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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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실격>을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하는데, 데카당스라는 표현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퇴폐주의. 다자이 오사무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퇴폐를 최대한 끌어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요조'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인간 실격>은 그래서 더 피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책을 읽어나갈 수록 표정은 굳어지고, 인간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요조'를 이해할 수 없고, 싫어하면서도 누군가와 닮아 있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인간의 병폐를 깊숙이 숨기고 살아간다면, '요조'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살았다. 그것이 솔직함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보통 사람과 다르게 흘러가는 요조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요조는 병약하고, 자신을 잘 표현할 줄 몰랐다. 대가족 속에 자라다보면 부모에게 사랑받으려 자신을 더 드러내기 마련인데, 요조는 그 반대였다.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를 말도 하지 못했고, 가족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집은 요조에게 편안한 공간이라기 보다 갑갑하고 자유를 침해하는 공간이었다. 그런 표현을 절대 하지 않았고, 익살로 자신을 포장해 갔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익살로 많은 사람들을 웃겼고, 그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익살로도 다른 사람들과 동화되지 못했다. 학교를 빌미로 타지로 나가게 된 요조는 여자와 마약, 술에 의지하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많은 여자들이 자신을 사랑했고, 그런 여자들에 얹혀 되는대로 삶을 살았다. 청춘을 발산하기에 충분한 젊은 나이에 그는 삶의 끝을 기다리는 인간 실격자였다.

 

  그런 자신을 이기지 못해 자살 시도를 하다 본가와 의절을 당하고, 요조는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많은 여자들과의 적절치 못한 관계, 마약, 알콜 중독만으로도 엉망진창인데, 그를 더 갉아먹은 친구라고 할 수 없는 인간의 괴롭힘까지 더해진다. 그에게 처해진, 혹은 그가 만들어간 삶의 배경은 그야말로 우울하고, 암울하며, 음산하기까지 하다. 자신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며, 인간 실격이라며 죽음을 기다리는 그가 이제 27살이 되었다는 사실은 독자를 안타깝고 허무하게 만들고 만다.

 

  책의 시작과 끝은 '나'라는 사람의 서문과 후기로 끝이 난다. 요조의 사진을 보고, 그를 마지막즈음 지켜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요조가 써온 수기도 끝이 난다. 다사이 오사무는 자신의 얘기를 허구화 시켜 써낸 작가지만, 작품에 씌인 것을 실재 작가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나 요조와 다사이 오사무의 단편적인 삶을 비교해 보더라도 그 둘은 닮아도 너무 닮아 있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사랑 받고 싶은 마음, 많은 사람에게 배반 당해 심연으로 떨어진 요조. 그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책을 읽는 내내 우울하게 만드는 분위기에 온갖 비방을 하고, 요조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며칠이 지난 뒤 곰곰히 생각해보니 측은함이 일었다. 그를 감싸주지 못한 마음, 나와 조금 다르다고 몰아세웠던 모습들이 부끄러웠지만 역시나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겐 벅찼다.

 

