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월드>를 리뷰해주세요.
인터월드 - 떠도는 우주기지의 전사들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원형 옮김 / 지양어린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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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서울을 올라가는 길. 비가 주룩주룩 내리다 못해 억수같이 쏟아지는 창밖을 보며 책을 꺼내 들었다. 감상에 빠지는 것보다 책을 보는 것이 더 좋기에 비가 쏟아지는 날과 조금은 안 어울리는 내용일지도 모르는 <인터월드>를 집어 들었다. <인터월드>는 그야말로 비가 내리는 창 밖, 서울을 향한 기차 안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잠시 고개를 들어 현실을 보면 오히려 더 낯선 곳이 되어 버리는 듯 한 착각이 일 정도로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지 않는 곳의 이야기였다.
 

  종종 심한 길치를 주변에서 보게 된다. 디지털 장애로 인한 길치도 심심찮게 보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 조이처럼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사 중인 자신의 집에서 길을 잃는가 하면, 사회 체험학습 시간에 길을 잃고 헤맨 일은 조이의 운명을 갈라놓고 말았다. 단순한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 다른 세계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조이가 지구에서 길을 자주 잃은 것은 바로 그런 세계에서 공간이동을 하는 능력 때문이라는 사실과 함께 전혀 평범하지 않은 세계로 편입하게 된다.

 

  처음에 조이는 자신이 공간이동을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여러 군데를 방황한다. 순간순간의 위기에 따라 장소 이동을 할 뿐이었는데 그 자체가 공간이동이 되었다. 조이의 그런 능력을 알아채고 우주를 지배하려는 마법의 제국 헥스와 첨단 과학의 제국 바이너리는 조이를 추적한다. 조이가 '워킹'하면서 공간이동을 한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있었지만, 그렇게 헤매다 사회탐구 담당인 디마스 선생님을 만나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자신이 사라진 시점에서 폭포에 빠져 죽었으며 그 소식을 듣던 중 헥스 제국의 마녀 인디고에게 붙잡힌다. 그들은 조이처럼 워킹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연료로 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인터월드에서 파견된 제이로 인해 구출되지만, 자신의 실수 때문에 복귀하던 중 제이는 목숨을 잃고 만다. 조이가 그려준 좌표 덕에 인터월드로 돌아온 조이에게 싸늘한 시선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조이는 제이를 대신할 전사가 되어야 했다. 조이 자신도 제이가 얼마나 뛰어난 전사였는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알지만 인터월드에서 필요한 재원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신병 기초 훈련 일 단계를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 위기에 처하고 만다. 자신을 추적한 인디고의 계략에 빠져 동료들만 남겨 놓은 채 인터월드로 복귀한다. 조이는 동료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는 요청을 하지만 묵살되고 기억이 지워진 채 고향으로 보내진다.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조이는 또 다른 현실과 마주한다. 며칠 동안 기억 상실증에 걸렸던 고등학생의 조이로 돌아와 평범한 학교생활을 한다. 그러다 막내 동생과 비눗방울 놀이를 하던 중 제이의 목숨을 잃게 만든 원인이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머드러프 '휴'를 기억하고 만난다. 분명 자신의 기억은 지워졌는데, 인터월드에서 공부했던 내용과 그곳에서 익혔던 무술들이 드러났다. 결정적으로 '휴'를 기억해 낸 조이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혼란에 빠진다.

 

