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이드 불빛에 어른거리는 노동과 사랑 이야기

 

 

복도훈

 

 

 

    바람이 많이 불던 2017년 겨울 어느 날, 동갑내기 소설가 하명희를 처음 만났다. 91년 5월에 대한 귀한 문학적 증언이자 아름다운 성장소설인 『나무에게서 온 편지』(사회평론, 2014)를 벅찬 마음으로 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와 나는 새벽이 되도록 조그만 술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고3 시절, 91년 5월의 진귀하고도 드문 경험을 나직한 목소리로 하나씩 들려줬다. 나는 괜히 부끄러웠고, 즐거웠으며, 그의 소설이 더 읽고 싶어졌다. 얼마 후 나는 소설집 『불편한 온도』(강, 2018)에 실린 원고 묶음을 받았고, 즉시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철거, 택배, 고공 농성, 트럭, 크레인, 양말 공장, 밤섬, 한강, 포장마차 리어카, 카바이드 막걸리. 하명희의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단어들. 우리 삶과 노동현장 가장 밑바닥에 있거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체취 어리고 숨결 가득한 소재들. 하지만 적어도 70년대 이후에 출생한 한국 작가의 소설에서는 어느새 자취를 감췄는지 좀처럼 만나기 힘들게 된 단어들. 그 단어들은 불편하다. 그러나 푸른 카바이드 불빛의 추억과 사람의 온기가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불편한 온도』 곳곳에는 고단한 노동의 자취들이 언어의 근육에 단단히 배어 있다. 마냥 고달프거나 팍팍하지는 않고, 저녁처럼 안온하고 아늑하다. 하명희의 소설은 백반집에서 함께 밥을 먹는 남녀 노동자의 간절한 연대를 이야기하고, 저녁에 함께 걷고 싶은 연인들의 애달픈 그리움을 묘사한다. 밥의 연대와 살의 그리움, 파업현장과 살아온 날들에 대한 추억 모두 살림살이의 이치다. 그리하여 『불편한 온도』는 "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땅에서 자신의 온도를 생성하는" 범의귀라는 꽃을 닮았다. 하명희의 소설은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리얼리즘의 성취다.

 

    소설집에는 절반 분량 못 미치게 실렸지만 『불편한 온도』의 추천사로 쓴 글을 다시 읽고 조금 다듬었다. 추천사를 적을 당시 내 생각은 이랬다. 한국 소설에서 노동, 계급, 가난의 문제를 재현하는 소설은 최근 들어 거의 증발된 것은 아닌가. 이런 직감적인 반문은 무수히 날아들 반박의 돌팔매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만일 내게 날아올 돌팔매가 나 혼자만의 환영(幻影)에 불과했다면. 하명희의 『불편한 온도』를 처음 읽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읽은 한국의 무수한 중단편에서 노동, 계급, 가난의 문제를 재현한 작가의 목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았다. 마침 《문장 웹진》에서 내게 청탁이 왔고, 나는 망설임 없이 소설가에게 연락했다. 『불편한 온도』를 출간하고 나서 그는 바쁜 것 같았다. 소설가는 올해 1~2월에 『나무에게서 온 편지』에도 등장하는 성균관대 앞의 풀무질 서점에서 근무했다. 그는 조만간 출간될 두 번째 소설집 『고요는 어디 있나요』(2019, 근간) 원고 파일을 내게 보내줬다. 원고지 30매 내외의 짧은 단편과 다른 단편 모음집이었다. 여전히 소설의 목소리는 소설가의 목소리만큼이나 나직하고, 차분하고, 단단했다.

 

복도훈 : 2월에 풀무질 서점에서 만났는데, 그새 두 달이 지났다. 잘 지냈나?

 

하명희 : 올해 초에 33년 동안 성균관대 앞에 있었던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하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일 출퇴근을 했다. 소설에도 '물고기의 집'으로 등장하는 이 서점이 내겐 책과 사람들을 만난 특별한 공간이어서 가만있을 수가 없더라. 지금은 새 단편집 교정 중이어서 조금 바빴다.

복도훈 : 정말 부지런하다. 바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도 되겠다. 『불편한 온도』에 실린 중편 「그림자들의 강」에는 소설가의 자전적 삶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어린 시절에 푸른 불빛을 내는 카바이드 막걸리 제조 과정을 곁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기억이 나서 그 부분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이 에피소드는 『나무에게서 온 편지』의 엄마의 포장마차 에피소드에서도 반복된다. 뭐랄까, 바슐라르적인 원형의 불꽃이 어머니가 포장마차로 생계를 꾸리던 노동현장과 만난다고나 할까. 포장마차 한구석에서 부글부글 끓던 카바이드 이야기를 더 들려 달라.

 

    "그동안 모아놓은 몸속의 불덩이가 녹고 있었다. 한강에 던졌던 카바이드가 이제야 끓어오르며 섬을 들어 올린 것일까. 아빠는 그곳에 있을까. 리어카 배를 타고 풀등으로 갔을까.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가 가져 보지 못한 불탄 집도, 오빠가 불태운 꽃들의 집도, 갈아엎어진 할머니의 파밭도, 할아버지의 늙은 배들까지 모두 싣고 덤블링을 하듯 강물 위로 몸을 던져 떠오른 그것은, 그림자들의 강이 지어놓은 한 채의 집이었다."(하명희, 「그림자들의 강」, 『불편한 온도』, 152쪽)

 

 

하명희 : 푸른 불꽃의 카바이드, 그건 내게 늘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게 하는 원형 이미지 같다. 서울이 고향이지만 하도 이곳저곳 떠돌아다녀서 그동안 나는 내 고향이 어디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떠돌아다니면서도 그 카바이드 불빛이 있던 곳, 하면 그 주변에 한강이 있었지, 경마장이 있었지 하는 식으로 기억이 떠오르더라. 그런 곳이 고향 아닐까. 우습지만 소설을 쓰면서 내 고향이 여기구나 각인된 것 같다. 내가 몰랐던 고향(시공간)이랄까. 내가 잉태된 곳이 어디인가, 찾아 올라가다 보면 어릴 때 야반도주를 했던 발산동, 중학교 때까지는 한강변, 고등학교 시절은 명동이었다. 찾아가면 머무르는 곳, 기억의 자리, 추억의 자리다. 문학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나중에 바슐라르 책을 읽으면서 '칸델라' 불빛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참으로 신비한 불빛이 아닌가. 돌이 물을 만났는데 불이 되네? 꽃같이 생긴.

복도훈 : 재밌다. 카바이드 돌이 불이 되고 별이 되고 꽃처럼 피는 과정을 좀 더 이야기해 달라.

