장에선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다.

<픽션들>의 상당 부분이 문학 이론의 소설화라는 실험적 시도에 할애되었던 반면, 이 책에선 존재, 시간, 영원성, 우주, 이런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대한 가능한 해답들을 시도한다. 어쩌면 보르헤스가 여기서 펼쳐 보이는 세계관은 우리에게 낯익은 것들인지도 모른다. 동양적인 순환의 인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분이다. 순환하는 시간과 미로적인 공간의 세계, 이것이 내가 이해한 보르헤스의 세계이다. 이러한 모호성이 시작부터 내재되어 있는 것이 세계이므로 그에 대해 완전한 인식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제작'알렙'에서 주인공이 본 '알렙'은 세계 그 자체이지만 그것이 그에게 완전한 앎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주인공은 그 명징하면서도 혼란스러운 것을 '가짜'라고 치부해버림으로서 모든 것을 알아버린 자의 허무함(더 이상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없을 터이므로)을 덮어버린다. 그런 것이 세계의 본질이라면 운명의 모호함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허무함 역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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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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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술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은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역사란 그저 '일어난 사건들'을 충실히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 때도 있었으니... 하지만 그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 자체, 한 시대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 중 어느 것을 쓸 것인가 하는 취사 선택의 문제에서부터 역사가의 시점이 개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역사를 쓴다는 것은 하나의 입장을 밝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십자군 전쟁의 역사라는 것은 현재 주도권을 지니고 있는 유럽 측의 시각에서 서술된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사 시간에도 '성지 탈환'을 위한 원정 전쟁 정도로 배웠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전쟁의 다른 쪽 당사자들의 눈으로 볼 때면 양상은 전혀 달라진다. 그것은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 대한 야만인들의 침략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저자 아민 말루프는 이 책에서 아랍 쪽 증인들의 역사서와 연대기들을 통해 이 전쟁의 면모를 펼쳐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맹목적인 신앙심과 속죄의 유혹에 이끌린 무리들, 그리고 새로운 땅에 대한 욕심을 가진 군주들, 동방으로의 무역로를 장악하려는 상인들의 욕망이 부추긴 야만적인 침략 전쟁을 목도하게 된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또는 알려지지 않은 아랍의 영웅들이 등장하며 서로간의 경쟁에 여념이 없던 군소 군주들간의 다툼이 끼여든다. 저자는 이 시대에 중동이 겪어야 했던 치욕의 역사를 침략자들에게서만 찾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이, 아랍의 군주들 자신의 무능력과 이전투구에서 그 오욕의 원인을 찾고 있다. 결국 수세기에 걸친 투쟁 끝에 아랍은 서구인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양 대륙에서 그 결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났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유럽을 능가하는 문명을 가졌던 동방은 이후 유럽에게 추월당하기에 이르며 그 격차는 오늘날에도 좁아지지 않고 있다. 후기에서 저자는 그 원인을 프랑크인들은 적이었던 아랍의 문명을 받아들이는 데 게으르지 않았던 반면 아랍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것에 안주하고 말았다는 데서 찾고 있다. 거기에 안정되지 못한 정치 상황이 한 몫을 했다는 사실도 곁들인다.

대개 전쟁의 시기를 다룬 역사서는 흥미롭게 마련이며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거기에 천 년 전 세계의 문화와 사상을 들여다보는 즐거움도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중동의 역사>와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를 읽은 것이 사건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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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신화 현대지성신서 3
노마 로어 굿리치 지음,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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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가 판타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건 아마도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과 그보다 더 많은,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 그리고 단지 전설로만 남은,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개간되지 않은 광대한 삼림과 띄엄띄엄 늘어선 마을과 성곽들, 문명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시대, 이 책은 그런 시대로부터 전해져 서구의 신화로 자리잡은 아홉 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민족적 정체성이 싹트던 시대의 영웅들로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각 나라의 영웅상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들이다. 이런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본 각 민족의 민족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웠고, 이미 기독교 시대로 접어든 후이지만 뿌리깊게 남아 있는 이교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이런 이야기들의 매력이다. 특히 저자가 서문과 각 이야기의 앞에서 밝히는 문헌학적, 역사적 내용은 이 신화들을 역사적 사실과 연결시켜보려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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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역사 까치글방 141
버나드 루이스 지음 / 까치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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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분명히 중동은 유럽보다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오히려 멀게 느껴진다. 우리가 중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 거리감은 더 커진다.

오늘의 우리에겐 특히 중동은 전쟁과 테러라는 달갑잖은 단어들과의 결합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다면 그러한 불행을 야기한 이 지역의 특성은 무엇인가- 그것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우리말 제목에 <중동의 역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통사적 역사를 기대하기 쉽지만 책의 내용은 시대순을 따라 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중동의 정치, 문화에 대해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원제 'Middle East'가 더 적절한 제목이라고 느껴진다.

저자는 서문에서 중동 현 상황의 스케치를 펼쳐 보인다. 그 다음 본문에서 이슬람 이전 아랍에서부터의 역사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둘러 보고 그 결과로서의 현재를 보여 주는 수미쌍관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독자들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첫머리에서 가졌던 중동 세계에 대한 막연한 느낌과 책을 다 읽은 후에 이 세계-이제는 조금 친숙해진-에 대해 갖게 되는 감정 사이에 어떤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나에게 중동은 사막과 태양, 터번과 수염 기른 남자들의 세계,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계, 더 최근엔 독재자들과 전쟁으로 얼룩진 먼 세계였다. 그러나 그들이 이룩했던 문화와 세계사에서의 위치에 대해서는 무지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왕조의 전복과 전쟁의 묘사에서 역사 읽기의 재미를 느끼는 독자에게 이 책은 좀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처럼 이 세계의 문화권에 별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겐 분명 남겨주는 것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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