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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 ㅣ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10
롤프 귄터 레너 지음, 정재곤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호퍼의 그림을 알게 된 것은 나의 홈페이지에 '온라인 미술관'이라는 폴더를 채워 가면서 였다. 내가 봤을때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올려놓는 폴더인데, 그림의 양이 천 여점이 넘다 보니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그림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내가 올린 그림을 기억하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 다시 그 그림을 마주쳤을 때인데, 호퍼라는 화가와 그의 그림을 각인 시키게 된 것은 다름아닌 글을 통해서였다. 알랭 드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에 호퍼의 그림에 대해 나오길래 궁금해서 찾아보니 '온라인 미술관'에 올린적이 있는 작품이었다. 한 두번 스쳤을 때는 지나쳐 버렸는데 보통 책 말고도 다른 책에서 자꾸 마주치니 인연이 깊은 화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강렬함에는 그의 그림이 중점이 되었지만 자연스레 다른 매체를 통한 만남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그의 책을 구입하는데 스스럼이 없었다. 호퍼라는 화가에 대해 배경지식이 전혀 없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약간의 망설임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화가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의 그림을 보며 느끼는게 당연하지만, 자잘한 배경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사람의 시선에서 화가의 작품세계와 일생이 그려지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지기에 반신반의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마주한 호퍼의 책은 얇아서 처음엔 당황을 했었다. 두꺼워야만 풍부한 자료와 설명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호퍼의 세계를 만끽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 했던 것이다. 그러나 책이 얇다고 얕봤던 나의 생각을 뒤집어 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장부터 마주하게 되는 촘촘한 글씨와 깊이가 느껴지는 문장에서 호퍼를 제대로 만났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 느낌은 제대로 드러맞아 책을 읽고 호퍼의 그림을 보는 내내 광활한 미국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호퍼의 그림을 보는 순간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미국적이다라는 것이었다. 미국적이다라는 느낌을 속시원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광할한 땅에서 느껴지는 고독이 전해져 오는 작품이 많았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도시의 무미건조함을 잘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 무미건조함 속에서 미국적인 고독이 진하게 배어 있었으니,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멍해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림의 풍경이나 인물에 짙은 동질감을 느끼면서 그 모든게 흡수되는 강렬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인간의 고독과 도심 속의 무미건조함, 광활한 자연에서의 우뚝솟음을 표현한 호퍼의 그림 가운데는 절제가 느껴지기도 한다. 호퍼가 표현하는 그림들을 보자면 분명 내면의 깊은 것들을 폭발시키면서 충동적인 것들을 뱉어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저자가 설명하는 그림속의 상징적인 것들을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무언인가가 차고 올라오다 멈칫하는 멈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여인이나, 기차칸에서 책에 몰두하는 여인, 심지어 자연을 묘사한 작품 속에서도 순간포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음 상황을 상상하게 만드는 절제와 여지의 공간이 있었다. 그것은 황량함일 수도, 우울함일 수도, 슬픔일 수도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인생과 닮아 있기에 작품 속의 몰임을 경험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몰입은 나 혼자서 노력한다고 가능할까? 그림에 대해 무지하기에 그냥 보았다면 휙휙 넘겨 버리며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호퍼의 그림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내면을 파고드는 듯한 깊은 성찰의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이해하기 쉽게 다가가는 글도 좋지만,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는 글이 더 매력적인 것이라는 걸 보여주는 글이었다. 저자의 깊은 성찰이 아니었다면 미국적이다, 도시의 건조함이 짙다고 치부해 버렸을 호퍼의 그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 글과 호퍼의 그림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조화 속에서 덩달아 나도 버무려져 섞이고 있었으니 이 책을 보는 동안은 호퍼가 그려냈던 미국으로 빨려 들수 밖에 없었다.
호퍼는 미국을 거의 떠난적이 없는 화가였다. 화가라는 독특한 직업에도 불구하고 정적인 삶을 살았던 그였다. 그랬기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하고 되뇌어 보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시각이 아닌 내면에서 나오는 그림들이라는 것을. 내면의 모든 것이라고 하기엔 그의 그림이 무미건조하고 어두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끌림에 빨려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빨려듬은 서서히 다가올지 모르나 강렬해질 거라 다짐한다. 인상파의 그림만 주로 좋아하던 나도 호퍼에 빠져 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