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모리 준이치 지음, 한유희 옮김 / 지원북클럽(하얀풍차)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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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예전에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해준 지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대부분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지, 읽어 보라는 권유는 하지 않는데 선뜻 추천을 해 줬기에 기억에 남아 있던 책이였다.

그래서 도서 대출증을 만들고 막 둘러본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만남이라는 연속성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지금은 그 지인과 자주 연락을 하지 않지만 한때 추천해 주었던 책만은 남아 희미하지만 끊기지 않는 연결을 확인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주인공들도 연결의 끊을 놓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세상과의 연결일 수도 있었고 서로에 대한 것일 수도, 아니면 낯선 세계와의 연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보기엔 그들이 조금 특별해 보였지만 그 특별함은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거부감이 아닌, 오히려 위로를 받는 느낌이였다. 그들보다 낫다고 해서 받는 위로가 아니라 그들로 인해서 순수함을 발견 했기에 위로를 받은 것이다. 내 안에도 그런 것이 존재 한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세탁소에서 빨래를 지키는 테루를 봤을 때 영화 '해바라기'의 오태식이 떠올랐다.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행동거지와 수첩에 무언가를 꼼꼼히 적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오태식은 자신의 과오를 번복하지 않기 위해 그런 것이지만 테루는 어릴 때 사고로 머리를 다쳐 깊은 생각은 하지 못한다.

할머니 말로는 맨홀에 빠져서라고 하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그래서 기억이 많이 딸리고 말도 어눌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테루가 무시되어 지거나 바보스럽다 말할 수 없었다.

테루의 그런면 너머에는 순수함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탁물을 놓고 간 미즈에에게 옷을 돌려 주려다 길을 잃기도 하는 그 지만 미즈에에겐 테루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사랑에 배신 당하고 도벽을 일삼고 자살까지 하는 그녀에게 테루가 곁에 있는 사람 전부인 것이다. 그런 테루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떠나지만 테루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미즈에에게 무엇이 되어 주거나 다시 만날 거라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못한다.

그러나 미즈에가 떠나던 날 흘리고 간 원피스를 들고 미즈에의 고향을 찾아간다. 할머니가 운영하던 세탁소는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고 할일이 없어진 것이다.

 

옷을 가져다 주는 과정에서 미즈에에 대한 감정을 조금씩 정리해 가지만 할머니의 죽음을 듣고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런 테루를 따라 미즈에도 고향을 등진다.

그때부터 그들의 여정은 시작되고 부족한 것 투성이의 두 사람의 앞길은 순탄치가 않지만 그것을 피하지는 않는다. 우연히 샐리를 만나 두 사람의 안정적인 생활이 이어지지만 아직도 두 사람은 불안정하다. 미즈에는 테루에게 도리어 위로를 받고 있다고 했지만 그런 테루와의 생활에서도 과거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도벽을 하다 감옥에 갇힌다.

그런 미즈에를 기다려 주는 테루는 늘 그대로다. 샐리가 떠나면서 테루는 절대 미즈에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그 말이 아니더라도 테루는 배신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자신의 감춰진 과게에 연연해 하기 보다는 현재를 충실하게, 미즈에와 함께 살아가기를 갈망할 뿐이다.

그건 미즈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상처뿐인 과거를 떨쳐버리고 테루의 순수함을 닮아가며 늘 그의 곁에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테루의 곁에 있는 것이 미즈에의 희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미즈에는 세상에 섞여 가식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힘들다.

테루의 곁이라면 세상에서의 아픔을 잊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테루와 함께 한다고해서 세상과의 충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즈에에게는 힘이 된다.

 

자칫 불행한 과거를 지녔다고 생각할 수 있는 테루를 보면 위안을 얻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안타까움이 아닌 현재를 꿋꿋이 살아가는 테루를 보며 스르르 동화되어 가는 것이리라.

그것은 샐리처럼 그들이 조금 마음에 들었을 뿐일 수도 있지만 그들을 통해 느껴지는 감동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사랑이라는 매개물로 맺어진 감동일 수도 있고 인간 본연의 모습이 가진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함이 넘친다. '나는 왜 저들처럼 열심히 살지 못하는 걸까',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이런 한탄보다는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를 권해본다. 그럴 때 나도 용기를 얻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위로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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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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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몸을 비비 꼬았는지 모른다. 조용한 곳에서 나 혼자 책을 읽고 있음에도 혹여나 누가 볼까 긴장하면서 읽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적나라한 베드신의 연속으로 이렇게 당황을 한 것인데 야동이 판을 치는 세상에 책이 적나라 해봤자지 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묘사에 대한 상상력이 뛰어난 편인데 거기다가 작가의 문체가 뒷받침해 준다면 한편의 영상보다 나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책을 꾸준히 보아온 탓에 묘사에 대한 상상력은 조금 있는 편인데 여기다 저자의 문체가 더 자극을 시켜 주었으니 머릿속에는 낯뜨거운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의 직업이 창년이였으니 베드신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고, 단순한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세계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것은 욕망의 분출이기도 했고 욕망의 채움이기도 했지만 창년 료는 그 세계에 매료되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남들이 봤을때 유쾌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미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료에게는 새로움이 되고 있었다.

