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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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시 한 번 내 책장의 위력에 놀라고 말았다. 읽지 않고 쌓아둔 책이 500권이나 되니 따지고 보면 결코 긍정적인 위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책 속에 언급된 책을 내 책장에서 바로 뽑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오랜만에 맛보는 뿌듯함을 느꼈다. 다른 책에서 언급된 책을 대부분 메모하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하는데, 쌓아둔 책이 워낙 많다보니 그런 수고스러움이 가볍게 떨쳐졌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깊은 밤에 책장 여기저기서 책을 뽑아 내느라 분주한 손길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던 시간이었다. <옛 소설에 빠지다>를 읽으면서 내책장에서 뽑아낸 책은 <옥루몽(5권)>,<열하일기(3권)>,<남한산성> 이었다. 언급된 책들이 그 외에도 무척 많았지만, 내 책장에 잠자고 있는 이 책들만 읽어도 충분할 것 같았다.

 

  이런 연결됨은 참 오랜만이었다. <옛 소설에 빠지다>에서 연결된 독서를 <넓게 읽기>라 명명하고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이미 그런 독서의 매력을 알기에 오랜만에 조우한 시간이 기뻤다. 이 책을 덮고 내 책장에서 골라낸 책들을 한가득 쌓아놓고 보니, 책을 덮음으로 단절되어 버리는 느낌도 들지 않았고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책들에게 관심을 쏟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그 중에 먼저 집어든 책은 <옥루몽>이었다. 약 3년전에 1권을 읽고 이야기가 끊긴 채 방치하고 말았는데, <옛 소설에 빠지다>에서 간략한 옥루몽의 스토리를 읽고나니 2권을 서슴없이 펼칠 수 있었다. '열하일기'와 '남한산성'까지 읽고나면 <옛 소설에 빠지다>의 즐거움을 한껏 더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왔던 고전이 내 책장에 꽂혀 있어서 잠시 흥분했지만, 그런 흥분은 <옛 소설에 빠지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고전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국내 고전에 관해서는 등한시하며 말로만 떠들었던게 사실이었다. 한 고전소설 연구자의 안타까움에서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여기에 실린 해설은 '고교 독서평설'에 연재됐던 글이라고 한다.)되었기에 나 같은 독자들에겐 가뭄의 단비처럼 해갈이가 되어 주었다. 이 책에는 몇개의 장르로 분류를 해서 13편의 고전소설을 싣고 있는데, 어떻게 한 권의 분량으로 나올 수 있을까 의아했다. 원문이 다 들어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맛보기에 좀더 살을 붙인 요약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다. 원문 전체를 읽다보면 안그래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고전에 더 멀어질 것 같았다. 이 책에는 원문을 보며 즐길 수 있는 여지는 남겨놓은 스토리가 수록되어 있었고 <천천히 읽기>라는 덧붙임을 통해 소설에 대한 해석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깊이 보기>를 통해 발췌해 놓은 원문도 살펴보고 간략한 느낌을 만날 수 있다.

 

  이렇듯 한 편의 소설에 다양한 맛보기가 곁들어 있어서인지 고전소설을 읽고 난 뒤의 맛은 달콤했다. 고전소설의 특징상 읽기에는 무리가 없을지 몰라도 읽고난 후의 뒷감당은 난처한게 사실이다. 익숙치 않은 문학이기에 독자 혼자만의 해석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란 무리다. 각자의 해석을 매력으로 하는 것이 문학이라곤 하지만 고전소설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도움말이기에 뒷맛이 씁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넘겨 버렸더 것, 약간의 미심쩍음이 있었던 장면과 스토리를 하나하나 짚어주며 되새김질 할 수 있게 도와주어서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고전소설에도 여러 장르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비슷해 보이는 스토리 가운데서도 각자의 특징을 살려 재미있게 읽히는 내용들이 흥미로웠다. 

