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량魍魎,그림자 속의 그림자*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로 시작해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까지. 아직 살아 있음은 여전하다. 여자의 삶 속에는 일곱 권의 시집이 있고한 권의 산문집이 있고, 두 권의 번역서가 있고, 한 권의 번역 민담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여자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첫 시집에서 자신을 분절해 사방으로 뿌려대던 여자는 자신의 이전과 이후를 자신의 이름으로 각인시키도 하였으나, 그것이 얼마나 안전한 분해인지, 얼마나 편리한 분절인지를 두고 가볍게 말했다. "마치 착한 흑인도 있는 것처럼 흑인을 인정해주는 듯한 명명법"이라던가.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마치 착한 여자도 있는 것처럼 여자를 인정해주는 듯한 명명법." 끊임없이 자신을 해체한 청춘을 통해 내가 익힌 수사는 반복되는 <쓸쓸>이다. 여자의 쓸쓸은 도대체 무엇에서 왔을까.

"왜 나는 '한 아이가 뛰어가고 있다'라고 낙서하는 것일까"

여기에 힌트가 있을 것도 같다.

망량, 나는 그녀를 망량이라고 부르려 한다. 그림자 속의 그림자. 자기 그림자를 어쩌지 못하는 그 속의 그림자의 삶, 또는 (루머처럼) 살아 있음. 그것은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때로부터 "빈 배처럼 텅 비어" 돌아가는 때까지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여자는, 망량은 쓸쓸하다. 뛰어가는 아이를 보고 있는 그림자의 그림자는 쓸쓸하다. 어둠은 아이를 아이이도록 내버려두지 않아. 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려면 뛰어갈 수가 없잖아. 뛰어본 적 없는, 아이인 적 없는 슬픔여기서 "한 인간은 누구에게나 하나의 먼 풍경"임을 낙서로 고백하는 망량의 슬픔을 쓸쓸이라고 발음해본다.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 망량의 고백은 그래서 "쓸쓸해서 머나먼"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삶을 루머로, 풍경으로 바라보기. 쓸쓸하겠지. 살지 않고 바라보기.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주는 가여운 평화

 

'물의 방'에 누워 있는 여자는 세계를 보고 있다. "너로 인해 찾아온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을 꽃잎처럼 포개고, 가만히." 여자의 사랑은 종기처럼 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자는 버림받은 자들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풀잎이 비밀에 젖""별이 하얀 식은땀을 흘리는" 방에서, "내 사랑아, 너는 행복했었니?" 물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헛되고 헛됨을 완성하기 위하여 여자는 또다시 고요히 "냉동된 달빛"을 안는다. 혹은 낳는다. "시체나라의 태양"이 되어버린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오고" 여자의 애인은 어느새 "태평양처럼 누워" 있고 여자는 개떼처럼 몰려드는 추억을, 시간의 가시뼈를 잘못 삼킨 죄를 오로지 받아낸다.

여자의 세계는 실패들의 전시장이 되어버렸다. 상처들의 쓰레기 더미. 그 물의 방으로도 "커다랗고 예쁜 고래 한 마리"가 들어와 가만 있다가 간다. 망량이 사는 이 세상은 아직도 '언 강'이고 '먼 땅'이다. 여자는 물의 방에 있으므로 "세상은 바람이 독점"하고 있다그곳에서 여자는 잠든 체 하고 있거나 잠들어 있는 여자들을, 외로운 여자들의 공동체를 들여다본다.

그러면서도 스며드는 것들, 네가 왔으면 좋겠다는, 치명적이라는 병이 스며든다. 그 병이 슬픔이라면 그 "슬픔에서는 수프의 냄새가 난다"고 여자는 말한다. "나는 간다I go. 나는 간다Ego." 여자가 가는 곳에는 내가 있다. 너에게로 가지 못하고 나에게 가는 길은 에고의 길이다. 그 길이 여자를 망량이 되도록 이끌었다.

망량의 길에서 여자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죽음도 삶도 아니었다고. "삶 뒤에 또 삶이 있다는 것, 죽음 뒤에 또 죽음이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수없이"라는 말이 sad처럼 들리고, '이쁘다''기쁘다'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렇게 여자는 기억이 시작되는 창가에서 한 세월, 한 사막을 내려다본다. 드디어 물의 방에서 나온 것이다.

물의 방에서 나와 여자가 쓴 시들은 전부 "물 위에 씌어진" 것들이다. 여자는 자신이 시원병에 걸렸다고 토해내고 그것은 "아름다움이 없으면 삶은 쓸쓸해진다"는 하나의 그림자를 갖는다. 고독과 슬픔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며, 그것은, 혹은 그는, 늘 아름다움으로 슬프다. "그것이 그의 빼어난 아름다움"이라고 여자는 말한다. 여자의 시원병은 쓸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슬픔,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슬픔, 그 모자라고 넘치는 하나가 여자에게는 도달하고 싶은 가지고 싶은 시원이었을 것이다그것은 내가 보기에 '아름다움'이다.

