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속에 박힌 씨앗처럼

 

하명희(河明熙)

 

 

릴케의 말이던가요. “나의 고독은 마침내 완전히 닫힌 상태가 되고, 나는 그 고독 속에서 과일 속에 박힌 씨앗처럼 작업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쓰고 싶었나봅니다. 요즘 뭐하냐는 말라 비틀어진 말들 대신 어때, 너의 고독은 괜찮은 거니 묻고 싶기도 합니다. 내 고독이 얼마나 단단한지 보려면 씨앗이 땅을 뚫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호기롭게 얘기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어느 나라의 문예지가 결호 없이 500호를 낸다는 것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독들이 과일 속의 씨앗처럼 작업을 해왔을지, 또 그 과일 열매들이 얼마나 많은 독자들과 만났을지 상상하게 합니다. 제가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한 것이 441호였고, 문학사상의 첫호는 내가 나기 한 해 전에 나왔더군요. 제 나이보다도 한 살을 더 먹은 잡지에 글을 쓰는 일은 중년의 벗을 곁에 둔 것처럼 든든하네요.

저는 올해 1년 공부로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를 붙잡고 있습니다. 원문 번역이 다 나온 책을 굳이 힘들게 원서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고민이 되었지만, 그래도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그런데 보세요.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나온 열 권짜리 원서를 읽겠다고, 아침에 애들 학교 보내고 남편 돌아오기 전까지 저린 다리 주물러가며 원문 읽기를 즐기는 아줌마들이 이렇게나 많다니요. 대학원 논문 쓰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2000년 전의 역사책을 온전히 제대로 읽어보겠다는 결사는 얼마나 짜릿한지요.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작년에 저를 가장 흥분시켰던 책읽기는 일본의 젊은 사상가인 사사키 아타루(木中)를 만난 일이었어요. 이 사람 저랑 나이가 같더군요. 문학사상보다도 어린 셈입니다. 그런 그가 하는 도발적인 발언들을 보셨나요. 20만 년의 장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문학의 나이는 고작 5000년밖에 안 됐다는 것이지요. 여든 살 노인의 입장에서 보면 문학은 고작 두 살배기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요. 그는 이런 어린 아이가 문학은 죽었다, 문학은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묻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저는 요즘 제대로 읽기 위한 몸풀기를 하고 있어요. “읽히지 않는 책이란 아직도 쓰여지지 않은 그 무엇이다. 읽는다는 것은 책을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이 쓰여지게 하는 작업, 혹은 쓰여진 것이 되도록 하는 작업이라는 모리스 블랑쇼의 방식을 다시금 새기는 중이에요. 작년에 아버지와 이별하고 마음 속의 아버지를 쫓다 만나게 된 한 분은 이런 읽기의 혁명성을 몸으로 보여주십니다. 일흔다섯을 훌쩍 넘으신 이분의 호기심은 벽이 없습니다. 그저 니체를 제대로 읽고 싶어 철자도 모르는 독일어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하신 것이지요. 저는 그저 그분을 책을 읽듯이, 읽고 또 읽듯이, 밑줄을 치듯이 꾹꾹 바라만 봅니다. 보기만 하는데도 그분을 보며 글이 책을 넘어 앎이 되고 책이 담을 넘어 글이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혁명인가요. 카프카는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되는 두 가지 주된 인간의 죄가 있으니그것은 바로 조바심과 부주의라고 했습니다. 사사키는 카프카를 읽어내며 이렇게 인용하지요. “초조함은 죄다.” 그래요, 문학을 하겠다는 고독 속에는 초조함 따위는 애당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는데, 저는 그 초조함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렸던 거예요. , 괜찮습니다. 저는 방금 초조함을 버리기로 했으니까요.(<문학사상> 2014. 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정마을에서 아시아의 골목을 걷다

 

골목의 단어들

2017 아시아문학창작워크숍의 주제는 도시와 골목이었다. 초겨울 아시아 작가들과 서울의 골목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고 주제 발표를 하는 워크숍에 참여했다. 첫째 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둘째 날은 베트남, 네팔, 팔레스타인, 인도네시아, 태국의 작가들과 성북동 북정마을의 골목을 걸었다.

와룡공원에서 시작해 한양 도성의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보니 성북동의 두 동네가 한눈에 보였다. 한쪽은 마당이 널찍하고 집들이 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부촌이었고, 또 한쪽은 마을버스가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 달동네였다. 한눈에 보이는 두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달동네라는 단어가 선택되었다.

달똥네?”

,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동네.”

달도네?”