하명희 : 카바이드를 화분 같은 통에 넣고 그 위에 촛대가 달린 뚜껑을 덮는다. 그리고 그걸 좀 더 큰 화분 같은 통에 넣고 물을 부으면 삼투압으로 천천히 물이 돌에 스미면서 촛대 끝으로 가스가 분출된다. 피이익 푹 하는 가스 소리가 나면, 그때 불을 붙여 점화한다. 여기에는 카바이드 돌(흙), 물, 가스(공기), 불, 4원소가 다 있다. 우주의 원리 같지 않나? 점화하는 순간 불이 되는 것이니까, 그 순간에 카바이드는 별이 된다. 그것도 멀리 있는 별이 아니라 눈앞에서 내가 별의 탄생과 소멸을 직접 보는 거다. 가까이 있으니까 그 별에서는 소리도 나고 냄새도 난다. 그래서 내게 카바이드는 '냄새나는 돌'이다. 그건 허기를 채워 주는 냄새였다. 연탄가스나 부탄가스에서 나는 아찔한 냄새. 어린 시절 나는 늘 배가 고팠는데, 그 냄새들을 맡으면 거짓말처럼 허기가 달래졌다. 나만 알고 있는 연금술 제조랄까. 누군가 내 소설이 가난하고 아픈 이야기인데도 따뜻하다고 했는데 그건 분명히 그 카바이드 불꽃이 어떤 좌표처럼 내가 옮겨간 곳마다 빛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별은 멀리 있지만 내가 별을 만든 거니까, 그건 내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별의 냄새도 맡아 봤으니까. 「그림자들의 강」의 모티프는 그 불빛으로부터 생겨난 것 같다. 그 불빛이 있는 포장마차가 내게는 별을 만드는 신기한 공간이었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2/3는 노동, 가난 등 삶의 조건에 대해 아프게 눈뜨는 성장소설이다. 소설의 나머지 1/3은 91년 5월의 무수한 젊음의 죽음, 고등학생들의 운동조직 '고운'의 결성과 해산, 친구들(동지들)과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두 개의 이야기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5월 투쟁에 뛰어들었던 고등학생들, 해고된 전교조 교사를 응원하는 학생들, 문건을 복사하고, 금지된 책들을 읽고, 서점에 들르고, 뜻을 같이하는 고등학생들과 대학생이 만나는 이야기들은 주인공 도은의 성장서사 속에서 자연히 녹아 들어간다. 아주 잠깐이지만 타자기를 갖고 싶어 하면서 노트에 시와 산문을 끄적거리는 예비 작가의 초상과 함께 컴퓨터가 처음 상용화되고 일본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가 불법복제물로 유통되던 90년대 초반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분위기, 이른바 '우체국근대화'(273쪽)도 언급된다.

 

복도훈 : 바슐라르 할아버지가 포장마차 손님으로 카바이드 불빛을 보면 꼭 하명희 작가와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만 같다. 자, 계속하겠다. 내겐 「그림자들의 강」의 후속편이 장편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였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91년, 나는 고3 입시생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91년 5월을 온몸으로 통과한 고3 '도은'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자전적인 것이라면, 하명희 작가는 그해 고3들과는 전혀 다른 고3을 보낸 셈이다. 내게는 함께 방을 쓰던 하숙집 아들인 대학생 형의 옷에서 나던 최루탄, 막걸리, 등사지 냄새로 어지럽게 기억되던 5월이었다. 그런데 다시 읽은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발견했다. 처음 읽을 때는 91년 5월의 이야기에만 집중했는데, 타자기를 갖고 싶어 했던 도은의 소망, 포스트모더니즘, 도스 운영체제 컴퓨터, 〈천공의 성 라퓨타〉 이야기도 조금 있었다. 이번에는 오히려 그게 흥미롭게 읽혔다.

하명희 : 실제로 「그림자들의 강」을 『나무에게서 온 편지』보다 먼저 썼다. 그걸 알아채 주셔서 감사하다. 생각해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신기한 단어였다. 그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이념이나 사상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외래종 단어로 쑥 들어왔다.

복도훈 : 포스트모더니즘이 '우체국근대화'라니······.

 

하명희 : post(우체국)-modernism(근대화)! 컴퓨터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그게 어떤 걸지 상상이 안 되었다. 책이 아니라 컴퓨터로 시를 읽는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되었던 것처럼. 당시에는 세계의 변화를 담은 단어가 포스트모던이었고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현실과 접목하면서 내 식으로 이해한 해석이 우체국근대화였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읽은 주변 분들이 소설에서 웃을 곳이 별로 없는데 그 대목에서는 많이 웃었다고 하더라.

복도훈 : 아하. 나로서는 첨 듣는 얘기다. 91년도는 5월로 우선 기억되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된 다른 문화적 경험이 더 없었나?

하명희 : 컴퓨터의 등장, 당시 인터넷이라는 건 상상도 못 했고. 조금 지나 외국 영화가 봇물 터지듯이 쏟아졌고, 여행 자유화 덕에 대학생들의 유럽 배낭여행이 유행이었다. 그중에 음악은 큰 충격이었다. 91년도부터 알려진 서태지와 아이들. 95년 노래이지만, 〈컴백 홈〉을 봐라. 이 노래를 들었던 가출 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서태지 현상은 그랬던 것 같다. 노래 하나의 힘, 그게 아마 문화라고 새겼던 것 같은데, 그 노래가 가두투쟁과 같은 사회적 투쟁 이상으로 힘이 있다는 것. 그것이 놀라웠다. 우리가 그토록 바꾸려고 했던 교육 문제를 다른 문화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복도훈 : 작가적 원체험이자 현실과 역사로 넓어져 가는 이야기인데, 91년 5월은 하명희 작가에게 무엇일까? 너무 큰 질문인가?

하명희 : 아니다. 소설에 나오는 한 단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 '패륜아'. 청소년기는 가족, 학교 선생님 등과 맺는 사회적 관계가 시작되는 때인데, 그때 나는 가족도, 사회도, 국가도 버리고 싶었다. 누가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할 때, 대변해 주지 못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의 도덕으로부터, 가정의 굴레로부터, 학교의 제도로부터 벗어나려는 자기 선언, 이것이 패륜아다. 사회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낙인찍은 그 이름을 우리는 저항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다.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삶, 우리는 그것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고, 싸웠고, 밟혔고, 종국에는 패륜아가 되었다. 패륜아란 단어를 너무 많이 듣다 보니 패륜아는 방랑자처럼 고독하고 자유로운 떠돌이로 느껴지기도 했다."(『나무에게서 온 편지』, 276쪽)
    "도은은 아름다운 것을 꿈꾸던 슬픈 물고기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들은 외치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패륜아들이다. 우리에게는 영혼이 없다. 영혼이 없는 자들은 신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당신들의 나라에서 쫓겨난 우리들은, 너희들을 인정할 수 없는, 패륜아들이다."(『나무에게서 온 편지』, 297쪽)

 

복도훈 : 91년 5월의 이야기는 소설가 김연수, 전성태 등도 자신의 단편에서 다룬 적이 있다. 그렇지만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의 이야기로서는 『나무에게서 온 편지』가 아직까지는 유일하다.

하명희 : 덧붙인다면 김소진, 김별아의 소설로도 나왔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고등학생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더라. 내가 겪은 91년 봄은 그렇지 않은데······. 작년에 권경원 감독의 〈1991, 봄〉이 개봉되어 지금까지 독립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다. 영화는 단 두 달간 13명이 국가공권력에 죽임을 당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1991년 봄을 강기훈의 기타 선율에 담아낸 음악영화이자 다큐멘터리이다. 권경원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영화를 만드는 데 세월호가 크게 작동했다고 하더라. 감독은 우리가 그때(1991년)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애도 없이 시대를 건너뛴 것은 아닌가, 그것이 세월호를 통해 또다시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쓰던 막바지에 세월호를 겪었다. 그 막막함이 퇴고 과정에서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이야기해 줄 만한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던 1991년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나왔다. 책이 나오고 광주의 한 단체에서 불러 주어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한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1991년 봄에 분신한 김철수의 마지막 육성 테이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 찾으러 오지 않을까 하며 28년 동안 그걸 품고 있었던 거다. 권경원 감독에게 연락했더니 여태 그 테이프를 찾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해서 영화 속에 김철수의 육성이 들어가게 되었다. 기억의 문제를 짚어 보고 싶다. 다들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하기도 한다. '고등학생 운동을 다룬 소설'이라는 타이틀보다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답하는 것이 문학으로 영화로도 규정되지 않은 또 다른 문화 형태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복도훈 : 음, 매우 인상 깊은 얘기다. <1991, 봄>은 꼭 찾아서 보겠다.