"사람이 사람을 초월하면 자연이 된다"고 하는데, 여자는 자연이 되어버린 것일까. 망량은 자연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 모양이다. "물은 잘 잠들지만 바람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슬픔도 없어 슬퍼진 이 세상에서 슬픔밖에 몰랐던 죄"를 고백하는 여자는 이미 자연이 되어버린 것 같다. 행복도 아름다운 음식이라는 것을 몰랐던 죄, 여자의 시원병은 그것을 고백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여자는 말한다.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라고. 아득히, 나 아닌 어떤 것으로. 기억과 추억의 형상물인 여자가 되어 "나의 생존증명서는 시였고, 시 이전에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다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얼마나 세상에서 떨어져 살아왔는지, 여자는 "보고 싶다"고 쓰고 그 말에서는 "비릿한 날것의 생"이 들어 있음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말한다. 지독하다. 달은 술에 취해 흘러가고 여자는 망량을 떠나보낸다. "내 그림자가 쓰러져 울고 있다" 일곱 권의 시집 중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쓸쓸히.

 

*망량은 물에 사는 정령이다. 어린 도깨비라도 한다. 도깨비도 천진한데 그 도깨비가 어리다면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는 정체. 시인은 그 정령에게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이름을 주고 있다. 어린 정령이 쓰러져 울 때, 망량은 더이상 어리지 않다. 그 사이에 시인의 시적 화자가 쓸쓸히 얹혀진다. 쓸쓸로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정령, 시인의 시원이 거기에 있나, 있을 것 같다. 어려서 아프고 어려서 슬픈, 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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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백수는 휴가가 있다? 없다?

한달동안 병원에서

어머님을 잘 모셨다고

3일간 휴가를 받았다

새벽부터 물호스를 들고

마당으로 뒤안으로 뺑뺑이를 돌았다

어찌 노동없이 꽃 한 송이

고추 하나

쉽게 보고 먹을 수 있으랴

감자를 쪄놓고 앉아있다

햇살은 금방 퍼져 마당을 달군다

참 요즘 불편한 온도다

부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밤으로 새벽으로 시원하니

책도 좀 보란다

난 책은 싫다

꽃을 두고 어찌 책을 보란 말인가

말도 안된다

난 처음으로 아내 말을 거역할 것이다 -김용만 시인

*올해 봉선화는 김용만 시인의 마당에서 다 보았다. 김용만 시인의 형은 동네의 수재, 문재였다고 한다. 그래서 형에게 공부할 자리를 내주고 당신은 일용 노동자로, 간판쟁이로, 섬진강 지킴이로, 지금은 어머님의 고향집을 꽃밭으로 가꾸며 살아가는, 내가 보기엔 형보다 더 섬진강 같은 분이다. 조영관 문학기금을 받는 자리에서 슬쩍 다가와 주신 말씀은 한 사람의 삶의 태도를 그대로 담고 있었는데, 이러셨다. -

-

“아랫녘 내려올 일 있으면 가보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열차 시간이 애매하고 남고 그럴 때가 있을 텐데, 그럴 때는 나도 보고 가요. 늙은이는 그럴 때나 땜빵하는 거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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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하는 팀을 보면 기운이 나거든” 내가 살아온 방식도 비슷하다. 읽다가 멈추고 읽다가 멈춘다. 페이지를 못넘기다 생각하고 다시 페이지를 넘긴다. 패배한줄도 모르면서 패배하며 살았던 내모습을 보면서 기운낼 누군가가 있겠지 싶어 웃기도 한다 “불편한 온도” 당분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책이다. -노래하는 시인 이지상

-

*노래하는 거리의 시인 이지상 샘이 주신 말씀. <꽃 땀>의 문장을 붙잡으셨다. 그렇지. 패배하는 팀을 보면 이상하게 힘이 생기는데 선생도 그런 모양이다. 책 읽다 바이칼로 가셨는데 어디까지 읽으셨을까. 어제는 아무르 강에 내려온 황혼을 보셨다 한다. 샘의 사진첩에는 어제의 아무르 달이 담겨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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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현장이 미루어뒀던 책을 읽게 한다.

아주 옛날 스물댓때 녹십자 현장에서 일했는데

하루는 옆 실험용 토끼장에서 장기에 회충을 알아본다고 사내 둘이 토끼 여나무마리 배를 갈라 여기저기 던져놨더구만.

옆을 네 발 뻗구 자빠진 꼴이 참.