달이 가장 크게 보이는 동네. 문타운, 문빌리지.”

, 달동네.”

함께 걸었던 아시아의 작가들은 달동네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달동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곽길을 내려오자마자 연탄을 나르는 트럭이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연탄이라고 외쳤다. 자 응언 선생은 베트남에도 연탄이 있다고 했다. 네팔의 나라얀 와글레는 연탄을 수박처럼 똑똑 두드렸다. 건물 외곽 계단에는 속이 빈 화분들이 놓여 있었고, 한 줄로 서서 지나가야 하는 골목을 따라 걷다 길이 막혀 되돌아오기도 했다.

북정마을 언덕에는 허름한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널빤지와 천막으로 지은 작은 공간이었다. 문 앞에는 그 집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시간이 건너간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멋진 카페들이 많을 테지만 이 카페는 이번에 처음 읽은 네팔의 소설 팔파사 카페(문학의숲, 2010)를 연상시켰다. 그 앞에서 네팔의 작가에게 여기 팔파사 카페 같지 않냐고 물었다. 사실은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는 정치적 혼란기에도 연애편지가 쓰여지고 한 번도 춤을 춘 적이 없는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당신이 그린 팔파사 카페 같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손짓과 몇 개의 단어로 말한 무엇이 전달된 것인지 네팔의 작가는 웃으며 북정카페라는 이름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카페 앞에 서니 카페 문보다 작가의 키가 더 커서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골목을 내려오며 집집마다 서 있는 주홍의 열매를 단 나무를 보며 누군가 , 감나무라고 말했다. 내 옆을 걷던 베트남 작가는 우리를 따라오듯 자꾸 보이는 주홍의 열매를 가리키며 감나무, 감나무라고 따라했다. 감나무 사이로 까치가 날아와 앉았다. 버려진, 잃어버린 단어들을 훔치다 이곳까지 온 팔레스타인의 아다니아 쉬블리는 전날 숙소에서 접한 단어라며 까치, 까마귀, 참새하며 움직이는 것들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 곁에 늘 있었던 단어들, 달동네, 까치, 까마귀, 참새, 그리고 감나무들이 동네를, 골목을 지키고 있는 단어였을지도 모른다. 아시아의 작가들과 함께 걷는다는 건 새로운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단어들을 끄집어내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단 몇 시간의 동행만으로도 너무 익숙해서 낯선 골목의 단어들을 줍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시아의 골목들

저녁이 오기 전 상실의 길목에서라는 주제로 골목길을 함께 걸은 작가들과 대담을 진행했다. 14세 때부터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자 응언 선생은 작가에게 국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전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선생은 말했었다. 당신에게 아침이 어떻게 오는지. 총소리와 총의 향기로 왔다고 했던가.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속해버린 세대라고 했다. 총의 향기! 세포에 총의 향기가 새겨진 사람과 나는 지금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자 응언 선생은 당신이 껴안고 있는 베트남의 비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지금도 전쟁이 슬픈 건, 우리는우리 베트남 사람들은,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통역의 목소리도 떨렸다. 그녀도 베트남 사람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슬픔은 번역되지 않아도 퍼져나갔다. 사람들의 울음은 어깨에 있는지 여기저기서 어깨가 울컥이며 솟았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는 최근에 단어들이 식물처럼 자라는 꿈을 꿨다고 했다. 이 식물들은 땅에서 나와 하늘을 향해 자랐고 비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비는 내리지 않았다. 가뭄 때문에 단어들이 마르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고 했다. 파도의 서사시처럼 반복되는 물음을 통해 소설 속 인물에게 바다를 돌려주는 아다니아의 소설은 국내에서 곧 출간될 다른 작품들을 기다리게 만든다. 아다니아는 골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어릴 적 경험을 하나 소개했다. 학교에 가기 싫어서 자기가 다니는 학교가 폭파됐으면 하고 생각했다고, 아침마다 아빠한테 확인했다고도 했다. 동네에서 놀 때는 폭파된 집에서 테이블이 있었던 자리에 테이블을, 의자가 있던 자리에 의자가 있다고 상상하며 친구들과 놀았다고 했다. 그녀는 골목 하면 생각나는 그런 경험들, 허구의 세계를 상상하며 노는 것이 집이 폭파되는 현실에서 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었다고 덤덤히 말했다.

