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3년만에 다시 찾은 피판. 14일 토요일 서대문 집에서 부천역까지 1시간 남짓. 신길역에서 동인천행 급행열차를 갈아탄 덕에 눈깜짝할 새 도착했다. 부천까지 지하철, 버스타고 오기 지루하신 분들은 필히 급행열차 시간표를 확인하시길...
10:00 AM. 첫 영화는 송내역에서 가까운 복사골문화센터였지만 부천역에서 내려 더잼존을 먼저 찾았다. 더잼존 1층에서 하는 장르문학 북페어에 참석차. 하지만 애석하게도 전시장엔 철문이 굳게 내려져 있었다. 스치듯 들리는 얘기론 10시30분부터 문을 연다고. 별수없이 피판 셔틀버스에 올랐다.
부천영화제의 첫인상을 좌지우지하는 게 바로 셔틀버스다. 약 15분 간격으로 상영관 사이를 오가는데, 친절한 자원봉사자의 안내 덕에 영화제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는다. 예전에는 사랑노선, 환상노선 등 다양했는데 올해는 20일을 제외하곤 환상노선 하나만 운행한다. 버스시간표 꼭 확인하시길...
11:00 AM.20여분 달려 복사골에 도착했다. 복사골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총본부격이다. 게스트라운지를 비롯해 각종 부대행사가 이곳에서 주로 열리고 주말이면 심야영화상영까지 거의 24시간 풀가동이다. 이곳에서 오늘 티켓 4장을 모두 끊고 피판홀릭 기념품도 받았다. 두툼한 피판공식 팸플릿과 생뚱맞은 DHL 비치볼. 차라리 목배게를 줄 것이지...
첫 영화는 물고기공주다. 데이비드 카풀란 감독의 실사 애니메이션. 뉴욕 차이나타운을 배경을 한 중국판 신데렐라 이야기다. 동화를 배경으로 했지만 성인마사지업소를 배경으로 하고 끔찍한 마녀가 등장하는 등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깝다.
표현기법이 특이했다. 먼저 실사를 촬영한 뒤 필름위에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는 로토스코핑 방식. 초당 14프레임 정도로 직접 손으로 터치해 애니메이션 느낌을 주지만 화면구성이나 음성은 실사영화에 가깝다.
영화가 끝난 뒤 GA(관객과의 대화)에 나온 데이빗 카플란 감독은 아주 유쾌했다. 10년전 부천영화제 1회때 <빨간모자>란 단편영화를 들고 왔었다는 카플란 감독은 차이나타운에서 자라선지 아시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주로 동화를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800년도 더 된 중국버전 신데렐라 이야기에 빠져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많이 알려진 유럽판보다 신데렐라가 더 적극적이고 활동적이어서 인상 깊었다고.
왜 하필 마사지숍을 배경으로 했느냐는 관객 질문에 "Why not?"이라고 반문한 카플란은 실제동화는 유아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폭력성, 섹슈얼러티를 내포하는데 어린이를 위해 삭제된 게 많아 이를 되살리려 한 것일뿐이라고 말한다.
2:00 PM. 영화는 1시간 반짜리였지만 GA까지 끝나고 나니 1시가 훌쩍 넘었다. 재빨리 셔틀버스에 올라 CGV로 왔다. 대형쇼핑몰 6층에 극장이 있는데, 사람들이 워낙 붐벼 엘리베이터도 꽉 차고 에스컬레이터도 매장을 계속 빙빙 돌게 설계해 꽝이다. CGV에 올때 시간 조절을 해야겠다. 덕분에 4층 식당에서 밥을 허겁지겁 먹어야 했다. 음식값 할인해 주는 DC존은 아니었는데 밥값 계산할 때 보니까 500원 깎아주신다. 영화제 관객이라고 얘기도 안했는데 행색이 그렇게 보였나 보다 ^^;
두번째 영화는 올해 부천의 화제작 유령 대 우주인.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과 도요시마 케이스케 감독이 함께 만든 엽기호러영화. 단순무식하게 유령과 우주인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란 설정으로 만든 영화라고 하는데, 저예산이지만 두 감독의 독특한 끼가 잘 묻어나는 작품이다.
