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파스타 만들기 일공일삼 50
샤론 크리치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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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이 났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겨우 오늘 내게 온 책을 블로그에 올리고 나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해도 짜증이 가시질 않았고,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싶어 더 한심해졌다. 자꾸 머리맡에 대충 던져둔 내게 온 책 세권이 걸리적거려 평상시 나 답지 않게 다른 쪽으로 책을 휙 던져 버렸다.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아 눈에 안 보이게 책을 치워 버리려 책을 집어 든 찰나, 세 권의 책 중에서 이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알랭 드 보통 신작도, 궁금했던 아베 코보의 책을 제치고 샤론 크리치의 책이 눈에 밟혔던 이유는 무엇일까. 겉표지의 저 순박한 웃음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샤론 크리치의 책을 읽고 나면 늘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 생각나서였다.
 

  나의 기분을 달래 줄 책은 이 책 밖에 없겠다 싶었지만, 여전히 찜찜한 기분을 털어 버리지 못하고 누워서 책을 펼쳤다. 아이들 책이 여서 글씨도 큼지막해서 부담도 없었고, 여차하면 팔이 아프다는 핑계로 덮어버릴 심산이었다. 그러나 샤론 크리치 특유의 흡인력으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그리곤 울다가 웃다가 혼자서 별의 별 짓을 다하며 책을 덮었을 때에는 내가 왜 짜증을 내었는지, 내가 요즘에 하고 있는 고민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경험한 것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거기다 아이들이 읽는 거라고 잘 쳐다보지 않은 책에서 느낀 것이 고맙고 감사했다.

 

  책 속의 소녀 로지도 나만큼이나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단짝 남자 친구 베일리가 로지에게 "그렇게 잘난 척 좀 하지 마, 로지!"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동갑에다 비슷한 날짜에 태어나 옆집에서 지금껏 같이 자란 베일리에게 그런 말을 들은 로지가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짝인 베일리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화가 나기도 했지만, 왜 베일리가 자신에게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로지의 기분을 알아채고 토렐리 할머니는 로지에게 수프를 끓여 준다. 재료를 다듬는 것부터 수프를 만드는 과정에 로지도 함께 하면서 할머니는 정확한 때에 로지에게 질문을 던졌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으로 로지의 기분을 달래주었을 뿐 아니라 미각까지 행복하게 해주었다.

 

