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노석미 그림 / 살림Friends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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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유독 기억에서 잊히지 않은 기간이 있기 마련인데, 유년 시절이 그랬다. 기뻤던 일보단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더 많지만, 한창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세상을 향해 발돋움을 할 때의 기억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성장하면서 그런 기억이 자리한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만난 문학작품을 통해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때야 말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 연유로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작품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든,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든 간에 그 시절을 돌아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색다른 기쁨이 되곤 한다. 문학을 통해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기억을 떠올려서인지 자꾸 청소년 문학을 뒤지게 되는데, 아지즈 네신의 작품으로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달에 그의 작품을 연달아 세 권이나 읽었지만, 대부분 풍자였기에 유년 시절의 추억을 꺼낼 틈이 없었다. 이번에 출간된 <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도 풍자로 채워져 있을 거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는데, 밤나무에서 밤톨이 떨어지듯 나의 유년 시절의 기억이 우수수 떨어지고 말았다.

 

  아지즈 네신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기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한 것 보다 재미나게 읽은 풍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실망을 했다. 풍자의 느낌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고, 그 안에서 뼈 있는 깨달음을 얻기보다 그냥 즐기고 싶었다. 그런 즐거움을 발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탐탁지 않은 눈으로 책을 좇아갔는데 마음이 찡해지고 말았다. 아지즈 네신이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을 약간 알고 있었는데 저자의 글을 통해 들어보니 그 시절의 절절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더군다나 터키 작가인 그의 어린 시절을 보면서 나와의 공통점, 혹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정서를 맛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부모세대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고, 종종 나와 공통된 느낌을 만날 수 있어 놀라면서도 가슴이 아릿해지고 말았다.

 

  아지즈 네신은 짤막한 글들로 어린 시절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그려내고 있다. 철이 없었던 시절, 가난하고 어려웠던 기억, 자신의 존재를 알고 타인의 시선을 느꼈던 시절의 이야기들이라 많은 공감이 갔다. 다섯 살 때부터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시골의 넉넉지 못한 집에서 성장한 탓인지 내 기억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사탕을 사먹기 위해서 부모님의 돈을 훔친 일이나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를 때려준 일, 부끄럽고 창피한 집안일을 해야 했던 기억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누구나 겪었을 어린 시절의 이야기라고 해도 들춰내기 싫은 어린 시절이 있다. 그런 어린 시절이 생생하다 못해 아픈 기억으로 떠오를 만큼 저자는 담담하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잊지 않은 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겪은 동생의 죽음 앞에서는 너무 어린 나이라 미처 아픔을 발견할 틈이 없었고, 매일 친구들이 놀고 있는 공터를 지나 물을 길러 와야 했을 때는 창피해 했다. 그의 어린 시절을 더듬다 보면 충분히 삐뚤어질 만도 하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을 할만도 한데, 현실에 충실한 그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오히려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어른이 되서도 시련을 견딜 수 있었다는 저자 앞에 경건해질 뿐이었다. 저자의 일기장을 보는 듯 한 어린 시절을 보며, 잊고 있던 유년시절은 물론 풍자 작가로만 인식하고 있던 아지즈 네신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아지즈 네신은 그런 시절을 바탕으로 반듯한 생활을 해온 반면, 동경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내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아지즈 네신을 통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유년시절의 일부분이 아니라 가족, 친구, 환경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수 있어 더 진화된 성장소설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미 곁길로 빠져 버린 나일지라도 내가 지내온 시절을 떠올리며 현재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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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은 하나 타샤 튜더 클래식 6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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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샤 할머니의 책을 거의 다 읽어서 새로운 번역본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번역본이라고 해도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들이 전부였지만, 동화책이라도 한 권씩 모으며 타샤 할머니를 추억하고 싶었다. 그만큼 타샤 할머니는 나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었고, 타샤 할머니의 흔적을 모아보고 싶었다. 그런데도 출간 소식이 들리지 않아 기다리고 있던 중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하니 <1은 하나>가 출간된 사실을 알고 바로 구입했다. '광고라도 좀 해주지' 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도 잠시, 책을 받고 보니 타샤 할머니의 열혈 팬이 아니면 구입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어 '자체 발견'에 만족하기로 했다.
 