네팔의 작가 나라얀 와글레는 어린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어린 딸이 그가 지어낸 이야기에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며 기자로서 사실을 전달하는 일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그의 작품 속에도 사실과 허구의 이야기가 갈등하고 부딪히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는 이야기꾼의 즐거움을 유쾌한 말로 풀어내며 사람들을 웃겼다. 서울의 골목도 네팔과 다르지 않지만 왜 이곳은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걸었던 곳에서는 개들이 짖지 않았다. 개들뿐 아니라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기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걸을 때 보폭을 맞추기 위해 스케이트를 타듯 걸었는데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사는 환경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겨울 북정마을의 골목에는 잎 떨어진 나무 그림자들이 벽을 타고 놀고 있었다. 도시의 성곽도 골목의 벽들도 뭔가 지켜야 한다는 듯 웅크리고 더 단단해 보였다. 베트남의 골목길은 어떨까. 네팔의 언덕은 더 크고 넓겠지. 팔레스타인의 골목에서는 아이들이 상상의 놀이를 하고 있을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발리는, 태국은 어떨까. 집으로 돌아온 걸음이 계간 아시아에 실린 작가들의 작품들을 하나씩 넘긴다. 책 속에는 가라앉는 골목, 변화를 이끄는 골목, 카트만두의 골목, 아르메니아 지구의 골목, 태국의 골목이 펼쳐져 있다. 골목은 책 속에도 있다. 북정마을을 돌아나온 걸음은 어느 한 쪽이 현관 문을 열면 다른 한 쪽은 조심스럽게 자기 문을 닫”(181)는 익숙하면서도 다른 아시아의 골목을 걷는다. (<작은책> 책여행 2018. 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8-16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7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명희의 소설집 《불편한 온도》(강)를 들고 불쾌한 온도를 이겨보려 애썼다. 이미 읽었던 작품들도 많지만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출구 없는 삶의 갱도 안에서 어떻게든 헤어나 보려고 버둥대는, 그런 와중에 받은 상처를 스스로 어떻게 핥아주어야 할지도 모르는, 그래서 더 서럽고 가여운 작중인물들의 뒤를 쫓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소설을 참 힘겹게도 쓰는구나,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고 하는 식의 고상한 말씀들이야 널리고 널렸다. 그런 말씀들로 이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지금 이렇게 끔찍한 더위 속에서 누구는 굴뚝 위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누구들은 오체투지를 하고 있겠는가. 40도를 넘는 폭염보다도 무서운 게 있다는 걸 확인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 고개 돌리고 외면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도 언제 어떻게 화탕지옥 속으로 끌려갈지 모르니까... 하명희는 화탕지옥을 들여다보며 수없이 심호흡을 했을 거다. 휙 돌아서고 싶기도 했을 거다. 소설을 쓰고자 하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닐 테니... 소설집 뒤에 실린 <저녁의 목소리>와 <눈의 집>은 환상 풍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다소 이색적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아름다우면서 슬픈, 즉 ‘아․픈’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하명희의 소설들이 끝까지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맨 앞에 실린 <꽃 땀>에서 택배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그리면서도 그들이 흘린 땀에 제목처럼 꽃향기를 얹어주는 것, <까막편지를 읽는 법>에서 베트남어로 쓰여 있어 읽을 수는 없으나 그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았을 동수 엄마의 마음, 그리고 이주노동자로 간병인 노릇을 하는 알람의 유쾌한 헌신은 작품이 아득한 벼랑 아래로만 향하는 걸 막아준다.

 

얼마 전 하명희는 쌍차 분향소 앞에서 진행한 낭독회에서 <불편한 온도>의 한 대목을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읽었다. 이 작품을 《황해문화》에서 먼저 접했을 때 ‘아, 하명희가 이런 소설가였구나’ 하고 놀라며 그와 내가 같은 모임 공동체 안에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이시대가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덕목인 ‘사랑’ 그리고 ‘연대’의 힘을 이토록 곡진하게 그려낸 작품이 있었던가 싶었다. 추운 겨울에 새들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즉 ‘살기 위해서’ 한 발로 서서 잠들며 불편한 온도를 견딘다는 은유는, 한편으로는 안쓰러우면서도 생명을 빼앗는 조건 앞에서 스스로 생존의 방법을 찾아가는 능동태의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도록 해준다.

 

불쾌한 온도와 불편한 온도 사이에서 나는 지금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 내 옆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 프로펠러에게 물어본다.(박일환 시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소설에 대해 반드시, 마땅히 말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문장마다 눈물을 흘리다가 결국 편지를 쓰기로 합니다.

 

하명희 (Myong Hee Ha) 샘, 좋은 소설 고맙습니다.