  로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왜 베일리가 로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베일리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로지는 그런 베일리를 많이 도와주었고, 좋아했으며 소중한 단짝으로 생각했다. 베일리는 로지처럼 글자를 읽을 수 없어 점자책을 보는데, 베일리를 기쁘게 해 주려 1년 동안 힘겹게 점자책 읽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베일리 앞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점자책을 읽었을 때 로지는 베일리에게 잘난 척 그만 하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리고 문을 꽝 닫아 버린 베일리의 태도에 충격을 받고 기분이 언짢아 있을 때 토렐리 할머니는 로지가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도록, 또한 로지가 베일리에게 한 행동과 베일리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베일리는 점자책을 읽는 것이 로지가 할 수 없는 것 들 중 하나로 여기고 있었는데, 자신 앞에서 너무 쉽게 읽어 버렸기에 상실감이 컸던 것이다. 할머니의 위로로 베일리에게 사과를 하러 간 로지에게 베일리는 점자로 된 '미안해'란 쪽지를 건넨다. 그 부분에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잠시나마 베일리가 보는 어둠이 조금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로지는 베일리에게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었다. 다른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악을 쓰고 울었던 것이나, 재닌이라는 여자애가 이사 왔을 때가 그랬다. 베일리에 대한 로지의 생각은 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좋아하는 베일리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다른 여자 애한테 관심을 두는 것이 싫었다. 그런 마음이 이해가 갔기에 어린 아이들이지만 둘의 알콩달콩 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다. 그러나 로지의 질투는 때론 도가 지나칠 때가 있었으므로 늘 토렐리 할머니의 중재가 필요했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할머니는 요리 솜씨가 뛰어났고, 아직도 이탈리아 말을 섞어서 대화를 하셨다. 그런 할머니에게도 현재 로지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인 파르도를 두고 미국으로 떠나 왔을 때, 그의 사고 소식, 그의 사촌의 등장으로 인한 삼각관계 등 그 모든 이야기를 로지와 베일리에게 들려주었다. 늘 요리와 함께였고, 그 둘의 대화가 필요할 때마다 할머니는 자리를 비워 주었다. 할머니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는 로지와 베일리의 일상은 그렇게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지나갔고, 할머니로 인해 행복의 맛이 진해져 가고 있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도 무척 가슴 아팠다. 먼 타국에 떠나와 사랑하는 사람도, 가족도 다시 만나지 못했는데 그들은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쾌활했고, 지혜도 있었으며, 요리 솜씨가 좋았다. 훌륭한 요리로 손녀와 손녀의 남자친구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꼭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소설을 보는 것 같아 나도 저런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특히 로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베일리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고 있을 때도, 질투심에 눈이 멀었을 때, 질투를 유발한 친구를 초대하기에 이르렀을 때도 모두 토렐리 할머니의 이야기와 요리가 있었다. 할머니 또한 로지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때로는 회한의 눈물을, 때로는 자기 고백으로 인해 상처 치유와 지혜를 드러내기도 한다. 로지는 할머니가 들려 준 '아기' 이야기를 듣고,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쓰잘때기 없는 걱정과 고민거리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할머니가 준비한 파스타로 이웃들과 가족과 함께 파티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짧지만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행복한 파스타 만들기>는 나를 울리고 웃겼으며, 뿌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일상의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의 차이에 따라 세상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를 알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느낀 것이 무엇인지 수면 위로 띄우지 못하고 있을 때 옮긴이가 조목조목 짚어 주어 도움을 주었다. 첫 째는 장애인을 보통 아이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고 두 번째는 세상에는 나, 친구, 질투심, 경쟁같이 사사로운 문제보다 중요한 기본 가치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로지와 베일리, 토렐리 할머니와 그 외의 인물들을 통해 저자는 옮긴이가 말한 사실들을 너무나 잘 보여 주었다. 거기다 토렐리 할머니의 요리와 이탈리아 말들은 또 다른 즐거움이 주었으니 나의 찌뿌듯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러면서도 로지와 베일리의 성장과 우정, 끈끈하게 이어질 것 같은 사랑까지 너무나 순수해 보여서 되레 내 마음이 맑아진 느낌이었다. 어른들은(나를 포함해) 상대방을 볼 때 조건, 외모, 배경으로 판단하기 일쑤인데 로지를 비롯해 베일리를 보는 사람들이 시선이 좋았다. 그런 로지의 마음을 알아주는 베일리도(약간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장애를 보지 않고 순수한 베일리를 보는 로지가 너무나 예뻐 보였다.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시련이 있을지라도 둘의 우정과 사랑이 지금과 같았으면 좋겠다는 도를 넘은 생각까지 해본다(역시 어른인 나는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 좋아하며, 결론에 귀결시키려 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둘이 너무 예뻐 보이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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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 영화광 가네시로 가즈키의 열혈 액션 드라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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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춤추는 대수사선> 영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영화 속 무로이란 인물에 환상을 품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가네시로 가즈키의 신간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작가 중에서 드물게 전작하는 작가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무로이씨에게 잠시 관심을 돌려 줄 것이 왔다 싶어 들뜬 마음으로 책을 손에 쥐었는데, 제목이 어딘가 많이 낯익었다. 얼마 되지 않아 <춤추는 대수사선>에 SP 글자를 새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왔던 것이 생각이 났다. 우연치고는 기가 막히다 싶어 이 책의 정보를 찾아보니 <춤추는 대수사선>의 원작 시나리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 그 순간 무척 흥분하고 말았다. 그래서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는데, 이런 흥분을 보다 못한 몇몇 분들이 <춤추는 대수사선>의 원작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SP> 드라마 감독을 맡았다고 알려주었다. TV 드라마로 히트 친 것은 맞지만, <춤추는 대수사선>과는 관련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왜 그렇게 김이 빠지던지. 가네시로 가즈키, <SP>, <춤추는 대수사선>이 3박자를 이루어 나를 즐겁게 해주는 줄 알고 있다가 맥이 풀리는 일화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일화는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인 만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을 모두 읽고, 신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작가 중 한명이기에 새로운 작품 앞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 전에 출간된 것이 <영화처럼>이라는 소설이었으므로, 그가 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지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나리오라니. 거기다 TV 드라마로 만들어졌었고, 히트까지 쳤다고 하니 무척 궁금했다. 책을 읽기 전 배경 인물들을 보며 여전히 <춤추는 대수사선>의 인물들과 겹쳐지는 나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지만 두 작품이 상관이 없다고 해도 어느 정도 겹치는 이미지는 어쩔 수 없었다.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와 <SP>의 이노우에가 그랬다. 무로이와 연결시킬 인물을 탐색했지만(처음엔 오카타와 연결시켰지만, 오카타의 양면성에 마음을 돌렸다.) 결국 실패했고, 책을 읽어 보니 그런 비교가 얼토당토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SP(Security Police, 요인경호관)의 일은 말 그대로 경호를 하는 일이므로 어떤 사람들을 경호하고, 그 안에서 이노우에가 어떠한 활약을 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가 될 것 같았다.