  이 책에는 <인간 실격> 말고도 직소直訴 라는 작품이 실려 있었다. 요설체饒說體 -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로 씌여진 예수를 향한 유다의 사랑과 분노, 질투, 광기가 서려 있었다. 유다의 고백을 듣고 있자면, 그의 시선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는 착각이 일었다. 그 착각으로 인해 성경에 씌여진 대목보다 유다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고백은 점차 광기로 이어졌고, 편협함으로 몰아가는 가운데 온전히 그의 뜻에 동조할 수 없었다. 성경에 그를 배신자로 지목한 기록은 없다지만, 유다 스스로는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아는 듯 했다. 그런 고백이 유쾌할 리가 없었다. 유다의 시선으로 그려진 당시의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뿐, 한 인간의 처절함만이 지배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두 작품을 읽으면서, 많은 감정에 휩싸였다. 대부분 밝지 않은 감정이었고, 책을 읽고 나서 기분이 나빠져 후회스러웠다. 밝고 희망적인 것만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감정의 자극을 잘 받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위험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볼수록,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없다고 부정할 수 없음을 깨달아 갔다. 마치 내 속을 다 끄집어 내놓은 것 같은 불쾌함이 엄습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제대로 된 인간인지, 무엇이 인간 이하의 모습인지를 따지기 전에 자신과 솔직한 대면을 해야 한다. 더 이상의 속임수를 쓰지 못하도록. 요조든 나든 어느 누군가 됐든, 누군가가 실격 당하는 모습을 이제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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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책)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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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때부터 남자 친구들에게 줄곧 들어온 말은, 이성 친구가 아니라 동성 친구 같다는 말이었다.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니다 보니, 남자 애들과 심하게 장난을 치며 놀아 그런 것 같다. 20대 들어서면서 이래저래 알게된 친구들에게도 항상 듣는 소리가 '넌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편하다' 는 말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이러다가 정말 연애도 못하고 이성 친구들만 사귀다 마는게 아닐까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런 녀석들 중 한명과 러브라인이 그려져서 첫 연애를 해보기도 했지만, 이제서야 친구와 이성을 대하는 감정은 다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 제목 때문에 잠시 '이성 친구'들을 떠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상뻬의 글과 그림은 위트와 유머가 넘치기에 제목만 보고 대충 그런 분위기를 상상했다. 남녀 사이의 뻔한 사랑과 우정에 대한 것이라고 지레짐작 하면서 말이다. 43개의 단편이 실려있는 줄 모르고 책을 펼쳤다가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한 장에 걸쳐 짧은 글과 그림은 다음 내용과 이어지지 않아 그 안에 남겨진 단상들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몇 개의 단편을 읽고 또 읽고, 그림을 여러번 보았지만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런 단편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니, 편하게 보자하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다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 책을 주로 읽었기에, 짧은 나뉨이 익숙하지 않았을 뿐 상뻬 특유의 독특함은 여전했다.

 

  책 제목처럼, 이 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이성과의 사랑, 우정, 감정의 변화등에 대한 단편적인 잔상들이다. 거기에 상뻬의 그림은 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기 보다, 글에 대한 상황을 배경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딱 드러맞는 상황이라는 느낌도 들었고, 보여지는 그림에 대해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이성간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 봄직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지만, 좀 더 개방적이고 솔직한 글들이 많았다. 프랑스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다르기에 느껴지는 이질감도 있지만, 마음 속 깊이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드러내기 힘든 속 마음들이 때로는 우습게, 때로는 공감할 수 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꼭 이성간이 아니더라도 글과 그림속에 나오는 상황들을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수탉이 하는 얘기, 어린 꼬마 커플의 이야기, 시련당한 남자의 이야기들은 심연 속에 감춰진 자신을 건드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한 번 보고 마는 책이 아니라, 자꾸 펼쳐보며 잔상을 끌어내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나의 기분에 맞춰 부담없이 펼쳐 볼 수 있는 책. 그런 책이 흔치 않기에 더 자주 들여다 봤는지도 모르겠다. 즐거울 때보다 조금은 센티멘털할 때, 깊은 상념에 빠질 때 들여다 본 적이 많았다.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책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독자에게 남겨진 것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툭 하고 던져주는 상뻬의 글과 그림에 당황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들여다 보면서 읽는다면 상뻬의 메세지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메세지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아닐까. 남녀간의 여러 상황 속에서 나 혼자만 겪는 아픔이나 과정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니 작아지지 말라는 그런 뜻이 가장 크게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상뻬의 글과 그림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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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생리대와 함께 하는 건강한 생리
조연경.김경숙 지음 / 위즈온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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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생리통에 대한 에피소드는 책 한 권을 쓰고도 남을 것이다. 중 3때부터 시작된 생리통이 나아지기는 커녕, 갈수록 더 극심해 지고 있어, 생리가 끝나야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한 달 살이 인생이라고 푸념아닌 푸념을 하고 있다.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생리통이 극심해서 출근도 못하고 오후에야 겨우 부스스 일어나서 얼굴만 내비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허리와 아랫배 통증은 기본이고, 오한과 한기에 가장 참기 힘든 구토가 온다. 생리할 때는 무조건 굶는대도 위액까지 빼내는 구토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어 생리통이 오면 늘 기진맥진이다. 