어찌나 가슴이 거시기한지 일손을 놓고 토끼장으로 가서 토끼 한마리 집어 빨리 숨을 끊어줄라고 목을 졸랐는데 두손에 힘을 주면 줄수록 혈관에 꿀떡꿀떡 넘어가는 피를 막을수가 있나.

힘아리하나 없는 토끼 심장이 그리 센것을 그때 알았지.

숨을 끊어주지 못하고 내려놀 수밖에.

지금도 꽉 누른 손에 밀고 올라온 피가 느껴져. 따뜻한 피가.

같이 간 친구는 말이 없고 멋적게 서있던 사내 둘 토끼는 헐떡이고.

단편 '불편한 온도'가 손바닥에 붙은 그때 그 토끼의 체온을 생각나게 하누만.”

 

 

- *건설 현장 노동자로 일을 하며 글을 쓰는 최경주 소설가의 단평이 고맙다. 손바닥에 남은 수년 전 토끼의 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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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하는 사람들

 

 

1.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 모임(최사모) : (노순택, 정택용), 박승화, 이승훈, 홍진훤, 조우혜, 박김형준, 이우기, 최인기

2.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비정규직대책 한국교회연대 : 박정범 목사

3.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 양한웅 집행위원장

4. 십시일반 음식연대 : 유희

5. 파견미술팀 : 전진경 작가

6. 밥통 : 손지후 매니저

7. 사회적파업 연대기금(사파기금) : 김영아 운영위원

 

           

1. 빛에 빚지다,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 모임

 

(사진 1) :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 모임 2016년 달력,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2009년 용산참사를 기점으로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 모임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한 해의 사진들을 모아 달력을 만든다. 2010년에는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 2011년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2012년에는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 2013년에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 2014년에는 밀양, 강정, 청도, 그리고 2015년 이들은 연대했던 사람들을 위한 연대의 달력을 만들었다. 이들이 만드는 달력의 이름은 빛에 빚지다이다. 사진가들에게 빛은, 빚은, 연대란 뭘까? 한 달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하는 자리에서 물었다.

요즘 이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최소한의 연대!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 모임이라는 이름을 접했을 때도 그랬어요. 이분들은 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예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저항이나 연대와 같은 거창한 무엇이 아닐 것 같은데, 그렇다면 뭘까. 다시 물을 게요. 최사모 회원들, 아니 사진가들에게 연대란 뭔가요?”

같이 행동하는 거긴 한데, 우린 딱히 연대라기보다는 우리 모임 자체가 연대가 아닐까 싶어요. 여기서 뭔가 해보자, 하는 것들이 생겨나거든요. 힘도 되고. 우리가 힘을 받으니까 바깥으로 카메라를 들이밀 수도 있고, 오고가는 거죠.”(이승훈)

정주하지 않고 떠나는 거. 그게 우리한테는 중요해요. 작업을 하려면 대상과 만나야 하니까.”(박승화)

사진 작업 자체가 풍경이나 사람에 대한 착취거든요.”(홍진훤)

왜 그렇죠?”

우리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작업을 하거든요. 예를 들어 투쟁 현장에 있으면서도 사진가는 싸울 수가 없어요. 찍어야 하니까. 찍히는 쪽 입장에서는 싸워야 하는데 거기다 카메라를 들이미니까 굉장히 화가 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해요. 내 식으로 그 순간을 찍거든요. 대상에 대한 착취라고 할 수 있죠.”(홍진훤)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기록을 남긴다는 의도에서는 빚지다는 게 맞는데, 이걸 돌려준다는 것은 피난처, 면죄부, 또는 자기 위안일 수도 있어요. 철저하게 외로운 작업이고.”(박승화)

사진을 여러 장 찍고 그걸 쫙 펼쳐놔요. 그러면서 고르죠. 고르고 나면 어떤 목소리가 있단 말이에요.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 아니고, 작업물을 보면서 다시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런 거요. 다시 생각해보는 고민들을 이 모임에서 다시 공유하거든요. 이런 것도 연대 아닐까. 아니면 같은 자로 연습이라고 해도 좋아요.”(조우혜)

관심 가는 곳에 내가 있는 거죠. 거기 카메라가 있고. 내 관심을 따라가는 건데, 그걸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사진가는 직접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걸 기록할 수는 있잖아요.”(박김형준)

관심을 가지는 게 연대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는 활동가들처럼 기록으로 사회문제를 보여주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거니까.”(이우기)

나는 이제 사진을 배우는 사람으로 조금 겸손하게 접근하고 싶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을 보는 게 연대라고 말하면 좀 그런가? 그런 걸 찍는 거고.”(최인기)

  

  

 

 

 

 

 

 

 

 

 

 

 

 

 

 

 

 

 

 

 

