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 톨드 미 Papa told me 27
하루노 나나에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이 만화를 처음 보게 된 것은 만화잡지 '윙크'의 한 칼럼 때문이었다. 어버이날 특집이었던가.. 가족간의 사랑을 다룬 만화들을 소개하는 칼럼이었는데 낯선 영어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Papa Told Me. 제목도 왠지 옛날이야기 속의 한 대목인 양 포근한 느낌이었고 아주 작은 사진을 통해 본 표지 그림도 따스한 새피아 빛깔로 정감 있어 보였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Papa Told Me도 벌써 27권째.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치세는 훌쩍 자라 전보다 더 성숙한, 그래서 조금은 낯설기도 한 표정을 짓게 되었고, 스물 일곱 권 분량만큼의 많디 많은 만남을 통해 생각의 폭도 말의 느낌도 더 깊어졌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아빠와의 관계,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 정의롭지 못한 부분에 대한 반감, 주변의 외롭고 쓸쓸한 이들에게 무한히 나누어줄 수 있는 다정함 등은 여전하다.

이번에 치세는 어린왕자님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안드로메다 대성운 M31에서부터 '기만과 폭력이 넘치고 원숭이에서 거의 진화하지 않은 인간들이 진실을 외면한 채 형이하학적인 계획에 시간을 허비하는' 이 지저분한 별로 날아온 어린왕자. 

나이는 기껏해야 너댓살밖에 안 됐지만 어느 어른보다도 고차원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이. 그러나 오로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나이를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는 어른들은, 나이답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아이를 꾸짖고, 너는 왜 다른 아이들과 다르냐며 힐난해서 작은 아이의 어깨를 더욱 작게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렇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외로움과 답답함에 시들어가던 어린왕자님은 어느날 치세를 만나 말라붙었던 가슴을 적셔줄 다정한 한 마디, '너를 믿는다'는 그 한 마디를 듣는다.

이렇게 작디작은 아이까지도 외로움에 떨게 만드는 사회.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으로서는 감히 이해할 수 없었던 모순된 어른들의 모습과, 남들과 다른 가치관은 무조건 짓밟고 무시해 버리는 이 사회의 모습을, 그 아이들이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래도 Papa Told Me는 꿈을 꾸는 수많은 어른들의 모습도 비추어준다. 비록 이 사회의 억압적인 구조를 온몸으로 꺠달아 버렸기에 어렸을 떄처럼 그렇게 겉으로 드러내어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 한구석 순진하던 그 시절의 꿈을 잃지 않고 계속 더 크게 넓게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곳곳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사회. 그런 세상에서라면 아직은 꿈꾸어볼 만한 거 아니냐고 작게 속삭이는 듯한 만화.

Papa Told Me의 에피소드에는 이렇다 할 큰 사건도 없고 격렬한 감정적 기복도 없다. 그냥 흐르는 물 위에 던져진  작은 풀잎처럼 조용조용히 흘러만 간다. 그래서 이 책을 재미없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며 외면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그 잔잔한 흐름 하나하나가 우리가 지닌 수많은 모습 중의 일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내면 깊이 꼭꼭 숨겨뒀던 꿈과 좌절과 남아 있는 기대를 비쳐주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예전에 스치듯 보고 지나갔던 에피소드들 하나하나까지도 다시 소중히 되짚어보게 된다.

여기 등장하는 치세와 아빠, 그리고 그 주변의 단역 한 명, 소품 하나까지 다 맘에 들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앨리스 까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쌍둥이 자매가 운영하는 작은 골동품 가게 겸 까페. 누구도 찾지 않을 듯한 쓸데없는 물건들로만 가득 찬 골동품 상점 같지만, 알고 보면 진짜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의 신비로 가득찬 까페다(비록 아무도, 치세조차도 그 진짜 모습을 눈치채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실제로 먹고 마실 수 있는 맛난 스콘과 홍차도 파는 곳. 이런 가게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저 멀리서 허둥지둥 달려오는 앨리스의 토끼를 기다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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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4-06-2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만화 좋아해요. 작년 겨울에 시험 끝나고 강남 교보에서 이 책 사서 돌아오면서 읽던 때가 생각나네요. 묘하게 그 날과 이 만화가 꽤나 잘 어울렸던, 그래서 조금이나마 더 눈물이 돌았던 기억...... 치세같은 여동생이 딸이 있다면 나도 그 아버지만큼이나 이 아이를 이해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거듭 드는 만화였어요. 그런데 역시 starry sky님은 어떤 리뷰를 쓰셔도 매력적이군요. 본받을께요. -그냥 흐르는 물 위에 던져진 작은 풀잎처럼 조용조용히 흘러만 간다.- 이 말씀에 동감하며, 추천합니다~^^

