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영성
앤드류 머레이 지음, 정혜숙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요즘 성경도 잘 안 읽고 기도도 열심히 하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좀 가깝게 다가가보고자 하고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종교서적이다.

조금은 얄팍한 심리가 있었지만 책을 읽다가 제대로 찔림을 받아 본것도 오랜만이면서도 충격이여서 멍해질 정도이다.

바로 나의 얇팍한 이런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런 문구를 던져 주셨던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생한 교제를 기도나 성경 공부로 대치하려고 하고 있다.(p24)'

 

처음 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 의도가 성경을 잘 안 읽고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읽게 되었다고 했는데 나의 이런 마음을 제대로 꿰뚫고 있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성경공부와 기도로 대치하려 했던 나의 의도에서 가장 큰 실수를 한 것은 역시나 나의 전부를 알고 계신 하나님 앞에 가식적으로 맞서려 했던 것이다.

형식적인 기도, 형식적인 교회 다니기가 얼마나 우리의 영을 갉아먹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였다.

 

그러면서 이 책은 형식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 모든걸 내어 놓으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전부를 알고 계시는 주님께 모든 걸 내어 놓을 때 진정한 교제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특히 하나님과 나의 교제 중에서 가장 친밀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도를 하면서도 내가 편할 대로 기도를 할 때가 참 많았던 것 같다.

얼마나 가식적으로 느껴졌을지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 진다. 이런 나를 아시면서도 늘 사랑해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이 온전히 느껴져 오로지 감사할 뿐이다.

 

또한 내가 하고자 했던 성경공부는 무엇을 위한 것이였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단순히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그 막연함 속에는 성경공부 따로, 나 따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살아 있으되 자신으로부터 결코 분리 될 수 없는 가운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약속을 믿으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책을 읽는내내 내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참 많았다.

기억하고 싶은 문구에다가 메모지를 붙이다보니 책에 메모지가 덕지 덕지 붙어서 지저분해져 버렸지만 그 말씀들만 훑어 보더라도 책의 중점들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을 읽은 시간대가 잠들기 전 깊은 밤이였지만 그 시간들이 얼마나 귀중하고 깨달음의 시간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 말씀 전부가 다 내 마음에, 내 영 가운데 들어왔다고 말할 수 없지만 한꺼번에 이 많은 것들을 취할 수 없듯이 차근차근 알아가려고 한다. 처음에는 말씀이 참으로 좋아 금방금방 읽어 버릴 거라고 생각 했지만 비교적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음에도 뒤로 갈수록 내 안에 흡수가 잘 안되었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이 살아있게 온전히 하나가 되어라고 했는데 어느새 나는 그 일치함을 잊어 버리고 금새 나와 말씀을 분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습에서 나의 간사함을 보았을 뿐 아니라 마음이 아닌 머리로 읽으려 했기에 역효과가 나는 것을 바로 깨달아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한 단락단락을 큐티하듯이 반복해서 읽는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종교서적을 많이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내면으로 깊이 들어 갈수록 영적 교류는 높아지고 그 뜻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였다.

그랬기에 읽기 위주가 아닌 나와 하나님이 하나가 되어 교류를 나눌 때 진정한 말씀의 힘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부터가 고전이지만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의 글들 또한 고전에 속하는 편이라 내면의 완벽한 일치를 끌어내지 못한 시간이 많았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던 것 또한 사실이였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데서 오는 경건함,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다는데서 오는 편안함은 나를 시간시간 되돌아 보게 만들어 주었다.

늘 그렇지만 이러한 깨달음과 느낌들을 오래오래 간직해야 할 것이다.

