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지혜 2 (양장) 세상을 보는 지혜 2
뤼신우 지음, 박인용 옮김 / 아침나라(둥지)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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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선물받은 책이였다.. 내 기억으론 한번 펴보고 몇줄 읽어보고 지금까지 덮어버린 걸로 안다.. 요즘 계속 고등학교때 책을 꺼내서 읽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에 비해 책들이 괜찮아서 많은 편견이 깨지고 책의 다양함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 하다...
몇년씩 이런책을 묵혀두고 있었던게 다양함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16세기에 태어나 17세기에 사망한 중국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뤼신우가 쓴 '신음어'에서 발췌한 것이다.. 낯선 인물이지만 여기에 씌어진 글들을 볼때 공자나 맹자처럼 성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도 혼란스러워서 삶의 지침서 같은게 필요했다고 하는데..
어찌보면 지금 우리의 실생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같은 서민보단 정치인들이나 공직에 있는 사람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읽히게 하고 싶은 책이지만...
여기에 적힌 말들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건 분명하다.. 우리 실정에 맞는 이런 류의 책도 많지만.. 옛 성인들이 쓴 글도 한번 보는것도 신선함이라고 생각해 보자...
짧막한 글들이 부담이 없었고.. 따분하지 않았고.. 많은 부분을 공감했던 것 같다.. 읽다가 정말 공감하면서 깨닫고 싶은 몇구절을 메모지에 적어 책상앞에 붙여 놓았는데 자주 보면서 내 자신을 강함과 넓은 안목과 무욕과 삶의 방편을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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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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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상쾌하고 기분 좋을거라 생각했다..
손님은 반가움이 더 짙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받았을때의 느낌은 섬뜩하고 우울해 보였다...
읽고 보니 나의 첫인상이 맞는 샘이 되고 말았다....
전쟁의 고통과 상처를 또 한번 느끼게 되었다...
분단 50년이 넘으면서.. 수많은 전쟁에 관한 글들을 읽었지만..
이 책과 비슷한 내용도 읽었지만 그것은 대부분 남한에 대한 글들이였고.. 북한에 대한 전쟁의 참상은 흔하지 않았고.. 사실이 알려져도 북한과 남한의 정치적.. 역사적 배경으로 볼때 많은 부분을 숨기고 삭제하고... 진실이 거부 되었을거라 생각했다...
거부시켜 버렸지만...
황석영님이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투옥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저지른 죄일지라도.. 그 참상을 알 권리가 있다...
그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떠 맡기고 왜곡하는건 분명 잘못 된 것이다..
전쟁당시 황해도의 대학살에 대한 진실을 알려 주는 이 책이 잔혹하고.. 부끄럽고... 안타깝다... 그렇게 잔혹할 이유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학살자들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서 죽어간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드러난 적들이 아닌.. 함께 생활하며 도우며 살던 이웃에 의해서 처참히 학살되었다.. 외부의 적이 아닌 이웃에 의해 학살되는건 끔찍하고 분통이 터진다..
그러나 그 밑바탕엔 잘못된 의식과 스스로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으므로써 발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 의해 새 세상을 꿈꾸느라 현실을 뒤엎으려 했지만..
그 현실이 감춰질거라 생각했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현실이였고..
절대로 감춰질 수 없는 부분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면 좋겠다.. 왜 이렇게 대치하고 있는지...
왜 그렇게 끊임없는 악행과.. 상처와.. 적대감을 번복하고 있는지...
답답하고.. 그런 사실 앞에 나의 무기력감이 무색하다..
그때의 상처들.. 고통들이 없었던 일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서로가 감싸줄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 무기력감이 사랑을 건네므로써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황해도 사투리가 낯설어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이내 씁쓸함으로 바뀌고 말았다.. 갈 수 없는 곳의 말을 내가 낯익어 할리가 없다...
갈 수 없는 곳이 아닌 갈 수 없었던 곳의 말.. 자주 들을 수 없었던 곳의 말... 그 언어가 날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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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구 어린왕자
생 텍쥐페리 지음, 송희라 옮김 / 책만드는집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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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때 한창 문학에 불타오를때 나름대로 책을 사겠다고..
서점에서 이 책을 골랐던 것 같다... 어린왕자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기도 했고.. 내 친구 어린왕자라고 하기에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이 책을 산 기억이 난다...
그런게 내가 생각했떤 책도 아니였고 읽혀지지도 않아서 그대로 덮어둬버렸다.. 그러다가 작년에 겨우 꺼내서 처음 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그때나 지금이나 페이지가 안 넘어 가는건 사실이였다...
장시간 집중할 수 없어서 조금씩 조금씩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짜증이 났다.. 특히 이렇게 짧막 짧막한 글들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편견애 더 박차를 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중반부쯤 읽다가 비행사인 자신의 이야기 하는 부분을 읽게 되었는데.. 그 순간..
'아.. 이건 생 텍쥐페리의 내면의 소리다.. 편하게 받아들이자'
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더니 정말 예전보다 집중도 잘 되었고.. 편하게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산지 횟수로 7년만에 다 읽었다.. 이렇게 고등학교때 무작정 사둔 책이 몇권 있는데.. 그 책들을 어서 읽어야 겠다는 생각과 어렴풋이 문학에 막 입문하려 할때의 생각이 나서 소리없는 미소가 내 얼굴에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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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크랩의 파파 기도 - 전에는 해보지 않은 새로운 기도
래리 크랩 지음, 김성녀 옮김 / IVP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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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기독교 서적에서 성경읽기와 기도로 얼렁뚱땅 갈급함을 채우려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보이라는 구절을 읽고 얼마나 찔렸는지 모른다.