 

  총 5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데, 이노우에가 SP 훈련을 받을 때의 이야기는 따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들의 임무가 경호인만큼 의뢰인을 경호하면서 얽힌 일들을 그려내고 있었는데, 시나리오라서 그런지 소설처럼 완벽하게 읽히지 않았다. <SP> 드라마를 보았다면 모를까,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 내가 시나리오만 보고 그 모든 것을 상상하기란 녹록치 않았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이노우에의 비상한 능력과 독특함을 감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에피소드가 펼쳐질 때마다 그 낯섦을 마주하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달아 갈 뿐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을 글로 써냈다고 생각해 보자. 장면을 봤다면 글로 써냈다고 하더라고 상상하기 쉬울지 모르지만, 장면을 보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독자인 내가 상상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영화를 찍는 사람들, 배우들에게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글로 씌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여전히 내게 어려웠다.

 

  가장 곤욕을 치렀던 것은 인물의 파악이었다. SP들의 정기적인 출현으로 대강의 인물을 파악했다지만,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장소와 상황, 주변 인물들이 변하는 것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화면으로 비춰진 영상이라면 장면의 이어짐으로 인해 필요한 것들만 받아들일터인데, 모든 것을 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낯설었다. 거기다 액션 장면이 많았기에 그야말로 곤역이 아닐 수 없었다. 업치락뒤치락 하는 것까지 일일이 읽어내야 한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 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장면의 변화도 많았고, 경호의 일 외에 이노우에의 어릴 적 트라우마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궁금증이 나다가도 일순간 짜증이 일기도 했다.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일들은 계속 나오고, 작가의 개인적인 주석까지 읽다보니(재미있는 부분이 많았음에도)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 의욕을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시나리오의 특징 상 책의 페이지는 순식간에 넘어갔는데, 그렇기에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바이다(줄거리도 포함해서).

 

  SP의 경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호도 이노우에가 등장하면 큰 사건으로 돌아가는 것을 저자의 의도라고 해도, 그들이 경호한 사람들은 내로라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사건이 꼭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의뢰인은 내각 총리대신을 비롯해, 도쿄도지사, 전 총리대신을 비롯해 증권 조작으로 신변을 위협받는 증권사 직원도 있었다. 의뢰인의 모습이 비춰지기 전에 늘 어딘가에서 그들을 노리는 일당들의 모습이 그려졌고, 중요한 시기마다 그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악을 감지하며, 일반인들보다 시각이 좀 다른 이노우에는 늘 그들을 먼저 발견한다. 좀 털털한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능력과 소신을 드러내며 일을 처리하는 이노우에를 고깝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의 동료와 계장 오카타는 늘 그를 신뢰하는 편이었다. 저자는 그들이 하는 일의 의미를 종종 부각시키기도 했는데, 그들의 목숨을 걸고 의뢰인을 보호하는 것이 임무인 만큼 그들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힘든 일을 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시나리오라는 장르의 특성 때문인지 무언가 한 가지를 부각시키며 볼 수 없었다. 저자의 시선도 아닌, 이노우에의 시선도 아닌, SP 자제의 시선에서도 볼 수 없었기에 그 모든 이야기의 흐름은 하나의 덩어리로 두루뭉술하게 내 머릿속을 굴러다닐 뿐이었다.

 

  거기다 이 시나리오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다. 드라마도 아직 결말이 아지 않았고,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피소드 하나가 끝날 때마다 미진함이 느껴져서 허무하기도 했는데, 오카타의 양면성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시나리오는 끝이 난다. 다른 분들의 의견을 찾다보니 광적으로 드라마를 보다가 결말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짜증을 냈다고 하는 분도 있어 되레 위로가 되었다. 결론이 났다면 모를까 드라마를 찾아 볼 용기도 나지 않았고, 시나리오라는 장르에 답답함이 느껴져 가네시로 가즈키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그러나 영화광이라는 저자의 말마따나 곳곳에 그의 애정과 노력이 보여 경의가 표해지기도 했다. 영화의 장면을 상상하며 글로 써낸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를(저자는 즐겁게 임했겠지만.) 인식하게 되었을 뿐, 시나리오를 써 낸 저자가 마냥 신기했다. 그의 팬으로써 색다른 경험을 한 것은 좋았으나, 드라마를 찾아 비교해 보지 않는 이상 이 작품은 나에게 안개와 같은 탁함이 존재할 것 같다. 순전히 나의 취향과 읽기의 문제였다고 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런 마음이 뒤집어질 수 있도록 언젠가는 이 작품의 영상을 만날 날을 기대하며, 가네시로 가즈키와의 색다른 여행을 마친다.