2. 우는 자와 함께 울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비정규직대책 한국교회연대 박정범 목사

 

(사진 2) :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하는 사순절 금식기도회

 

“‘교회가 위기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종교의 종교 없음에 대한 탄식일까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주일날 예배가 잘 안 되는 거죠. 예전 같으면 청년예배라고 해서 청년들이 모이고 고민하는 활동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청년들이 알바 하러 가야 하잖아요.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는 거죠. 또 하나는 중년층들도 비정규직인 분들이 많으니까 예배 참석뿐 아니라 교회에 헌신할 수가 없어요. 불안한 노동을 하다보니 가계도 불안하고 주일에 쉬어야 하는데 시간을 낼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 마음도 불안할 수밖에 없고요. 주일 예배를 지킬 수 없으니 교회의 위기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거죠.”

비정규직의 문제가 노동이라는 거대한 틀뿐 아니라 교인들의 현실이고 교회의 문제가 되는 거네요.”

그렇죠. 종교라는 게 우리가 고독한 존재이고 그것에 대해 철학하는 시간을 가지고 사색하게 하거든요. 교회에 대한 헌신도 그 사색을 통해 오는 거고요. 그런데 사색은커녕 예배에 참석할 시간도 없는 이런 시대에 돌입해 있단 말이에요. 우리가 비정규직 문제에 주목하고 활동하는 건 어떻게 보면 사회문제라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그동안 적재되어 있던 교회의 문제, 외면해왔던 노동의 문제에 다가가보자는 의미가 더 큰 거죠.”

저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비정규직대책 한국교회연대를 출범했다고 했을 때 교회의 사회적 연대, 그러니까 교회 밖으로 나아서 사회문제에 동참하는 것들을 떠올렸는데,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있는 거네요.”

우리의, 그러니까 교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는 거죠.”

작년 11월에 출범하고 아직 1년도 안 되었잖아요.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하신 거죠?”

우선 출범 전에 준비모임에서 비정규직 이야기 마당을 마련했어요. 알바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세 분을 초청해서 간담회를 하면서 한 분당 12명의 청중단을 사전에 모집했어요. 청중단을 미리 신청 받아서 이후에도 그분들과 이어지도록 하는 거였죠.”

새로운 간담 방식이네요. 다른 활동들은 어떤 게 있나요?”

지역 순회 기도회도 있습니다. 4회 정도 기획하고 있고요. 올해는 대전과 전주에서 그 지역의 비정규직 센터와 연계해서 한두 명을 교회에 보냅니다. 그러면 그 교회 상임목사님이 비정규직에 관한 전체 설교를 하고 비정규직 센터에서 오신 분들이 현장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신도들이 다 함께 기도하는 거죠. 기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직접 접하고 신도들의 기도가 더해질 때, 무언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장으로 가는 것보다 노동의 문제를 교회로 끌고 들어오는 거네요. 신도들이 있는 교회로.”

그렇죠. 올해는 1113일 전태일 열사 기념일이 주일이에요. 그래서 그날을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한 기도의 날로 정하고 공동기도 주간으로 하는 일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전체 공문으로 나가는 거라면 엄청난 일이네요. 목사님이 생각하는 연대란 뭔가요?”

“‘우는 자와 함께 울라.’ 로마서 1215절 말씀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연대는 정화(淨化)와 같습니다. 우는 자가 있는데 우리는 그들이 왜 우는지를 몰라요. 아니 우는 자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기도 해요. 그것이 지금 종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는 자들을 만났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들과 함께 울고 눈물을 닦아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우리가 하는 일은 우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주변을 보게 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인 거죠.”

 

 

3. 인연의 끈을 연결하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양한웅 집행위원장

 

(사진 3) : 노동법 개악 정리해고 반대 오체투지

 

이전에 불교계에서 노동위원회라는 기구를 결성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전혀요. 처음 있는 일이지요.”

작년에 출범한 한국교회연대도 정식 명칭이 비정규직대책 한국교회연대예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인권연대라는 분과는 있는데 교회에서도 비정규직대책이라는 공식 명칭을 띠운 것은 처음이라고 해요. 그만큼 노동의 문제, 특히 비정규직의 문제가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거겠지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처음 노동위원회를 결성할 때가 한창 쌍용자동차 문제가 터지던 때였어요. 노동권을 지키겠다는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하나씩 죽어나갈 때, 노동이 종교에게 말을 건 거지요. 생명을 설파하고 마음의 안식을 줄 수 있는 종교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 그런 물음들이 저희에게 답하게 만들었어요. 철도 노동자들도 그렇지만 한진중공업 크레인에도 사람이 올라가 있고. 시급했습니다.”

그런 노동위원회가 올해 초에 이름을 바꾸었죠. ‘사회노동위원회라고.”