 

    소설집 『불편한 온도』에 실린 「그림자들의 강」을 읽어 보면 하명희 작가의 자전적 삶의 흔적이 곳곳에 어지러운 발자국처럼 찍혀 있다는 추정을 하게 된다. 중편에 가까운 이 성장소설에서 삶의 기억은 가족을 둘러싼 삶의 신산스런 자취들,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가난과 고된 노동, 가족 구성원 간의 폭력, 삶터(밤섬)에서의 내쫓김, 가족의 옥살이 등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을 그리는 서술자 '나'의 시각은 뜨거운 상처에 방금 댄 것 같은 생생함보다는 어떤 시선, 때로는 무덤덤함과 때로는 그리움의 겹눈에 의해 감싸여져 추억되고 있어 보인다. 그러한 추억 또는 기억은 소설의 정갈하면서도 시적인 문장들에 의해 한층 아련하고 가슴 아프고 돌이켜보면 쓴웃음을 짓는 표정을 닮았다. 분노가 있고, 아픔과 울분이 있는데도 어떤 따뜻함에 의해 감싸여져 있다. 생각해 보면 『불편한 온도』에 실린 대부분의 단편들이 그러한 따뜻함, 온기에 의해 감싸여져 있다. 불편한 온도란 그런 뜻이겠다. 애초에 하명희 작가와 대담을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노동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가 최근 한국 소설에서는 거의 실종된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하명희 작가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인상에. 하지만 총론이 아닌 각론으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다소 달라졌다.

 

복도훈 : 『나무에게서 온 편지』에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하명희 소설의 출발점에는 가난 그리고 그와 불가분의 관계인 노동이 있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폭력. 그것들이 때로는 추억에 의해 감싸여져 있다고 하더라도 가난, 노동과 얽힌 폭력, 가해와 피해의 문제는 중요하게 취급된다. 소설집 『불편한 온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순하고 인정이 많지만, 자신의 폭력성에 대해 복잡미묘한 심경을 갖고 있기도 하다. 등단작인 「꽃 땀」에서 아이에게 욕을 하고 후회 되어 아이스크림 든 봉지를 건네주는 택배기사 청년, 「늙은 물의 사랑은,」에서 '남자가 되지 못한 남자'인 노년의 사내, 「목발」의 주인공처럼 그 자신이 구조의 가해자이기도 하며 그것의 피해자인 인물 등등. 대개는 남성들이기도 한.

하명희 : 가공의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을 형상화하고 그렇게 그를 쫓아가다 보면 반드시 구조적인 문제와 맞닥뜨린다. 소설에서 구조를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피해 돌아가기 쉽지만, 나는 되도록 그곳으로 가고자 한다. 그렇지만 구조를 다루다 보면 소설은 읽기 힘들어지고 또 어려워진다. 나는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 구조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를 계속 고민할 것이다. 다만 도식적이거나 사회학적인 대답이 아니어야 하겠다. 「불편한 온도」의 여성 크레인 조종사, 「꽃 땀」의 택배기사 청년, 「목발」의 실업자 이야기는 개인의 이야기이면서 구조의 이야기이다. 싸움의 막다른 현실에서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을까. 이것이 내 고민이다.

 

    "도은에게 노동은 불편한 것이었다. 가난한 것이었고, 더러운 것이었다.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안 하고 싶은 것,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었다. 쓸모없는 자들의 쓸모없는 몸부림이었고,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귀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해도 판자로 지은 집은 박스로밖에 바뀌지 않는 굴레였고,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이었다.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고, 한평생 몸뚱이를 굴려도 돈은 없고, 남들이 버린 쓰레기나 뒤지고 다녀야 하는 빈 수레였다. 고물 리어카였다. 쓰레기를 놓고 다투는 욕이었고, 그것마저 빼앗기고 속으로 욕을 삼키는 고인 침이었다. 어디든 뱉어버리고 싶은 썩은 물이었다."(『나무에게서 온 편지』, 64~65쪽)

 

복도훈 : 한편으로는 노동현장에서 젠더의 문제도 부각시키고 있다. 「불편한 온도」의 주인공은 크레인을 조종하는 여성 노동자 '나'로, 이 소설은 계급과 노동 연대의 이야기이면서 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남성 노동자 '당신'과 '나'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편으로서의 완성도도 높고, 아프면서도 따뜻하다. 그런데 소설에서 '당신'은 크레인 조종이 여성이 하기에 어려운 일 아니냐는 흔한 질문을 '나'에게 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일이 여성에게 더 어울린다고까지 말하는 인물이다.

하명희 : 나는 계급과 젠더의 문제는 겹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복도훈 : 물론이다. 그 문제를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임인애 감독의 다큐멘터리 〈밥.꽃.양〉(2001)에서 재현된 현대자동차노조 식당여성조합원들의 정리해고 이야기가 괴로운 역사적 분기점이었던 것 같다. 계급문제에서 정체성(젠더)의 문제를 분리시키는 사태를 초래한 이들은 결국 남성 노동자들이었다. 또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된 그해에 남성 노조 간부들의 성폭력을 공개 고발한 백인위 사례도 있었다. 그때부터 계급과 정체성은 적대적으로 분기되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제 어떤 경우에는 계급문제가 정체성(젠더)의 하위항목으로 다뤄지기도 한다. 「늙은 물의 사랑은,」에서 병든 남성 주인공의 통한에 가까운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하명희 : 「늙은 물의 사랑은,」은 의도적으로 젠더를 다룬 소설이다. '남자가 되지 못한 남자',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남자는 되지 못했지만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 사이의 어긋난 자리, 그의 고백과 회한의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의 폭력을 고발하기보다는 그것을 우선 이해하고 싶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게 내겐 문학이다.