 

  이 책에는 <사랑, 사랑이로다>,<전쟁, 그 참상에 대하여>,<양반 남성들의 판타지, 그 이면>,<비수처럼 꽃히는 통찰과 깨달음>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읽지는 않았지만, 제목은 들어봄직한 소설이 많을거라 생각했던 나는 대부분 생소한 작품에 기가 죽고 말았다. 그러나 오히려 생소했기에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고, 어떠한 방해(수업용으로 외운 내용이라든지)도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맥락과 분위기 설명할 수 밖에 없는 능력밖에 안되지만 놀라움과 감탄, 스토리의 한계가 버무러진 고전소설은 의외의 재미를 안겨 주었다는 말을 번복하게 된다. 글이 씌여진 시대를 감안하고 읽었을 때의 놀라움, 파격적인 설정, 스토리의 탄탄함은 그야말로 신선한 묘미였다. 그에 반해 시대적 배경을 뛰어넘지 못하는 스토리와 비슷비슷한 결말은 큰 반향을 일으켜 주기엔 무리여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재미있게 읽긴 읽었지만 그 느낌을 남기는 것은 쉽지 않다. 권선징악의 결말을 잘 보여 주었다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구구절절 스토리를 읊어대는것 또한 석연치 않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요약 소설과 다양한 해석과 도움말을 만나게 되면, 고전소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거라 생각한다.

 

  한 때 외국의 고전들을 읽으면서 시간이 지나도 빛을 발하는 문학작품들이 존재하는 것에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럴때마다 왜 우리에겐 그런 고전이 없는지, 있다고 해도 고리타분하고 지루한지 늘 그게 불평이었다.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어야 하겠지만, 거의 외국어에 가까운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고전소설에 대한 대중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동감하는 바이다. 오늘날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씌여지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읽힘이 발전하다 보면 원작의 참 맛을 찾아 읽는 손길도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그런 행위들이 모이고 모여 우리 고전을 즐겨 읽는 독자들이 늘어날 때에 사랑하는 마음도 저절로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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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그래픽 노블)>를 리뷰해주세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공보경 옮김, 케빈 코넬 그림, 눈지오 드필리피스.크리스티나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독특한 경험이었다. 한 단편을 세 번에 걸쳐서 읽은 일은. 영화화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출판사에서 앞다투어 피츠제럴드 단편을 출간했다. 국내 독자들도 갑자기 쏟아진 여러 출판사의 번역물 중에서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급격한 부흥을 일으켰다. 내가 먼저 접하게 된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피츠제럴드의 다른 단편도 실려 있는 두툼한 책이었다. 처음엔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가 단편인지 모르고 읽었다가 잠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단행본으로 나온 이 책에는 그래픽 노블과 단편 소설이 따로 실려 있어 똑같은 내용을 세 번 읽게 된 것이다.

 

  똑같은 내용을 세 번 읽었다고는 하지만, 느낌이 조금씩 달랐다. 먼저 만난 피츠제럴드 단편집에서의 '벤자민 버튼'과 이 책의 '벤자민 버튼'은 번역이 조금 달랐고, 그래픽 노블은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을 질감을 통해 만난 경험이었다. 이 책에는 그래픽 노블이 먼저였고, 다음에 단편이 실려 있어서 상상력의 제약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먼저 단편을 읽고 그래픽 노블을 만났기에 세세한 비교를 해가는 재미가 있었다. 세 번 모두 제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채 다가왔지만,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변함이 없었다. 70살의 나이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거꾸로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의 부모님은 재정적,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던 터라 벤자민 버튼의 탄생이 기쁠 리 없었다. 병원에서 한바탕 난리를 일으키고,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며 이슈가 될 정도로 시끄러운 탄생이었다. 신생아들이 가득한 곳에 노인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의 부모도 부모지만 독자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태어남을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벤자민 버튼 자신이며, 가족들이 앞으로 펼쳐질 거꾸로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벤자민의 아버지 로저 버튼은 노인의 몰골을 하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아이로 받아들였다. 인생이 거꾸로 펼쳐진다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이런저런 투닥거림이 있었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흘러갔다. 벤자민이 18살이 된 해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을 18살로 보지 않아 처음으로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경험한다. 그 이후로 벤자민은 보이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기로 다짐한다. 사교계에서 만난 몽크리프 양 앞에서도 자신의 실제 나이를 말하지 않고, 겉으로 보여지는 엄청난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한다. 그러나 벤자민은 자신이 점점 젊어진다는 것을 눈치챈다. 부인이 나이들어감에 따라 매력을 잃어 갔지만, 자신은 점점 젊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실제 나이와 신체 나이 가운데 펼쳐진 삶은 확연하게 드러났고 그에 따라 주관이 달라졌다. 나이에 따라 관심사가 달라지고, 과거의 모습을 생각하다(거꾸로 거슬러 올라온 이력) 퇴짜를 맞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심지어 자신의 아들조차도) 벤자민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벤자민 자신도 거꾸로 펼쳐지는 인생 앞에서 속수 무책이듯,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당연했음은 자명했다.

