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분명히 중동은 유럽보다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오히려 멀게 느껴진다. 우리가 중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 거리감은 더 커진다.오늘의 우리에겐 특히 중동은 전쟁과 테러라는 달갑잖은 단어들과의 결합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다면 그러한 불행을 야기한 이 지역의 특성은 무엇인가- 그것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우리말 제목에 <중동의 역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통사적 역사를 기대하기 쉽지만 책의 내용은 시대순을 따라 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중동의 정치, 문화에 대해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원제 'Middle East'가 더 적절한 제목이라고 느껴진다.저자는 서문에서 중동 현 상황의 스케치를 펼쳐 보인다. 그 다음 본문에서 이슬람 이전 아랍에서부터의 역사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둘러 보고 그 결과로서의 현재를 보여 주는 수미쌍관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독자들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첫머리에서 가졌던 중동 세계에 대한 막연한 느낌과 책을 다 읽은 후에 이 세계-이제는 조금 친숙해진-에 대해 갖게 되는 감정 사이에 어떤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나에게 중동은 사막과 태양, 터번과 수염 기른 남자들의 세계,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계, 더 최근엔 독재자들과 전쟁으로 얼룩진 먼 세계였다. 그러나 그들이 이룩했던 문화와 세계사에서의 위치에 대해서는 무지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왕조의 전복과 전쟁의 묘사에서 역사 읽기의 재미를 느끼는 독자에게 이 책은 좀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처럼 이 세계의 문화권에 별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겐 분명 남겨주는 것이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