 

    도은이 처음 만난 인생의 책, 바실리 예로센코의「슬픈 물고기」에서
    "「슬픈 물고기」에는 물고기들이 가고 싶어 하는 나라가 나와요.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붕애는 착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고요. 그런데 어느 날 물고기들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전해 듣지요. 그 나라의 신의 말을 적은 책에 물고기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영혼이 없는 자들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나와 있다는 것을 알게 돼요. ······ 그 나라의 신의 말을 적은 책이 있다면 물고기들의 책도 있어야 하는 거예요. 나무에게는 지금 그게 필요할 거고요. 절실하게 필요할 거예요."(『나무에게서 온 편지』, 56~57쪽)

 

    난지도에서 온 '편지'의 '나무'
    "나뭇잎 하나에 나무 한 그루가 박혀 있었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 한 장, 그 속에는 한 그루의 마음이 간신히 서서 버티고 있었다. 태풍에 사라진 바위도 있었고, 웅덩이도 있었다. 웅덩이 속에 거꾸로 박혀 있던 숙자도 있었다. 죽은 숙자의 털을 쓸어 주던 바람도 있었다. 그 위에 내려앉던 저녁도 있었다. 그 옆에서 울어버린 도은이도 있었다. 울다가 지쳐 혼자 언덕을 내려가던 쓸쓸함도 있었다. 그리고 나무는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한 자리에 서 있었다."(『나무에게서 온 편지』, 48쪽)

 

복도훈 : 그래서 그런지 하명희 소설의 메시지는 직접적이거나 투박하지 않다. 은유적이며, 시적이다. 식물이나 동물 상징이 많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에는 나무의 식물 이미지, 물고기 은유가 등장하며, 『불편한 온도』에는 코끼리, 기린, 지렁이 등의 동물 은유가 등장한다. 예를 들어 「꽃 땀」의 택배기사 청년은 자신의 배달용 트럭을 '코끼리'로 부르는데, 꽤 실감난다. 「불편한 온도」에서 주인공의 연인이 되는 크레인 기사는 크레인을 '기린' 같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소설은 동물 이미지와 은유가 많다. 예를 들면 물고기의 산소조절장치, 즉 원더넷(괴망)과 새가 한 발을 드는 이유가 불편하지만 살기 위한 자세라고 말한다. 「저녁의 목소리」의 두 연인은 서로를 '물고기의 남동생', '새의 여동생'이라고 말한다. 왜 그런 상징을 많이 쓰게 되는가?

하명희 : 그런가? 그렇구나. 음, 나는 어린이대공원 근처에 살고 있다. 가끔씩 동물원에 가서 동물들을 본다. 동물들을 보면 재미있다. 그들은 부러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 존재다. 나는 동물들 안에서 사람을 본다. 즉 사람 안에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린을 보면서 기린 같은 사람을 본다. 그래야 사람이 더 잘 보인다. 말하자면 바깥, 인물의 바깥, 사건의 바깥에서 인물과 사건을 보는 것이다. 소설가로서 나는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가기보다는 그 인물이 처해 있는 정황, 상황, 제스처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는 게 더 흥미롭다. 가령 목소리라든지 걸음걸이 같은 것을 통해서 그 사람을 말하는 것. 작은 것들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쓰고 싶은 욕구가 있다. 쉽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복도훈 : 곧 출간될 소설집 『고요는 어디 있나요』를 포함해 하명희 작가의 문체는 대단히 서정적이다. 지금부터는 비평가로서 애정 어린 쓴소리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작가의 서정적인 문체가 환기하는 현실은 어찌 보면 지극히 산문적인 노동현장이다. 이것은 단편에서는 성공적일 수 있겠지만, 장편을 쓰기 위한 동력으로는 힘에 부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렇게 보면 『불편한 온도』는 전반적으로는 '불편'보다는 '온도' 쪽으로, 불편하기보다는 따뜻한 이야기 쪽으로 흐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명희 : 파편화된 진실이 보편적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온도』는 공통의 과제, 공생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소설화된 각 개인을 통해서다. 하룻밤의 대화에서도 치유와 공감, 화해가 도출된다면 나는 그쪽을 취하겠다.

복도훈 : 그럼에도 악인, 부정적 인물이 별로 없다.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도 그리움의 대상으로 그려져 있다. 르포르타주 또는 그를 바탕으로 한 소설의 산문적 현실로 넘어가면 복잡해지겠다. 부러 만나자고 해놓고 계속 불편한 얘기를 해서 미안하다.

하명희 : 아니다. 그게 나의 과제다. 그렇지만 내가 아프고 쓸쓸한 순간에 위무가 되었던 것이 문학의 원초적 경험, 불씨였다. 나는 그것이 문학이라고 어렴풋이 새기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한 소설가가 지나가는 말로 슬쩍 나를 찌르더라. 자기가 잘하는 거, 좋아하는 것만 쓸 거니? 뒤섞어 봐야지. 좋아하는 것 속에서도 그 속으로 더 들어가면 복잡미묘해지는데 그걸 풀어낼 때 또 다른 소설적 재미가 있지 않을까. 굉장히 뜨끔했다. 다른 작가들도 그런 욕구가 있을 것 같은데, 이럴 때 페소아처럼 여러 이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복도훈 : 와, 페소아는 나도 무척 좋아하는 작가이다. 페소아에 대해서는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그런 면에서 나는 『고요는 어디 있나요』를 작가 자신의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로 읽었다. 짧은 이야기 모음집이지만, 완결성을 기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적지 않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으면서도 어디서부터 펼쳐 읽기 시작하더라도 좋을 것 같았다. 『고요는 어디 있나요』에 대해 독자들에게 소개해 달라.

하명희 : 『불편한 온도』에 힘이 들어갔다면, 『고요는 어디 있나요』는 힘 빼고 쓴 일상의 이야기다. 짧은 이야기에서는 사건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다 보니 완결성이 중요하다. 새 단편집에서는 가벼운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 유쾌한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섞고 싶었다. 오히려 그게 단편집이 아닐까 싶다. 읽다가 덮어도 상관없는 그런 단편집.

복도훈 : 장편소설을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장편소설인지 조금만이라도 이야기해 달라.

하명희 : 아까도 말했지만, 악인이 없다는 것은 내게는 갈등 지점이다. 내가 말하는 악인은 다시 말하면 문제적 인간인데, 내 삶에도 그런 지독한 인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들 가운데 골라서 소설화한 것은 아닌가. 지독한 인물들,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적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싶다. 갈등을 만들어 가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 지금 계획하는 장편소설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은 이야기로, 자료도 상당히 확보했다. 사실을 소설화할 때 발생하는 지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것을 실현하는 것이 지금 내 앞에 떨어진 과제다.

복도훈 : 좋은 말씀, 감사하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하명희 : 수고하셨다. 감사하다.

 

후기

 

    번외의 이야기도 조금 나눴다. 애초의 질문은 '한국 소설에서 갈수록 노동과 계급의 이야기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였다. 그래서 주목했던 작가가 하명희였다. 대담에서도 언급했지만, 차별(정체성)과 착취(계급)를 명확히 나눌 수는 없겠다. 그러나 차별에 대해서는 과잉이랄 정도로 이야기와 담론이 몰려 있는 반면에, 착취에 대해서는 그만큼 이야기되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것은 직감이 아니라 실감이다. 물론 그것은 그동안 우리가 차별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해 온 적이 있나, 라는 질문을 무시하는 실감이 아니다. 또 착취에 대한 이야기가 차별을 희석시킨 사례도 적지 않았나, 라는 반문을 회피하는 실감도 아니다. 돌이켜보면 노동계급의 남성들에게 밥하고 빨래하고 그들을 위로해 주는 '밥어미'가 등장하는 식의 이야기는 물릴 정도로 얼마나 많았던가. 또 그런 이야기에 소설적 진실을 부여하고, 계급적 의미를 읽어내는 비평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이쯤 되면 작품보다는 비평에 대해 지적하는 게 아무래도 더 들어맞겠다. 차별에 쏠린 반면에 착취에는 무심한 담론, 차별과 착취가 얽혀 있는 곳에서 하나만 읽어내려는 비평. 하명희 작가는 말했다. 이런 시기에 비평가에게 중요한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기 목소리를 내서 담론을 만들고, 비록 불일치하더라도 토론을 회피하지 말고, 쟁점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지금은 일방향적으로 공격하거나 낙인찍고, 다수는 침묵하며, 그런 식으로 주류와 비주류가 나뉘어 같은 목소리만 반복할 뿐이라고. 쓰디쓴 지적이 아닐 수가 없었다.
    예외의 목소리가 주류로 올라서면 그것은 예외가 아니라 주류이다. 정확히는 예외로 읽히길 요구하는 주류. 특별한 것으로 읽으면 다르지 않다고 항변하고, 다르지 않다고 읽으면 특별함을 무시한다고 항변하는 주류. 그런 주류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하명희 소설에 대한 나의 관심이 주목했어야 마땅했지만 주목하지 않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비평적 직무유기를 돌이켜보는 자기반성이었으면 했다. 가까운 역으로 작가를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들었던 생각이다.(<문장웹진> 2019.5월호)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4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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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3 23: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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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세이>

