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 신드롬 - 행복한 시작을 위한 심리학
김진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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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에 8년 정도 지내왔던 사무실을 뒤로 하고 새로운 공간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다른 지점과 합쳐서 이사를 하는 거라 공간도 좁아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좀 더 깔끔한 건물로 간다는 장점은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조바심을 불러 일으켰다. 내가 만들어 놓은 공간에서 안주하길 원했기 때문에 새로 바뀐 환경에 약간의 적대감까지 생겼다. 정신없이 보름 정도가 지나니 조금씩 틀이 잡히긴 했지만 안락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저자는 이런 적응기를 '스타트 신드롬'이라 불렀다. 내 경우는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출발의 시작점에서 갖게 된 갖가지 감정들도 스타트 신드롬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다. 새로운 공간에서 그 동안에 해 왔던 일들을 하면서 모든 것에서 새롭게 적응을 해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출발점에 서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자 쓴 책 <스타트 신드롬>은 이런 소소한 일들부터 삶을 좌지우지 하는 큰일들까지 그 안에 감추어진 두려움, 걱정, 고민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 책에서 크게 성격, 사랑, 관계, 일에 대해 시작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저자가 살면서 만난, 상담실을 찾아와 함께 고민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충고 해주며 비슷한 일을 겪거나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독특한 사연들이 많았다. 볼펜의 행방을 조교에게 물어봐야 하는 교수,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은행원,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 신드롬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정신과 의사인 저자에게 상담을 해야 할 정도로 특별한 일례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다른 나라 사람 얘기처럼 들려 구경하듯 지켜보았다. 이런 사연들이 있으니 상담실을 찾는 거라고, 나는 찾을 일이 없다고 고개를 한껏 쳐들며 기웃거리기 바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미세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대부분 나와 상관없는 스타트 신드롬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종종 내가 내면 깊숙이 숨겨놓은 어둠을 곤란하단 듯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각한 수준이어서 드러냈겠지만, 그런 내용이 나오자 나도 방심할 수 없었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고 상담했다는 것 자체가 숨기려는 나보다 용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에 나와 있는 이야기는 사례 중심이었고, 충고와 위로가 곁들어 있지만 마음에 많이 와 닿는 얘기는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사례가 나오면 어떤 해결책을 던져주는지 관심을 높였지만,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 맞는 말이기도 했거니와 자라온 성장과정의 영향을 많이 보는 것이 탐착치 않았다.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들이민 것은 사실이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위로의 말들이 많아서 조금은 서운했다. 어쩌면 상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타인에게 말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치유가 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상담자든, 이 책의 저자든)이 있을 테니 내가 숨기고 있는 스타트 신드롬에 관심을 기울여 보기로 했다.

 

  어쩌면 우리가 인정하고 있지 않을 뿐, 일상에서 수많은 스타트 신드롬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 약해 보이지 않으려, 보통 사람다워 보이려 무던히 애쓰다 보니 지금까지 숨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연들을 보면서 나와 상관없는, 나와 아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은 자기 내면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해결책도 중요하지만, 조급해하며 단기간에 무언가를 이루려는 마음보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도움을 청하고 해결책을 강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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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 딸과 함께 읽는 미셸 오바마 이야기
데이비드 콜버트 지음, 박수연 옮김 / 부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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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2008년 8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경합 끝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2009년 1월, 미국에 제 4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기 전부터 돌풍을 일으켰던 버락 오바마의 인기는 국내까지 번졌다. 한두 권 발행되던 그에 관한 책은 부지기수로 출간되었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책들 가운데는 미셸 오바마에 관한 책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만큼이나 세간의 이슈가 되고 있는 미셸 오바마의 삶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였다.
 

  미셸 오바마를 좀 더 특별한 시선으로 보게 된 계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저서를 훑어보던 중, 미셸 오바마의 지혜를 칭찬하는 대목에서였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는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아내에게 묻는다.' 는 말에 미셸 오바마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졌다. 먼저 읽게 된 책은 '딸과 함께 읽는 미셸 오바마 이야기'라는 부제목이 붙은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이었다. 내가 알고자 하는 미셸 오바마의 책에서 약간 시선이 벗어날 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삶이 녹아 있는 책이라는 생각에 미셸 오바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된 것 만큼 미셸 오바마도 첫 흑인 퍼스트레이디가 된 것도 역사적인 일이다. 그런 만큼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떠한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프린스턴 대학교, 하버드 로스쿨을 나올 정도로 명석한 그녀는 끈질긴 노력파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달려가는 의지를 지녔고, 그 가운데서도 어떤 일을 해야 즐거운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부모님의 교육열에 한껏 보답하며 성장했다. 그녀의 조상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미국 역사 한 자락을 더듬어 갔고, 첫 흑인 퍼스트레이디라는 다소 불편한 수식어가 왜 불편하지 않은지를 알려 주기도 했다.