순간의 감동과 깨달음으로 끝나 버리면 그건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마음을 온전히 지켜가고 키워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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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민음사 세계시인선 47
조지 고든 바이런 지음, 황동규 옮김 / 민음사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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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휴가를 가서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다가 시집이 보이길래 바이런의 시집을 사왔다.. 책을 읽다 언급되는 바이런을 많이 들어 보았고 그래서 궁금했고 우리나라의 시도 그리 많이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외국의 명시에 특히 약했기 때문에 경험을 늘리고자 하던 차에 잘 마련한 시집이였다..
외국시는 번역되는 과정에서(우리나라의 시나 문학이 버역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겠지만..) 우리의 정서에 맞게 번역하기가 힘들어서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뿐만이 아니라 문학이나 다른 장르도 그렇겠지만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절제되어 있는 시가 가장 힘이들지 않을까 라는 생가깅 든다.. 그런 생각을 어느 정도 품고 바리런의 시를 접했는데.. 의외로 잘 읽혀졌고 현재 일겅도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가 바이런의 시 대부분이 압축되어지지 않는 시가 많은 까닭이라 한다.. 그래서 나같은 문외한에게도 나름대로 잘 읽혔던 것 같다.. 몇몇의 시는 현재의 시점에서도 손색이 없는 시가 있어는데 그런 시를 읽을때는 더 가까이 와닿는 느낌이였다..
시에 대해서.. 아니 시에 대한 위대함을 파악할 수 없기에 바리런에게 쏟아지는 찬사에 동조할순 없어도 그의 배경을 알고 읽게 된 시를 희미하게나마 공감하여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때론 아름다웠고.. 위대한 찬사가 쏟아졌다가도 불투명한 내면의 과정을 쏟아낸 시적 감흥을 느끼기도 했다..
시라함은 연령,성별,공간,장소,마음상태에 따라 각자 느끼는 것이 달라 그게 매력이라 했다..
그래서 자주 꺼내서 보려 한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읽히는 대로.. 그리고 지금 끄적여 놓은 이 글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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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의 베네치아
로타 뮐러 지음, 이용숙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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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프라하'를 읽고 너무 좋아서 이 책도 사 놓고서 이제서야 읽었다.. '카프카의 프라하'를 읽지 않았다면 읽기가 수월치 않았을 책이다.. '카프카의 프라하'를 통해 책의 의도와 구성이 익숙한 터라 그나마 쉽게 이해하며 읽었다.. 도시가 만든 작가라는 시리즈로 열린책들에서 이 두권이 나왔는데.. '카프카의 프라하'가 더 괜찮았던 것 같다.. '카사노바의 베네치아'가 별로 라는게 아니라 '카프카의 프라하'가 도시와 카프카를 훨씬 더 잘 엮어 주었는데 카사노바는 16세기의 사람인지라 아무래도 20세기 초의 카프카와는 정보가 조금은 부족했으리라 본다...
카프카의 프라하는 균형의 일치를 보여줬는데 카사노바와 베네치아는 약간 다르게 느껴져서 조금은 아쉬웠다..옮긴이도 말했듯이 베네치아의 균형 보다는 카사노바 쪽에 기울였던게 사실이다...
베네치아의 궁궐.. 성.. 그리고 곤돌라 등.. 도시에 대한 기억은 그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카사노바가 작품을 썼다고 했는데 그런 사실보단느 그의 바람기가 현재 까지 이어지는 지금 그의 연애행각과 그가 저지른 사고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 같다.. 베네치아를 사랑하기 보다는 적절히 이용했다는 말이 더 맞다고 생각되는건 왜일까.. 그의 악명때문일까... 아무래도 나는 카사노바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못한 것 같다..
그러나 16세기로의 베네치아는 카사노바를 통해 그 시절을 만끽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 재미있게..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책이였다....
서정적이고 서민적인 분위기 보다는 귀족사회의 얘기와 항상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래서 베네치아가 카사노바에게 맞지 않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적절히 이용했다는 표현을 썼듯이 베네치아는 그에게 너무나 잘 맞는 도시였다.. 그를 통해 서정적인 걸 꿈꾸었던 베네치아를 잠시 상상해 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 아름다운 도시.. 나는 현재 과연 그런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그리고 만끽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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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0
니꼴라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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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의 단편집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를 읽은지라 고골의 다른 작품이 나와서 보자 마자 구입을 하게 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에서 고골의 작품도 뺄 수 없으니 고골의 새로운 작품이 무척 반가웠다...
역시 나의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무척 재미있게.. 그리고 유쾌한 웃음.. 씁쓸함.. 등을 보여주는 작품이였다...

한 시에 검찰관이 온다는 소문이 퍼진다..
비리가 많던 시장은 분주하게 움직이다 급기야는 여관에서 돈이 떨어져 쫄쫄 굶고있던 14등관리 흘레스따꼬프를 검찰관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온갖 아양과 친절을 베풀며 선량한척 하는데 흘레스따꼬프는 태연하게 거만하게 검찰관인척 하고 시장등 그 시의 주요 인물들에게 돈까지 빌리고 시장 딸에게는 청혼까지 한뒤 유유히 사라진다..
시장은 그런 고위관리가 사위가 된다는 기쁨에 넘쳐서 축제를 하고 있는데 그때 진짜 검찰관이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모두들 굳어 버린다...
정말 고골다운 통쾌함과 풍자.. 그리고 웃음이 있는 희극이였다...
전형적인 러시아적 분위기였고 등장 인물들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였다.. 먼저 시장은 뇌물을 좋아하고 이익이 되는 거라면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든 말든 자신의 폭리를 취한다.. 항상 뒤가 깨끗하지 못하니 자가당착에 바져 멋대로 해석하는 부분이 있는데 흘레스따꼬프를 만났을때 예리한 판단력에도 불구하고 뻔히 드러나는 흘레스따꼬프의 신분과 언행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 화를 불러 일으키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러면서도 시장의 언행속에서 어처구니 없는 유머를 발견하게 되는데 결국은 흘레스따꼬프에게 된통 당하게 된다..
흘레스따꼬프 또한 허풍과 거짓... 거만... 그리고 뻔뻔함까지 갖추며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대도 항상 환상에 빠져 과소비와 자신의 위대함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물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때로는 스스로의 언행에 감탄하면서 그런 허풍과 거짓됨을 즐기기까지 한다.. 그런 허풍과 거짓의 순발력이 능력이라 불리워도 좋을 그런 인물이다..