. 하명희(소설가)

 

마음을 건드리는 말

 

 

소위 지나간 아름다움이란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으며 매혹시킨다. 폐허에는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로베르트 발저, 빌케 부인, 산책자(한겨레출판, 2017)

 

 

 

마음이 복잡할 때는 우선 문을 열고 나온다. 복잡한 마음을 데리고 나오든 문 안쪽에 두고 나오든 문을 열고 나온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로 갈까. 지하철 타는 걸 좋아하지만 문에서 나와 또 문으로 들어가는 게 싫을 땐 걷는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발이 가는 데로 몸을 옮긴다. 발은 처음엔 익숙한 곳으로 나를 이끌지만 어느 정도 걷다보면 시간을 거스른 곳에 내가 있다. 그 시간과 공간은 대개 골목이거나 사잇길이거나 고양이 꼬리를 따라 움직이는 다른 시선이 머무는 곳이다.

1월 중순, 무턱대고 집을 나와 지하철 2호선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아랫길을 따라 걸었다. 중간에 지겹거나 힘이 들면 다음 역까지만 걸어가 지하철을 타면 되는 안전한 길이다. 그 길에는 아무도 버스를 기다릴 것 같지 않는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고, 그 앞엔 누군가 버려놓은 소파가 있다. 한 번도 그 소파에 앉은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그날은 누군가 있었다. 그는 두 겹 세 겹의 옷을 껴입고 손가락 마디가 잘린 장갑을 끼고 있었다. 소파에는 두 개의 종이가방이 있었는데 그는 검정 비닐봉지를 하나씩 꺼내 소파에 늘어놓다가 다시 종이가방에 넣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려면 무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듯 뒤지다가, 그만 목적을 잊고 비닐봉지 개수 세기에 빠져버린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정류장 맞은편에 있는 금속 공장을 바라보았다. 그 앞 길가에 있는 용접기에선 불꽃이 튀고 있었다. 얼굴에 용접용 마스크를 낀 한 할아버지가 엉덩이를 쳐들고 철과 철을 이어붙이고 있었다.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꼬스름한 용접 향이 났다. 무언가를 이어 붙이는 일엔 불이 튀고 향이 난다. 그렇게 이어진 철을 다시 끊어놓으려면 또 한 번의 불꽃이 튀겠지. 그때도 꼬스름한 향이 날까.

그때 비닐봉지를 세던 그와 시선이 부딪혔다. 비닐봉지를 뒤지던 그도 용접 불꽃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나 사이를 이어 붙일 만한 뭔가는 없었지만, 그 잠깐 사이 나는 그가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고 느꼈다. 나도 절로 그를 향해 답례하듯 목례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하던 일, 그러니까 비닐봉지를 꺼내 도로 넣는 일로 돌아갔다. 나는 멋쩍어서 혼자 웃었다. 이럴 땐 복잡해진 마음 따위 잊고 다른 놀이에 빠져들게 된다. 비닐봉지를 뒤지는 그처럼 발길이 먼저 다른 곳에 닿는 것이다.

 

작은 길을 따라

발길은 전철역 구간을 빠져나와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 한강으로 이어지는 쪽으로 향한다. 뚝방길이다. 그래, 여기 유한양행이 있었지. 저녁이면 하얀 모자를 벗고 철문에서 쏟아져 나오던 사람들. 그 길엔 밥집이 많았고 저녁 불이 켜지는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었지. 포장마차가 끝나는 곳의 골목을 끼고 돌면 키 큰 나무로 자란 쥐똥나무 열매가 후드득 떨어졌어. 쥐똥 같은 열매를 주워 던지던 친구네 집이 여기 어디 있었는데. 이럴 땐 발이 기억을 따라온다. 친구네 집이 있던 골목을 지나쳐 누런 겨울 풀들이 넘어진 공터 앞에서 멈춘다. 기억이 무언가를 기억해내듯 이끈 길이다. 방금 전 내가 친구네 집을 기억했듯 누군가도 내가 살던 집을 기억해내고는 이 공터 앞을 서성일까. 여기 어디쯤이었는데 하며 두리번거릴까.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은 앞뒤로 열두 가구 셋방이 붙어 있던 판잣집이었는데, 얼마 전 그곳은 공터가 되었다. 집주인은 없고 땅 주인만 남았기 때문일까. 그래도 버젓한 주택가로 변한 동네에서 꽤 오래 버틴 셈이다. 버려진 냉장고가 쓰레기를 담고 입을 벌리고 있는 곳, 도주하듯 급하게 이사 간 것처럼 책장이 넘어져 있고 이불이 풀들을 덮고 있는 곳, 방과 방을 구분하는 벽이었을 여기저기 떨어진 나뭇조각들. 이곳에 집이 있었다는 걸 누가 알까.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이 집을 떠나 어디로 갔을까. 공간과 사물과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선 낯선 감정들이 생겨난다. 지나갔으되 마음을 건드리는그 자리에선 폐허의 감각이 돋아나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길로 연결되기도 한다. 공터에는 이쪽과 저쪽으로 넘나들며 죽어가는 풀들을 눌러놓은 작은 길이 나 있다. 나는 집이었던 공터에 생긴 작은 길을 따라 찻길을 건너 뚝방에 올랐다.

철과 철이 만나는 곳엔 꼬스름한 용접 향이 피어나지만, 한강과 작은 강이 만나는 곳엔 모래턱이나 다리가 생겨난다. 서울에서 돌로 된 가장 오래된 다리인 살곶이다리 위로 자전거가 한 대 지나가는 게 보인다. 살곶이다리를 건널 수도 있지만 나는 이번에는 다른 길로 걷기로 한다. 성동교 중간쯤에서 한강으로 가는 물길을 좇으면 작은 모래턱이 보인다. 모래턱에 있던 새들이 물길을 거슬러 날아오른다. 새들을 따라 중랑천변으로 눈길을 돌리면 성수동과 신설동을 오가는 전철이 보인다. 다리 반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 나를 스쳐 지나간다. 나는 새들이 날면서 허공에 똥을 싸듯 퉤, 내 앞에 침을 뱉는다.