 

  몸이 좋지 않으셨던 아버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의 교육만큼은 늘 앞서가던 어머니, 최고의 조언자이자 선의의 경쟁자인 오빠. 그 틈에서 그녀는 반듯하고 조금은 고집스레 자신의 길을 닦아갔다. 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존중해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그 시절에 획기적이었던 공립 고등학교의 선택과 다소 높은 목표인 아이비리그를 꿈꿀 수 있었다. 그녀는 가고 싶은 길을 정확히 알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노력을 했고 방법을 늘 탐구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인성, 끈기, 가치관이 나왔고 그것만 지켜보더라도 무언가를 끌어낼 수 있는 용기가 샘솟곤 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명석한 두뇌를 지녔다는 이점에 편견을 뒤집어쓰려고 해도 가정환경, 그 시절 미국 내에서의 흑인의 위치를 생각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결코 어긋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녀의 노력과 갖춰진 능력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드러난다. 그녀는 높은 연봉과 사회적 지위를 채워주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려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한 끝에,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면서 보람된 일을 찾아 나선 그녀의 용기에 감탄할 뿐이었다. 시기적절하게 길을 잘 선택한 것 같은 그녀는 '새로운 것에 도전했고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점'과 어디에나 있는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했기에 얻었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참 쉬우면서 어려운 지침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기에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야 왜 '딸과 함께 읽는'이라는 부제목이 붙었는지 조금 이해할 것 같다. 같은 여성으로써 미셸 오바마가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떤 모습으로 삶을 향해 나아갔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조차도 그녀의 삶을 보고 있으니 노력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자신 스스로와 잘 지내는 미셸 오바마의 모습이 무척이나 부럽고 멋졌다. 앞으로도 그런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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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마음이 자라는 나무 4
아지즈 네신 지음, 이종균 그림, 이난아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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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다가 좋으면 전작을 탐독하고 싶어진다. 요 며칠간 아지즈 네신이 그랬다. 우연히 그의 책을 접하게 되었고 내리 세 권을 읽었다.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제각각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아지즈 네신의 작품은 여전히 매력이 넘쳐 그의 작품을 주목하게 된다.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도 <개가 남긴 한마디>와 마찬가지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출간되었다. 두 권 모두 어른이 읽어도 무방한 내용들로 채워졌지만 <개가 남긴 한마디>보다 풍자가 약하다. <개가 남긴 한마디>는 풍자가 진해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 사실에 놀랐던 반면,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는 교훈적인 요소가 많았다.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이 흡수하기 좋은 다양한 내용들이 채워져 있었다.
 

  풍자와 익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가 남긴 한마디>를 읽었다면 좀 심심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다름에 색다른 매력을 느꼈고, 거리낌 없이 장르를 넘나드는 저자의 역량을 만끽하는 것이 좋았다. 눈높이를 맞춰 써내려간 글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작은 미물의 존재를 각인시켜 주기도 했다. 읽기만으로 저자의 의도를 단박에 간파하는 것보다, 읽는 과정과 읽고 난 후에도 의미를 음미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읽는 그대로 인지시키기 바쁜 책들이 많은 가운데 이런 책을 오랜만에 만나니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자꾸 멈춰졌다. 무언가 아쉬웠고, 그대로 지나쳐버리면 안될 것 같아 머뭇거리는 시간이 잦아졌다.

 