 

  한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의 저자와의 만남을 하길래 매일매일 들어가서 상담을 했다. 평소에 극심한 생리통을 앓고 있는 터라 하나의 단서라도 찾고 싶었다. 저자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무척 안타까워 했다. 아름다운 날이 되어야 할 생리일이 고통의 나날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자궁 내막증이 염려된다며 산부인과 진료를 해보라고 했다. 겁이 덜컥 나서 바로 산부인과를 찾았더니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했다. 생리통이 심해 병원을 찾아도 늘 듣는 대답이였기에 생리통에 대한 관심을 거둬 버렸다. 그랬더니 사무실로 이 책이 배송되어 왔다.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몇명을 뽑아서 책을 보내 주는데, 나에게 이 책과 면 생리대 한 개가 온 것이다. 

 

  이 책은 작년 늦 봄에 왔는데, 책을 열어볼 기회가 없었다. 다른 책들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생리가 좀 늦어 걱정스런 마음에 책을 펼쳐 들게 되었다.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다가 다시 꺼내서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면 생리대를 써야 겠다는 생각이 강력히 들었다. 책에서는 만들어 쓰는 방법을 알려 주었지만, 게을러서 직접 만들지는 못하겠고 우선 온라인에서 구매를 했다. 면 생리대를 쓰게 되면 다음 생리부터 건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 책은 <생리와 여성 건강>,<여자를 살리는 자연 생리대>,<자연 생리대 만들기>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생리와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나와있다. 생리를 왜 하는지, 생리통은 왜 생기는지, 생리만으로 자신의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법 등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들이 쉽게 기재되어 있다. 나에겐 생리기간 전, 후가 고통의 나날이기에 여러가지 도움이 많이 되었다. 2장에서는 자연 생리대의 필요성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기가 실려 있었다. 자연 생리대의 필요성 이전에 생리대의 역사와 일회용 생리대의 매력, 문제점들을 말해주고 있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도 자연 생리대를 써야 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빨아서 써야 한다는 귀찮음과 일회용 생리대의 편리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연 생리대를 통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사람들의 경험은 내 마음을 변화시켰다.

 

  요즘에 나오는 생리대는 갈수록 효과는 좋아지고, 여성들이 활동하기 편하게 만들어진다. 이 책을 통해서 탐폰 외에 여러가지 생리도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환경호르몬의 영향을 알고 나서는 써봐야 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자연 생리대를 쓰면, 생리통도 줄어들기도 하고, 불쾌한 냄새와 가려움증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흔들렸다. 일회용 생리대를 쓰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보는 일들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직접 만들 수도 있으므로 자시의 사이즈를 맞출 수 있고, 일회용이 아니기에 경제적인 면에서도 생각해 볼 일이었다. 그런 장점에 환경까지 지킬 수 있다면 일석 삼조를 훨씬 넘는 효과가 아닌가.

 

  아직은 자연 생리대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사용해본 사람들은 주변에 자연 생리대의 장점을 많이 알리고 있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의 경험이 있어서 과감하게 자연 생리대를 구입하게 되었지만, 아직 사용해 보지 않아서 내 경험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회용 생리대보다 훨씬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은 충분히 알았다. 첫 생리를 기다리고 있는 조카, 생리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친구들, 주변에 많은 여성들에게 이 책을 읽히게 하고 자연 생리대를 사용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최소한 귀찮은 날이 되지 않고, 자신의 건강을 체크해보며 여자임을 소중하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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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기록 - 시 소묘 사진 1956-1996
존 버거 지음, 장경렬 옮김 / 열화당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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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버거의 직업으로 거론되는 명칭은 너무 많다.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외에도 너무 많은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닌다. 한 인간이 이렇게 다방면에 능할 수 있음을 존 버거를 볼 때마다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가 문학적인 면모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소설과 산문이었다. 산문에서 종종 그의 시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시집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의 주된 활동 영역에 시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그래서 존 버거를 '시인'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옮긴이는 말하고 있다. 번역을 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옮긴이는 존 버거를 '시인'의 영역으로 들여 놓지만, 그의 시가 낯선 나에게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아픔의 기록>에 주로 실린 것은 시詩지만, 간간히 소묘와 사진이 보이기도 한다. 중간중간 감칠맛 나게 묶여있는 소묘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소묘와 사진을 구경하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존 버거의 시였다.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문학 장르가 '시'라고 생각하는 나는, 시를 좋아하지만 잘 알지 못한다. 한 권의 시집을 읽을 때 시 한편만 건져도 읽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시인'이라는 표현의 적절 여부가 확실치 않은 존 버거의 시가 내게 어려웠음은 당연했다. 개인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시보다 읊었을 때 읽기 좋은, 운문이 맞고 정갈한 시를 좋아한다. 많은 시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생면부지의 시인에게서 나온 괜찮을 시를 만났을 때 문학의 즐거움을 느낀다. 몇 번의 그런 경험으로 시집을 가끔 구입하지만, 존 버거와 비슷한 시를 만났을 때는 잠시 갖었던 용기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존 버거의 산문을 읽어 보았다면, 그의 깊이 있는 성찰에 감탄 혹은 난해함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그의 문체를 조금이나마 안다고 자부하던 나는, 산문에서 보았던 깊이를 시에서도 마주하자 당황하고 말았다. 이 책에 실린 첫 시 <길 안내>는 내가 발견한 존 버거의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찜해놓을 정도로 명확한 안내를 해주었지만 말이다. 한 편의 시만 건져도 좋다는 평소의 다짐이 있었기에, 나머지 시가 어려워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언젠간 기회가 되면 다시 읽고, 새로운 느낌을 갖을 수 있을거란 느긋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길 안내>는 첫 연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열두 살 때부터 시를 썼다. 무엇이든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을 때면. 시는 무력감에서 탄생한다. 그러므로 시의 힘은 무력감에서 나온다.]
 