영화 상영 뒤에는 도요시마 케이스케 감독과 니시무라 요시히로 특수효과 감독이 참여한 특수분장 메가토크가 약 40분간 진행됐다. 주제는 특수분장이었지만 권용민 프로그래머 사회의 GA와 별다르지 않았다. 얼굴에 끔찍한 특수분장을 하고 나타난 두 감독은 점심에 뭐먹을까를 두고 싸우다 이런 상처가 났다며 어린아이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는 크게 두편으로 나뉘는데 도요시마 케이스케 감독이 만든 작품은 매력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사람의 정기를 뽑아먹는 외계인과 이에 맞선 샤먼의 맞대결을 그렸다. <스페이스 뱀파이어>를 모티브로 '팜므파탈'을 그리고 싶었다는 도요시마 감독 얘기다. 니시무라 촬영감독의 '피의 철학'도 재밌다. 스프라이트 CF에서 레몬즙이 탁! 튀기는 모습에서 피 튀기는 장면이 연상돼 상쾌하다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며, 현실상황에서 실제 벌어지기 힘든 장면을 영화에서 대신 체험하도록 실제보다 더 실감나게 그리고 싶다고 한다.
5:00 PM. 샤루칸이 등장하는 발리우드 영화 파헬리를 보려고 부천시청에 도착했다. 사실 부천시청은 상영관시설로는 빵점이다. 강당이나 강연장으로 주로 쓰는 곳이어서 그런지 영사막과 객석 사이에 넓은 무대가 있어 영사막이 한참 멀어 보인다. 게다가 좌석수는 가장 많지만 의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성인남자가 무릎을 붙일 수 없을 정도여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런 곳에서 2시간 20분짜리 인도영화를 봐야했으니...
좌석탓일까? 중간중간 반쯤 졸긴 했지만 영화는 샤루칸이 등장하는 맛살라 무비의 전형이었다. 써머스비를 연상시키는 익숙한 스토리에 화려한 노래와 춤, 아름다운 인도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미인들이 등장해 잠시도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하는 발리우드 영화.
그 묘미를 충분히 살아있는 영화였다. 발리우드 팬들이 많은 탓인지, 샤루칸이 등장해 '깜찍한' 연기를 펼칠 때마다 관객석에서 터져나오는 자지러질듯한 비명과 탄성 역시 볼만했다. ^^;
8:00 PM. 다시 복사골로 돌아왔다. 막 떠나려는 셔틀버스를 간신히 잡아타고 도착하니 7시40분. 밥먹을 시간도 없다. 컵라면으로 간단히 떼우고 본 오늘의 마지막 영화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
설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할리우드 세트장을 찾은 6명의 남녀들이 공포영화 세트장에 갇혀 각자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 4편을 들려주는 옴니버스 형태의 호러공포영화다. 그 작품들을 13일의 금요일의 션 커닝행, <상태개조>의 켄 러셀, <그렘린>의 조 단테, <투 레인 블랙 탑>의 몬테 헬만, 존 가에타 등 5명의 감독이 각자 연출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존 가에타의 데뷔작인 'My twin, The worm'이다. 엄마 뱃속에서 촌충과 같이 자란 아이가 보여주는 엽기적인 행각이 생각할수록 오싹하게 만든다. 이야기 4편 밖에 도사린 반전 역시 놓치지 마시길... 오늘 본 네 작품 가운데 가장 피판다운 영화였다.
10:00 PM. 이렇게 부천의 첫날이 지나갔다. 20대 관객들과 뒤섞여 환상버스에 올라타 이곳저곳 다니며 본 온갖 영화 이야기. 이렇게 집으로 돌아올 때쯤 머릿속에서 뒤범벅되는 이 느낌이 좋다. 그래서 해마다 놓치지 않고 부천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17일엔 아내와 함께 다시 부천을 찾는다. 부천엔 아내와 함께한 20대의 추억이 남아있기에 더 뜻깊은 하루가 될 듯 하다.
*별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