 

 

오탈자

 

p. 23

 

사사키 "의아한 듯 구청에서 일하는데도 밤에 저렇게 급한 일이 생기나요?"

"의아한 듯"은 괄호가 들어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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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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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많은 작품 중에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가가 형사 때문이었다. <붉은 손가락>을 읽고 가가 형사가 인상 깊이 남아 있었는데, 마침 '가가 형사 시리즈'가 출간 된 것이다. 그 가운데 가가 형사가 처음 등장하는 <졸업>을 먼저 선택했다.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시리즈도 차근차근 읽어보고 싶어서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책들은 멈춤 없이 읽을 수 있기에 손에 닿기만 하면 순식간에 읽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긴 시간을 방치해 버렸다. 막상 책을 꺼내서 읽고 보니 어떻게 이런 책을 오랜 시간 방치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책을 읽고 나자 '대단하다','재미있다'라는 감탄사 보다 눈이 팽팽 돌았다. 평상시에도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 데 책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과하게 눈을 굴리며 읽었더니 어지러울 정도였다. 차분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사건의 중심에서 탄력을 받으니 그 흐름을 좇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비교적 차분한 문체였음에도 오히려 그런 차분함에 감질 맛이 나서 더 빨리 좇아가려 애를 썼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범인을 예상했지만 예기치 못한 실체가 드러나 조금 놀라기도 했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유의 인간미가 느껴져 비교적 순응하여 받아 들였다. 대학 생활 4년을 마무리 하는 졸업이라는 시점을 앞 둔 7명의 친구들은 결국 4명만이 남은 채 씁쓸한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고등학교 동창에다 같은 대학을 다니는 7명의 친구인 가가, 사토코, 나미카, 도도, 쇼코, 와코, 하나에는 자주 어울려 다니며 우정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커플이 형성이 되었는데 도도와 쇼코, 와코와 하나에가 커플이었고, 책의 시작에는 가가가 사토코에게 고백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가가와 나미카는 검도 부원이었고, 와코와 하나에는 테니스 부에서 활약을 펼칠 정도로 운동에 소질을 보이는 친구가 많았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대학 생활도 쇼코의 죽음으로 혼란을 거듭해 간다. 여학생들만 기숙하는 백로장에서 쇼코는 그은 손목을 싱크대에 담근 채 죽어 있었다. 그 모습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옆방에 기숙하는 나미카였고, 쇼코의 죽음은 자살로 판명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쇼코의 피를 닦은 흔적과 다른 방에 기숙하는 여학생이 쇼코 방을 방문했을 때와 나미카가 방문했던 모습이 달랐기에 타살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고 있었다.

 

  모두들 쇼코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가운데 연인인 도도는 정신을 놓고 있었고, 고등학교 은사인 미나미사와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나름대로 조사를 하고 있었지만, 쇼코와 가깝게 지낸 만큼 사토코는 쇼코의 사건을 해결해 보려 이리저리 조사를 한다. 가가도 자기 나름대로 사건을 조사하며 해결해 보지만 여전히 드러난 것이 없어 미궁 속을 헤맬 뿐이었다. 그나마 가가는 친구들 중에서 가장 냉철하고 날카로운 판단으로 쇼코의 죽음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펼쳐 나간다. 그러나 쇼코의 죽음이 가시기도 전에 나미카의 죽음이 연달아 닥쳐 모두의 혼을 빼놓는다. 나미카의 죽음은 더 이해할 수 없었는데, 미나미사와 선생님 집에서 다도회를 하던 중 나미카는 쓰러졌고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독극물에 의한 사망이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다도회에서 설월화 게임을 하던 중 나미카는 죽음을 당했고, 범인은 다도회에 참여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일 터였다. 그러나 다도회에 참여한 사람은 친구들과 은사님이었는데, 도대체 누가, 왜 나미카를 죽였을까.

