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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남긴 한 마디 - 아지즈 네신의 삐뚜름한 세상 이야기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19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비교적 낯선 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통해 알게 되었다. 독특한 소설이란 기억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만난 <개가 남긴 한마디>는 아지즈 네신이란 작가의 다양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만나 그의 첫 작품은 소설이었기에 풍자적 성격을 띤 <개가 남긴 한마디>는 한 작가의 작품이란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출간되었지만, 동화를 읽는 느낌에 어른들의 세계를 비꼬는 것이 많아서였다. 차츰차츰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런 점을 밀어내니 작품 본연의 색깔이 드러났다.
15편의 단편은 풍자를 드러내고 있어 여러 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웃기도 하고, 어이없어 하면서도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책장을 놓을 수 없는 흡인력 때문에 순식간에 읽어버렸지만, 단편의 내용들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먼저 든 생각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이해여부와 어른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창피함이었다. 소설이더라도 현실에 대한 단점을 들추어내니 긍정적인 시선일 리가 없었다. 감출 수 있다면 감추고 싶었고,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의 세계가 꼭 이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 사이에서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책 내용들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책들에는 동물들이 무척 많이 나온다. 이솝우화가 자연스레 떠오를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갖가지 동물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신랄하게 비꼰다. 파디샤(이슬람권 국가의 군주)를 뽑는 까마귀하며 국세청 부활의 신화를 이끈 고양이,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원숭이 등 인간의 삶에 밀접한 형태로 나타나 모순과 부패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히려 동물의 눈에 비친 인간의 세계가 더 또렷하고, 인간끼리 얽혀있는 세상은 아둔해 보일 정도였다. 물질만능, 욕심, 권력에 치우친 인간의 모습은 어느 장단에 장단을 맞추며 읽어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이 책을 읽고 찔림을 받았다면,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면서 무언가 석연치 않다면 그냥 읽고만 넘길 것이 아니라 변화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상적인 것이 없어 보였다.
우화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스토리의 맥락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으나 읽는 재미를 던져주는 목적은 충분했다. 독자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전달도 정확했고, 비교적 자주 접하지 못한 풍자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이끌기도 했다. 허구와 사실을 적절히 섞어낸 내용은 청소년층뿐 아니라 성인 독자들도 충분히 흡수할 만한 내용이었다. 긍정적인 시각이 아닌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간세계를 비꼬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나의 모습과 위치, 더 나아가 내가 속해있는 사회의 일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지나쳐 버릴지 모르지만, 조금 다른 각도로 지켜보면 충분히 나의 이야기가 되고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그런 사실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은 1958년에 출간 되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읽었음에도 현실과 다를 바 없는 내용들에 놀라 다시 한 번 훑어보게 되었다. 그 놀람은 저자의 안목에 대한 감탄이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현재와 별 차이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지만, 언제까지고 책 내용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이미지로 각인되지 않도록 조그마한 변화를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풍자문학으로 지나치기엔 석연치 않은 것들이 나의 내면을 어지럽혔다. 이런 풍자가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부정하지 못하고 씁쓸한 미소만 날리는 내가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아지즈 네신의 풍자는 신랄하긴 해도 독자에게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조금씩 작가들이 이런 문학을 쓸 소재가 닳아지게 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웃음 뒤에, 찔림 뒤에는 그런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