  타샤 할머니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에 매료 되어서 좋아하게 되었지만, <타샤의 그림 인생>을 읽지 않았다면 동화책을 구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타샤 할머니가 정원을 가꾸고 19세기 모습으로 생활하는 것에 관심을 둔 터라 동화 작가로 유명한 사실을 알면서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타샤 할머니의 삶을 말하는 책들 가운데 타샤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 수록 되어 있고, 그 외의 이야기도 해주었지만 직접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타샤의 그림 인생> 덕분이었다. 타샤 할머니의 삶에서 그림을 빼 놓을 수 없는 이유와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삽화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 책을 읽고 코기빌 시리즈를 구입하게 되었고,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자 번역될 다른 동화책을 기다린 것이다. 그 첫 책이 칼데콧 수상작인 <1은 하나> 이다.

 

  종종 조카들의 방에 가보면 문과 벽에 그런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숫자를 익히기 쉽게 그림과 글이 얽힌 포스터였다. <1은 하나>를 읽으니 그 포스터가 생각났고, 타샤 할머니가 숫자를 알려 준다면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즐거움을 발견했다. 타샤 할머니만의 독특한 테두리 안에는 숫자를 나타내는 그림과 짤막한 글이 실려 있었다. <1은 접시에서 헤엄치는 아기 오리 한 마리>라는 글 위에는 접시에서 헤엄치는 오리가 있는 식으로 숫자 20까지 타샤 할머니만의 독특한 매력에 빠질 수 있다. 숫자를 나타내는 것으로는 동물, 과일, 사람, 꽃 등 여러 가지로 숫자를 통해서 다양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흑백과 컬러가 섞인 삽화를 보고 있노라면 숫자를 익히기보다 그림 자체에 빠져들기도 했다.

 

  삽화 아래는 영어 원문이 실려 있었다. 길지 않은 문장이기에 그림을 보면서 영어 원문을 읽어보았는데, 쉽게 읽을 수 있는 영어 가운데서도 읽기를 끙끙대는 몇 개의 단어들도 보였다. 그 단어들을 발견할 때는 이 책이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이고, 숫자를 익히기 위한 책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영어의 공포가 밀려오기도 했다. 그러다 3~4세를 위한 동화책에 너무 끙끙대지 말자라고 다짐하며 편하게 읽어 나갔다.

 

  타샤 할머니가 숫자를 알려주기 위한 그림들은 낯설지 않았다. 타샤 할머니의 삶에서 녹여낸 그림들이라 익숙하고 친근했다. 그림만 보고 있자면 충분히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일 수 있지만, 타샤 할머니의 일상에서 존재했던 모습이기에 현실에서 꿈 꿀 수 있었다. 정원에서 뛰어 노는 동물들과 아이들, 익어가는 과일, 피어나는 꽃들은 타샤 할머니가 직접 보고 가꾼 현실이었다. 그 모습을 다른 책을 통해서 익히 아는 터라 타샤 할머니와 정원, 일상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1은 하나>는 아이들이 숫자를 즐겁게 익힐 수 있는 책으로도 좋지만,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보고 싶은 책이다. 숫자보다 타샤 할머니의 그림에 더 혼을 빼고 있어서 너무 짧은 책에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앞으로도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이 계속 발간된 예정이니 하나씩 모으며 타샤 할머니의 삶과 그림 세계에 빠져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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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6-13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 축하해요. 님한테는 새삼스런 일도 아니겠지만요.^^
타샤 할머니의 그림책은 정말 보고 싶어요~~

안녕반짝 2009-06-13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리뷰 당첨은 근 3년 만인걸요! 알라딘은 정말 되기 힘들다는..ㅠㅠ 꿈의 마일리지라서 그런가봐요!
 