열일곱이었나. 이 길에 서면 그 시절 여섯 달 동안 아르바이를 해서 산 내 마이마이가 떠오른다. 반대편에선 나보다 한두 살 많은 무서운 언니들이 오고 있었지. 그들은 방금 전 내 옆을 지난 사람처럼 그저 스치지 않고 내게 말을 걸었어. , 그거 내놔. 대답할 새도 없이 그들은 새것으로 반짝이는 하얀색 마이마이를 낚아채고는 제 것처럼 가방에 넣었지. 안 돼, 그거 주세요. 내가 말했던가. 싫어, 그거 내거야, 했던가. 아니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그들은 지나갔지. 한번 지나간 것은 잡을 수 없다는 듯, 노래처럼 경쾌한 발걸음으로 키득대며 내가 왔던 방향으로.

뒤를 돌아본다. 그사이 30년이 지났다. 30년이 지나도 그때의 저릿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들은 모르겠지. 내가 그 이후로 욕망을 지우고 숨기며 살았다는 것을. 가지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해봐도 눈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빼앗길 수 있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는 걸. 이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기억이나 추억으로 부르기에는 아린 감각이다. 나는 새의 위치, 허공에 뜬 것처럼, 이 길을 지날 땐 그래도 된다는 듯 30년 전엔 뱉지 못한 침을 또 한 번 뱉는다. 사방으로 몰아치는 강바람이 내 뒤로 침을 옮겨놓는다. 핸드폰으로 그때 다 듣지 못한 노래를 찾아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한양대역으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 발렌슈타인의 보편적 엄마, 유니버셜 마더가 떠다닌다.

 

책방이라는 헤테로토피아

그 길에서 침을 뱉어서일 것이다. 30년 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 어느 날 문득 그 길에 섰을 때, 그때로 돌아가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 그것을 마음대로 해버렸으므로 그날의 부대낌이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내리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날 내가 폐허가 되어버린 옛집을 보았으므로, 그 사이로 난 작은 길로 건너왔으므로 생긴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내 기억은 30년 전 처음 그 책방으로 향하던 발길을 되돌아 걷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책방이 있는 대학 쪽으로 걸었다. 유난히 몸통이 굵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그 골목의 대장처럼 서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2층은 원서, 1층은 인문사회과학 서적이라고 씌어 있는 예전 간판에 전화번호 역시 예전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맞은편 지하로 자리를 옮겼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들어와 가방을 맡기거나 게시판에 메모를 남기곤 했던 곳. 고등학교 시절 이 책방은 다른 학교 친구들과 만나는 만남의 장소였고, 연락을 남기던 아지트였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 앉아 책을 보는 도서관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판잣집에는 없던 책들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생겨나는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이 책방이 문을 닫는다고 들었다. 철거되어 공터로 남은 옛집과는 다르게 이 책방은 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을까. 책방 이름이 박힌 녹색 간판에는 since1985라고 적혀 있었다. 녹색 간판에 빨려 들어가듯 나는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자신을 풀벌레라고 부르는 책방 주인이 인사를 건넨다. 스물여덟에 이 책방에 들어와 지금은 쉰넷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이곳의 오랜 손님이었다는 걸 알아보고는 소식 들으셨죠? 책방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요, 라고 말했다. 손님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내 기억일 뿐 나는 1년 만에 이 책방에 다시 온 거였다.

-26년 동안 여길 지키셨잖아요. 아무도 못 하는 일을 하신 거예요.

그에게 인사를 하려고 들른 갈색 모자를 쓴 중년의 남자가 나 대신 끼어들었다.

-저는 오늘 부산에서 왔거든요. 기사 보고 꼭 한번 와보고 싶어서 지금 대학 입학 결과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랑 같이 왔어요.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부산에서 온 청소년들도 한마디 얹는다.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책장을 둘러보았다. 출입문 옆에는 청색이 바래 옥색이 된 바탕에 흰 새와 검은 새가 그려진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곳을 들락거리면서도 그동안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은 포스터다. 포스터는 1990421일에 연극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상연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제야 떠올랐다. 책방에 붙은 이 포스터를 보며 이 연극 보고 싶다고 친구와 나누었던 열일곱 살의 대화. 풀벌레는 찻길 건너편에 있던 원래 공간의 흔적을 이렇듯 지금의 서점 곳곳에 옮겨놓은 거였다. 포스터만으로도 이곳의 시간은 기억이 고이고 열리는 다른 공간, 헤테로토피아(Les Hétérotopies)가 된다. 푸코에 의하면 유토피아는 뭔가 거창한 목적과 당위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의 공간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다락방과 광장, 정원과 양탄자, 영화관과 묘지, 목요일 오후 부모의 커다란 침대 같은 것들이다. 그는 이런 현실화된 유토피아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공간과 시간이 뒤섞이는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책방에 들어왔을 때 훅 끼친 책 먼지 냄새, 기억을 되찾게 해준 포스터만으로도 이곳은 내게 열일곱 살로 돌아가는 헤테로토피아가 된 셈이다.

 

마음을 건드리는 말

포스터 옆 책장 하나에는 녹색평론사의 책들이 꽂혀 있다. 시내의 대형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컬렉션이다. 그 옆엔 풀방이 있다. 계단 아래 공간을 방으로 만들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지하의 다락방 같은 곳이다. 책방에 온 손님들이 책 읽기 모임도 하고 토론도 하는 방이라고 했다. 벽에는 철학이란 철학을 넘어서기 위한 도구이다라는 낙서가 붙어 있다. 풀방 옆에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맞은편에 있던 책방의 책장을 뜯어 와 80년대 서적을 꽂아놓은 공간이 있는데, 노동 등을 다룬 인문사회과학 서적뿐 아니라 북한 문학이나 시집까지 80년대 금서를 아우르고 있다. 내가 책방을 둘러보는 동안 풀벌레는 책방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들른 손님들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책을 몇 권 뽑아 의자에 앉았다. 열린 문으로 꽃무늬 스카프를 두른 키 작은 여자가 들어와 책장 사이를 돌며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게 보였다. 풀벌레는 인사를 건네며 찾는 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그냥 천천히 둘러보겠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보았던 포스터를 살피다가, 녹색평론사 책꽂이에 꽂혀 있는 케스매와 소년을 만지작거리다가, 풀방을 지나 80년대 책꽂이 앞을 서성이며 책을 꺼냈다 넣고 다시 꺼내기를 반복했다. 시집이 꺼내졌다가 끌로드 모르강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 펼쳐졌다가 했다. 그녀는 걸음을 옮겨 90년대 초에 나온 북한 SF 소설인 푸른 이삭을 지나 새 책이 진열된 매대 앞에서 손가락으로 책등을 만지고 있었다. 그녀의 동작이 비닐봉지를 넣었다 빼고 다시 넣던, 마을버스 앞 그의 행동과 닮아서 유심히 지켜보던 나는 서점 판매원을 가장하여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찾는 책이 있으세요?

-, 찾는 건 아니고요. 얼마 전에 느티나무책방에서 나온 책 읽는 모임에 관한 책인데, 책 제목이 뭐였더라.

-같이 읽고 함께 살다요.

-맞아요, 나무 색깔 표지였는데 있을까요?

나는 그녀가 한 것처럼 손가락으로 매대에 진열된 신간들의 책등을 하나씩 훑었다. 손가락 끝에 나무 색깔이 걸렸다. 책을 받아 든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사실 책을 사러 온 건 아니고요, 그냥 이 책방에 한 번은 오고 싶었어요. 이런 곳이구나.

도시에서 책방은 멈춤의 시간을 준다. 나는 그녀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느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녀가 먼저 물었다.