 

  벤자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삶에 의외로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든지간에 비교적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잘 따랐다. 주변의 충고도 적절히 들어가면서(단, 젊음을 멈추라는 충고만 빼고) 신체나이에 어울리는 삶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는 실제 나이에 따라 행동했다가 부딪힌 뼈 아픈 경험이 있었기에 현실에 충실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벤자민은 거꾸로 된 삶을 살았고, 자신의 손자와 유치원을 같이 다니다 갓난아이로 돌아가 죽음을 맞는다. '우리네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 맨 처음에 오고 최악의 순간은 맨 마지막에 온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 영감을 받아 이 단편을 구상했다는 피츠제럴드.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이 뒤집힌 한 사내의 삶을 지켜보긴 했지만, 과연 그러한 순간들이 적절한지에 대한 여부는 불확실하다. 오히려 남들과 달랐기에 외톨이 삶을 살아간 벤자민 버튼이 가여울 뿐이다.

 

  벤자민 버튼의 인생을 이해한 이가 있을까. 자신 조차도 자신이 거꾸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주어진 신체나이에 맞춰 살기 급급했는데. 그의 부모, 자식, 부인도 이해해 주지 않은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의 삶은 독특했지만 서글플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신체나이에 맞게 사고도 따라갔다는 사실일까. 70세의 노인으로 태어났지만 그에 맞는 사고력이 있었고, 나이가 점점 어려질수록 정신연령도 맞춰졌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쇠퇴해지는 것처럼 벤자민 버튼도 나이가 줄어들수록 과거의 파란만장한 삶의 기억이 지워졌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한 그가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갓난 아이의 죽음이 잠시 서글플 수도 있겠으나, 그가 70세의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났던 것을 떠올린다면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태어남과 죽음은 직전의 모습이 아니라 삶의 꾸려짐으로 판가름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독특한 소설이었다.

 

  피츠제럴드는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부터 영화화 하려 했었다고 한다. 주목을 받지 못해 그의 생전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후 86년이 지난 2008년에 영화화 되고 여러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는 모습을 과연 상상할 수 있었을까. 미국 현대 문학 작가로 재발굴 되고, 그의 작품이 새로운 관심을 받는 것은 좋을 일이다. 그러나 특정한 작품이 영화화 되었다고 너도 나도 출간이 되는 것보다 지속적인 관심으로 그의 많은 작품들이 독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독특한 소설이다. 삶을 재조명 해 볼 여지를 품고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독특한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그만 방향을 돌려서 남들처럼 늙어가야죠. 장난이 지나치잖아요. 더는 재미도 없어요. 처신을 똑바로 하시란 말입니다!"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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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겉 알베르 카뮈 전집 6
알베르 까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을 탐독하다보면, 꼭 전작해보고 싶은 작가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작을 실현할 수 있는 작가와 아직 내공이 부족해 이상으로 남아있는 작가들이 있다. 알베르 카뮈는 후자에 속했다. 고등학교 때 문학을 읽는답시고 <이방인>과 <전락>을 읽었지만,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전작하고 싶은 작가의 대열에 올려놓고도 읽을 엄두를 못냈는데, 그의 책을 사들인 것은 다른 책에서 언급된 이유도 있었고, 절판되려는 낌새가 보여서였다. 그렇게 한 권씩 사다보니 19권의 전집 중 9권을 모았지만, 섣불리 읽을 수 있는 책은 없었다. 책을 펼쳤다 덮었다를 반복하다 겨우 내 손에 쥐어진 작품은 <안과 겉>이었다.

