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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설에 빠지다 - 금오신화에서 호질까지 맛있게 읽기
조혜란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다시 한 번 내 책장의 위력에 놀라고 말았다. 읽지 않고 쌓아둔 책이 500권이나 되니 따지고 보면 결코 긍정적인 위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책 속에 언급된 책을 내 책장에서 바로 뽑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오랜만에 맛보는 뿌듯함을 느꼈다. 다른 책에서 언급된 책을 대부분 메모하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하는데, 쌓아둔 책이 워낙 많다보니 그런 수고스러움이 가볍게 떨쳐졌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깊은 밤에 책장 여기저기서 책을 뽑아 내느라 분주한 손길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던 시간이었다. <옛 소설에 빠지다>를 읽으면서 내책장에서 뽑아낸 책은 <옥루몽(5권)>,<열하일기(3권)>,<남한산성> 이었다. 언급된 책들이 그 외에도 무척 많았지만, 내 책장에 잠자고 있는 이 책들만 읽어도 충분할 것 같았다.
이런 연결됨은 참 오랜만이었다. <옛 소설에 빠지다>에서 연결된 독서를 <넓게 읽기>라 명명하고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이미 그런 독서의 매력을 알기에 오랜만에 조우한 시간이 기뻤다. 이 책을 덮고 내 책장에서 골라낸 책들을 한가득 쌓아놓고 보니, 책을 덮음으로 단절되어 버리는 느낌도 들지 않았고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책들에게 관심을 쏟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그 중에 먼저 집어든 책은 <옥루몽>이었다. 약 3년전에 1권을 읽고 이야기가 끊긴 채 방치하고 말았는데, <옛 소설에 빠지다>에서 간략한 옥루몽의 스토리를 읽고나니 2권을 서슴없이 펼칠 수 있었다. '열하일기'와 '남한산성'까지 읽고나면 <옛 소설에 빠지다>의 즐거움을 한껏 더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왔던 고전이 내 책장에 꽂혀 있어서 잠시 흥분했지만, 그런 흥분은 <옛 소설에 빠지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고전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국내 고전에 관해서는 등한시하며 말로만 떠들었던게 사실이었다. 한 고전소설 연구자의 안타까움에서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여기에 실린 해설은 '고교 독서평설'에 연재됐던 글이라고 한다.)되었기에 나 같은 독자들에겐 가뭄의 단비처럼 해갈이가 되어 주었다. 이 책에는 몇개의 장르로 분류를 해서 13편의 고전소설을 싣고 있는데, 어떻게 한 권의 분량으로 나올 수 있을까 의아했다. 원문이 다 들어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맛보기에 좀더 살을 붙인 요약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다. 원문 전체를 읽다보면 안그래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고전에 더 멀어질 것 같았다. 이 책에는 원문을 보며 즐길 수 있는 여지는 남겨놓은 스토리가 수록되어 있었고 <천천히 읽기>라는 덧붙임을 통해 소설에 대한 해석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깊이 보기>를 통해 발췌해 놓은 원문도 살펴보고 간략한 느낌을 만날 수 있다.
이렇듯 한 편의 소설에 다양한 맛보기가 곁들어 있어서인지 고전소설을 읽고 난 뒤의 맛은 달콤했다. 고전소설의 특징상 읽기에는 무리가 없을지 몰라도 읽고난 후의 뒷감당은 난처한게 사실이다. 익숙치 않은 문학이기에 독자 혼자만의 해석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란 무리다. 각자의 해석을 매력으로 하는 것이 문학이라곤 하지만 고전소설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도움말이기에 뒷맛이 씁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넘겨 버렸더 것, 약간의 미심쩍음이 있었던 장면과 스토리를 하나하나 짚어주며 되새김질 할 수 있게 도와주어서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고전소설에도 여러 장르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비슷해 보이는 스토리 가운데서도 각자의 특징을 살려 재미있게 읽히는 내용들이 흥미로웠다.
이 책에는 <사랑, 사랑이로다>,<전쟁, 그 참상에 대하여>,<양반 남성들의 판타지, 그 이면>,<비수처럼 꽃히는 통찰과 깨달음>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읽지는 않았지만, 제목은 들어봄직한 소설이 많을거라 생각했던 나는 대부분 생소한 작품에 기가 죽고 말았다. 그러나 오히려 생소했기에 신선하게 읽을 수 있었고, 어떠한 방해(수업용으로 외운 내용이라든지)도 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맥락과 분위기 설명할 수 밖에 없는 능력밖에 안되지만 놀라움과 감탄, 스토리의 한계가 버무러진 고전소설은 의외의 재미를 안겨 주었다는 말을 번복하게 된다. 글이 씌여진 시대를 감안하고 읽었을 때의 놀라움, 파격적인 설정, 스토리의 탄탄함은 그야말로 신선한 묘미였다. 그에 반해 시대적 배경을 뛰어넘지 못하는 스토리와 비슷비슷한 결말은 큰 반향을 일으켜 주기엔 무리여서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재미있게 읽긴 읽었지만 그 느낌을 남기는 것은 쉽지 않다. 권선징악의 결말을 잘 보여 주었다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구구절절 스토리를 읊어대는것 또한 석연치 않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요약 소설과 다양한 해석과 도움말을 만나게 되면, 고전소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거라 생각한다.
한 때 외국의 고전들을 읽으면서 시간이 지나도 빛을 발하는 문학작품들이 존재하는 것에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럴때마다 왜 우리에겐 그런 고전이 없는지, 있다고 해도 고리타분하고 지루한지 늘 그게 불평이었다.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어야 하겠지만, 거의 외국어에 가까운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고전소설에 대한 대중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동감하는 바이다. 오늘날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씌여지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읽힘이 발전하다 보면 원작의 참 맛을 찾아 읽는 손길도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그런 행위들이 모이고 모여 우리 고전을 즐겨 읽는 독자들이 늘어날 때에 사랑하는 마음도 저절로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