저희가 만 4년 반 동안 활동을 해보니 노동만으로는 안 되는 거죠. 노동의 문제가 노동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유성기업, 세종호텔, 동양시멘트, 하이디스와 같은 장기투쟁장에 법회로 참여하는 것뿐 아니라 빈곤, 장애인, 성소수자, 인권, 국가폭력의 현장과 결합하는 일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거든요. 그간 활동 중 송파 모녀의 자살 사건을 접하고 사회 빈곤층에 대한 법회와 추모제도 계속 하고 있고요.”

그간의 활동을 더 알고 싶은데요. 제가 인상 깊었던 것은 불교가 할 수 있는 일 중 노동자들의 쉼과 쉼터를 제공하는 일이었어요. 소위 위안부할머니들의 쉼터로 나눔의 집이 있고, 쌍차 투쟁에서는 와락, 세월호에서는 이웃, 그리고 지금 자금을 마련하려고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쉼터로 꿀잠이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조계종에서 싸움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도반을 만든 이후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합니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쉼이 되어야 하거든요. 쉴 시간이 있어야 마음의 안식도 얻고 위로도 받을 수 있지요. 그런데 투쟁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분들을 보면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어요. 그런 상태로는 서로에게 힘이 될 수가 없죠. 저희는 그분들에게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실제 도반은 비구니 스님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경청으로부터 시작해요. 그러고는 쉼이 필요한 활동가들이 서로 어깨를 주물러요. 몸을 만지는 건데요, 이게 그간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그런 다음은 방목(放牧)이에요. 쉬어도 좋고 책을 봐도 좋고 이야기를 나눠도 좋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요. 저는 그걸 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종교가 할 수 있는 마음을 확장하는 방법입니다.”

“12일이 너무 짧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위원장님에게 연대란 뭔지 묻고 싶어요. 불교에서 말하는 연대란 뭔가요?”

종교가 가진 의무입니다. 종교는 사회적 약자, 권력으로부터 상처 입은 사람들을 보듬어야 하거든요. 그들을 위해 나서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이 종교의 의무입니다. 스님들은 오랜 동안 산사에서 생활하면서 세상사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있어요. 어리석은 중생아, 그러면서 가르치려고만 하면 쉬운 말로 꼰대가 되는 거죠. 세상사에 다치고 헤매는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마음공부를 하는 수행인데, 그러기 위해서 불교의 인연(因緣),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끈으로 연결하는 거지요. 그게 연대가 아닐까요?”

 

 

4. 하늘이고 힘이고 사랑이 되는 밥, 십시일반 음식연대유희

 

(사진 4) : 갑을오토텍에서 400인분의 음식을 배식하는 유희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400인분의 음식을 준비하세요? 식재료 준비하고 손질하고 운반하고 배식하고 뒷정리까지 하려면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실 텐데요. 그 많은 일을 혼자 하신다고 들었어요.”

알음알음 도와주는 분들은 늘 있어. 얼마 전부터 십시일반 음식연대라고 누가 명함을 파줘서 내가 어디 간다고 페북에 알리면 주변에서 돈도 보내주고 일손도 보태주고 하더라고. 그래도 웬만한 건 혼자 하지. 엄마가 손이 크신 분이셨어. 동네에 자식이 감방 사는 아줌마가 있었는데, 나보고 이만큼 큰 시멘트 봉지를 들라고 하는 거야. 그때는 그런 봉지에 쌀을 가득 담으면 몇 달은 살았을 거야. 그런 봉지를 들라고 하고 그 집에 가져다놓는 거야. 지나가다 거지가 있으면 꼭 나보고 돈 몇 푼이라도 나눠주라고 그러고. 그때는 몰랐는데, 엄마한테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손 큰 거. 나누는 거. 또 하나는 밥이 그냥 밥이 아니라는 거. 그때 그 사람들의 눈빛을 봤던 것 같아. 절박한 눈빛, 그게 뭔가로 채워질 때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지.”

어릴 때 본 그분들의 눈빛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니 밥이 하늘이라고 하신 말씀이 더 크게 다가와요.”

밥은 하늘이고 힘이고 사랑이다! 연대가 뭐냐고 물었잖아?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어. 근데 내가 말하고도 괜찮은 것 같아. 말해놓고 나니 진짜 그런 것 같더라고.”

어디로 밥을 해갈지 계획을 안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비정규직 관련 연대자들을 만나는데 약속 잡기가 제일 힘든 분이셨어요. 정해진 게 없다고 하셨죠? 그때 가서 가고 싶은 데로 가니까 그때 연락하자고. 오늘도 갑자기 나 콜트-콜텍 농성장에 옥수수 쪄서 간다. 올 거면 그쪽으로 와라.’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거고요.”