 

먼저 개인적인 고백을 해야겠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저의 첫 책과 두 번째 책 사이에 있던 제 고민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그러니까 이런 것이었습니다. 도시 빈민으로 태어나 도시 빈민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던 내가 그 삶 속에서 쓰고 묶었던 소설이 제 첫 번째 작품집이었습니다. 결혼을 몇 달 앞둔 시점이었지요. 그리고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제 삶은 소시민의 평범한 삶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변화는 아닙니다. 단칸방에 살다가 (거실을 겸한 안방을 포함하여) 방 두 칸짜리 임대 아파트가 생의 가장 큰 도약이었던 삶이 20평대의 아파트로 옮겨온 것이지요. 내 집은 아니지만 어차피 평생 내 집이라는 것, 내 방이라는 것도 가져보지 못했던 제게 누구나와 똑같이 사는 아파트라는 공간의 삶이 주는 울림은 참으로 크고 무겁고 묘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으로서도 소설적 자아로서도 경험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그런 삶이었지요. 그것은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서사의 공간이었습니다. 이제, 전과 다른 새로운 소설을 쓰리라 꿈에 부풀었는데, 그러나 그 꿈은 그저 꿈이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안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새로운 것은 낯선 것이었고, 낯설다는 것은 쌓인 서사가 없다는 것이었고, 그 낯섦을 쓰기에 저는 무기력했습니다. 핑계 같지만, 그리고 핑계이지만 결혼과 출산과 더불어 찾아온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일이 한꺼번에 닥친 삶에 적응하기도 힘들었거든요. 글을 쓰는 자로서 가지고 있는 기억은 온통 내가 살았던 땅에 있는데, 문장도 서사도 은유도 모두 그 안에 있는데, 그 땅에서 그 땅을 말하는 건 당위이고 필연이고 타당이었지만 그 땅을 벗어나서도 그 땅에 대해 말해도 되는 걸까. 그건 거짓말 아닐까. 그렇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것밖에 없는데, 새로운 서사의 공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데, 새 땅에 대해 쓰기도 지나온 땅에 대해 쓰기도 다 거짓 같아 두렵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두 번째 작품집은 그런 혼란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10년 만에 하명희 샘의 <불편한 온도>를 읽으면서 그것이 단순한 혼란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명희 샘이 어떤 삶을 지나왔는지 저는 모릅니다. 자전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씌어졌으리라 싶은 첫 번째 소설이자 장편인 <나무에게서 온 편지>(사회평론)을 통해 미루어짐작할 뿐입니다. 내 유년과 많은 부분이 겹치고 맞닿아 있어서 어쩌면 우리가 같은 곳에서 같인 지붕을 맞대고 자랐던 것은 아닐까 상상하지만, 어디까지나 지레짐작일 뿐이지요. 그리고 하명희 샘이 지금 어떤 삶을 지나고 있는지는 더더욱 모릅니다. 페북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몇 번 안 되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짐작할 뿐이지요. 모르면서도 느낌은 있지요. 샘도 저처럼 어느 시절의 땅을 조금은 건너와 있다고 짐작할 뿐입니다. 이 말을 혹 누군가, 이제는 살 만 하다, 는 식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넉넉해지고 풍요로워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아등바등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짐작할 만한 보통의 삶 속으로 비로소 끼어들어왔다는 느낌. 그게 뭔지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설명하거나 이해시킬 자신은 없지만 샘은 무슨 말인지 아실 것 같습니다, 아실 거라고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우리의 마음을 너무 비약적으로 동일시했을까요.

 

그러나,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에 대한 감동과 별개로, 저는 그런 질투에 시달렸습니다. 왜 이이의 시선은 혼란 없이 단단한가. 성실해서? 취재를 꼼꼼히 해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시선의 문제라고요.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집 사이에 제 시야가 닫힌 것은, 소설을 쓰면서 저는 저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화자도 다 제 안에서 튀어나온 모습이었지요. 어떤 서사도 저의 서사였습니다. (지금 이글도 그렇게 쓰고 있네요.ㅠㅠ)

 

그런데 하명희 샘의 소설은 달랐습니다. 샘의 시선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둘러 싼 공간과 시간과 그리고 바로 그 시간과 공간을 연대한 사람들에서 출발해 한번도 한눈팔지 않고 끝까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소설은 나를 바라보는자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는 차이였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동시에 샘은 세상을 관찰자의 눈으로만 바라보지도 않더군요.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거리가 없더라는 뜻입니다. "해 지는 시간, 저녁은 잔치국수가 없어도 강변에 별들을 빠트리며 왔다' 같은 문장은 어떤 이에게는 수사이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서사가 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인용한 문장은 자전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만요.