  <어느 무화과 씨의 꿈>,<모래성과 아이들>,<멋진 것과 옳은 것> 이 비교적 서정적으로 씌였고, 인생과 일상에서의 소소한 기쁨과 희망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간 읽어왔던 아지즈 네신의 작품과 확연히 다른 필체에 놀라움을 더하면서도 청소년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다는 시각을 키워주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반면 <양들의 제국>,<당나귀는 당나귀답게>,<미친 사람들, 탈출하다>,<기우제와 관절염>등은 세속적인 권력과 편견, 잘못됨을 꼬집는 작품이었다. 평범한 내용이 아님에도 <개가 남긴 한마디>보다 훨씬 더 얌전하고(?) 안정된 문체 덕에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감성적인 다른 작품들로 그런 어두운 면을 감추고 싶어 쉽게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교적 다양한 분위기의 단편들이 실려 있어서 여러 가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읽은 터라 각기 다른 매력을 뿜어내는 작품을 만났다면, 이 책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한군데로 그러모은 느낌이었다. 번역의 차이인지 대상의 차이인지 몰라도 글의 느낌은 <개가 남긴 한마디>와 확연히 달랐다. 교훈적이고, 절제되고, 차분한 문체가 도드라졌다. 그렇지만 저자의 상상력과 엉뚱함과 풍자의 매력은 여실 없이 드러났고, 다른 작품에서 만끽하지 못한 섬세한 면도 맛볼 수 있었기에 비교 자체만으로는 저자의 글에 대한 매력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었다.

 

  아지즈 네신 책을 몇 권 탐독하면서 한 작가의 첫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삶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거나 운명적이라는 데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작품이라고 해도 독자 각자의 느낌이 다른데, 그 작가의 여러 작품 가운데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선택되어 지는 작품들은 어떨 것인가. 아지즈 네신의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을 읽고, 별 감흥을 얻지 못해 그의 작품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다 아지즈 네신과 만날 기회가 만들어졌고,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그런 일련의 흐름들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책의 풍요 속에서 괜찮은 책과 전작을 하고 싶은 작가를 찾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지즈 네신과의 재회는 나름 성공적으로 생각하므로 그런 발견을 늦추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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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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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지즈 네신의 작품을 읽으니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책장을 뒤져보았다. 풍부한 책을 자랑하고 있는 책장에서(도대체 언제 다 읽을는지) 아지즈 네신 책 두 권을 찾아내 바로 읽었다. 직전에 저자의 풍자소설을 읽은 터라 이 책도 비슷한 책인 줄 알았다. 서문을 보고 아지즈 네신이 유배 생활에 대한 회고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세 번째로 만나는 그의 작품이지만 각각 성격이 다른 작품 세계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작가 소개를 통해 글쓰기의 범주를 알았지만 직접 마주하고 나니 그제야 실감이 밀려온다.
 

  간단한 책 소개를 보고 암울한 내용일 거라 단정 지었다. 작가가 유배 생활을 했다면 유쾌한 내용을 아닐 테고, 짐짓 도스또예프스끼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생각하며 그와 비슷한 내용이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러나 아지즈 네신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섣부름도 잠시, 저자의 힘든 유배 생활에 아랑곳없이 즐겁게 읽고 말았다. 저자 자신도 '고통스럽던 시절도 세월이 흘러 추억으로 회고될 때는 조금은 달콤하게 떠오르는 법'이라 했으니 유쾌한 마음으로 저자의 추억을 따라갔다. 유배지의 도착으로 시작을 알리는 책장을 조심스레 넘기다 킥킥거리며 읽는 나를 보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의 글에는 익살이 넘쳐났다. 풍자 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답게 유배 생활을 회고하는 글에서도 재치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유배 생활은 처절했다. 관광을 온 것도 아닌 낯선 도시에서 생활이 편할 리 없겠지만,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알려진 자신의 이름과 유배를 왔다는 딱지는 늘 붙어 다녀 모든 사람들이 그를 회피했다. 친구들은 물론, 낯선 사람들까지 저자를 피하는 통에 고충은 더욱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관할 파출소에 매일 사인을 하러 가야 하는 일 이외에 특별한 일거리가 없는 그는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았고, 힘겹게 받는 지인들의 보조로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책의 전반부에 걸쳐 드러난 그 시절의 배고픔을 보고 있노라면, 이 책의 제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야 하는지에 대해선 누구나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런 환경 가운데도 저자는 꿋꿋했다(꿋꿋함을 빼면 유배 생활에 남는 게 없었다). 오히려 독자를 안심시키고 위로하듯 유배 생활의 일부를 솔직하지만 처지지 않도록 써내려 간다. 저자의 고충이 가슴 시리게 다가오면서도 유배 생활을 견뎌 낸 시간을 회피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지켜보는 것 밖에 없지만, 그런 지켜봄을 통해 오히려 내가 더 즐거워졌다. 특히 저자가 유배 생활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본 온천에서의 일화는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웃다가 서럽게 운다는 웃음을 실감하게 되는 사연이었는데, 이미 지난 일이니 무거운 마음은 털어내자는 생각으로 마냥 즐겁게 웃었다. 그런 사연을 이렇게 쓸 수 있는 저자에 대해 경외감과 함께 꿋꿋하게 잘 견뎌 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자신을 배척하고 이용하며 벌레 보듯 피하는 곳에서도 도움의 손길이은 있었고, 나름대로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의 날을 기다리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런 마음으로 버텨낸 시간들은 참으로 귀중했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기관이나 사람들에 대해 비난을 하기보다 현재에 충실한 모습(늘 배고프다는 소리조차) 자체가 희망이 되어 주었다.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유쾌하게 써 내려간 필치도 한 몫 했지만, 자신의 아픈 과거를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되레 용기를 얻었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개정판을 내면서 자신이 왜 유배를 떠나야 했는지에 대해 말함으로 책은 마무리 된다. 그 이유라는 것이 지금은 이해를 이끌어 내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난처한 상황에서 진정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런 힘들었던 세월을 이겨낸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을 통해 삶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시각을 키워야 한다. 웃다가 넘겨버릴 수 있는 책이지만, 좀 더 깊은 곳을 내려다보면 숨겨진 또 다른 의미를 알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보며 현재의 세계의 자유를 만끽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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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남긴 한 마디 - 아지즈 네신의 삐뚜름한 세상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9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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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교적 낯선 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통해 알게 되었다. 독특한 소설이란 기억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만난 <개가 남긴 한마디>는 아지즈 네신이란 작가의 다양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만나 그의 첫 작품은 소설이었기에 풍자적 성격을 띤 <개가 남긴 한마디>는 한 작가의 작품이란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출간되었지만, 동화를 읽는 느낌에 어른들의 세계를 비꼬는 것이 많아서였다. 차츰차츰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런 점을 밀어내니 작품 본연의 색깔이 드러났다.
 