  그냥 평범하게 삶을 이어가야 할지, 인터월드로 돌아가 동료들을 구해야 할지 혼란스런 가운데 또 다시 디마스 선생님을 찾아간다. 디마스 선생님이야말로 조이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분이며, 조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려 줄 분이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고, 인터월드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조이는 가족과의 이별을 해야 했다. 엄마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지만 이별은 힘들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엄마는 조이를 믿어 주었고, 그렇게 이별을 하고 인터월드로 돌아왔다. '휴'와 함께 동료들을 잃어버린 곳으로 돌아가 우주를 지배하려는 포부를 가진 헥스 제국을 위기에 빠트리고 동료들과 무사히 탈출한다. 동료들과 힘을 합쳐 결코 만만치 않은 마녀 인디고 일당과 맞선 장면은 조이가 지구를 떠나 그곳으로 돌아온 의미를 깨닫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신뢰가 없었던 동료들과 믿음을 만들어 갔고, 힘을 합쳤을 때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인터월드로 귀환한 그들은 영웅이 될 거라 생각했다. 헥스 제국의 음모를 저지했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사령관인 올드맨이 자신들에게 큰 상을 줄줄 알았다. 그만큼 그들은 끈끈한 동료애가 넘쳤고, 자신들의 능력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올드맨은 최악의 팀이었다며 너무 자만하다고 되레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팀을 유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그들은 또 다시 새롭게 태어난 듯 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새로운 임무를 맡는 것으로 파란만장한 조이의 '인터월드' 입성入成 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했던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SF와 거리가 먼 나의 독서 취향에 애를 먹을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풍부하고 명확했다. 글을 읽어가면서 조금씩 그림을 완성시켜가는 것이야말로 독서를 하는 묘미였고, 독특한 소재 속으로 독자를 이끌어준 저자의 역량에 감탄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때로는 무척 쉬울 때도 있고, <인터월드>처럼 힘겨우면서 뿌듯할 때가 있다. <인터월드>가 빛을 보지 못하고 오랫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어둠을 나온 순간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 같은 <인터월드>. 그 세계가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며 읽게 만들어 주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SF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우리가 아는 현실이란 망치에 맞은 거울처럼 쪼개질 수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라도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녀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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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네버랜드 클래식 12
진 웹스터 글 그림, 이주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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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키다리 아저씨>를 봤음에도 불구하고(원작과 내용이 다를지라도), 결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주변 사람들에게 영화의 결말을 들었음에도 왜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그런 이유로 원작을 꼭 읽고 싶었는데 최근 모으고 싶은 시리즈 중의 하나인 네버랜드 클래식에서 나온 <키다리 아저씨>를 발견하고 바로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분이 오묘해지는 금요일 저녁에 책을 꺼내들었다. 이런 밤에는 제격이라는 생각에 부흥하듯 책은 단숨에 읽혔다.
 

  제루사 애벗(주디)이 고아원 평의원인 한 사람(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는 사연 이후에는 모두 편지로 채워져 있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평의원에게 매달 편지를 써야 하는 주디는 얼핏 보았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 '키다리 아저씨'라는 애칭을 붙인다. 18년 동안 고아원에서 자란 주디에게 대학 생활은 그야말로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학비와 기숙사비, 거기다 매달 용돈까지 보내주는 키다리 아저씨 덕분에 주디에게 대학은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피붙이 하나 없던 주디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자주 편지를 쓴다. 대학생활의 벅찬 마음, 자신의 생활 보고報告, 하루하루 펼쳐지는 행복감을 키다리 아저씨에게 전해준다. 편지 속에는 주디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책을 읽기 전 해설을 읽은 터라 키다리 아저씨가 누군 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디와 주디의 일상에 종종 나타나면서도 편지로 주디의 마음을 알고 있는 키다리 아저씨(저비스)를 훔쳐보는 것은 또 다른 설렘을 안겨 주었다.

 

  주디의 편지를 보고 있노라면 한 소녀가 어떻게 성장해 가고, 무슨 생각을 품고 있으며, 자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 개척해 가고 싶은지를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주디에게는 '키다리 아저씨'가 고마운 분이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고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때론 답장을 요구하기도 하고, 키다리 아저씨의 말을 듣지 않으며, 키다리 아저씨가 퍼부어 주는 사랑에(선물도 포함) 버릇없어 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었으며 여자인 내가 편지를 보고 있어도 주디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주디가 하루하루 성숙해 가는 모습을 지켜본 키다리 아저씨인 저비는 어땠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이 자연스레 그려질 정도였다.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며, 훌륭한 사람이 되어 꼭 은혜를 갚겠다던 주디. 편지 속에는 자신이 만들어가고 싶은 미래도 늘 포함되어 있었다. 키다리 아저씨에게 쓰는 편지지만, 일기장이라도 해도 될 만큼 순수하고 솔직한 주디의 편지는 지금껏 고아로 보낸 우울함이 많이 깃들어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머가 가득하고, 가식이 없으며, 자신의 일상과 함께 수록된 작은 그림들은 너무 귀여워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물론 대학에 와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갖추지 못한 상식과 빈부차이가 심한 친구들 틈에서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우울함이 아닌 자신에 대한 재조명을 하기 위해 키다리 아저씨께 모든 것을 털어 놓는데, 언급만 했다 하면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에게 선물을 보내주곤 했다. 감사히 선물을 받을 때도 있지만, 옳지 않다며 돌려보내면서 단점을 스스럼없이 말하고 자신이 누리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순수해서 내 마음이 맑아질 때가 많았다.

