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양장)
리처드 애덤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열 한 마리 토끼들과 흥미진진한 모험을 함께 한 1주일. 내 몸의 크기는 어느새 10분의 1로 줄어 있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작은 개울도 내겐 어마어마한 강처럼 보였고, 고양이 한 마리조차 거대한 호랑이만큼이나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다시 예전의 크기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 너무나 안타깝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내게 동화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책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더구나 아이들이나 읽은 것 같아 보이는 책이 두께는 800쪽에 가까웠으니... 하지만 책의 1부를 덮는 순간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의인화 시키지 않은 동물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점에서 몇 년 전 감명 깊게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떠올렸다. 하지만 인간에 더 가까운 포유동물의 세계는 모든 게 낯설었던 곤충의 세계 이상이었다. 인간 못지 않은 사회성을 갖춘 야생 토끼들의 온갖 꾀와 강인함, 그리고 인간도 갖지 못한 놀라운 초감각. 이것들이 탄탄하게 짜여진 모험 스토리와 한데 어우러져 놀라운 판타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다소 황당무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가 현실성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주인공 토끼들의 캐릭터 하나 하나가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리더 헤이즐과 예지자 파이버, 해결사 빅웍을 비롯한 '영웅 토끼'들의 모습은 <반지의 제왕>과 같은 다른 모험소설에서 익숙해진 캐릭터들과 교묘히 뒤섞여 거리감을 없앴다.

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내 자신이 인간이 아닌 같은 토끼 입장에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액자식'으로 소설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토끼들의 재미난 영웅담 엘-어라이어 이야기와 '실플레이' '나 프리스' 같은 낯선 '토끼어'에 익숙해 지다보면 어떤 독자라도 자신이 토끼가 된 듯한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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