 

  카뮈 전집 no.6을 달고 있지만, 비교적 초기 작이다. 카뮈의 나이 22살 때인 1935~1936년 사이에 씌여진 글로 아주 적은 부수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절판이 된 후에 재판을 거절했던 것은 '예술에 대하여 나도 모르게 품게 된 선입관 때문에' 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어떠한 선입관을 가졌기에 재판을 거절했는지 이 책을 읽고도 정확히 알지 못해 의아했던게 사실이다. 자신의 초기작에 대한 부끄러움 내지는 부족함에 대한 겸손이라고 생각할 뿐, 그의 작품을 전작하기로 마음 먹은 나는 마냥 감격할 뿐이었다. 작품의 제작은 오랜 고역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글을 써나가면서 점철되어지는 사고의 확장에 대한 거리감 때문에 <안과 겉>에 대한 출판은 더 미루졌는지도 모르겠다.

 

  6편의 산문은(서문 포함) 카뮈의 경험과 들음, 생각이 어우러진 글이었다. 얼핏 수필로 구별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카뮈의 세계를 따라가다보면 그의 깊숙한 사고의 언저리에 머무는 기분이 들곤 했다. 글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사건과 동떨어지기도 하는 성찰의 깊이 혹은 사고의 나열은 감성을 풍부하게 일깨워 주기도 했다. 내가 완성시키지 못했던 자잘한 생각의 스침을 굳건히 만들어 주기도 했고, 타인의 생각을 탐한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도 덧대어 주었다. 친구들과의 여행기나 다른이에게 들은 이야기 속에서도 카뮈의 감성은 늘 충만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흔적 속에서도 '글이란 이렇게 탄생되는 구나'를 연발하게 만드는 천부적인 재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다만 초기작이라서 좀더 다듬어지지 못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서투름에 대한 자괴심이었음을 깨달을 뿐 그의 글을 읽는 동안 무척 행복했다.

 

  카뮈의 책을 읽고 느낌을 남긴다는 것은 책을 집어 든 순간부터 무리라는 것을 감지했다. 나의 내공의 부족함을 알기에 카뮈의 책을 읽는 것 자체에 큰 의의를 두었던게 사실이다. 어떤 작가가 유명하고, 어떤 작품이 유명하냐를 따지기 보다 나와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 기본기에 충실해 나에게 맞는 작가와 작품을 탐독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지만, 카뮈 같은 작가는 읽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느낌을 남기는 것은 더 큰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드러내는 본질의 언저리만이라도 멤돌면 감사하련만. 단순한 읽기에 치중한 독서라 내 안에 멤도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카뮈의 전작을 읽어보기로 다짐하고 소소한 출발을 했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나에겐 벅참 그 자체였다.

 

  분명 두껍지 않은 책이었음에도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두께와 책 내용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그다지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카뮈의 작품보다 작품 해설이 더 어려웠다. 서문부터 긴장했지만, 오히려 작품 하나하나의 다가가면서부터 긴장감은 풀어졌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양의 작품해설은 기껏 카뮈에게 다가간 용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읽으면 되고, 작품해설에 큰 비중을 두지 않기에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읽어나가면 되지만, 그렇다고 안 읽고 넘어갈 수 없어 조금 힘들었다. 앞으로 18권의 책을 더 읽어나가야 하는 나로써는 카뮈와의 지속적인 만남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한 권씩 정독하면서 카뮈를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는 이 마음은 무얼까. 오랜 바람에 한 발짝씩 내미는 발걸음의 즐거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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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리뷰해주세요.
루머의 루머의 루머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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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척 소심한 편이다. 누군가 나한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쉽게 상처 받는다. 겉으로 티는 안내지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해결 될때까지 가슴이 벌떡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그런 폐를 끼쳤을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나, 행동에 상대방에게 피해가 갔다면 역시 고민에 빠져 오버하고 만다.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급기야 깊이 사과하면, 상대방이 당황할 정도로 미련한 구석이 있다. 냉철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감정을 담뿍 넣어 어리석게 군다. 그런데 둘 중 어느것이 더 치명적인 상처가 될까. 내가 받는 상처, 내가 주는 상처 중에서. 상황에 따라, 농도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상처는 상처일 뿐 절대 흔적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내가 보인 행동이 상대방에게 세상을 등질 이유가 되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죄책감이 범벅된 괴로운 날의 연속일까. 아니면 아무일 없던 듯 일상을 살아갈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며 살아가다, '너 때문에 난 자살을 하게 됐어'라고 말하는 테입이 도착한다면 과연 어떨까.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그제서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게 될지 모르겠다. 그것도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한 사람의 삶이 막을 내렸다면, 그 이후에 남겨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만으로도 치가 떨린다. 그러나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인물들은 상상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2주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같은 반 친구 해나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테잎을 받는다.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고간 리스트에 포함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해나를 짝사랑했던 클레이는 자신이 이 테입을 받는 순간부터 혼란과 충격에 빠지고 만다.

