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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 영화광 가네시로 가즈키의 열혈 액션 드라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한참 <춤추는 대수사선> 영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영화 속 무로이란 인물에 환상을 품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가네시로 가즈키의 신간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작가 중에서 드물게 전작하는 작가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무로이씨에게 잠시 관심을 돌려 줄 것이 왔다 싶어 들뜬 마음으로 책을 손에 쥐었는데, 제목이 어딘가 많이 낯익었다. 얼마 되지 않아 <춤추는 대수사선>에 SP 글자를 새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왔던 것이 생각이 났다. 우연치고는 기가 막히다 싶어 이 책의 정보를 찾아보니 <춤추는 대수사선>의 원작 시나리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 그 순간 무척 흥분하고 말았다. 그래서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는데, 이런 흥분을 보다 못한 몇몇 분들이 <춤추는 대수사선>의 원작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SP> 드라마 감독을 맡았다고 알려주었다. TV 드라마로 히트 친 것은 맞지만, <춤추는 대수사선>과는 관련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왜 그렇게 김이 빠지던지. 가네시로 가즈키, <SP>, <춤추는 대수사선>이 3박자를 이루어 나를 즐겁게 해주는 줄 알고 있다가 맥이 풀리는 일화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일화는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인 만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을 모두 읽고, 신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작가 중 한명이기에 새로운 작품 앞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 전에 출간된 것이 <영화처럼>이라는 소설이었으므로, 그가 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지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나리오라니. 거기다 TV 드라마로 만들어졌었고, 히트까지 쳤다고 하니 무척 궁금했다. 책을 읽기 전 배경 인물들을 보며 여전히 <춤추는 대수사선>의 인물들과 겹쳐지는 나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지만 두 작품이 상관이 없다고 해도 어느 정도 겹치는 이미지는 어쩔 수 없었다.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와 <SP>의 이노우에가 그랬다. 무로이와 연결시킬 인물을 탐색했지만(처음엔 오카타와 연결시켰지만, 오카타의 양면성에 마음을 돌렸다.) 결국 실패했고, 책을 읽어 보니 그런 비교가 얼토당토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SP(Security Police, 요인경호관)의 일은 말 그대로 경호를 하는 일이므로 어떤 사람들을 경호하고, 그 안에서 이노우에가 어떠한 활약을 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가 될 것 같았다.
총 5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데, 이노우에가 SP 훈련을 받을 때의 이야기는 따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들의 임무가 경호인만큼 의뢰인을 경호하면서 얽힌 일들을 그려내고 있었는데, 시나리오라서 그런지 소설처럼 완벽하게 읽히지 않았다. <SP> 드라마를 보았다면 모를까,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 내가 시나리오만 보고 그 모든 것을 상상하기란 녹록치 않았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이노우에의 비상한 능력과 독특함을 감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에피소드가 펼쳐질 때마다 그 낯섦을 마주하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달아 갈 뿐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을 글로 써냈다고 생각해 보자. 장면을 봤다면 글로 써냈다고 하더라고 상상하기 쉬울지 모르지만, 장면을 보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독자인 내가 상상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영화를 찍는 사람들, 배우들에게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글로 씌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여전히 내게 어려웠다.
가장 곤욕을 치렀던 것은 인물의 파악이었다. SP들의 정기적인 출현으로 대강의 인물을 파악했다지만,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장소와 상황, 주변 인물들이 변하는 것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화면으로 비춰진 영상이라면 장면의 이어짐으로 인해 필요한 것들만 받아들일터인데, 모든 것을 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낯설었다. 거기다 액션 장면이 많았기에 그야말로 곤역이 아닐 수 없었다. 업치락뒤치락 하는 것까지 일일이 읽어내야 한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 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장면의 변화도 많았고, 경호의 일 외에 이노우에의 어릴 적 트라우마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궁금증이 나다가도 일순간 짜증이 일기도 했다.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일들은 계속 나오고, 작가의 개인적인 주석까지 읽다보니(재미있는 부분이 많았음에도)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 의욕을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시나리오의 특징 상 책의 페이지는 순식간에 넘어갔는데, 그렇기에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바이다(줄거리도 포함해서).
SP의 경호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호도 이노우에가 등장하면 큰 사건으로 돌아가는 것을 저자의 의도라고 해도, 그들이 경호한 사람들은 내로라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사건이 꼭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의뢰인은 내각 총리대신을 비롯해, 도쿄도지사, 전 총리대신을 비롯해 증권 조작으로 신변을 위협받는 증권사 직원도 있었다. 의뢰인의 모습이 비춰지기 전에 늘 어딘가에서 그들을 노리는 일당들의 모습이 그려졌고, 중요한 시기마다 그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악을 감지하며, 일반인들보다 시각이 좀 다른 이노우에는 늘 그들을 먼저 발견한다. 좀 털털한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능력과 소신을 드러내며 일을 처리하는 이노우에를 고깝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들의 동료와 계장 오카타는 늘 그를 신뢰하는 편이었다. 저자는 그들이 하는 일의 의미를 종종 부각시키기도 했는데, 그들의 목숨을 걸고 의뢰인을 보호하는 것이 임무인 만큼 그들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힘든 일을 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시나리오라는 장르의 특성 때문인지 무언가 한 가지를 부각시키며 볼 수 없었다. 저자의 시선도 아닌, 이노우에의 시선도 아닌, SP 자제의 시선에서도 볼 수 없었기에 그 모든 이야기의 흐름은 하나의 덩어리로 두루뭉술하게 내 머릿속을 굴러다닐 뿐이었다.
거기다 이 시나리오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다. 드라마도 아직 결말이 아지 않았고,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피소드 하나가 끝날 때마다 미진함이 느껴져서 허무하기도 했는데, 오카타의 양면성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시나리오는 끝이 난다. 다른 분들의 의견을 찾다보니 광적으로 드라마를 보다가 결말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짜증을 냈다고 하는 분도 있어 되레 위로가 되었다. 결론이 났다면 모를까 드라마를 찾아 볼 용기도 나지 않았고, 시나리오라는 장르에 답답함이 느껴져 가네시로 가즈키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그러나 영화광이라는 저자의 말마따나 곳곳에 그의 애정과 노력이 보여 경의가 표해지기도 했다. 영화의 장면을 상상하며 글로 써낸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를(저자는 즐겁게 임했겠지만.) 인식하게 되었을 뿐, 시나리오를 써 낸 저자가 마냥 신기했다. 그의 팬으로써 색다른 경험을 한 것은 좋았으나, 드라마를 찾아 비교해 보지 않는 이상 이 작품은 나에게 안개와 같은 탁함이 존재할 것 같다. 순전히 나의 취향과 읽기의 문제였다고 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런 마음이 뒤집어질 수 있도록 언젠가는 이 작품의 영상을 만날 날을 기대하며, 가네시로 가즈키와의 색다른 여행을 마친다.
오탈자
p. 23
사사키 "의아한 듯 구청에서 일하는데도 밤에 저렇게 급한 일이 생기나요?"
"의아한 듯"은 괄호가 들어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