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 작가는 한 소설을 끝낼때마다 자신이 만든 세계의 명예시민이 되는 영광을 홀로 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 했다.
그런 작가의 명예시민권을 독자들도 누릴 수 있을까.
지금 나는 그런 작가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가야사람이다.

흐르는 역사를 잡아 이 한권의 책에 담아놓은 느낌이다.
흐르는 시간을 한 순간에 떼어내는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가 만들어 놓은 그 순간의 시간을 체험하고 느끼고 살다 이제 막 그 시간을 되돌리고 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가야인이 되어서 가야를 회상한다. 우륵 이외에 많은 사람들의 생을 보았고 그 시대의 고통과 뿌듯함과 고뇌와 기쁨을 누렸다.
가야시대의 단편을 내게 선물(나는 과감하게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해준 작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나는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드럼과 피아노를 배우면서 우리의 고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내 가야금을 배우고 싶어했던 내가 잠시 부끄러워 진다. 분명 학창시절에 음악시간이나 국사시간에 가야때 우륵이 만든 악기가 가야금이라는 걸 배웠을 텐데 가야금이 가야 시대의 금(琴) 이라는 걸 왜 나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가야 시대의 금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야시대때 만들어진 악기라서 가야금이라는 단순한 생각도 잊어먹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지만 묻혀있던 나의 생각을 다시 꺼내서 회생시켜 주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현의 노래를 다 읽고 나서 그런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의 가야금은 우륵의 소리의 뜻대로 울려퍼지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 말이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내가 비유한 우륵의 소리라는 말이 무의미하게 들린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가야가 멸망할때쯤 우륵은 신라로 건너가서 주인이 있는 나라에서 주인이 없는 소리를 신라에서 연주하다 신라 진흥왕의 명아래 계고,법지,만덕 등 3인의 관원에게 가야 고을의 여러 소리를 가르쳐 주었지만 그 3인의 관원이 가야의 소리를 이해해서 그대로 내었는지 신라의 소리로 바뀌었는지 그건 알 수 없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의 세월동안 가야금의 소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잠시 그때의 소리 그대로 가야금 일까 라는 과분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가야금은 모든것이 그러하듯 소리 그 자체의 소리이다. 그뿐이다..
그 자체의 자체인 것처럼 이건 가야 시대의 우륵이야기도 아니고 그 시대의 전쟁이야기도 아니고 가야금의 얘기도 아닌 소리 그 자체의 얘기다.
가야시대때 만들어진 악기라서 가야금이라고 불리우는 의미보단 가야의 여러 소리를 담고 있어서 가야금이라고 불리우도록 의미를 담고 싶다. 가야와 우륵과 가야금에 대한 단편인륜적인 생각.
그 생각을 망각하고 있는게 나았다.

누군가 가야금이 왜 가야금이냐고 물어보면 '몰라' 라고 말해버리도록 망각하고 있었던게 나았다.
이제는 누군가 왜 가야금이 가야금이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륵이라는 악사가 가야 고을의 여러 소리를 12줄짜리의 금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었기 때문에 가야의 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가야금이라고.
그건 역사에 어긋난다. 사실이 아니다. 소설일 뿐이다 라고 말해도 난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가야의 금도 아닌 신라의 금도 아닌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금도 아닌 흘러온 소리. 그 무수한 세월의 소리를 담고 있는 소리 그 자체의 소리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면 좀 더 공평하게 현의 노래라고 말하고 싶다.
현의 노래라.
그 말을 가슴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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