셜록 홈즈 최후의 해결책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 3
마이클 셰이본 지음,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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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 셜록 홈즈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다. 그런 셜록 홈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칼렙 카의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를 통해서였다. 괜찮은 추리 소설을 만났고, 셜록 홈즈의 팬이었던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에 번역된 책은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외에 <셜록 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 뿐이었다. 셜록 홈즈에게 헌정하는 작품이었는데 무척 흥미로워 칼렙 카도, 셜록 홈즈도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운이 남아 있던 터에 칼렙 카 다음으로 마이클 셰이본이 쓴 <셜록 홈즈 최후의 해결책>을 만났다. 긍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던 터라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책이 그다지 두껍지 않아 칼렙 카의 <셜록 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처럼 순식간에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 읽기는 초반부터 무척 더뎠고, 추리 소설에 갖고 있던 생각도 내용에 대한 기대감도 흔들리고 말았다. 추리 소설에 갖고 있던 편견을 깨어주었던 것은 뛰어난 묘사였다. 사건을 만나기 전 묘사된 자연이라든가 인물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추리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런 묘사 속에 헤매다 보니 줄거리의 흐름을 놓쳐 버렸고, 전개는 더욱 더디게 느껴졌다.

 

  셜록 홈즈는 시골 마을에서 벌을 키우며 살고 있다. 아흔의 나이다 보니 온 몸이 삐걱거리고, 벌을 치는 것도 힘겹지만 마음만은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앵무새와 함께 한 벙어리 소년을 보게 되고, 그 소녀가 머무르는 하숙집의 하숙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상한 숫자를 읊어대던 앵무새가 사라졌다는 소식과 함께 사건을 맡은 경감이 찾아와 셜록 홈즈에게 전해준다. 그러면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셜록 홈즈는 현장 검증을 통해 그들이 체포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님을, 사건을 수사한 경찰들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낸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사건 해결을 위해 런던까지 다녀오지만, 런던에서는 그의 전성기 때의 추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셜록 홈즈는 사라졌던 앵무새도 찾아오고, 범인을 색출하며 살인 사건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셜록 홈즈의 전성기를 모르는 내게는 그런 과정이 지난했다. 셜록 홈즈의 열렬한 팬이라면 셜록 홈즈의 등장만으로도(그가 노쇠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설렐 수 있겠지만,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지 않고 헌정 작품으로 셜록 홈즈를 만나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 심심할 수밖에 없다. 박진감 넘치는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는 긴장감도 없었고, 사건의 뚜렷함도 보이지 않고 묘사와 애매모호함이 난무했다. 추리 소설을 그렇게 변신 시킬 수 있다는 저자의 역량에 점수를 주고 싶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헤맸기에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완독하고 났을 때 다시 한 번 꺼내서 읽어 본다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셜록 홈즈의 전성기를 모른 채 헌정작품 속에서 만난 셜록 홈즈는 내게 많은 메시지를 주지 못했다. 셜록 홈즈의 팬들에게는 그리움의 대상, 책을 통해 만났던 수많은 사건 속의 셜록 홈즈를 떠올리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팬 서비스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나 같은 독자들이 이 책의 묘미를 온전히 즐기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으므로 셜록 홈즈의 전성기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음을 느끼며 셜록 홈즈 시리즈를 뒤적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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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군화>를 리뷰해주세요.
강철군화 잭 런던 걸작선 3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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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마주할 때만 해도 남다른 포부가 있었다. 소설 장르 안에서라도 다양한 책 읽기를 통해 사고 확장을 꾀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자주 접하지 않는 장르였고, 모르는 것이 많았기에 책 읽기를 통해 내가 많은 것들을 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문을 볼 때만 해도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인지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갈수록 내가 초반에 먹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쟁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조차 없는 혼란스러움이 내재했다.
 

  이 책은 서기 27세기 통일된 사회민주주의의 한 문헌학자가 에이비스 에버하드의 원고를 공개하며 시작된다. 원고는 에이비스가 그녀의 남편이자, 120세기 초 노동자 대중을 위한 투쟁에 목숨을 바친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었다. 일대기가 쓰인 시기는 미국에서 과두지배체제(Oligarchy,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의 정치,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하는 정치 체제)가 일어난 1912년과 1932년 사이라고 한다. 옮긴이의 글을 보면 이렇게 간략히 요약이 되지만, 일대기를 읽는 나는 이런 요약의 이면을 살펴볼 수 없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 뿐이었고, 사회주의 사상이라든가 자본주의가 어떠한 병폐를 낳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도 내게는 벅찼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회주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태백산맥>의 몇몇 인물들이 떠올랐을 뿐, 그 이상으로 나가지 못했다. 기본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책을 통한 얻음이 배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뼈저리게 깨다는 계기를 마련해줄 뿐이었다. 이야기의 흐름은 어느 정도 짚어나가더라도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데서 오는 동떨어짐은 끝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어니스트가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과두제의 선봉에 선 사람들을 토론으로 뭉갰는지에 대한 여부는 여전히 뜬구름 상태로 남아있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어도 배경지식이 없어 헤맬 뿐,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이 거의 없었다.

