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눈앞에 불타는 무대가 아른거립니다. 공연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도 지킬과 하이드의 힘 넘치는 대결 장면과 루시의 애절한 노랫가락이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예전에 데이비드 하셀호프가 나오는 DVD를 보다 중간에 졸았던 탓에 가졌던 불안함은 이미 깨끗이 사라진 뒤였죠.

정말 발동이 늦게 걸렸습니다. 입소문이 이미 퍼진 탓인지 좋은 날 좋은 자리는 다 차 버리고, 반환표를 호시탐탐 노려야 했죠. 이미 '미녀와 야수'에 거금이 묶인 뒤라 좋은 자리에 대한 기대는 아예 버렸지만 말이죠.

11일 낮 공연 A석. 류정한-최정원-김아선 캐스팅의 공연이었습니다. 한 작품을 두 번 이상 잘 보지 않는 탓에 캐스팅에 무척 신경 쓰는 편이지만 제겐 정말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사진: 지킬/하이드 류정한과 루시 최정원(출처: 오디뮤지컬컴퍼니)


류정한씨는 지난해 '킹앤아이'에서 처음 보고 가창력만큼은 정말 대단하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나고요. 긴 말 필요 없는 최정원씨는 역시 지난해 '토요일밤의 열기'에서 아깝게 놓친 뒤로 첫 만남이지만 그 명성이 결코 헛되지 않더군요. 김아선씨는 처음 보지만 김소현씨 못지않은 똑 소리나는 연기가 맘에 들었어요. 

아무래도 DVD로 이미 본 브로드웨이 공연과 많이 비교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역시 기우였습니다. 지난해 오디의 '그리스' 공연도 원작(영화) 보다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는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역사극의 특성상 아기자기한 극적 재미는 덜했지만 지킬과 루시의 무게 있는 연기와 노래 비중이 컸던 탓에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지킬과 하이드가 서로 번갈아 가며 맞서는 'Confrontation'이었죠. DVD를 보면서도 가장 강렬했던 장면인데, 배우 혼자서 지킬과 하이드로 각각 분장한 오른쪽과 왼쪽 얼굴을 번갈아 가며 목소리까지 바꿔 노래 부르는 모습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특히 배우의 연기력 못지 않게 조명과의 호흡이 무척 중요한 장면이죠. 사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었는데 류정한씨는 무난히 소화해 낸 것 같습니다. 특히 굵은 목소리의 하이드 부분은 압권이더군요.

다음은 루시와 엠마가 지킬을 그리면서 함께 부르는 이중창 'In His eyes'이었습니다. 최정원시의 노래도 훌륭했지만, 사실 이전 장면까지 가창력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던 엠마 김아선씨가 대선배와의 맞대결에서 확실히 진가를 발휘하더군요.

모처럼 훌륭한 한국공연 뮤지컬 앨범을 갖게 된 것도 이번 공연 관람의 성과라면 성과겠네요. 코엑스 오디토리엄. 뮤지컬 전용극장은 아니지만 넉넉한 좌석 배치 하나는 맘에 들더군요. 주로 세미나나 컨퍼런스 장소로 많이 쓰이는 탓에 앞 뒤 좌우간격이 넉넉하고 좌석 받침대도 있어 오페라글라스를 두기 딱이더군요. 

다음 주면 짧은 공연 일정이 끝난다니 무척 아쉽네요. 하지만 지금 인기라면 나중에 장소를 옮겨 연장공연이나 지방공연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 없는 표를 억지로 구하다보니 혼자 봐서 많이 아쉬웠는데, 다음엔 친구와 한 번쯤 더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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