 

  가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사건의 해결이 더 빨리 진행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가가는 그 자리에 없었고 사토코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에게 전해들은 것으로 추리해 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나미카는 사토코가 찻잔을 돌린 후 사망했기 때문에 가장 의심을 받고 있었다. 연달아 일어난 두 친구의 죽음 앞에 충격도 충격이지만, 범인이 친구들 가운데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은 더 괴로웠다. 쇼코의 사건도 미궁에 빠진 채였는데, 나미카까지 죽자 가가와 사토코는 두 사건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 사건이 해결되지 못할 것 같았고, 실재로 범인이라면 그들 그룹을 잘 아는 사람일거라 생각했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 그들을 용의자로 생각하며 바라본다는 것이 더 힘들었다. 가가만이 냉정하게 생각하고 추측해 나갔지만, 이번 사건의 중요한 열쇠를 가지고 있는 다도회에 빠진 이상 많은 것들을 놓쳐 버린 느낌이었다.

 

  저자는 사건의 실마리 해결을 위해 여기저기 복선을 깔아 놓았다. 그 복선이라는 것이 눈에 띄지 않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날카로우면서도 반듯한 가가의 인물됨을 참조한다면, 그런 분위기에 어긋난 작은 행동과 말들로 추측할 수 있었다. 인물을 묘사할 때 드러나는 작은 특징들로 조금씩 추측해 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었기에 쇼코를 죽인 범인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고, 그 추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서 범인의 밝혀짐보다 그 과정을 풀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게 드러나므로 왜 그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지를 꼭 알아야 했다. 분명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설월화 게임에서 중요한 단서들이 흘러나왔을 텐데도 나는 별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림까지 그려가며 그날 있었던 설월화 게임을 설명해 주고, 부연 설명도 따랐지만 읽는 내내 완전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설월화 게임을 이해하기에는 내 머리 회전은 둔했고, 가가가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그것이 더 궁금했다.

 

  가가는 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작은 단서들을 시발점 삼아 하나씩 구체화 해 갔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설월화 게임의 트릭을 발견한 후, 범행에 사용됐던 그 복잡한 과정을 추리해 나간다. 가가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런 가가의 뒤를 좇는 것만으로도 흥분 되었다. 그러나 복잡하게 풀려가는 사건의 전말이 모두 밝혀진 후에는 씁쓸함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 모두가 친구였다는 사실과 오랫동안 쌓아온 우정이 흔들린 것은 물론, 배신과 복수가 뒤얽힌 할큄으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작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친구들의 내면의 비틀어짐, 한 순간의 실수와 욕심 때문에 세 명의 친구들은 목숨을 잃어 버렸다.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떠나 그들이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공감이 가면서도 너무 허무했다. 한때의 열병처럼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청춘의 덫은 그들을 끝내 파멸의 길로 끌고 가고 말았다.

 

  가가 교이치로의 활약상과 형사로써의 자질,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서 키워진 인물상을 모두 지켜보았지만 역시나 그 배경은 유쾌할 리가 없었다. 사회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면서 교훈을 잊지 않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많은 것처럼, 가가라는 인물에 만족을 느끼면서도 가가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안타까웠다. 특히나 이 작품은 한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사회로 막 발돋움 하려는 현실에 놓인 청춘의 비극을 다루고 있기에 안타까움이 더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가 교이치로를 주목하지 않기란 여전히 힘들다. 그가 다른 소설에서 어떠한 활약을 펼치는지, 그의 사랑, 집안 내력, 형사가 되는 과정 등이 궁금하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그 과정을 차근차근 다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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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퇴근한 뒤 집에서의 내 행동을 보면 그날의 심경을 알 수 있다. 책을 바로 펼치면 나의 마음이 가장 평온할 때이고, 책도 보지 않은 채 인터넷 서핑만 하며 시간을 때울 때는 분명 내가 피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어제가 그랬다. 월요일은 몸이 아파 누워버렸다 치더라도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는 화요일,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보냈다. 머릿속으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계속 울려대는 데도 무시하고 멍하니 인터넷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을 보니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순간 이렇게 하루가 무심히 흘러가는구나, 오늘도 영락없이 허무하게 시간을 때워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져 버렸다. 컴퓨터를 끄고 누워서 뒹굴 거리니 새로 정리한 책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책을 보고 있어도 손이 쉽게 뻗어지지 않아 무거운 마음에 무게만 더한 채 여전히 뒹굴 거리는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번 주는 대대적인 책장 정리를 하느라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다. 1,100권의 책을 빼고, 새로운 책장에 책들을 나눠서 정리하니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버렸는지 모르게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책장을 정리할 때, 침대 옆의 책장에 누워서 손을 뻗어 가장 가까이 닿는 곳에 읽다 만 책들과 읽어야 할 책들을 배치했다. 순전히 게으른 나의 성향 때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젯밤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자니 내 손이 뻗치는 곳들의 책들이 계속 눈에 아른 거렸다. 마음이 몹시 무거웠음에도 멍하니 그 책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손이 뻗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가운데 최근에 읽다 만 책을 추려내니 장영희 교수님의 책이 손에 잡혔다. 아껴서 읽을 정도로 좋아한 책이었는데, 책장 정리한답시고 읽기의 흐름이 끊겨 버린 터라 서운해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책을 꺼내 들었는데, 왜 이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는지 하루가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러운 생각마저 든다.