 

  시간은 흘러 드디어 주디는 대학을 졸업한다. 자신의 졸업식에 꼭 와주십사 부탁을 했건만 키다리 아저씨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미 친구 줄리아의 삼촌 저비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못 올만도 했는데 주디는 큰 실망을 한다. 그럼에도 저비가 자신에게 청혼을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저비이나 그의 청혼을 거절했다며 키다리 아저씨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는다. 청혼을 거절한 이유를 알게 된 키다리 아저씨는 자신을 만나러 오라는 전갈을 보내고, 키다리 아저씨가 누군지 알게 된 주디는 큰 행복에 빠진다. 이제야 두 사람의 역할을 한(키다리 아저씨이자 사랑하는 저비 도련님), 한 사람에게 마음을 드러낸 편지를 쓰며 책은 끝을 맺는다.

 

  순식간에 읽었지만 여운은 참 오래 남는 소설이었다. 늘 이런 사랑을 꿈꾸고 있지만, 주디처럼 자신을 알아가고 사랑할 줄 모르는 내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인생에서 주디의 키다리 아저씨처럼 영원한 지지자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 사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닌 다가오도록 괜찮은 나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능력을 모를 때만큼 사랑스러운 모습도 없다고 했으니, 내가 모르는 나의 또 다른 능력에 사로잡힌 사람이 나타나기까지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은 내면을 가꾸는 것이며 주디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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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지로 이야기 1>  

- 오랜만에 괜찮은 일본 문학을 만났다. 일본 현대 소설과 치여있다 교훈과 감동과 재미를 가미한 성장소설이면서 한 시대를 훑어볼 수 있는 시대소설이라 무척 재미 있게 읽었다. 서평단에서 1권을 보내주었지만, 다음 권을 개인적으로 구입해서 보고 있을 정도로 좋았다!


•  서평단 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   

<지로 이야기 1> 

검이 사람을 살리려면 먼저 자기부터 죽여야 한단다. 자신을 죽인다는 건 상대방을 죽이기 전에 자신의 나쁜 버릇부터 잘라낸다는 뜻이야. 그렇게 자신을 죽인 사람은 두 번 다시 사람을 죽일 수 없단다.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검은 이제 사람을 살리는 데만 쓰는거야. 576쪽 


•  서평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지로 이야기 1 - 시모무라 고진 

2. 인터월드 - 닐 게이먼, 마이클 리브스 

3. 꿈꾸는 토르소 맨 - kbs 스페셜 제작팀 

4. 엄마의 은행 통장 -  캐스린 포브즈

5. 아빠 어디 가? - 장 루이 푸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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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이야기 1>을 리뷰해주세요.
지로 이야기 1 - 세 어머니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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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이유 없는 짜증이 솟구쳤다. 원인 없는 짜증은 여기저기 화를 불러 일으켰고 급기야 내 자신이 무척 한심할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오늘도 어두운 얼굴로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었더니, 사람들이 나를 슬금슬금 피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퇴근 길에 서점에 들렀다. 컨디션이 최악일 때는 서점만큼 나를 위로해 주는 곳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역시나 책들을 바라보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구경하기 바빴다. 퇴근 길에 <지로 이야기> 1권이 재미있어 다 읽어 버렸는데, 서점에 오니 <지로 이야기> 2권을 사고 싶었다. 다행히 2권이 있어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또 읽었는데, 오늘 같이 짜증이 솟구치는 날 나를 위로해 주는 책이 있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꽤 두툼한 책임에도 순식간에 읽었다. 1권의 두께가 600페이지가 넘어 기가 죽을만도 하건만 지루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넉넉한 시간만 있으면 순식간에 읽어 버릴 수 있는 흡인력과 재미만으로 독자를 끌어당기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지로 이야기>는 국내에 1989년에 번역 되었다가 교육운동사상의 길을 가르키는 교과서 같은 탓이었는지 널리 읽히지 못했다고 한다. 새롭게 출간 될 정도로 재 조명이 된 만큼,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교육운동'의 열풍의 교과서 같은 소설이라고 불리우기도 한 <지로 이야기>는 도대체 어떤 내용들로 채워져 있을까.