어쩜 우리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도 흘레스따꼬프처럼 그런 허세아 가식.. 뻔뻔함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시장처럼 자신의 이익면에서는 계산이 빠르고 쉽게 돈을 얻으려 하는 마음들 드러내고 위선을 취하지만 우리는 그런 드러냄을 참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골이 이 희극때문에 6년간 피신해 있어야 했다는데.. 그 시절의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그리고 정말 그런 모습의 당사자들이 얼마나 화를 냈을지.. 분노를 터트렸을지도 말이다..
결국은 자신 감추기인 것이다..
내안의 자신과 드러내는 자신.. 그런 위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모습과 크게 다를바 없는 모습이다..
적어도 우리는.. 아니 내 자신은 그런 위선 속에서 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말 재미있고.. 때론 웃음을 터트리며.. 때론 흥분하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며 읽은 작품이다.. 완성도도 높았고 깔끔한 전개와 캐릭토님에 의한 인물들..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약간의 설명들이 고골의 작품을 읽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19세기의 러시아 문학을 만나 더욱더 반갑고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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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아래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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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휴가를 잡았다..
내한공연 하러 온 공연을 보기 위해 바다와 산... 뭐 그런 곳으로의 휴가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 공연을 위해서 서울에서 휴가를 보내되 그 외에 다른 문화생활도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큰 비중을 둔게 서울에 있는 큰 서점에서 책을 좀 읽고 구경도 하겠다는 포부(?)가 있었는데 첫날 서울에 도착하자 마자 점심을 먹고 간 곳이 서점이였다... 정말 많은 책들과 넒은 매장... 그리고 곳곳마다 사람들이 앉아서 책을 보는게 인상적인였는데 나도 그들 틈에 기어서 읽을 책을 고르다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선 100페이정도의 얇은 두께가 서점에서 읽기에 안성맞춤이였고.. 책 겉표지에 서평이 나를 이끌었다...
1945년 이후로 독일어권 문학에서 이처럼 훌륭한 책을 본 적이 없다는 말... 왜 그런책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과 궁금증이 더해가 나도 바닥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읽어 내려간 책은 덮고 나서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감흥이 있었다...

자동차 고장으로 낯선 마을에 머물게 된 세일즈맨 트랍스는 옛날에 법조인이 였던 노인의 집에 하룻밤 묵게 된다..
그 노인은 숙박비 대신 같이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그 게음은 같은 법조인이였던 이웃 노인들과 재판을 하는 게임이였다..
그 노인들중에는 판사, 변호사, 검사, 사형집행관을 지냈던 사람들이 유명했던 사람들을 피고로 놓고 재판을 하는 게임이였는데 최고의 형은 역시 사형이였다..
최근 들어서는 트랍스처럼 민박 손님을 놓고 게임을 하는데 그날은 트랍스가 피고였다.. 트랍스는 흔쾌히 피고를 자칭했고 게임은 시작 되었다.. 트랍스는 죄를 인정하고 죄를 솔직히 털어 놓으라는 변호사 노인의 말에 자신은 죄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하다보니 몇년전 죽은 직장 상사의 죽음이 계획적인 살인이였다는 판결과 사형을 언도 받게 된다..
처음에는 고의적인 살인이라는 사실을 트랍스는 인정하지 않지만 논리정연한 언변에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런 사실을 알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시 태어난 것 같다며 그 노인들에게 즐거운게임이였다며 돈독한 정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그날 저녁 트랍스는 자살을 하고 만다...

책을 읽으면서 트랍스가 자살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복선이 얼핏 느껴지기도 했는데 결과가 정말 그래서 나도 충격을 받게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트랍스의 죽음이 어떤 죽음이였는지 자꾸 생각하게 되었는데 옮긴이의 말처럼 트랍스는 죄책감 때문에 자살을 한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결을 받을때 트랍스는 부정을 했지만 인간적으로.. 정말 죄를 추궁하는게 아닌.. 양심을 가볍게 해주자 트랍스 자신도 인정하게 되고 홀가분해 하며 새로 태어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 마음만으로도 트랍스는 죄를 인정함과 동시에 죄책감이 아닌 양심의 가책을 털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트랍스의 죽음은 죄책감이 아닌 홀가분한 양심의 황홀경에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 죽음이 트랍스에게는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게임을 주관한 노인들은 트랍스가 좀더 행복한 삶을 살도록.. 자신도 모르는 잘못을 짓지 않도록.. 그런 삶을 바랬을 것이다.. 트랍스 자신은 그 죽음이 비극적이지 않았겠지만...
남겨진 노인들에게는 그의 죽음이 충격적이고 안타깝고 죄책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 그의 죽음이 충격이였지만..
천천히 곱씹다 보니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이 안타까웠을 뿐...
그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게 올바른 방법이라 말은 하지 못하지만 두렵고 충격적인 죽임이 그런 식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접근 방법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내가 과연 그런 판결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내가 만약 피고의 자리에 서게 된다면 어떤 잘못이 드러나게 되며 나의 양심은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될까..
트랍스의 선택이 이해가 되었지만..
나의 양심의 꿈틀거림에는 아직 해답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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