 

  이 책 속의 수필들은 모두 샘터에 연재된 원고들을 묶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보니 다양한 글이 많았는데, 저자의 일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재로 한 터라 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연재한 것들을 묶다 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는데 그야말로 재미나고, 슬프고, 감동적이고, 공감 가는 글까지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는 흡인력이 있었다. 그러다 "괜찮아" 란 글을 읽다 눈물이 나고 말았다. 저자가 어린 시절 불편한 다리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지 못하고, 집 앞 계단에 앉아 구경하고 있는데 깨엿 장수가 와서 엿 두개를 주며 "괜찮아" 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담긴 글이었다. 그 이야기도 마음이 찡해졌는데, "괜찮아"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곳에서 펑펑 울어 버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네 편이니 넌 절대 외롭지 않다'는 격려의 말, 이 말을 늘 내게 해주던 지인이 생각나서였다. 분명 일상을 피하고 있는 나에게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늘 엄습해 있었는데, 그 구절을 읽는 순간 어디선가 나를 향해 그런 말을 해 주는 지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모른체하려 했던 내 마음을 들켜 버린 양 감정이 무너져 버렸다.

 

  그 전까지는 저자의 글이 바로 내 주변에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달착지근하게 들렸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마치 내 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착각이 일어 한 없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현재 내가 당면한 내면을 파고드는 글을 만나면서부터 저자의 글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바뀌어갔다. 그냥 흘려버리는 글들이 아니라 그 글을 쓰고 있는 저자의 내면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고(저자는 늘 마감일에 쫓겨 글 소재를 찾느라 분주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저자를 떠올리니 마치 그녀의 일기를 읽는 것만 같아 마음이 저릿해지곤 했다. 암 환자로 불리기 싫어했으나 암 투병을 하면서 죽음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아련함 또한 다르게 다가왔다. 글을 쓸 당시에 언젠가 올 죽음을 배제한 채 썼다 하더라도, 저자의 죽음 뒤에 만난 글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이 그녀를 다른 세계로 데려갔다는 상실감보다, 평범한 다른 이들처럼 일상의 지루함과 자신을 다독이는 내면의 갈등 속에서 생활해 가는 모습이 처연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죽음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그녀가 하루하루 소중하게 살다 간 흔적들이 남아 있는 일상이므로 그것들만 생각하기로 했다. 글 쓸 소재를 찾기 위해 분주한 모습, 털털한 자신의 성격, 황당한 에피소드, 마음을 찡하게 하는 자잘한 사건들은 저자의 내면을 거쳐 왔음에도 별 다른 꾸밈없이 독자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교수라는 타이틀도, 장애인이라는 덧씌워진 시선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인간 장영희를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글들이 많았다. 그런 모습 때문에 독자인 나도 맘 놓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자신의 버릇이나 소소한 내면을 토로할 때면 맞장구 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저자가 겪은 경험으로 인해 간접경험 할 수 있어 색다른 묘미를 느끼기도 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학생들의 이야기, 학교 이야기, 틀에 박힌 일상의 이야기도 많았지만 그런 글 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향해 나아가는 저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저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영문학 교수이며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만으로 나름대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시선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지난한 희망을 말 할거라고, 어쩌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를 듣게 될 거라고 생기 없는 눈빛으로 대하다가 5월에 소천 하셨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했음에도 이제야 내게 손길이 닿은 그녀의 작품은 나의 편견을 철저히 깨어 주었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글에 반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꾸밈없음, 솔직함, 더불어 독자를 평안히 이끄는 글 솜씨까지 그녀의 글 속에 녹아있는 모습은 순수한 저자 자신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찔러댔다. 나는 누구인가, 과연 내 자신과 진실 되게 당면해 본 적이 있는 가란 질문이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쉰이 넘은 교수도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나아가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누구냐?" 란 소제목의 글이 나의 생각을 더 관철시켜 주었고, 토마스 머튼이라는 신학자가 했다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참된 기쁨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 것이고,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라는 말이 때 마침 내 마음에 안착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를 알았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최소한 내가 무엇을 발견해야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조금이나마 해답을 찾은 셈이다. 읽는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답을 얻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문학의 매려이지만, 이 책에서 내가 찾은 질문은 내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글을 통해 29살인 내가 이제야 내 자신을 찾으려 한다는 말이 철딱서니 없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저자도 나이에 상관없이, 살아온 삶의 과정에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드러냈으므로 나도 용기를 얻어 본다.). 부디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하시길 바라며, 좋은 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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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책장이 도착한다. 월요일에 주문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지낸 날들하며, 책들이 쌓여 갈 때마다 답답했던 마음을 싹 날려 버릴 수 있는 날이다. 책장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아 침대 옆에다 넣다 보니, 집에 도착해서 바로 침대를 빼고 바닥을 청소했다. 침대가 15년 전 언니가 신혼 때 사온 침대라 무척 구식이다. 나사를 풀어서 해체하고 조립해야 하는데, 침대 자체가 너무 무거워서 진땀을 뺐다. 침대를 빼고 보니 바닥에 먼지가 장난이 아니어서(몇 년 간 청소한 일이 없다. 그 먼지를 내가 다 먹었다 생각하니 바로 기침이 나올 것 같았다.), 청소하는데 만 한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침대를 거실에 빼놓고 빈 벽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지저분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역시나 10년 전에 이사 오면서 도배, 장판을 안해서인지 무척 우중충했다.
 