  지극히 단순한 고백에서부 시작해 시의 탄생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고백에 마음이 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시를 썼던 무력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3연에 보면 '시는 사실事實앞에서 무력하다. (중략) 시는 결과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결정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 않는다' 라고 했다. 시의 무력감과 시의 재료가 될 수 없는 '사실' 앞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고, '시는 우리 앞에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던 그의 시는 시작에 불과했다.
 
  옮긴이는 존 버거의 시를 번역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고 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절절해 지기도 하고,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역시나 자신이 옮긴 시에 대해 많이 자신 없어 했다. 그가 한 줄의 시를 옮길 때의 어려움에 대해서 피력하는 부분을 이해 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나에게도 그런 어려움으로 존 버거의 시가 다가왔던게 사실이다. 그의 첫 시는 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지만, 중간 중간 나의 역량에 맞는 시 몇 편을 발견하는 것 외에는 모호함과 낯선 세계의 배경이 된 시들을 마음껏 흡수하지 못했다. 일일이 시의 배경이 된 시대를 들춰서 공부 한 후 시를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옮긴이는 공부를 하면서 시를 옮겼다.), 주석을 읽어 보아도 약간의 수긍이 갔을 뿐, 온전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시를 읽는데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 읽기 좋겠지만, 마음으로 읽을 때 시가 가장 와 닿으므로 낯선 세계로 여행하는 듯한 느낌 밖에 없었다.
 
  존 버거의 시들은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재 또한 다양했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세월을 뛰어넘는 시들도 많았다. 일상을 노래하고,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며,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그의 시에서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은 감수성을 느끼기도 했다.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그는 썼고(시를), 우리는 읽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시를 읽는 시간 내내 공감하지 못하고 띄엄띄엄 존 버거의 마음을 읽었지만, 그와 함께 했던 모든 것이 좋았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낯섬, 이질감, 난해함, 색다른 공감 등 많은 감정이 지배했던 존 버거의 새로운(역시나 '시인'이라는 표현을 나 또한 어찌해야 할지 모르므로) 시와 함께 한 시간은 묘한 공감각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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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클래식 05: 코기빌의 크리스마스 - 코기빌 시리즈 3 타샤 튜더 클래식 5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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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성탄절을 잠시 떠올려 보면, 특별한 기억이 없다. 이브에는 교회에서 행사로 바빴고, 성탄절은 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잔 기억 밖에 없다. 몇 년째 교회에서 성탄절을 보내다 보니 이렇게 짧은 단상 밖에 남지 않는다. 이브 행사 준비도 늘 닥쳐야 하다보니 맘적 여유가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이러다 성탄절의 의미를 잃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나의 성탄절을 일 년의 가장 큰 축제로 환기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타샤 할머니다. 코기빌 시리즈를 읽기 전에 <타샤의 크리스마스>를 읽었다. 성탄절이 두달 정도 남아 있던 시기에 읽어서인지, 차분하게 읽을 수 있었고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어 개인적으로 참 좋았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또다시 똑같은 성탄절을 보내 버리고 말았는데, 코기빌 시리즈를 통해 다시 한 번 성탄절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코기빌의 크리스마스>는 코기빌 시리즈 1,2 권을 읽고 읽으면 더 재미나겠지만, <타샤의 크리스마스>를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코기빌 축제>,<코기빌 납치 대소동>과 이어지는 시리즈지만, 이 책들처럼 어떠한 사건(크리스마스 자체가 큰 사건이긴 하지만)을 중심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코기빌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잔잔하게 담아 냈다. 책 속의 크리스마스 행사의 대부분은 타샤 할머니가 크리스마스 때 직접 하는 행사였다. <타샤의 크리스마스>에는 타샤 할머니가 얼마나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즐겁고도 경건한 크리스마스가 어떤 것인지 다양하게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타샤 할머니의 어릴적 추억과 집에서 이뤄지는 크리스마스 파티,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을 모델로 씌여진 책이다. 전반적인 배경을 알고 읽어서인지, 다른 코기빌 시리즈에 비해 잔잔했지만 마음 속에 남겨지는 것은 더 진했다.