하루를 감사해하지 않는 것. 신앙인이면서 기도와 말씀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것.

이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성경읽기와 기도라고 생각하고 늘 입으로만 실천해야지 실천해야지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이 책을 만났다. 특별히 제목에 신경을 쓰지 않고 기독교 서적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에 마주하게 된 책인데 내가 요즘 가장 고민하고 취약해 하는 기도에 관한 책이여서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의 영성이 풍족하지 않아 늘 버벅대고 두서 없는 나의 기도가 두렵고 형식적이고 하나님과 만나기를 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에서 나의 문제점이 어디에서 발생된 것인지 정확히 짚어 주고 있었다.

바로 내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것. 그리고 주님께서 나를 알아 주기만을 바라고 나는 주님을 알아가 가기를 거부했던 것. 그 문제점 조차도 직시하지 못했던 것.

나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팍팍하고 무기력 했는지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늘 나의 기도는 주님을 닮아가는 삶, 주님의 자녀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해 달라고 떼만 쓰고 있었지만 과연 나는 내 삶에 주님이 1순위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파파(PAPA- P(present-내어놓으라) A(attend-예의 주시하라) P(purge-쏟아 놓으라) A(approach- (하나님을 1순위로 여기고) 나아가라)) 기도에서 나는 하나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없었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주님께 온전히 내어 놓기, 주님을 1순위로 만들어라는 기도는 정말 나를 뒤집을 수 있는 메세지였다.

간구의 기도도 필요하지만 책에서도 말했듯이 간구의 기도는 제 2순위라는 걸 책을 읽어감에 따라 느끼게 된다.

하나님과 친해지려 노력한 적도 별로 없고 하나님을 알아가기 보다는 하나님께 내 자신을 요구한 적이 많았다. 또한 그 알아가는 방법을 형식적인 성경 읽기와 예배라고 생각했다.

예배와 말씀 묵상하기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 주님께 응석받이 떼 쓰는 아이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고 주님을 이용만하고 스스로 합리화 시켜 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은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기도를 다르게 하며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적극적으로 파파기도를 권하고 있었다.

되려 이런 우리를 보며 주님은 위로를 해주시며 용기를 북돋워 주고 계셨다.

 

그런 주님의 품으로 어떻게 안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주님을 어떻게 형식적으로 알아가며 의지할 수 있겠는가.

평생 주님을 보지 못한채 나의 위주로 삶을 굴려갈 텐데.