  4시 반에 도착한다는 책장이 6시가 되서야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책장이 3개였는데, 아저씨 혼자서 낑낑대며 올라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작아 책장이 들어오지 않아 아저씨는 계단으로 올라오셨다. 그래도 2개가 남자 엘리베이터 천장을 뜯어내고 책장을 겨우겨우 실을 수 있었다. 나도 따라 내려가서 책장을 실고 내리는데 약간 도왔다. 드디어 내 방으로 옮기는데 집에 어른은 나뿐이라서, 배송 온 아저씨와 둘이서 날랐다. 책장을 나르다 발등에 영광의 상처를 입었지만, 책장이 들어온 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해서 대충 반창고만 붙여 두고 계속 도왔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들이고 보니, 집이 오래돼서인지 수평이 맞지 않았다. 바닥과 벽이 삐뚤어서 나무판 얇은 것을 대어 책장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켰다. 그렇게 십 분여를 실랑이를 하고나서 책장이 드디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말복인 오늘, 땀을 뻘뻘 흘리며 책장을 날라다 준 아저씨가 고맙고 미안해서 물 한잔과 땀 닦을 수건, 아저씨도 발가락을 다치셨기에 대일밴드를 드렸다. 아저씨는 가시기 전에 거실의 책장과 내 방의 책장을 보시더니, 온 집에 책뿐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아,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장 정리만 남았다.
 

 

 