 

  이미 죽은 해나의 목소리가 테입을 통해 흘러나오니 클레이는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해나의 테입을 들어가면 갈수록 엄습하는 불안감을 지울 길이 없었다. 왜 자신이 이 테입을 받아야 했는지 궁금했지만, 해나가 리스트에 올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질때마다 충격에 휩싸였다. 이 테입을 들은 다른 아이로부터 자신에게 건너온 테입 7개. 그 안에는 해나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낱낱이 들어 있었다. 장난삼아 흘린 말들,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린 일,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정정하지 못한 사이에 한 아이는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열거되고, 사연이 나올때마다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힘들어야 했을 해나가 떠올라 클레이는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해나에게 무슨 짓을 해서 이 테입을 듣고 있는 것인지 몰랐지만, 해나가 그리웠고 미치도록 미안했다.

 

  해나는 테입과 함께 지도 한 장을 남겼다. 자신의 사물함에 꽂혀 있던 한 장의 지도는 아이들이 만들어낸 이상한 소문의 발원지이기도 했고, 외로움을 달래거나, 첫 키스를 했던 장소가 나와 있기도 했다. 그 곳을 일일이 찾아가며 해나의 테입을 듣고 있다보니, 이미 그 곳을 다녀간 리스트 속의 몇몇 인물들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다 해나가 또 다른 복사본을 남겼다는 인물(클레이의 친구인 토니)도 만나고, 서서히 해나가 당했던 고통의 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클레이가 이 테입을 듣고 있는 이유도 드러났고, 그 이유에 클레이는 몹시 괴로웠다. 조금만 손을 더 내밀었더라면 해나가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후회와 그리움이 뒤범벅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해나가 목숨을 끊게 된 고통을 들여다보며 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러나 테입을 다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허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았다. 해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 친구들의 장난과 거리낌없는 행동들이 있긴 했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미미한 것들이었다는데서 오는 충격이었다. 지나침, 무관심, 겉으로만 판단했던 일들이 해나에게 차곡차곡 쌓여 궁지로 몰고 갔고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나가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극단적인 방법까지 가지 않기를 기대하며,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알아봐주고 진실된 내면을 바라봐주길 바랐다. 하지만 번번히 그런 기회는 날아가버렸고, 결국 해나는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궁지로 몰고간 친구들에 대한 복수라기보다 무고한 한 사람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채 죽게 만든 억울함의 호소였다. 그러나 해나는 이 세상에 없고, 친구들은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모두 알고 있다. 그 친구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지 않은 채 또 다른 리스트의 친구에게 테입을 보내는 클레이의 모습으로 책은 마무리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남겨진 친구들의 내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해나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속에서 이미 남겨진 자의 고통까지 다 듣게 되었다. 해나의 고통이 가장 컸고, 안타까움이 나를 지배했지만 섬뜩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가까운 지인이나 타인을 대했던 행동 속에서 그런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을 수도 있다 생각하자 안절부절이었다. 멀리 갈것도 없이 루머로 힘들어하다 자살한 톱 탤런트 사건만 떠올려도 충분히 상처 입힐 수 있고, 충분히 상처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런 메세지를 담고 있어서인지 책을 읽는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너무도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한 소녀의 죽음앞에 쉽게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일상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사소하게 시작된 루머가 한 사람을 어떻게 몰고 갔는지 녹음된 테입을 통해 낱낱이 파헤친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요즘 누리꾼들의 댓글이 심심치 않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나의 행위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봤음 좋겠다. 누리꾼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인간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으므로 누구나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다들 날 해코지 할 뜻은 없었을 거야.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 자기가 저지른 일인데도. -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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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
아널드 베넷 지음, 이은순 옮김 / 범우사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 나의 일상에 조금씩 활기가 돋고있다. 남들이 느낄 정도는 아니고, 내 스스로 돌아봤을 때 그런 기분이 든다는 뜻이다.  혼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시간이 축적되어 감에 따라 그런 느낌은 짙어진다. 최근 나에게 그런 활력소가 되어 준 것은 다시 시작한 수능 공부다. 두 번이나 봤지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 터라 결과가 좋지 않았다. 제대로 도전해 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한번 더 용기를 냈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공부라 큰 자극이 없어서인지 번번히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지인의 충고에 따라 블로그에 하루 공부에 대한 후기를 남기면서부터 자신감이 생겼고, 많은 분들의 격려 가운데 힘을 얻고 있어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된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전의 생활을 돌아봤을 때 괜찮은 하루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책에 관심이 많아 온통 책에 짓눌린 나날을 보내다보니,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책을 좋아하지만, 리뷰를 쓰는 일이나 쌓여가는 책을 바라보는 일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물론 내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멈출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온통 책에만 쏠려 있는 시간들 속에 나를 돌아볼 여유가 줄어 들고 있었다. 즐거운 자세로 임하고 있으면서도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 그 느낌을 내버려둘 수 없어 시작한 공부였는데, 뜻 밖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작은 변화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은 <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란 책의 가치를 말하기 위함이다. 지인에게 이 책을 선물 받았을 때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이었고, 책에 치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시기였다. 그랬으니 더더욱 이 책이 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흔히 보아온 자계서나 처세서로 치부하고 들여다 보는 것 조차 귀찮았다. 심지어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의 예상을 뛰어넘어 주지 못하는 책 내용에 실망하고 있었다. 책을 사준 지인에게 그런 푸념을 해대자 '무척 철학적인 책이니 꼼꼼히 읽어 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샐쭉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대충 눈으로 읽어 나가고 있었는데, 현재의 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 많아 결국은 메모지를 덕지덕지 붙이며 읽고 말았다.