starrysky 2004-06-2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따뜻하고 잔잔한 이야기들이지요? 저는 치세가 너무 빨리 자라버릴까봐 살짝 걱정도 든답니다. ^^ 이 아이같은 마음과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권에는 '내가 너무 많은 행복을 독차지하고 있어서 세상의 다른 아이들이 그만큼 불행해질까봐 걱정이예요. 모두가 똑같이 행복을 나눠가질 수는 없을까요? 그런 소원을 빌고 싶어요'라고 말하지요. 예쁜 치세.. ^^
그런데 로렌초님은 언제나 너무 과찬을 해주시니 진짜진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늘 감사해요.

panda78 2004-06-2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꼬박꼬박 읽는데, 왜 이런 리뷰를 못쓸까요. ㅡ.,ㅡ 아 샘나- 샘난다-
좀 너무 예쁘고 좋은 것만 나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림체도 마음에 들고.. 갖고 싶은 만화책 중 하나입니다. ^^

starrysky 2004-06-2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은 책을 너무 많이 읽으셔서 리뷰 쓰실 시간이 없는 것이옵니다. 책을 원체 안 읽는 저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 못해 이렇게 만화책 리뷰로 리뷰란을 때우고 있는 것이고요. 어흑, 슬프다..
Papa Told Me는 예쁘고 하늘하늘한 꽃동산인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한없이 우울하게 가라앉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몽상적이고 꿈꾸는 듯한 분위기가 가득하면서 잔잔하지요. 그림체도 선이 똑 부러지는 펜화라기보다는 파스텔화처럼 약간 번지는 느낌이고요..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힘들지만 마음에 드는 만화예요. ^-^

파란여우 2004-06-30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입니다...^^

starrysky 2004-06-30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女宇님, 추, 추천씩이나.. 아이고, 감사하고 또 부끄럽습니다. ^//^ 전 어제 파란女宇님 서재에서 뵌 님의 미모에 어지러워져서 책상 위에 있던 거울을 엎어버렸답니다. 아잉, 부러워요 정말. ^^

로드무비 2004-07-13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파 톨드 미> 드디어 샀습니다.
제목이 진작에 끌렸었는데 미적거리던 중 님의 리뷰 읽고 사버렸습니다.^^
알라딘 서재에서 공짜로 리뷰 읽고 그림 감상하고 음악 듣고 노닐 작정이었는데
책값이 솔찮이 드네요.^^;;;


starrysky 2004-07-1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안녕하세요? ^^
제 보잘것없는 리뷰를 읽으시고 <파파 톨드 미>를 구입하셨다니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엉? 웬 홈쇼핑 호스트 톤..;;) ^^
저도 알라딘 서재 생활하면서 책 구입비가 왕창 늘어났다니까요. 알라딘은 서재 아주 잘 만든 거예요. 암요~ ^-^ 앞으로 종종 뵐게요.

2004-07-21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7-21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nda78 2004-08-11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만해도 저도 사 모아야겠어요. 불끈!

starrysky 2004-08-1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사실은요 판다님.. 저도 아직 이거 안 샀어요. 이렇게 덩치 큰 시리즈를 놓아둘 데가 이제 정말정말 없거든요. 동생 결혼해서 걔 방이 비고 나면 그때 사려고요. ^-^

panda78 2004-08-1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마, 아직 안 사셨어요- @ㅁ@ 그랬구나! 몰랐셔요. 제가 사 모을 테니, 스따리님은 그저 가만 계시면 되겠네요.쿄쿄쿄 ^m^

2004-08-23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깨비 2006-07-10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다 싸게 몽땅 전집으로 구입했는데 이제 막 다읽고 28권을 사러 들어왔더니 27권이 2004년에 나오고 안나온겁니까? 혹시 스태리님은 언제 또 나오는지 아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