-혹시 퇴촌이라고 아세요?

-그럼요.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는 그녀가 이야기를 꺼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연애할 때 남편의 방에 가봤는데 방에서만 지내던 사람이라서 그 방이 제겐 무척 특별했어요. 남편이…… 어릴 때부터 장애가 있었거든요.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책방이더라고요. 그래서 언제든 이 책방을 바깥으로 열어두고 싶다 생각만 하고 있다가 결혼하고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날 불쑥 저질러버렸어요. 더 지나면 못 할 것 같아서요.

-퇴촌에서 책방을 여셨나요?

-아니요. 동네 도서관이요. 도서관은 책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줄 알고 앞뒤 안 재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하고 싶은 걸 하자 하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문을 닫았어요.

-유지하기가 힘드셨나보군요.

-그래도 제가 얻은 게 더 많더라고요. 5년 이웃들이 동네 친구가 되면서 베짱이도서관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진짜 베짱이처럼 기타 치고 노래하고 아이들 같이 키우면서 잘 놀았어요.

-저도 오늘 불쑥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그냥 발길이 이곳으로 끌렸어요. 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서점이라서 문을 닫는다고 하니까 계속 마음에 걸렸거든요. 그러다가 불쑥.

그녀는 불쑥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듯 눈주름이 잡히며 미소를 지었다.

-오래된 서점을 접는다고 해서 쓸쓸할 줄 알았는데…… 제가 기운을 얻고 싶었나봐요. 같이 읽고 함께 살다, 이 책을 읽을 땐 이곳이 떠오르겠어요.

그녀는 책을 사고 나가면서 다음 달에 또 들르겠다고 했다. 풀벌레는 그녀가 산 책에 이 책방의 독서 모임도 소개되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꼭 다시 들르겠다고, 도서관을 접고 책 정리를 하며 많이 울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기운을 받았다고 했다.

그 말이 흔들리던 나를 붙잡았다. 철과 철이 만날 땐 꼬스름한 용접 향이 피어나고 한강과 작은 강이 만날 땐 모래턱이나 다리가 생기지만, 책과 사람이 만나는 서점에서는 시간을 알 수 없는 이야기가 흐른다. 열일곱 살 내가 이 책방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이상한 기운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던, 아무도 내게 간섭하지 않았던 이 책방에는 내가 모르는 자유를 가르쳐주는 이야기가 늘 배경처럼 흐르고 있었다. 나는 곧 문을 닫을 책방에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깊은 의미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이곳을 기억하겠다는 말이었고, 30년 전 어느 날 내가 했던 말이었으며, 폐허가 된 공터에서 느꼈던 마음을 건드리는말이었다. 집이 허물어진 공터에도 고르게 햇살이 내려앉듯, 그 공터에 사람들이 지나며 작은 길이 생기듯, 책방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 또 다른 시간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아직 배우지 못한 기억의 또 다른 방식이다.

그날 집에 돌아오니 책방에서 산 책이 가방에 없었다. 설마 하며 사진으로 찍어둔 예전 간판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풀벌레는 책을 챙겨놓을 테니 언제든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배운 말로 다음 달에 꼭 가겠다고 했다. 이날 우리는 처음으로 30년 전의 전화번호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보보담> 2019.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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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 작은집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를 빠져나와 열한 걸음을 걸으면 3인용 텐트만 한 작은집이 있다. 이 집의 벽면은 천막이 아니라 조각천으로 이어져 있다. 왼쪽에는 세 개의 산등에 동이 터오고, 오른쪽에는 조각배가 떠 있는 바다가 출렁인다. 사면의 조각보 위로 삼각 지붕이 얹어져 있는데 국회의사당 정문 쪽으로 살아남은 아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박음질되어 있다. 그 아래엔 바닷가 해당화일까, 커다란 꽃송이가 피어 있다. 이 집의 삼각 지붕에는 다른 집에는 없는 매일 숫자가 바뀌는 칠판이 있다. 정문에는 머리를 빡빡 민 아이가 나는 도망가다 잡혔습니다라는 글자가 박힌 붉은 티셔츠를 문패처럼 달고 있다. 그 옆에는 여름에도 이곳에 이 집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돌돌 말려 올라간 차양막이 있고 스티로폼으로 된 문이 있다. 문을 열면 방이다. 서너 명 앉을 수 있는 방. 그러니까 이 작은집은 방이다. 이 방에 들어와 본 사람들은 알 수 있는 묘한 기운이 있는데, 그것은 방의 두 면에 있는 산과 바다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어서일 것이다. 산의 속, 지하철역 쪽으로는 지난 가을에 입었을 법한 쑥색 점퍼가 걸려 있다. 바다의 속, 국회의사당 정면 쪽에는 형제복지원에는 3개의 병동이 있었다로 시작되는 어느 날의 신문 기사가 벽면 가득 붙어 있다.

앞머리가 눈을 덮고 찬기에 어깨를 웅크린 그가 허리를 구부려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신발을 벗고 바닥을 덮고 있던 이불 속으로 발을 뻗었다. 그가 미리 덥혀놓은 주전자에서 캔 커피를 꺼냈다.

이거라도 들고 있으면 조금 나아요.” 이 방에서 캔 커피는 마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일한 온열기다. 이 이불 하나로 괜찮으냐고 물었다. “하도 길에서 살아서 이젠 뭐, 괜찮아요.” 그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나왔다. 누구나 들어오라는 듯 입김이 열린 문 쪽으로 빠져나갔다. 누군가 고개를 들이밀고 손님이 있었네, 하고 끼어들었다. 그는 1인 시위에서 했다던 몸에 익은 목례를 하며 내게 저기 민간인 학살 투쟁위원회의 어르신이에요.” 하고 말했다. 다른 농성장에서는 천막 안에 잠자는 텐트가 있던데 여긴 온열기구도 없이 어떻게 견디느냐고 물었다. “천막 농성장이 커지면 더 추워요. 작은 게 좋아요. 여긴 사람들이 신발 벗고 들어와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힘든 얘기나 농담이나 그런 걸 나눌 수밖에 없죠. 방이니까. 사랑방이라고 해야 하나.” 그동안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물었다. 그는 칠판에 날짜를 지우고 더하며 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이제야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 고맙죠. 저쪽 한국에서 제일 큰집에서는 아무도 안 와요. 매일 이 앞을 지나가면서도 단 한 명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1인 시위를 시작한 때가 2012년이니까 6년 지났고 올해 7년째인데, 작년 1226일에도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구요.” 그는 웅크린 어깨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말했다. 나는 책을 보았다고 했다. 내가 책을 꺼내자 그는 첫 페이지를 손으로 짚었다.

이게 나예요. 팔사일공삼육일팔! 아홉 살 때. 어릴 때 사진은 이것뿐이에요. 팔사일공삼육일칠은 작은누나고.”

그는 이빨이 시린지 얼굴을 찡그렸다. 책을 보고 알고 있었다. 그에게 추위는 공포라는 걸. 잠깐이라도 따뜻한 곳에서 밥을 나눠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상대방의 생각을 미리 알아채는 법을 아홉 살 이후 몸에 익힌 듯 내게 먼저 밥 먹으러 가죠.”라고 말했다.