 

  이 책의 무엇이 나의 현재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일까. 앞에서 장황하게 늘어 놓았던 내 일상의 작은 변화였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독서생활의 염증을 새로운 목표로 전환을 시킨 일. 그 일이 주는 파급효과를 알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식상했다.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시도하지 못하고 미적거리던 부분을 유머스러우면서도 가볍게, 그러면서도 충분한 메세지를 전해 주고 있었다. 일상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읽었더라면 지나쳤을 책이다.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기에 자신이 경험한 후에야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많다. 나같이 평범한 인간에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런 이들을 위해 좀더 빠른 깨달음을 제시해 주는 책들이 널려 있음에도 깨닫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기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책을 만났으니 기분이 묘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각자의 일상은 너무나도 각양각생이라 똑같이 주어진 조건은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 책의 주요대상은 하루의 1/3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고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이었다. 퇴근 후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화두가 주류다. 그렇지만 꼭 회사원들에게 국한된 제안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읽으며 자신의 상황에 대입시켜 볼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5분의 효과, 무언가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 만들기, 여러가지의 방법 제시를 통해 일상에서 충분히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별한 내용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였기에 더 지나치기 쉬운 내용들이 내가 직접 겪고 있으니 더 감격적으로 다가왔다.

 

  요즘 내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생각은 어떠한 결과는 하루아침에 뚝딱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적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노력의 축적에 따라 나타난다는 것. 생각에만 그치다 겨우 행동으로 시도해 본 나에게 가벼우면서도 깊이 있는 말들은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거기다 문학을 즐기라는 충고는 '독서'의 시간을 줄인 나에게 보상을 해 주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좀더 도약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보라는 제안. 절대 불가능 한 것들이 아니고,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습관을 바꾸고 생각을 바꾼다는 사실이 쉽지는 않지만, 조그만 변화를 시도해 봄으로써 갖게 되는 뿌듯함은 분명 남다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그 느낌을 조금 알고 있기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처지와 스타일에 맞게 충고에 따라 시간 조율을 한다면 '살아있다'라는 기분이 들 것이다. 능력이 부족해 이 책이 주는 메세지를 충분히 전하지 못했지만, 현재의 자신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작은 시작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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