 

  코기빌에서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는 역시 크리스마스다. 흰 눈이 쌓이는 겨울이 오면 코기빌 마을 주민들은 들뜨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손길로 바쁘지만 즐거운 시기임은 분명하다. 각자 소신껏 크리스마스를 위해서 장식을 하고, 먹을 것을 준비하는 가운데 브라운 가족은 12월 6일 성 니콜라스 탄생일을 맞이하여 식탁 위에 화환을 단다. 크리스마스 달력도 붙이고, 차 마시는 시간에는 10월에 미리 만들어 둔 던디 케이크를 먹는다. 모두들 크리스마스를 설레임과 기쁨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코기빌에는 세 가족이 이사를 왔다. 첫 번째로 이사온 치카호미니씨네 가족은 코기빌에 이사를 와서 멋진 가게를 열었다. 코기빌 마을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팔았고 없는 게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염소 썰매를 몰며 가게 광고도 하고, 눈이 쌓여서 가게까기 못 오는 손님들을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두 번째 가족은 스타우퍼 가족으로 약국을 열었다. 스타우퍼 가족의 두 아들은 약사였고, 세 딸들은 허브 풀로 병을 잘 고쳤다. 약국에서는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도 팔았고 인기가 좋았다. 어린 고양이와 코기들, 토끼들은 스타우퍼 약국에서 치료를 받았다. 세 번째로 카디건 코기 가족이 이사를 왔다. 이 가족은 친구 사귀기를 좋아해서 손님들이 오면 정성을 다해 대접했다. 여행을 많이 다닌 카디건 가족은 재미난 이야기로 주민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마을은 스키를 타는 아이들, 장난감을 만드는 머트 보거트, 맛 좋은 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의 분주함으로 더 들썩인다. 마을의 호수가 얼면 스케이트 시합도 벌이고 모닥불 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러다 12월 23일이 되면 트리로 쓸 나무를 베러 숲에 가야 하기 때문에,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한다.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트리로 쓸 나무를 싣고 집으로 돌아오면 정말 크리스마스가 코 앞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드디어 12월 25일 밤이 되었고, 브라운 씨 집에는 친척들과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응접실에는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우뚝 서 있고 모두들 놀람과 기쁨으로 트리 주변을 빙빙 돌며 마음 속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친다.

 

  코기빌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큰 행사지만 비교적 잔잔하게 그려져 있다. 그림도 글도 차분해서 크리스마스 의의를 잃지 않으려는 타샤 할머니의 숨은 의도가 보이기도 한다. 코비길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있으면,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겨울이 오면서부터 준비하고 들뜬 주민들을 지켜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크리스마스를 위해서 즐기고 준비하는 손길이 더 행복해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을 끝으로 타샤 할머니의 작품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은 타샤 할머니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떠들썩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차분한 모습이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이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타샤 할머니가 떠오를 것 같다. 실재로 존재했던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와 코기빌의 크리스마스를 모두 떠올리며 잠시나마 타샤 할머니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지금쯤 타샤 할머니의 정원에는 함박눈이 가득 쌓여 순백의 아름다움을 발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독 타샤 할머니가 그리워지는 겨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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