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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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실격>을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하는데, 데카당스라는 표현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퇴폐주의. 다자이 오사무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퇴폐를 최대한 끌어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요조'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인간 실격>은 그래서 더 피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책을 읽어나갈 수록 표정은 굳어지고, 인간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요조'를 이해할 수 없고, 싫어하면서도 누군가와 닮아 있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인간의 병폐를 깊숙이 숨기고 살아간다면, '요조'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살았다. 그것이 솔직함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보통 사람과 다르게 흘러가는 요조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요조는 병약하고, 자신을 잘 표현할 줄 몰랐다. 대가족 속에 자라다보면 부모에게 사랑받으려 자신을 더 드러내기 마련인데, 요조는 그 반대였다.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를 말도 하지 못했고, 가족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집은 요조에게 편안한 공간이라기 보다 갑갑하고 자유를 침해하는 공간이었다. 그런 표현을 절대 하지 않았고, 익살로 자신을 포장해 갔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익살로 많은 사람들을 웃겼고, 그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익살로도 다른 사람들과 동화되지 못했다. 학교를 빌미로 타지로 나가게 된 요조는 여자와 마약, 술에 의지하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많은 여자들이 자신을 사랑했고, 그런 여자들에 얹혀 되는대로 삶을 살았다. 청춘을 발산하기에 충분한 젊은 나이에 그는 삶의 끝을 기다리는 인간 실격자였다.

 

  그런 자신을 이기지 못해 자살 시도를 하다 본가와 의절을 당하고, 요조는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많은 여자들과의 적절치 못한 관계, 마약, 알콜 중독만으로도 엉망진창인데, 그를 더 갉아먹은 친구라고 할 수 없는 인간의 괴롭힘까지 더해진다. 그에게 처해진, 혹은 그가 만들어간 삶의 배경은 그야말로 우울하고, 암울하며, 음산하기까지 하다. 자신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며, 인간 실격이라며 죽음을 기다리는 그가 이제 27살이 되었다는 사실은 독자를 안타깝고 허무하게 만들고 만다.

 

  책의 시작과 끝은 '나'라는 사람의 서문과 후기로 끝이 난다. 요조의 사진을 보고, 그를 마지막즈음 지켜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요조가 써온 수기도 끝이 난다. 다사이 오사무는 자신의 얘기를 허구화 시켜 써낸 작가지만, 작품에 씌인 것을 실재 작가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나 요조와 다사이 오사무의 단편적인 삶을 비교해 보더라도 그 둘은 닮아도 너무 닮아 있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사랑 받고 싶은 마음, 많은 사람에게 배반 당해 심연으로 떨어진 요조. 그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책을 읽는 내내 우울하게 만드는 분위기에 온갖 비방을 하고, 요조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며칠이 지난 뒤 곰곰히 생각해보니 측은함이 일었다. 그를 감싸주지 못한 마음, 나와 조금 다르다고 몰아세웠던 모습들이 부끄러웠지만 역시나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겐 벅찼다.

 

  이 책에는 <인간 실격> 말고도 직소直訴 라는 작품이 실려 있었다. 요설체饒說體 -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로 씌여진 예수를 향한 유다의 사랑과 분노, 질투, 광기가 서려 있었다. 유다의 고백을 듣고 있자면, 그의 시선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는 착각이 일었다. 그 착각으로 인해 성경에 씌여진 대목보다 유다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고백은 점차 광기로 이어졌고, 편협함으로 몰아가는 가운데 온전히 그의 뜻에 동조할 수 없었다. 성경에 그를 배신자로 지목한 기록은 없다지만, 유다 스스로는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아는 듯 했다. 그런 고백이 유쾌할 리가 없었다. 유다의 시선으로 그려진 당시의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뿐, 한 인간의 처절함만이 지배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두 작품을 읽으면서, 많은 감정에 휩싸였다. 대부분 밝지 않은 감정이었고, 책을 읽고 나서 기분이 나빠져 후회스러웠다. 밝고 희망적인 것만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감정의 자극을 잘 받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위험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볼수록,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없다고 부정할 수 없음을 깨달아 갔다. 마치 내 속을 다 끄집어 내놓은 것 같은 불쾌함이 엄습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제대로 된 인간인지, 무엇이 인간 이하의 모습인지를 따지기 전에 자신과 솔직한 대면을 해야 한다. 더 이상의 속임수를 쓰지 못하도록. 요조든 나든 어느 누군가 됐든, 누군가가 실격 당하는 모습을 이제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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