내가 조직 활동도 해봤고, 장사도 해봤고 길거리 포장마차도 해봤잖아. 투쟁장에 밥을 해가면서 몸에 익은 것 중에 하나야. 계획을 하면 즐거움이 사라진다고 해야 할까. 내가 힘들고 짜증나서 한 밥은 신기하게 사람들도 알더라고. 그런 밥은 힘이 안 나는 거지. 그러면 다시 내 힘도 빠지는 거야. 그런 거 뭐 하러 해? 돈 들이고 품 들이는데 마음까지 넣어야 그게 밥이지. 그런 게 서로 힘이 나게 하는 밥이라고. 그런데 계획을 짜면 일은 잘 돌아갈지 몰라도 그쪽도 지치고 나도 지치더라고. 일이 돼버리는 거지. 그래서 자유롭게 즐겁게, 가고 싶은 데로 가자. 그렇게 하는 거지.”

“1989년에도 전국노점상연합에서 활동하셨지요? 저희 엄마도 그때 포장마차를 하셨는데 거리정화로 매일 포장마차를 뺏기고 찾아오고 그러던 때였어요. 근데 언제부터 투쟁장에서 밥을 하신 거예요?”

“1995년인가, 최정환이라고 리어카에 카세트 싣고 파는 사람이 있었어. 그때도 거리정화로 상인들을 쓸어버릴 때였지. 그 사람이 척추장애로 휠체어 타고 장사를 했거든. 그 사람한테는 리어카와 카세트가 생계를 유지하는 전부였을 텐데 그걸 뺏으니까 살 수가 없는 거지. 그때 그 사람이 분신을 했다고. 내가 전국노점상연합회 문화국장 하던 때였어. 강남 성모병원이었나, 거기로 달려갔지. 근데 사람이 죽었어도 싸우는 사람은 먹어야 하잖아. 그때 처음 1천 명 밥을 했지. 밥솥 사고 큰 들통 사서 국밥을 해서 온 동지들한테 먹였는데 힘들어서 기절까지 했어. 그것이 시발점으로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네.”

밥은 하늘이고 힘이고 사랑이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연대라고요. 좀 더 설명해주세요.”

내가 보기에는 이래 뵈도 별명이 울보. 내 마음에 뭔가 닿으면 울렁울렁 한다고. 밥 한 끼는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울음도 막아주더라고. 노래 같은 거지. 밥 먹으면서 노래까지 마음에 차면 힘이 생기지 않겠어? 그게 사랑이고. 그러니까 밥은 하늘이고 힘이고 사랑이 되더라고.”

 

 

5. 파견과 점거, 곁의 확장, 파견미술가 전진경 작가

 

(사진 5) : 콜트-콜텍 부평 공장 점거 후 벽에 그린 낙타 그림

 

“‘파견미술이라는 단어가 생소해요. 파견미술팀은 언제부터 생긴 거지요?”

파견미술팀이라기보다는 현장에 가면 항상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라고요. 저의 경우는 2006년 대추리에서 비슷한 작업을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고, 기륭전자에도 결합했었고, 용산참사를 거치면서 현장이 작업장이 되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GM대우 부평공장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싸울 때 천막에 그림 그리고 전시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는데 이윤엽 판화가가 노동자들 쪽을 보면서 우리도 파견미술가라고 할까?’ 그런 농담을 던졌어요. 생각해보니까 진짜 그래요. 우리는 스스로를 현장으로 파견시킨 거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예술이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 진짜 우리 파견 나온 것 같네.’ 누군가 맞받아치더라구요. 거부감이 없었지요.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만들어진 이름이지요.”

“2012년 콜트-콜텍 부평 공장을 점거하셨잖아요. 그곳 분들이 스카시1라고 부른다면서요? 그때 벽에 그린 낙타 그림이 저한테도 큰 울림이 있었어요. ‘저 사람들 대단하다, 그런데 무섭지 않을까?’ 낙타 그림이 그런 걸 전달하더라고요. 어때요? 실제로 불법점유를 한 건데 무섭지 않으셨어요?”

스쾃이 발음하기가 좀 그러니까 아저씨들이 스카시라고 부르더라구요. 현장 분들이 나를 그렇게 편하게 대해주는 별칭이랄까요. 빈 공장 점거할 때 힘들었죠. 근데 대추리부터 용산을 거치면서 내 작업장이 밖으로 확장될 때마다 다른 것들로 채워지는 걸 느꼈어요. 새로운 무엇이 무서운 걸 이기는 거죠. 그 사이에서 예술이 비집고 태어날 때 굉장히 기뻐요.”