 

  거기다 27세기에 원고가 발견된다는 설정 또한 이질적이었다. 어니스트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예언들이 현재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도무지 27세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문서가 발견된 당시의 이야기는 책에 거의 나오지 않고 주석을 통해 대부분 드러났다. 주석이라는 것이 간단한 설명을 해주는 것도 있고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이 들어가 있는 주석이 있는 반면, 원고가 발견된 당시의 시선으로 덧붙여진 것도 많아 시선의 흐트러짐이 잦았다. 원고가 쓰인 20세기 초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시각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27세기의 시선으로 봐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27세기의 시선으로 보기에 아는 것도 없을 뿐더러 현실감이 떨어졌고, 20세기 초를 대상으로 바라보기에도 가까우면서도 먼 과거로 느껴졌다.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허구와 실재가 공존하는 소설 내용을 이해하기엔 나의 지식이 부족했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나는 무엇을 읽는지, 무엇을 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기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소설의 이야기 중에 당시의 미국 현실을 반영한 면이 많아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힘없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현재에도 비일비재 했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계적인 경제난에 과두제에 대한 비판의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사회주의는 이상일 뿐이라는 의견이 들려와도 그 사회에 대한 열망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은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지 못한 공백을 메울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핍박당하고 힘없는 하층민들과 소수의 사람이 독점하며 풍요로운 부유층, 그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통해 배를 불리고 있는 중산층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현재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책 속의 몇몇 인물들만 떠올려도 사회주의의 이상이 현실과 접목되지 못하는, 반대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흡수하지 못하는 세계에 맞닥뜨리는 것을 처절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내가 무엇을 꾀할 수 있을까. 어느 곳에 기울이지도 못하고, 논쟁의 중점에 서서 통찰력을 발휘할 수도 없는 나의 부족함과 힘없음에 망연자실 할 뿐이었다.

 

  어니스트의 연대기를 기록한 에이비스나 어니스트나, 그들이 추구했던 사회주의의 붕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편치 않았다. 빤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희망을 걸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뿐더러 나만의 생각을 캐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느 편에 서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리는 존재감이 없는 민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숨만 터져 나왔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고, 내가 겪은 것은 무엇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혼란스러움이 나의 내면을 지배했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 따위는 들어올 틈이 없이 사라지고 있는 '나' 앞에서 마냥 부끄러웠다. 나의 내면을 어지럽히고 사라져 버린 <강철군화>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자본주의 체제의 전개에 대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점.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어느 정도 기본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우리를 약하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부호계급의 힘에 맞서 더 강해지는 건 아니지요.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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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을 리뷰해주세요.
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2
샬레인 해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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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인 줄 모르고 이 책을 읽다 전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를 먼저 읽었다. 시리즈라고 해도 꼭 전편을 읽지 않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차근차근 읽게 만드는 시리즈가 있기 마련이다.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는 후자에 속했다. '시리즈라고 해도 굳이 전편을 찾아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고 자신 있게 읽어 나갔지만 내가 먼저 지쳐버렸다.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 자잘한 사건들의 언급에서 아는 것이 없었기에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그런 암시는 독자들에게 전편의 내용을 기억시켜주기 위한 장치로 보였고, 아무것도 모른 채 읽어나가는 내가 답답했던 것이 당연했다.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를 읽고 나니 <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을 훨씬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지나쳤던 얘기들도 조금씩 꿰어 맞춰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흡인력 있는 내용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또한 <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을 읽으면서 여 주인공 수키의 까칠함이나 내게만 낯선 인물들의 생뚱맞음이 당황스러웠는데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사연으로 두 권을 섞어서 읽다 보니 내용이 약간 섞이고 말았지만 궁금증을 해소해서인지 비교적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어두워지면 일어나라>에서 수키와 빌의 사귐으로 인해 일어난 에피소드를 지켜보았다. 그 여파를 추측해 볼 때, 둘의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었는데, 역시나 후편에서도 바람 잘 날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고 수키에게 위험스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살해당했고, 그녀의 목에 뱀파이어에게 물린 희미한 자국이 있어 뱀파이어가 의심을 받았다. 빌과 사귀는 사실을 모두 아는 터라 불편한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시신이 경찰인 앤디의 차에서 발견됨으로써 앤디는 위기에 처한다. 그것도 수키가 일하는 바의 주차장에 세워진 차에서 발견 되었고 그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골머리가 아픈데 뱀파이어들의 은밀한 요구가 들어온다.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효과를 톡톡히 보아온 다른 뱀파이어가 수키에게 도움을 청한다. 도움이라기보다 꼭 해야만 하는 상황에 빠진 수키는 빌과 함께 댈러스로 향한다.