원래는 책장을 천장까지 맞추고 싶었으나 거실 책장 높이를 2.2m을 한 바람에 계단으로 옮긴 기억이 있어서인지 형부가 급구 말리셨다. 그래서 10cm를 줄인 2.1m로 했는데 위 공간이 조금 보기 싫게 남아 버렸다. 칸을 막기가 그래서 오픈 형으로 했는데, 저기에 무엇을 올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급한 건 그것이 아니라 저 책장 안에 쌓인 책들을 내 맘에 들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책꽂이에 넣을 책은 약 600권 정도였고, 장르별로 구분해서 넣고 싶었다.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나의 손길이 자주 가는 곳에, 안 읽는 책들은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넣고 싶어 책이 장르별로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음에도 한 권씩 꽂을 때마다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선은 책장에 책을 넣으면서 분류를 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꽤 많이 걸렸는데, 맘에 드는 곳에 꽂아도 옆 칸과 책들이 맞지 않거나 분류할 장르가 너무 많아 계속 책장 안에서만 헤매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오늘 다 못 끝낼 것 같아 잠시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책이 절반 쯤 들어갔을 때, 당황하고 말았다. 다름이 아니라 책장에 책이 많이 꽂혀 있음에도 꽂아야 할 책이 너무 많이 남아 버린 것이 아닌가. 거기다 제일 아래 칸은 침대 높이 때문에 일부러 가장 크게 만들어서 책을 꽂을 수가 없어 공간은 더 줄어들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책을 꽂다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 못 꽂을 것 같았고, 세분화된 책 정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운이 빠져 버렸다. 정말 고대하던 책장을 주문하고, 이렇게 책이 왔건만 다 못 꽂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우울했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기존에 있던 책장에서 빼 버린 책장 하나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책장은 동네 책방이 폐업할 때 얻어온 <CCTV 작동 중> 스티커가 붙어 있는 책장이었다. 기존의 책장을 25cm 옆으로 당기는 바람에 너무 답답해서 빼 버린 책장이었는데, 책장이 부족하다 보니 그 책장이 아쉬웠다. 그래서 궁리 끝에 침대의 머리가 들어올 곳에 넣어봤는데, 침대 높이 때문에 책장 3칸을 고스란히 쓰지 못함에도 위로 5칸을 쓸 수 있어 그대로 넣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침대와 책장 사이의 약간의 공간이 있어서 그 책장이 들어와도 문제가 없었다. 그 책장까지 포함해서 책들을 넣으니 공간이 얼추 맞아, 멈췄던 책 분류에 다시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책장 정리를 위해 집에 좀 빨리 퇴근해 4시가 조금 못 되어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책장 정리를 끝내고 보니 11시 반이었고, 저녁은 대충 책장 정리하면서 때운지라 고스란히 청소하고 정리하는데 7시간 이상을 쏟아 부은 셈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대충 정리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고대하고 기다린 만큼 내가 만족하는 책장의 모습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비교적 느긋하게 정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러버린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책장을 보니 너무 뿌듯했다. 발바닥이 부서질 것처럼 아파왔지만, 책장이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온통 책들뿐이라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당분간은 소원이 없어도 될 정도로 뿌듯하고 기쁘고, 자극적이고, 낭만적이기까지 한 나만의 책장이 드디어 완성 되었다.


 

 

이것이 7시간을 투자한 완성된 책장이다. 청소하는 데 1시간 이상, 고심하고 이리저리 책장을 재보는데 시간이 꽤 걸렸으므로 온전히 책 정리만으로 7시간이 든 것은 아니었다. 제일 아래 칸은 침대 매트리스가 들어오면 어차피 쓰지 못할 칸이므로 그동안 내 방에 굴러다니던 짐들을 모두 넣었다. 어찌나 깔끔한지 오히려 책장 덕에 다른 짐들도 수납이 되어 내 방이 단순하고 정리가 잘 된 방으로 변모해 갔다. 

 

 

 

매트리스를 넣었다. 이것이 완성된 나의 방 모습의 최종이다. 그야말로 내가 상상했던 방 그대로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이고 가운데 침대가 있는 방. 방이 넓지 않아 책장을 먹고 들어가지만, 침대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이런 모습으로 완성 된 내 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리 굴러도 저리 굴러도 온통 책뿐이니 부지런히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장에 원래 읽은 책과 안 읽은 책이 같이 있었는데, 안 읽은 책들을 모두 빼버리고 읽은 책들만 새롭게 정리했다. 이 책장 정리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는데, 안 읽은 책이 더 많아서 빈 책장들이 보인다. 그 책장에는 오늘 새로 들어온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 이사 올 예정이다. 어떠한 책들이 이사 올지 나 역시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이젠 책장이 디카에 다 찍히지도 않는다. 아, 정말 책으로 둘러싸인 방이다. 내가 원하는 방이었고, 내가 꿈꾸었던 방이었다. 너무 좋다! 형부는 내 방을 보시더니 "완전 책판이군!" 하셨지만 난 그 소리도 듣기 좋다. 이 책들을 이제 잘 관리하고, 읽고, 사랑하며, 동고동락 할 생각을 하니 몸은 부서질 것처럼 피곤해도 기분은 끝내준다. 책들에게 제대로 된 집을 선물해 주었고,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이 책들이 무척 고맙고 살갑다. 앞으로도 책이 나와 계속 인연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잠잘 곳을 줄여서라도 너희들을 편안하게 해줄 테니, 책들아 내게로 오렴!
 

 

  책장 정리 체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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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짱 2012-06-2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하세요!!
진정한 애서가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