봄에 들어가서 7월에 부평구 갈산동 421-1 콜트-콜텍전전시회를 하고 얼마 안 가 침탈당했잖아요. 그때 제가 후회를 많이 했어요. 꼭 가보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다시 볼 수 없는 전시가 되었으니까요. 공간예술이란 게 이런 거구나, 그 과정이 다 담겨 있는 것이 그 전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맞아요. 처음부터 전시회를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회사가 떠나고 빈 공장만 남은 곳을 제가 점거했단 말이에요. 그곳에서의 작업물은 그 시간뿐 아니라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 담고 있었던 거예요. 낙타 그림만 해도 건물주가 찾아와서 부랑자 취급을 하고 그러니까 내 화를 다스리기 위해 그린 거거든요. ‘나는 예술가 입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벽에서 썼는데 벽을 볼 때마다 책임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때 벽에다 낙서도 많이 했어요. 건물주가 수시로 용역분들을 보내는데 매일 항의하면 기운이 빠지잖아요. 그래서 벽에다 내가 할 말들을 적었지요. 어느 날은 그분들이 와서 자기들도 할 말이 없으니까 내가 나중에 건물주가 되면 당신 같은 작가가 들어가 작업하는 방 하나 내주겠다그런 농담도 던지고 그랬어요. 그런 모든 게 전시에 담기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통해 관계가 생기고 매주 목요일마다 콜트-콜텍 드로잉데이를 하고 계신 거군요. 묻고 싶었어요. 미술가에게, 선생님에게 연대란 뭔가요?”

같은 편에 서는 것. 그리고 나의 곁을 확장하는 과정이 연대 같아요. 현장에 있는 것, 그것을 담아내는 것, 그들의 상황을 알려내는 것, 옳은 소리나 바른 소리를 외치는 것만이 연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이 생기더라고요. 이웃이라고 해도 좋아요. 그 곁과 내 작업이 만나는 곳이 현장, 내게는 작업장이고 그것이 교환되는 것이 연대 아닐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는 유동적이잖아요. 그 유동을 포착하되 에너지를 교환하고 확장하면서 서로의 삶을 배워나가는 것, 그게 연대 같아요.”

 

 

6.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끼어들게 만드는 밥,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밥통손지후 매니저

 

(사진 6) : 삼표동양시멘트 천막 농성장

 

오늘은 몇 인분이에요?”

“50인분이요.”

올해 초였나요? ‘위안부문제에 대한 한일합의에 반대하면서 소녀상 지킴이로 나선 대학생들이 한겨울에 비를 맞고 한뎃잠을 자고 그럴 때도 음식을 해가지고 가셨잖아요. 세월호 2주기 때는 주먹밥 3천 개를 하셨고.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려면 손이 많이 갈 텐데, 재료 준비부터 배식, 설거지까지 품이 많이 들 텐데 따로 식당이 있나요?”

저희는 협동조합이에요. 조합원들이 출자해서 회의하고 준비하고 출동하고. 저는 그걸 총괄하는 매니저이고요. 출동 때는 '밥알단이라고 자원활동 그룹에 공지를 띠우면 그때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이 오세요. 대규모 음식 준비는 과천에 중등무지개학교라고 있어요. 학교를 중심으로 무지개교육마을이 형성된 곳인데 그곳에서 주방을 열어주셔서 많은 음식을 준비할 때는 그곳 주민들이 품앗이로 나서주기도 하고 그럽니다.”

협동조합이라면 여러 명이 회의하고 계획하고 결정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과정과 절차가 중요할 것 같아요. 장단점이 있을 텐데 밥통은 어떻게 만들어진 거지요.”

“2013년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제안을 하셨어요. 길 위에서 싸우는 많은 사람들이 밥 먹고 힘을 내야 하는데 부실하게 끼니를 때우는 게 마음에 남았던 것이죠. 협동조합인 밥통을 만들면서 저희는 원칙을 정했지요. 우선 단체 행사에는 출동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우리는 드러나지 않고 열악한 곳을 찾아가는 후방 지원이다. 이 두 가지 대원칙을 세우고 회의를 통해서 연대할 사업장을 정하고 있습니다. 출동 2주 전에 계획이 잡히기는 하지만 또 급하게 지원해야 하는 사업장일 때는 시급하게 결정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고 있어요. 대원칙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윤곽이 잡히네요. 밥으로 연대를 한다는 것은 선생님한테 무슨 의미인가요? 전직을 버리고 이 일에 뛰어든 계기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아요.”