  15편의 단편은 풍자를 드러내고 있어 여러 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웃기도 하고, 어이없어 하면서도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책장을 놓을 수 없는 흡인력 때문에 순식간에 읽어버렸지만, 단편의 내용들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먼저 든 생각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이해여부와 어른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창피함이었다. 소설이더라도 현실에 대한 단점을 들추어내니 긍정적인 시선일 리가 없었다. 감출 수 있다면 감추고 싶었고,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의 세계가 꼭 이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 사이에서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책 내용들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책들에는 동물들이 무척 많이 나온다. 이솝우화가 자연스레 떠오를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갖가지 동물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신랄하게 비꼰다. 파디샤(이슬람권 국가의 군주)를 뽑는 까마귀하며 국세청 부활의 신화를 이끈 고양이,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원숭이 등 인간의 삶에 밀접한 형태로 나타나 모순과 부패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히려 동물의 눈에 비친 인간의 세계가 더 또렷하고, 인간끼리 얽혀있는 세상은 아둔해 보일 정도였다. 물질만능, 욕심, 권력에 치우친 인간의 모습은 어느 장단에 장단을 맞추며 읽어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이 책을 읽고 찔림을 받았다면,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면서 무언가 석연치 않다면 그냥 읽고만 넘길 것이 아니라 변화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상적인 것이 없어 보였다.

 

  우화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스토리의 맥락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으나 읽는 재미를 던져주는 목적은 충분했다. 독자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전달도 정확했고, 비교적 자주 접하지 못한 풍자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이끌기도 했다. 허구와 사실을 적절히 섞어낸 내용은 청소년층뿐 아니라 성인 독자들도 충분히 흡수할 만한 내용이었다. 긍정적인 시각이 아닌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간세계를 비꼬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나의 모습과 위치, 더 나아가 내가 속해있는 사회의 일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지나쳐 버릴지 모르지만, 조금 다른 각도로 지켜보면 충분히 나의 이야기가 되고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그런 사실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은 1958년에 출간 되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읽었음에도 현실과 다를 바 없는 내용들에 놀라 다시 한 번 훑어보게 되었다. 그 놀람은 저자의 안목에 대한 감탄이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현재와 별 차이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지만, 언제까지고 책 내용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이미지로 각인되지 않도록 조그마한 변화를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풍자문학으로 지나치기엔 석연치 않은 것들이 나의 내면을 어지럽혔다. 이런 풍자가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부정하지 못하고 씁쓸한 미소만 날리는 내가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아지즈 네신의 풍자는 신랄하긴 해도 독자에게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조금씩 작가들이 이런 문학을 쓸 소재가 닳아지게 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웃음 뒤에, 찔림 뒤에는 그런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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