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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몸을 비비 꼬았는지 모른다. 조용한 곳에서 나 혼자 책을 읽고 있음에도 혹여나 누가 볼까 긴장하면서 읽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적나라한 베드신의 연속으로 이렇게 당황을 한 것인데 야동이 판을 치는 세상에 책이 적나라 해봤자지 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묘사에 대한 상상력이 뛰어난 편인데 거기다가 작가의 문체가 뒷받침해 준다면 한편의 영상보다 나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책을 꾸준히 보아온 탓에 묘사에 대한 상상력은 조금 있는 편인데 여기다 저자의 문체가 더 자극을 시켜 주었으니 머릿속에는 낯뜨거운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의 직업이 창년이였으니 베드신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고, 단순한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세계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것은 욕망의 분출이기도 했고 욕망의 채움이기도 했지만 창년 료는 그 세계에 매료되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남들이 봤을때 유쾌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미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료에게는 새로움이 되고 있었다.
자신이 느끼는 희열보다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을 상대하면서 무한함 속으로 들어 간다는 것은 현실 세계와 분명 달랐다.
자신은 여자를 비롯한 그 어떠한 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했으니 창년의 제안도 별 느낌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열을 찾아 보고자 하는 마음에 자연스럽게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료에게 창년을 제안했던 미도 시즈카가 료의 자질(?)을 어느정도 알아본 것도 있지만 여자 손님들은 료를 상당히 맘에 들어한다. 미즈카가 충고했듯이 그 여성들 하나하나에 진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진심의 발견은 섹스일 수도 있지만 여성들 내부에 깊숙히 묻혀있는 욕망을 이해해주고 들어주는 것에서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녀들은 섹스를 통해서 욕망을 분출하려고 했지만 그 늪에 빠진 것은 료였다.
여자들의 욕망을 알아가면 갈수록, 그 세계에 대한 혐오보다 그녀들을 있는 그대로를 보아주며 자신이 찾고자 했던 열정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느껴간다.
20살 료에겐 그것이 분출이였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아픈 기억도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지리멸렬함에도.
그러나 료가 그런 느낌이라고 해서 창년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는 없었다.
변태적인 손님을 주로 다루며 자신 또한 그런 습성을 즐겼던 아즈마는 료가 단기간에 vip 전용으로 뽑힌게 보통사람 이여서 라고 했다. 보통사람의 사고와 고뇌를 지닌 료가 평범해서 그런 매력을 뿜어 낸 것이라고(물론 외모도 어느정도 받쳐 주면서).
자칫 료가 창년이 된 것은 돈이 목적이 아니였고 욕망의 분출도 아닌 열정을 찾는 계기였다고 해서 획일화된 사고를 심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역효과를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료가 창년의 일을 잠시의 흥분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일을 계속 추진하기로 한 결말에서 드러나지만, 저자의 섬세한 문체 속에 푹 빠지다보면 료가 손님들을 대했을때 진심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료에게는 새로움이 될 수도 있었지만 료를 지켜보는 타인에게는 행위에 대한 자각심이 떨어질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런 위험성을 뒷받침해 주었던 건 저자의 섬세함이였다. 료를 통해서 충족해가는 다양한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문체는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때로는 여자들보다 더 깊은 곳을 헤엄치는 듯한 저자의 묘사는 료가 빠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랬기에 료는 그 매력의 발산이 되는 여성의 육체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일을 계속하게 만든게 아닐까.
창년으로써의 일을 관뒀다면 오히려 퇴폐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경험밖에 되지 않을 일을 료의 결정으로 하나의 세계로 인정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도 처음 줄줄이 이어지는 베드신을 보면서 적나라하다 느낌이면서도 담담하게 관찰자로써 써내려가는 저자의 문체에 저급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나또한 덤덤하게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찾은 것은 없었다.
료처럼 여성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찾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은 것도 아닌, 지켜본 것이 전부였다.
그 세계의 존재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료를 통해서 얻을 만큼 내 삶이 무료하다 생각되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에 대한 억압도 아니고 편견도 아니다.
성에 대한 편견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더 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단순히 빛을 보고 싶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 료의 세계는 너무나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