 

 자신이 느끼는 희열보다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을 상대하면서 무한함 속으로 들어 간다는 것은 현실 세계와 분명 달랐다.

자신은 여자를 비롯한 그 어떠한 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했으니 창년의 제안도 별 느낌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열을 찾아 보고자 하는 마음에 자연스럽게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료에게 창년을 제안했던 미도 시즈카가 료의 자질(?)을 어느정도 알아본 것도 있지만 여자 손님들은 료를 상당히 맘에 들어한다. 미즈카가 충고했듯이 그 여성들 하나하나에 진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진심의 발견은 섹스일 수도 있지만 여성들 내부에 깊숙히 묻혀있는 욕망을 이해해주고 들어주는 것에서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녀들은 섹스를 통해서 욕망을 분출하려고 했지만 그 늪에 빠진 것은 료였다.

여자들의 욕망을 알아가면 갈수록, 그 세계에 대한 혐오보다 그녀들을 있는 그대로를 보아주며 자신이 찾고자 했던 열정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느껴간다.

20살 료에겐 그것이 분출이였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아픈 기억도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지리멸렬함에도.

 

 그러나 료가 그런 느낌이라고 해서 창년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는 없었다.

변태적인 손님을 주로 다루며 자신 또한 그런 습성을 즐겼던 아즈마는 료가 단기간에 vip 전용으로 뽑힌게 보통사람 이여서 라고 했다. 보통사람의 사고와 고뇌를 지닌 료가 평범해서 그런 매력을 뿜어 낸 것이라고(물론 외모도 어느정도 받쳐 주면서).

자칫 료가 창년이 된 것은 돈이 목적이 아니였고 욕망의 분출도 아닌 열정을 찾는 계기였다고 해서 획일화된 사고를 심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역효과를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료가 창년의 일을 잠시의 흥분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일을 계속 추진하기로 한 결말에서 드러나지만, 저자의 섬세한 문체 속에 푹 빠지다보면 료가 손님들을 대했을때 진심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료에게는 새로움이 될 수도 있었지만 료를 지켜보는 타인에게는 행위에 대한 자각심이 떨어질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런 위험성을 뒷받침해 주었던 건 저자의 섬세함이였다. 료를 통해서 충족해가는 다양한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문체는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때로는 여자들보다 더 깊은 곳을 헤엄치는 듯한 저자의 묘사는 료가 빠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랬기에 료는 그 매력의 발산이 되는 여성의 육체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일을 계속하게 만든게 아닐까.

창년으로써의 일을 관뒀다면 오히려 퇴폐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경험밖에 되지 않을 일을 료의 결정으로 하나의 세계로 인정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도 처음 줄줄이 이어지는 베드신을 보면서 적나라하다 느낌이면서도 담담하게 관찰자로써 써내려가는 저자의 문체에 저급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나또한 덤덤하게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찾은 것은 없었다.

료처럼 여성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찾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은 것도 아닌, 지켜본 것이 전부였다.

그 세계의 존재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료를 통해서 얻을 만큼 내 삶이 무료하다 생각되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에 대한 억압도 아니고 편견도 아니다.

성에 대한 편견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더 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단순히 빛을 보고 싶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 료의 세계는 너무나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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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2. 파피용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작년, 한참 달콤한 나의 도시가 인기가 있을때...

읽고는 싶은데 제가 직접 사서 보기가 왠지 그렇더라구요.

어디서 누가 안주나.. 이런 심정으로 바라본 책이였는데...

제가 있는 곳으로 놀러온 친구가 책이나 한권 사주겠다고 해서...

극구 사양하다가 '루모와 어둠속 이야기'를 선물 받았는데...

좀 지나서 제 생일이오니 또 책을 사준다고 하더라구요....

 

그때가 아직도 정이현님 책을 못 읽고 있던 때라서....

민망함에도 저 책을 덜컹 말했지요.

그런데 친구가 바빠서 책을 못 보내줬지요.

그러다가 저번주 토요일 간만에 메신저로 대화를 걸더라구요.

그래서 인사하면서도 저 책이 불연듯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책 안주냐고 물었더니....

잊어 먹고 있었다고 미안하니 한권 더 말하라는 거예요...

헐......

이쯤이면 뻔뻔함에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데....

 

'아.. 그러지 않아도 돼.. 미안한데...

그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으로 할래'

 

라고 말해버렸다죠.. ㅠㅠ

헐.... 전 정말 구제불능입니다.

책 앞에서는 더더욱 더...

그런데도 책을 보고 있으니 왜 이리 기분이 좋을까요..

