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시의 마법사 어스시 전집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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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만 한 영화없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적어도 <반지의 제왕>을 뺀다면 말이죠. 원작을 크게 손대지 않으면서도 멋진 판타지 세계를 영상화한 피터 잭슨의 상상력은 톨킨을 뛰어넘고도 남습니다. 얼마전 개봉한 <게드전기>가 아쉬운 부분도 이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끄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최신작 <게드전기>가 어슐라 르 귄의 어스시(earthsea) 시리즈 가운데 3권, 4권을 '모티브'로 했다는 건 많이 알려졌죠. 문제는 말 그대로 군데군데 '모티브'만 따왔을 뿐 원작과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죠.

전 '다행히' 영화를 먼저 보고 뒤늦게 원작을 접했는데요. 책 네 권을 모두 읽고 나니, 대체 이 영화가 짜깁기야 패러디야 하는 생각부터 들더군요.

대현자 게드를 중심으로 엮이긴 했지만 네 권 모두 화자도 제각각이고 저마다 완결성을 갖습니다. 영화에선 대현자 게드와 아렌왕자, 테나와 테루가 한꺼번에 등장해 사악한 마법사 '거미'에 맞서지만, 실제 거미가 등장하는 3권 '머나먼 바닷가'에선 테나와 테루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정작 영화의  결말 부분은 3권보다는 4권 '테하누'에 가까운데 여기서 아렌왕자는 잠시 얼굴만 비출 뿐 별다른 역할이 없죠. 자신의 그림자에 쫓기는 아렌 왕자 설정 역시 1권 '어스시의 마법사' 속 게드의 젊은 시절 모습입니다.

이렇듯 1, 3, 4권의 내용을 마구 짜깁고 뒤섞다 보니 원작을 먼저 읽은 관객이라면 어리둥절할 수밖에요.

물론 영화 자체로만 본다면 나름대로 완결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슐라 르 귄이 창조한 어스시 세계를 담기엔 너무 좁지만, 그 맛을 보는 것만으로도 환상입니다. 무엇보다 테루가 무반주로 부르는 삽입곡과 엔딩자막과 함께 흐르는 주제가, 장중한 배경음악은 <반지의 제왕> 못지않습니다.

짜깁기일 망정 이처럼 멋진 원작을 접하게 해준 영화가 제겐 그저 고마울 뿐이죠.

*별빛처럼 블로그(http://blog.ohmynews.com/staright/12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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