그러므로 기도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얻으라고 말하고 있다. 주님을 얻으면 다른 것은 모두 뒤따라 온다고.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했음에도 응답 받지 못한 기도가 있고 응답 받는 기도가 있고 그 가운데 응답받지 못한 기도가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마음에 따라 다르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값지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응답받은 기도를 쭈욱 써보라고 말한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기록을 해보면 기도와 나의 삶이 어떻게 맞물려서 하나님의 이끔을 받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것들, 근심, 걱정거리들이 어떻게 고갈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주님앞에 나의 모든 것, 즉 기쁨, 추함,슬픔, 소망을 먼저 내어 놓아보자.

그리고 저자가 말한 파파기도에 응해보자. 파파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기도의 메세지도 되지만 늘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 될수도 있다.

그 친근함으로 하나님께 다가가자. 그리고 기도하자. 형식적이고 요구가 중점이 되는 기도보다 주님과 친해지고 주님을 알아가기 위한 기도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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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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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는 한 소설을 끝낼때마다 자신이 만든 세계의 명예시민이 되는 영광을 홀로 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 했다.
그런 작가의 명예시민권을 독자들도 누릴 수 있을까.
지금 나는 그런 작가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가야사람이다.

흐르는 역사를 잡아 이 한권의 책에 담아놓은 느낌이다.
흐르는 시간을 한 순간에 떼어내는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가 만들어 놓은 그 순간의 시간을 체험하고 느끼고 살다 이제 막 그 시간을 되돌리고 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가야인이 되어서 가야를 회상한다. 우륵 이외에 많은 사람들의 생을 보았고 그 시대의 고통과 뿌듯함과 고뇌와 기쁨을 누렸다.
가야시대의 단편을 내게 선물(나는 과감하게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해준 작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나는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드럼과 피아노를 배우면서 우리의 고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내 가야금을 배우고 싶어했던 내가 잠시 부끄러워 진다. 분명 학창시절에 음악시간이나 국사시간에 가야때 우륵이 만든 악기가 가야금이라는 걸 배웠을 텐데 가야금이 가야 시대의 금(琴) 이라는 걸 왜 나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가야 시대의 금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야시대때 만들어진 악기라서 가야금이라는 단순한 생각도 잊어먹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지만 묻혀있던 나의 생각을 다시 꺼내서 회생시켜 주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현의 노래를 다 읽고 나서 그런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의 가야금은 우륵의 소리의 뜻대로 울려퍼지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 말이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내가 비유한 우륵의 소리라는 말이 무의미하게 들린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가야가 멸망할때쯤 우륵은 신라로 건너가서 주인이 있는 나라에서 주인이 없는 소리를 신라에서 연주하다 신라 진흥왕의 명아래 계고,법지,만덕 등 3인의 관원에게 가야 고을의 여러 소리를 가르쳐 주었지만 그 3인의 관원이 가야의 소리를 이해해서 그대로 내었는지 신라의 소리로 바뀌었는지 그건 알 수 없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의 세월동안 가야금의 소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잠시 그때의 소리 그대로 가야금 일까 라는 과분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가야금은 모든것이 그러하듯 소리 그 자체의 소리이다. 그뿐이다..
그 자체의 자체인 것처럼 이건 가야 시대의 우륵이야기도 아니고 그 시대의 전쟁이야기도 아니고 가야금의 얘기도 아닌 소리 그 자체의 얘기다.
가야시대때 만들어진 악기라서 가야금이라고 불리우는 의미보단 가야의 여러 소리를 담고 있어서 가야금이라고 불리우도록 의미를 담고 싶다. 가야와 우륵과 가야금에 대한 단편인륜적인 생각.
그 생각을 망각하고 있는게 나았다.

누군가 가야금이 왜 가야금이냐고 물어보면 '몰라' 라고 말해버리도록 망각하고 있었던게 나았다.
이제는 누군가 왜 가야금이 가야금이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륵이라는 악사가 가야 고을의 여러 소리를 12줄짜리의 금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었기 때문에 가야의 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가야금이라고.
그건 역사에 어긋난다. 사실이 아니다. 소설일 뿐이다 라고 말해도 난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가야의 금도 아닌 신라의 금도 아닌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금도 아닌 흘러온 소리. 그 무수한 세월의 소리를 담고 있는 소리 그 자체의 소리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면 좀 더 공평하게 현의 노래라고 말하고 싶다.
현의 노래라.
그 말을 가슴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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