살아남은 아이. 우리는 그들 수용소의 생존자들을 이렇게 부른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대략은 알고 있다고 말한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이것이 그들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리고 있는가. 그는 밥을 씹지 않고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이빨이 아파서요. 어릴 때니까 유치가 빠지고 어른이빨이 나오는 때였어요, 형제복지원에 붙잡혀 들어갔을 때가. 그때 관리를 못한 것도 있고, 빨리 먹어야 하니까 급하게 삼키던 것이 버릇이 된 것도 있고, 또 어떻게든 거기서 나가야 사니까 이를 악 물었던 게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내가 씹기에는 무른 밥이 그에게는 딱딱한 밥이었구나. 이 책에는 그가 왜 무른 밥을 씹지 못하고 삼켜야 하는지, 왜 찬바닥에서 자는 것이 일상이면서도 그것이 공포인지, 왜 어깨를 움츠린 채 허리를 펴지 못하고 인사를 하는지, 그의 몸에 새겨진 폭력과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역사의 거대한 공백이 조각보의 박음질 글자처럼 새겨져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제 개나 소나 다 글을 쓰는구먼.’ 그렇다. 한때 나는 개였고 소였다. () 사람에서 짐승처럼 되긴 쉽다. 그렇지만 짐승에서 사람으로 온전히 돌아간다는 것, 그것은 말로는 쉽지만 사실은 너무나 힘이 든다. () 나는 지금 짐승에서 사람으로 돌아가려 한다. () 그런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국가가 버렸고, 사회가 관심을 안 갖는데, 어찌 개인의 힘으로 쉽게 나올 수 있겠는가? 당신들은 진정으로 그들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길 원하는가?” 한종선, 살아남은 아이(이리, 2012) 134135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옥을 경험한 그가 형제복지원을 나와 생존자로서 살아야 했던 세월을 사회가 몸으로 받아 적는 일이다. 그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이다. 안영춘은 어째서 소년은 그동안 우리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일까. 우리는 수용소와 연관된 모든 이들이 퇴소 후에도 여전히 비가시적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문맥과 행간에서 찾아야 한다.”(10)고 이 책의 발문에 적고 있다. 책이 나온 것이 2012년이니 벌써 7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이 책의 소년이 던진 질문들은 그 거대한 공백을 어떻게 채웠을까. 이 책을 기획하고 생존자 한종선이 그의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격려한 전규찬은 수용소의 생존자들에게는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의 의무, 수용소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그 증언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경청의 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책 속의 아이가 있고, 생존자들이라 불리는 그들은 423일째 폭력의 날짜를 새기고 지우며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수용소의 생존자들이 진심으로 사람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가?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한국에서 가장 큰집인 국회 앞에 나는 도망가다 잡혔습니다라는 문패를 단 작은집이 있다. 작은집에는 울타리가 없어 집 밖이 다 마당이다. 주소가 없어 우편물을 들고 직접 가야 한다. 작은집은 지나는 사람이 들어와 인사를 건네거나 주변의 농성하는 사람들이 걱정을 풀어놓는 사랑방이 된다. 작은집 마당의 큰집에서는 작년에도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수용소의 생존자들이 1인 시위를 시작한 지 7, 국회 앞에 작은집이 들어선 지 423일이 지났다. 그동안 국회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이 작은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오지 않았다.  (월간 작은책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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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소년이 25년 만에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이다. 어째서 소년은 우리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일까. 우리는 수용소와 연관된 모든 이들이 퇴소 후에도 여전히 비가시적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문맥과 행간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 이 문제는 새로운 아포리아(곤경)여야 한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적 성취가 가장 가시적이었던 시기에 소년은 오히려 비가시적인 존재로, 사회적 투명인간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물음은 무엇일까. 이 책은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어느 거대한 공백에 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규찬 기획, 한종선 전규찬 박래군 지음, 안영춘, 「발문:소년은 그들과 이어진 벼리이다」, 『살아남은 아이』(이리, 2012)

 

* 책이 나온 것이 2012년이니 벌써 6년이 지났다. 그 사이 이 책의 소년이 던진 질문들은 그 거대한 공백을 어떻게 채웠을까. 어떤 시기를 함께 지나왔으나 수용과 격리로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공백.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 불쑥 내 앞에 나타난 책 속의 소년과 422일째 거리에서 노숙중인 ‘역사의 천사’는 무엇을 통해 바뀌었나. "사람들은 더이상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는 명제는 이 역사의 천사 앞에서는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문장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떻게 만나야 할까를 고민하는 아침. 우선은 내가 길에서 본 가장 소박한 집, 그 작은집에 대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고백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흔네 해 동안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한번도 본 적 없다는 고백을 받아 적어야겠다. 피하지 않는, 우회하지 않을 용기를. 용기가 절실한 날이다.

 

#살아남은아이

#형제복지원

#작은집

#길위의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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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0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바람 2019-05-19 12:38   좋아요 0 | URL
이렇게 소식 전할 수 있게 되어서 반가워요.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알라딘에 들어오니 반가운 분들이 있어서 좋아요. 읽어주실 줄 알았어요. 빈 허공에 띄우는 소식이었는데 어디서든 누구든 만날 수 있는 우연이 좋아서요. 혼자 씩 웃습니다.
 

눈에 바친다

 

눈에 밟힌다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눈에 손발이 달린 사람이거나

망막이 통점痛點인 시인이었을 것이다

 

아무 하중도 없는 눈빛에 천만 근의

무게를 달아놓고

눈빛이 심장처럼 뛴다고

더듬었던 눈이,

밟힌 눈이 아프다 하였으니

 

두 눈이 만나지도 못하면서

늘 한곳을 보는 것은

한 눈의 외로움보다는

한 눈의 나태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아픔을 눈이 읽는다

모든 희열을 눈이 말한다

모든 숨이 두 눈꺼풀로 끝난다

 

제 눈에 제 눈물을

다 바치고서야

눈은 제 눈을

돌아보지 않는다

 

 

―문동만, 「눈에 바친다」 전문, 『구르는 잠』(반걸음, 2018)

 

 

* 시집의 어느 구절을 잡아도 생각을 멈추게 되더군요. 어느 쪽을 펴도 생각이 돌아요. 어느 해, 어느 날 바닷가 늙은 집의 철없는 막내둥이가 어쩌다가 생활을 짊어지고 살아온 내력을, 너무 일찍 철들은 무거운 삶 쪽으로 걸음을 옮긴 수평선을 닮은 시인의 시선과 마주하게 되고요. 출렁이다 다시 돌아가는 바다의 발가락 같은 간지러움을 읽다가 시인의 말을 들여다보는 연말입니다.

 

“나는 나에게 감동할 것이 희소했으므로 핏줄이나 사회적 혈연들에게서 그리움이나 한탄이나 웃음을 구했다.”

 

언제 보아도 울렁이는 파도의 말을, “피는 것 속에서 지는 것을 먼저 보는 병을 그냥 삶이라, 시라 받아들이고 싶다.”는 그냥과 결기 사이를 내년에도 살아가겠지요. 내 것이라 내보일 수 없는 빈약한 나이를 먹었으나, 그 초라함을 가져본 적 없는 웃음 쪽으로 옮겨보려는 마음을 숨길 수 없군요. 내년에는 나뭇잎을 던지고 노는, “아무도 아프지 않은 나뭇잎 싸움”을, “맞을수록 웃음만 나오는” 구르는 잠을 청하고 싶어져요. 덮을 수 없는 시집을 앞에 둔 2018년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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