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잡영 - 이황, 토계마을에서 시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장세후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말, 이불을 칭칭 감고 누워 책을 펼쳤다. 빗소리는 감성을 자극시키고 잠이 올 듯 몽롱한 상태에서도 독서가 하고 싶었다. 이런 날에는 감성이 잔뜩 배인 책을 읽으면 제격이라는 생각에 <퇴계잡영>을 꺼냈다. 오랫동안 내 손에 머문 책인데 비해 진도는 그다지 많이 나가지 못했고, 토계마을에서 시를 쓴 이황의 내면으로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어려움이 있는 책이었다. 오늘만큼은 날씨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아 이황의 심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감정 운운하며 책을 펼친 것이다.
 

    이황은 고향인 예안의 온혜를 떠난 뒤로 몇 차례나 가까운 마을로 집을 옮겨가며 살다가 중년 이후에 토계(지금의 도산면 토계동)라는 마을에 정착하여 살면서 자신의 호를 퇴계退溪라고 고쳤다고 한다. 그곳에 머물면서 지은 시집의 이름을 '잡영'이라고 하였는데, '잡영'이란 말은 "생겨나는 일에 따라 읊조리는 것인데, 시의 제목으로 상용된다"라고 했단다. [퇴계잡영]은 즉흥적으로 지어 낸 시들과 사유시思惟時 성격을 띤 연작시들로 묶여져 있다. 자연과 향리의 선배와 제자들, 음미하며 읽는 책,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에 대한 느낌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는 시집이다.

 

  요즘은 우리의 고전문학을 현대인들이 읽기 쉽게 풀이해 놓은 것이 많아 이 책도 당연히 그런 책이라 생각했다. 한문 원시의 한글 번역 뒤에 산문으로 풀이해 놓아 읽는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한글 번역을 읽고 주석을 읽은 다음 산문까지 읽으니 내용이 일관되지 않고 자꾸 흐름이 끊겼다. 주석이 있으니 당연히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꼼꼼히 읽었는데, 한문 원시에 대한 주석이라 이해가 잘 가지 않아 내용 정리는 더 어려웠다. 한참을 방황을 하다 도저히 책 내용이 들어오지 않아 읽는 방법을 바꿨다. 먼저 주석 읽기를 과감히 포기했고(한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주석이었기에), 한글 번역을 읽고 산문만 읽어보았다. 그러나 한글 번역과 산문도 약간 일치가 되지 않고 겉돌아 산문만 따로 읽었다. 산문만 쭉 읽어나갔더니 그제야 내용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읽기의 방법을 바꾸고 읽어가니 당시의 이황의 마음이 느껴졌다. 무조건 읽기에만 급급해서 토시 하나 놓치지 않고 읽으려고 했던 초반의 마음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시 하나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힘겨워하던 나의 마음이 풀어지기도 했고, 소소함을 시 가운데 가득 담았던 이황의 내면이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날씨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리하는 시의 내용들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날씨를 빌어 그의 내면을 바라보고자 했던 마음을 흠뻑 적셔 주었다. 왜 진작 이렇게 읽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토계에서의 생활은 적나라했다. 산문만 따로 읽음으로써 이런 느낌이 들었지만 차근차근 한글 번역을 따로 읽고, 주석도 덧붙여서 읽어나간다면 시의 이면의 것들도 하나씩 채워질 것이다.

 

  [퇴계잡영]이 온전히 들어오게 된 계기는 산문만 따로 읽다 진가를 알게 되었지만, 그 마음 가운데는 이 책을 옮긴 두 분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볼 때마다 옮긴이들의 열정이 그대로 묻어나 뜨거운 손길을 느끼지 못한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소소한 일반 독자인 내게는 여전히 그 뜨거움을 안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더러 주석도 버거웠고, 한글 번역도 이해가 잘 안 갔으니 나의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고전이라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런 발굴이 이루어지고, 독자들에게 다가가려 하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더 많은 독자들이 고전을 찾고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 오탈자

 

26쪽

주석 4) 돌아기고 -> 돌아가고

 

147쪽

고운 빛을 가리우고 별마저 닭은 달빛 때문에 -> 밝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