으흐흐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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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렌트 - 이시다 이라
 
2. 사막 - 이사카 코타로
 
3. 이코 안개의 성 - 미야베 미유키
 
4.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 기타무라 가오루
 
 
 
- 황매의 신간과 구간 세권이 도착했습니다.
'사막'은 신간임에도 오지 않아서...
구간으로 신청했다.
그리고 사막과 함께 이코 안개의 성과 달의 사막을 사박 사박을 시켰는데.....
시켜놓고 보니.. 다 일본작가들의 책이였다.
헐... 일본 문학 지겹다고 하더니.. 결국 시킨것들은..^^
 
책이 온 후에 대충 쌓아놨는데..
쌓고 보니 책들 색깔이 이뻤다....
요즘은 책도 이뻐야지 읽을 맛이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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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행복하라 - 꿈꾸는 사람들의 도시 뉴욕
박준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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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매력을 다룬 1장을 읽는 동안은 동경의 대상이였던 곳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다. 내가 있는 곳은 뉴욕에서 먼 곳이지만 뉴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내 주변의 것들을 잠시 멈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상상속의 나는 뉴요커가 되었고 내가 있는 곳은 서서히 뉴욕이 되어갔다.

그러나 2장 뉴요커들의 생각을 깊숙히 들여다 보면서 갖게 된 감정은 1장에서처럼 상쾌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우울했고 겁이났고 삶의 의욕마져 떨어지고 말았다.

1장에서는 나를 잊은 채 뉴욕을 돌아봤기에 즐거웠지만 2장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드러내야 했기에 자신감을 잃어 버린 것이다.

다른 것을 동경할 수는 있어도 내 자신에게 솔직해 질 수 없는 이유 때문이였나 보다.

 

뉴욕에 대한 소문(?)은 참 많이 들었지만 가보고 싶다고 열망한 적은 없었다.

치열한 도시보다는 자연과 가까이 하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삶을 더 갈망 했는지도 모른다.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고 명확한 것보다는 모호한 것을 좇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컸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뉴요커들을 보며 내가 갖게 된 감정은 질투심이 아니라 정체성 혼란이였다.

'나는 누구인가'를 시작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비롯해 '나의 꿈은 존재하는가'까지 이르다 보니 이 시간이 무척이나 공허해졌다.

이것이 뉴욕이라는 도시가 뿜어내는 매력과 뉴요커들의 열정 사이에서 방황을 하는 감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나는 내 자신을 잃어 버린 상태다.

 

온갖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 예술이 흘러넘치는 도시, 반면에 지저분하고 정이 절제된 도시 뉴욕. 거기다 뉴욕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좇기에 바쁘다.

그래서 그만큼 치열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 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습이 활기차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삭막해 보이기도 했다. 분명 뉴요커 한사람한사람은 열정에 넘치고 그 열정이 뉴욕이라는 도시를 독특하게 만들어 갔지만 그 이면도 존재했다.

다양한 국적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 수 많은 이야기, 힘들었던 기억들이 유쾌할 수 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디에나 마찬가지겠지만  뉴욕이라는 화려함 속에 존재할 것 같지 않는 모습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유명한 곳만 둘러보며 탄성만 지르려하는 관광객들처럼 도시의 어두운면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밝음과 어둠은 동시에 공존하는데 밝음만을 추구하려 했던 것은 나를 잊고 싶어서였을까?

 

어디서건 나를 감출 수 있다는 것보다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 더 힘든 법인데, 뉴욕은 겉으로는 나를 감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를 드러내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 곳이였다.

모두에게는 목적과 꿈이 있었고 대충 살려는 사람은 없었기에 삶이 너무나 치열해 순간 당황해 버린 것이다.

내 꿈을 찾아 저렇게 뛰어들지 못했다가 아닌 꿈을 잃어 버린 초라한 나의 모습 때문이였다.

뉴욕에 사는 몇사람의 인터뷰로 뉴욕을 판단하고 뉴요커들의 성향을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꿈과 욕망이 내로라하는 것들만 모인 것도 아니였다.

소소한 것이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모든 것을 던져 보고 부딪히며 살아간다는 것이 놀라웠던 것이다. 몇몇사람이 아닌 도시 전체가 술렁이는 그 독특한 분위기가.

 

꼭 어떤 일을 하고자 확신을 가지고 뉴욕을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만약 뉴욕을 간다면 할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충분히 뉴욕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목적없이 접시나 닦으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무언인가가 내 안에 채워져야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뉴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분히 채워져 가기를 소망하는 느긋한 삶이 아니라 채우지 않으면 순식간에 밀려나는 도시, 그 곳이 뉴욕이였다.

그 사실을 체험하면서도 수 많은 사람들이 뿜어대는 열기로 들썩거리는 도시 뉴욕.

그 열기의 공간을 사람들은 쉽게 떠나지 못했다. 애증을 가지고 뉴욕을 대하면서도 자랑스러워 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창조적인 일이 아니라 단순한 일 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갔다.

그 사실이 그들과 하나 될 수 없다는 생각보다 내 자신 안으로의 침체를 만들어 갔지만 헛된 경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처럼 뉴욕을 꿈꾸며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만 나의 일상에서 자잘한 꿈을 만들어 볼 생각은 품게 되었다.

그 사실이 뉴욕을 바라본 나의 변화였다. 그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그 진행을 여기에 모두 담을 수가 없다. 뉴욕의 열기처럼. 뉴요커들의 열정처럼.

그 기록은 무의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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