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의 흡연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마라토너의 흡연>. 서점에서 유독 이 책에 눈길이 간 건, 짐작하시겠지만,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나란 인간도 뭐든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 아예 미치는 성격이라, 마라톤을 시작한 뒤론 '마'자만 튀어나와도 귀가 솔깃하다.

현직 기자인 조두진 소설가가 쓴 단편집이다. 7편의 단편 가운데 하나, 그것도 30~40쪽 남짓 분량이기에 선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작가는 틀림없이 아마추어 마라토너이거나 마라톤을 하는 지인을 가까이 두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않고 우리나라 아마추어 마라톤 문화와 동호인들의 생리를 이처럼 꿰뚫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 실감났다.

알라딘에서 인용한 한 대목만 봐도 그렇다.

...채는 마라톤 선수가 갖춰야 할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회사 동료들이나 채와 클럽에서 마라톤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평가는 대체로 이랬다. 채는 우선 새가슴이다. 사내로서 이 새가슴은 상당히 꼴 보기 싫다. 그러나 마라토너에게 우람하고 떡 벌어진 가슴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게다가 채는 보기 흉할 만큼 왜소하다. 황영조 선수보다 더 왜소하고, 황영조 선수만큼 새가슴이다. 칼로 가슴을 열고 자를 대고 재보지는 않았지만 심장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채에게는 마라톤 선수에게 꼭 필요한 인내심이 있었다. 채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새가슴에 별 볼품없는 키와 얼굴, 별 쓸 것도 없는 얇은 월급봉투를 갖고 들어가는 남자지만 절세미인을 아내로 얻었던 것은 순전히 인내심 덕분이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 채는 아마추어의 꿈인 '서브3'(풀코스 3시간 이내 완주)에 근접해 있는 타고난 마라토너다. 회사 마라톤 동호인들은 채가 머잖아 서브3를 달성할 거라고 내기까지 걸지만, 정작 채는 기록 달성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마라토너의 금기인 우유나 담배도 마다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반전'은 제목에 있다. 채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는 평생 '흡연'하기 위한 일종의 몸 만들기일 뿐이라는 것.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로선 허를 찔린 기분일 것이다. 국내 마라톤 인구는 300만으로 추정된다. 매년 300~400개의 대회가 열리고 동아마라톤 등 이른바 메이저대회에는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한다. 마라톤동호회도 20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의 목표는 단연 기록 달성이다. 특히 '서브3'는 하나의 신앙이다. 1만명이 달려봐야 그중 3시간 이내 완주자는 200~300명 남짓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자신도 그 대열에 낄 것이란 기대를 품는다. 봄 가을 마라톤교실이 몇 달씩 진행되고 세미나까지 열린다. 요즘엔 '서브3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구호가 중장년의 용기를 부추긴다.

선수가 아닌 다음에야 처음부터 기록을 목표로 마라톤을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않다. 그저 건강을 위해, 친목 도모를 위해, 조깅 삼아 가볍게 마라톤을 시작한다. 하지만 5km, 10km, 하프, 풀코스를 어렵게 하나하나 정복해 갈수록 초심은 사라지고 조금씩 기록에 연연하기 시작한다. 동호회 동료들과 경쟁하고, 내기 걸고, 때론 상금을 목표로 기록 싸움에 뛰어든다.

하루 30분 조깅으로 출발한 '훈련'은 매일 10~30km씩 달리는 수준으로 발달한다. 한달이면 200~300km. 거의 선수 수준이다. 무리한 훈련엔 당연히 부상도 뒤따른다. 아킬레스건염, 족저근막염 등등 온갖 복병이 가로막지만 이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침을 맞아가며, 테이핑을 해가며 절뚝거리면서도 끝끝내 훈련에, 대회에 나선다. 어느새 '건강'이란 대의명분은 사라지고 오히려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주객전도'가 따로없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나 역시 저 '운동중독' 대열 끄트머리쯤에 붙어있을 듯 하다. 그래도 아직까진 '건강'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우고 있다지만 지난 가을 첫 서브4 달성 이후 이번엔 '기록 단축'이란 목표를 걸고 머리를 싸매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차라리 담배를 피기 위해 마라톤을 한다는 '채'야말로 자신에게 솔직하고 '목표'에 충실한 사람이 아닐까.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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