 

  <지로 이야기> 1권 '세 어머니'는 성장 소설 냄새가 물씬 났다. 장르를 굳이 나눌 필요 없이 성장소설로도, 시대의 한 자락을 훑었던 책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1권에서는 '재미와 감동에 깨달음까지 얻을 수 있'는 교육철학서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로의 내·외적인 성장에 중점이 맞춰진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지 않을 수 없었다. 3남 중 둘째로 태어난 지로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초등학교 교지기 집에 양자로 보내졌다. 유독 지로만 유모에게 맡겨진 것이 못마땅했는데 유모 오하마, 낳아준 어머니, 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들어온 새어머니까지 세 어머니와 차례차례 맞물린 삶을 살게 된다. 유모의 집에서는 자유를 누리면서도 본가에 가면 자신을 미워하는 할머니, 어머니가 있어 늘 불편하기만 했다. 어렵사리 아버지 스케의 사랑으로 인해 마음을 붙이게 되지만 어려서부터 떠돌게(?) 되는 지로의 진정한 집은 과연 어디인지 헷갈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로만 유모네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본가를 오가기도 했지만 외가에서도 짧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낸 터라 지로의 진정한 집은 어디인지 혼란스러웠다. 지로가 방황하고 마음에 상처를 그득 안게 된 것도 어쩌면 정착되지 못한 '집'이라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할머니와 어머니 때문에 본가에는 도저히 정을 붙일 수 없는 지로는 말썽쟁이에 어린아이답지 않은 까칠한 성격을 갖게 된다. 지로가 성장함에 따라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함께 세세한 내면의 묘사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복선을 깔아준다. 그러나 복선은 언제나 유쾌하지만은 않은, 지로만의 외로움과 고독, 분노가 시퍼런 날을 세워 세상을 향해 뿜어낼 준비를 하기 위한 것들뿐이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경험과 어우러지는 사고思考를 떠올려 볼 때, 지로가 어떻게 성장해 갈지 도무지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시선이 오히려 당연할 정도였다.

 

  책을 읽는 내내 나조차도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던 부분은 지로를 유독 미워하고 싫어했던 친 할머니의 독설이 펼쳐질 때였다. 지로가 다른 두 아이들과 다르긴 하지만, 성장배경을 생각해 볼 때 되레 마음을 써주고 귀여워 해줘야 할 마당에 깊은 상처를 넘어 분노를 일으킬 정도로 심한 차별을 했다. 1권이 끝나갈 무렵 지로가 큰 깨달음을 얻고 가족들에게 용서를 빌 때에야 할머니의 독선이 누그러지지만, 그 전까지 지로의 할머니를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었다.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엄마의 죽음, 유모와의 이별, 외가에서의 생활, 중학 시험 낙방 등 끊이지 않은 시련들이 있음에도 핍박과 독설은 그칠 줄을 몰랐다. 반면 지로가 크고 작은 일들을 겪고, 여러 사람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해 갈 때면 무척 대견스러웠다. 지로의 성장에 따라 나도 조금씩 성장해 가는 기분이었고 지로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결코 순탄하다고 할 수 없는 지로의 성장과정(1권에서는 중학교 1학년까지 모습이 그려진다.)을 지켜보면, 어린아이의 삶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을까 하고 놀라게 된다. 지로만 동떨어진 배경에서 성장한 이유로 올바르게 자랄 수 없다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어느 누구에게도 정을 붙일 수 없었던(지로조차도) <지로 이야기>. 그러나 세상에는 지로를 미워하는 사람보다 사랑해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참 많았다. 그들로 인해 삶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고, 깨달음을 포함한 모든 것을 운명의 어쩔 수 없음과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자신을 늘 따라다니던 시련만큼이나 지로를 향한 사랑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어른으로 인해 상처받고, 어른으로 인해 사랑을 받는 모습이 역설적이긴 해도 범상치 않은 그림자는 늘 지로를 따라다녔다.

 

  지로는 날로 날로 성장해 갔다. 한 학년씩 올라갈수록 내면의 성장은 눈에 띄게 발전해 갔다. 때론 아이답게, 때론 어른답게 펼쳐지는 내면의 성장은 주변에 자신을 걱정해주고 사랑으로 훈육시켜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린 지로가 감당하기에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지로가 삐뚤어지도록 놔두지도 않았다. 형제들과의 우애는 물론 가족 간의 끈끈함을 만든 것도 지로의 영향이 컸고, 학교에서나 두 곳의 외가에서의 입지도 잘 다졌다. 그런 지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나의 내면의 변화가 수 없이 일어났고, 세상을 향해 막 눈을 뜨기 시작한(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빨리 눈을 떴지만.) 10대의 내면은 현재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지로'와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거나 겪고 있기에 드러난 익숙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지로의 성장과 행보에 여전히 관심을 두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고 여전히 성장 중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지로가 중학교 생활을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세상과의 부딪힘이 어떻게 내면의 성장을 이루어 낼 것인지 다음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진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지로의 성장을 통해 감동과 재미, 무엇보다 삶의 깨달음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질풍노도의 시기에 허덕이고 있는 청소년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검이 사람을 살리려면 먼저 자기부터 죽여야 한단다. 자신을 죽인다는 건 상대방을 죽이기 전에 자신의 나쁜 버릇부터 잘라낸다는 뜻이야. 그렇게 자신을 죽인 사람은 두 번 다시 사람을 죽일 수 없단다.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검은 이제 사람을 살리는 데만 쓰는거야. 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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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잡영 - 이황, 토계마을에서 시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장세후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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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 이불을 칭칭 감고 누워 책을 펼쳤다. 빗소리는 감성을 자극시키고 잠이 올 듯 몽롱한 상태에서도 독서가 하고 싶었다. 이런 날에는 감성이 잔뜩 배인 책을 읽으면 제격이라는 생각에 <퇴계잡영>을 꺼냈다. 오랫동안 내 손에 머문 책인데 비해 진도는 그다지 많이 나가지 못했고, 토계마을에서 시를 쓴 이황의 내면으로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어려움이 있는 책이었다. 오늘만큼은 날씨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아 이황의 심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감정 운운하며 책을 펼친 것이다.
 