 

꼼꼼히 취재하지 않으면 글을 쓰기 힘들다고 하셨던가요. 실제로 작품집에 상재된 소설은 아, 성실한 취재형 작가구나 느끼게 하는 지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취재형 소설들과 느껴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재라기보다는 기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팩트를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혀내고 싶은 마음. 기록에 대한 의무도 아니고, 호기심도 아니고, 세상 모든 아픈 것들에게 자기 곁을 내줘야 하는 삶이 그 곁을 내줄 방법이 글 밖에 없어서 글을 쓰듯 그렇게 쓰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로서도 사람으로서도 결이 곱구나, 따뜻하구나, 그리고 좀 생뚱맞지만 의리 있구나. 싶었습니다. 좀 우습지요. 그런면에서 뒤쪽에 배치한 소설 두 편은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지요. 발표 순서가 어찌 되나 궁금했습니다. 소설의 발표한 순서를 따라 작가로서 그 사람의 지향점을 점괘 맞추듯 혼자 짐작해볼 때가 있거든요. 다음 소설을 벌써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건 소설(의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은 아닙니다. 저 역시 (안 쓴 지 너무 오래되었지만 어쨌거나 한때는 썼고, 쓰고 싶어하는) 쓰는 사람으로서 소설 뒤에 서 있는 작가의 쓴다는 행위는 무얼 의미하는가 고민해보다 가진 아쉬움인데, 샘의 소설은 곁에 있는 세상과 사람에게는 온통 마음을 다 내어주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무에게서 온 편지>를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목소리를 늘 다른 사람(화자)에게 양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하고 싶었던 마지막 말을 끝내 감춘 게 아닐까 싶다고 할까요. 소설가가 자기 자아를 마구 휘두르며 내보이는 소설도 피곤하지만 샘은 너무 단정하게 숨어 계신 듯해요. 소설가가 소설가의 자아를 굳이(?!) 감추는 이유는 보통 세 가지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1. 내 자아를 내가 모르는 경우 2. 내 자아를 들키고 싶지 않은 경우. 3. 내 자아를 정말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 발톱을 숨긴 경우. 샘은 어떤 경우일까요. 작가의 말을 읽다가 불현듯 떠올랐는데요, 하명희 샘. 샘은 비누도둑이 누구인지 알고 계세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향 하나 타는데 드는 시간은 대략 50분 정도다.

아침 119배를 마치고 모두 아침 식사하러 가는 동안 분향소에 앉아 책을 조금 읽었다. 어제 들췄던 불편한 온도인데, 다 읽는데 향 하나가 필요치 않았다. 짧은 분량이기도 했지만 재미 있었기 때문이다.

 

크레인 기사 이야기. 기린 심장의 무게가 11킬로 심장 크기가 60센티, 두께가 무려 7.5센티(책에선 7.5미터로 나오는데 오타인듯하다). 이 수치에 압도당했다. 겨울을 버티는 새와 경골류 어류의 부레 얘기도 있다. 괴망이라는 시스템으로 버티고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작 반복해서 읽었던 대목은 정혜언니의 일기. 크레인 기사들의 죽음을 담담하게 사실만 기록한 일기이자 일지였다.

 

예전 2011년 평택시청 앞이였던가. 쌍용차 집회를 하고 있었다. 언론 담당인 나는 집회에서 발언하는 기회는 거의 없다. 기자회견 사회가 나의 주된 업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발언을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돌아신 분들에 대해 자료처럼 읽듯이 해달라는 요청이었고, 회견문 쓰듯 쓰다가 그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다시 처음부터 작정하고 썼던 기억이 났다.

 

빠르게 숨이 찰 정도로 읽어내려갔던 기억. 2009년 4월부터 돌아가신 분들의 사연을 짧게 짧게 끊으며 달리듯 써내려간 글을 읽었던 기억. 그때까지는 14명이었는데도 너무 힘들었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 다시 그때 그 버전으로 글을 써서 읽으라면 자신이 없다. 30명이다... 서른 목숨을 단숨에 읽기도 그렇게 취급하는것도 그리고 이제는견디고 읽어 낼 수 있는 괴망이 내겐 없기 때문이다.

 

불편한 온도를 읽으며 그때가 생각났다. 상여을 들고 요령을 울리며 평택 시내 중심을 뚫고 공장 앞으로 갔던 장면들.

 

그때는 정말 몰랐다. 2018년 7월까지도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쌍용자동차 해고자 이창근 님이 주신 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