 

  뱀파이어들이 인간들과 섞여 살면서 뱀파이어 전용 호텔이 생긴 탓에 수키와 빌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비교적 수월해졌다(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실종된 뱀파이어를 찾기 위해 수키는 조사에 나섰고, 그 뱀파이어를 납치했을 법한 장소로 잠입한다. 뱀파이어들은 낮에는 활동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과 함께 들어가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이라 금방 위기에 처하고 만다. 수키가 마음을 읽는다고 해도 뱀파이어들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고, 겨우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뱀파이어와 변신인간들 틈에서 살아나온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지만 부상負像이 뒤따랐다. 임무를 마치고 다시 자신이 사는 마을 본템프스에 돌아오지만, 여전히 살인사건은 미궁에 빠져 있었다.

 

  위기에 처한 앤디를 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단서를 찾아줄 것을 부탁한 동생 포샤로 인해 수키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게 된다. 그사이 자신에게 수키에게 은밀한 초대장이 날아온다. 빌과 사귄다는 이유만으로 난교파티에 초대를 받은 것인데 그곳에서 살인사건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참석하기로 한다. 하필 빌이 없는 사이에 초대를 받은 수키는 또 다른 뱀파이어 에릭에게 부탁한다. 그곳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보호자가 필요했다. 파티의 내용이나 자신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에릭과 함께 간다는 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살인사건의 전말을 알아야 했기에(포샤의 부탁보다 자신의 동료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난잡한 모습이 자주 드러나는 책 내용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그런 파티에서 사건을 해결해야 하고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에 더욱 마음이 어지러웠다. 수키 또한 '쓰레기 같은 파티'에 구역질 나 하면서도 자신의 동료를 죽인 사람이 누군지 알아낸다. 그러나 숲에 사는 여인 칼리스토가 나타나면서 일은 복잡해지고 만다. 피비린내 나는 결말 앞에 도저히 이 시리즈를 사랑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수키와 빌이 소설의 중점에 있긴 하지만 빌의 존재는 더 미미했다. 수키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많은 도움을 주지만 대부분 사랑을 나누는 장면으로 비춰지기 일쑤였고, 살인사건이 난잡한 성교파티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마음의 문이 닫혀버렸다. 나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인지 소설임에도 책 내용에 인상을 찡그리기 일쑤였다. 이런 찡그림을 현실로 끌어 낸 저자의 글 솜씨를 칭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색다른 소재, 시리즈로 이어지는 이야기,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매력이 있을지라도 별 다른 메시지 없이 인간의 욕망이 난무한 이야기에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이 책을 읽은 또 다른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더니 '네가 보수적이다, 이건 소설일 뿐' 이라는 말이 되돌아 왔지만 내가 느낀 이 기분이 떨쳐지지 않는 사실 또한 어쩔 수 없음에 씁쓸함이 밀려온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다양한 장르의 섞임이 흡인력 있게 다가왔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어두워지면 일어나라>. 이 책의 전편이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독특한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오늘 저녁, 평생을 알아 온 사람들의 진모를 알게 된다고 생각하니, 나도 두려웠다.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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