    이황은 고향인 예안의 온혜를 떠난 뒤로 몇 차례나 가까운 마을로 집을 옮겨가며 살다가 중년 이후에 토계(지금의 도산면 토계동)라는 마을에 정착하여 살면서 자신의 호를 퇴계退溪라고 고쳤다고 한다. 그곳에 머물면서 지은 시집의 이름을 '잡영'이라고 하였는데, '잡영'이란 말은 "생겨나는 일에 따라 읊조리는 것인데, 시의 제목으로 상용된다"라고 했단다. [퇴계잡영]은 즉흥적으로 지어 낸 시들과 사유시思惟時 성격을 띤 연작시들로 묶여져 있다. 자연과 향리의 선배와 제자들, 음미하며 읽는 책,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에 대한 느낌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는 시집이다.

 

  요즘은 우리의 고전문학을 현대인들이 읽기 쉽게 풀이해 놓은 것이 많아 이 책도 당연히 그런 책이라 생각했다. 한문 원시의 한글 번역 뒤에 산문으로 풀이해 놓아 읽는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한글 번역을 읽고 주석을 읽은 다음 산문까지 읽으니 내용이 일관되지 않고 자꾸 흐름이 끊겼다. 주석이 있으니 당연히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꼼꼼히 읽었는데, 한문 원시에 대한 주석이라 이해가 잘 가지 않아 내용 정리는 더 어려웠다. 한참을 방황을 하다 도저히 책 내용이 들어오지 않아 읽는 방법을 바꿨다. 먼저 주석 읽기를 과감히 포기했고(한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주석이었기에), 한글 번역을 읽고 산문만 읽어보았다. 그러나 한글 번역과 산문도 약간 일치가 되지 않고 겉돌아 산문만 따로 읽었다. 산문만 쭉 읽어나갔더니 그제야 내용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읽기의 방법을 바꾸고 읽어가니 당시의 이황의 마음이 느껴졌다. 무조건 읽기에만 급급해서 토시 하나 놓치지 않고 읽으려고 했던 초반의 마음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시 하나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힘겨워하던 나의 마음이 풀어지기도 했고, 소소함을 시 가운데 가득 담았던 이황의 내면이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날씨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리하는 시의 내용들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날씨를 빌어 그의 내면을 바라보고자 했던 마음을 흠뻑 적셔 주었다. 왜 진작 이렇게 읽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토계에서의 생활은 적나라했다. 산문만 따로 읽음으로써 이런 느낌이 들었지만 차근차근 한글 번역을 따로 읽고, 주석도 덧붙여서 읽어나간다면 시의 이면의 것들도 하나씩 채워질 것이다.

 

  [퇴계잡영]이 온전히 들어오게 된 계기는 산문만 따로 읽다 진가를 알게 되었지만, 그 마음 가운데는 이 책을 옮긴 두 분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볼 때마다 옮긴이들의 열정이 그대로 묻어나 뜨거운 손길을 느끼지 못한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반 독자인 내게는 여전히 그 뜨거움을 안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더러 주석도 버거웠고, 한글 번역도 이해가 잘 안 갔으니 나의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고전이라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런 발굴이 이루어지고, 독자들에게 다가가려 하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더 많은 독자들이 고전을 찾고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 오탈자

 

26쪽

주석 4) 돌아기고 -> 돌아가고

 

147쪽

고운 빛을 가리우고 별마저 닭은 달빛 때문에 -> 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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