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DVD로 익숙해진, 긴 머리를 휘날리는 그랭그와르의 모습을 상상했다. 막이 오르자마자 말쑥한 짧은 머리 그랭그와르가 등장하는 순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날 관객들은 시종일관 짧은 머리 그랭그와르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2005년 2월 26일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 둘째날. 토요일 낮 공연이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층 관객석은 꽉 들어찼다. 특히 1층 B열과 D열은 프리챌 '송앤댄스', 다음 '웰컴브로드웨이', 싸이월드 '오마이뮤지컬' 등 인터넷 뮤지컬 동호회 회원들의 '단체 관람 행렬'로 어느 자리보다 활기가 넘쳤다.

이미 DVD와 CD를 수차례 보고 들으며 '예습'을 한 탓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공연을 기다렸다. 극 중 사회자이자 음유시인인 그랭그와르가 부르는 장중한 분위기의 'Le temps ds cathedrales(대성당의 시대)'을 시작으로, 에스메랄다의 'Bohemienne(집시)' 등 귀에 익은 노래가 나왔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야~ 노래 참 잘 하네' 정도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노트르담의 종지기 콰지모도를 '광인들의 교황'으로 뽑는 장면 등에서 집시들이 묘기에 가까운 역동적인 춤으로 무대를 휘젓으면서 분위기는 서서히 달아올랐고 멋진 묘기에는 큰 박수도 터져나왔다. 1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콰지모도, 프롤로, 푀비스 삼중창 'Belle(아름답도다)'. 

원년 멤버답게 콰지모도 맷 로랑과 에스메랄다 나디아 벨의 노래와 춤, 연기는 흠잡을 데 없었다. 프롤로도 악역 답게 굵고 힘있는 목소리가 돋보였고 집시들의 왕 클로팽과 푀비스의 연인 플뢰르 드 리스의 노래도 훌륭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빛난 건 그랭그와르.

20분 쉬는 시간이 끝나고 2부를 연 건 그랭그와르와 프롤로의 이중창 'Florence(피렌체)'. 여기서 굵고 낮은 톤의 프롤로와 대비되는, 그랭그와르 Richard Charest의 부드러우면서 힘있는 음색은 더욱 빛이 났다.  콰지모도, 프롤로, 푀비스와 에스메랄라간의 '사각 관계'라는 전체 흐름 속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Richard Charest는 잘생긴 외모 못지 않게 부드러운 음색과 멋진 무대 매너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Richard charest는 지금까지 주로 푀비스 역을 맡아왔다. 프로그램에도 푀비스 복장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그랭그와르역을 맡은 건 비교적 최근으로 보인다.

 그 결과는 커튼콜 때 드러났다. 주인공들이 차례차례 관객에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 그랭그와르의 등장과 함께 함성과 박수는 폭발적이었고 이는 곧 1층 전체 기립박수로 이어졌다.  그랭그와르가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를 뛰어넘는 진정한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인공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B열과 D열 앞쪽 일부에서 시작한 기립 행렬은 곧 1층 거의 전체로 퍼져나갔고, 앙코르곡 '대성당의 시대'가 그랭그와르->주연배우->모든 배우로 번지며 차례 차례 울려퍼지는 내내 기립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일단 프랑스 뮤지컬의 한국 첫 상륙은 순조로워 보인다. 하지만 1층 좌석이 대부분 15만원짜리인 '관람료 인플레' 상황에서, 여전히 브로드웨이에 친숙한 한국 관객들에게 어떻게 파고들지가 문제다. 

 하지만 마니아들 처지에선 모처럼 한 번만 보긴 아까운, 제대로 만든 '수입 뮤지컬'을 만났다.  

                                                                                        *별빛처럼

*프로그램 중 나디아 벨과 맷 로랑

Tip.

1. 1층 좌석 선택시 무대를 바라봤을 때 왼쪽 방향을 권한다. 즉 중앙열(C열)이 아니라면 A열 B열이 D열이나 E열보다 낫다. 이유는 배우들이 노래를 부를 때 무대 정중앙이나 오른쪽보다 왼쪽에 치우쳐 서는 경우가 월등히 많기 때문에 얼굴을 좀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2. 더블캐스팅은 아니지만 언더배우가 있다. 콰지모도 Matt Laurent, 에스메랄다 Nadia Bel, 프롤로 Michel Pascal, 푀비스 Laurent Ban, 그랭그와르 Richard charest, 클로팽 Roddy Julenne,  플뢰르 드 리스 Chiara di bari 등 7명의 주연배우 외에 3명의 언더 배우가 있다. 이날도 프롤로 역과 푀비스 역은 언더 배우가 나왔다.

3. 기념품도 있다. 프로그램(1만원)과 CD(스튜디오버전 1만3천원), 뉴스레터(3천원, 부록CD 없음) 외에 기념티셔츠(1만원), 핸드폰고리(5천원), 초콜릿세트 등 기념품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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