대학생들한테 밥을 먹여야 한다고 출동했을 때였어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연일 엄청 추운데 그날은 비까지 내렸어요. 학생들이 밤새 그 추운 데서 덜덜 떨었구요. 그 친구들한테 밥을 해주는데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다들 한 가지씩 뭔가를 해요. 누구는 밥 먹는 아이들 다 먹을 때까지 우산 씌워주고, 또 여러 명이 비닐을 넓게 펴서 밥 먹는 동안 지붕 만들어주고, 또 누구는 밥차를 기웃거리다가 숟가락 가져다주고 설거지도 해주고. 그 추운데 다들 움직이더라고요. 흐르는 거지요. 밥이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먹는 만큼 그게 또 비슷하게 마음을 덥혀주는 거예요. 연대요? 가장 멋진 연대는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끼어들게 만드는 거요. 밥통이 오면 누구나 할 게 있어요. 집회에 참여하게 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거지요. 밥 먹으면서 자연스레 이야기도 나누잖아요. 그렇게 좋은 연대가 어디 있어요? 저는 집회 참석했을 때 혼자 멀뚱히 있다가 씁쓸하게 가는 게 싫더라고요. 하다못해 밥이라도 먹고 가라그런 거지요.”

 

7.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돈 앞에 스러지지 않도록, 사회적파업 연대기금김영아 운영위원

 

(사진 7) : ‘사파기금, 5년 동안 뭐했니?’ 투쟁과 연대운동 평가 대토론회

 

얼마 전에 사파 5주년 행사를 했었지요? 201179일 희망버스에서 사회적 파업연대기금을 제안해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왔다고 들었어요. 제가 만난 연대자들도 그 전후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구상하고 제안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더라고요. 그만큼 노동 환경이나 조건, 노동 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일 텐데요. 궁금해요. 외국에서도 이런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사회적 의제로 삼고자 하는 기금 형태의 연대가 있나요?”

파업을 지지한다는 기금을 모으는 연대 행위는 저도 처음 접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지금 다산콜센터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처음 사파기금을 접한 게 2012년이었어요. 그때 저희가 한참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때였거든요. 지금이야 감정노동이다 서비스노동이다 해서 저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 스스로도 그 노동의 강도, 감정노동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곤 했거든요. ‘다들 잘하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지그런 식으로요. 저희가 전화기가 있는 칸막이 안에서 종일 일하니까 서로 교류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어 있어요. 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칸막이가 치워지는 경험을 했죠. 서로 얘기를 나누다보니까 그런 게 나한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였구나, 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서울시에 직접고용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되었고요. 처음에는 몇 시간, 다음에는 하루 파업을 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서울시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면서 시청 점거를 하기도 했어요. 그때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저희의 투쟁을 지지해주었죠.”

사파기금에서는 파업 현장에 기금을 지원하는 것뿐 아니라 여러 가지 연대 방식을 고민하고 있던데요. 어떤 건지 소개해주세요.”

“‘찾아가는 현장연대라고 해서 여론에 알려지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 투쟁하는 사업장에 방문해서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요, 사파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사파산행도 있습니다. 겨울에는 기금으로 침낭을 구입해서 길거리에서 장기 투쟁하는 사업장에 전달하기도 하고, ‘사파의 작은 희망버스라고 벌써 다섯 번째인데 최근에는 구미 아사히 공장을 방문했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아닌 파업 당사자들이 투쟁을 끝내고 혹은 투쟁 중에 쌓인 문제들을 들고 토론에 참여하는 고리로 사파포럼이 있어요.”

연대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그것이 예전과 같은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각자의 방식으로 결합하고 있더군요. 사파기금에서 말하는 연대란 뭔가요?”

이번 5주년 행사 때도 느낀 것인데요. 이번 행사에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콜트-콜텍, 골든브릿지증권, 스타케미칼, 기륭전자, 부산 생탁 택시, 아사히글라스 노조, 청주시 노인병원, 동양시멘트노조, LG유플러스 비정규지회, 티브로드, KTX 승무원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 유성기업, 하이텍알씨디노조, 세종호텔, 꿀잠 등이 참석하였어요. 그런 거 아닐까요? 비정규직 투쟁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장기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사측이 알고 가압류 걸고 투쟁장이 열악하니까 여론에 알려지지 않은 곳에는 사냥개도 풀었잖아요. 그런 식으로 끊임없이 압박이 들어오는데 그런 가운데 우리는 끝까지 당신들을 지지하겠다, 당신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당신들이 바꾸려고 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에 함께 하겠다는 걸 표명하는 거죠. 그리고 그런 연대 사업장을 수평으로 연결시키는 거죠. ‘사파포럼을 통해 투쟁의 문제를 사회화하고, ‘찾아가는 현장연대로 사람의 힘을 보여주고, 추울 때는 침낭연대를 하고, 돈이 없는 투쟁장은 모아진 파업기금을 전달하고요. 그야말로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돈 앞에 스러지지 않도록 모아진 연대기금을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거지요. 그것이 사파기금에서 말하는 원칙을 지키는 연대입니다.” (<꿀잠> 특별호 '당신의 노동은 안녕한가' 2017.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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