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 책장이 도착한다. 월요일에 주문하고 안절부절 못하며 지낸 날들하며, 책들이 쌓여 갈 때마다 답답했던 마음을 싹 날려 버릴 수 있는 날이다. 책장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아 침대 옆에다 넣다 보니, 집에 도착해서 바로 침대를 빼고 바닥을 청소했다. 침대가 15년 전 언니가 신혼 때 사온 침대라 무척 구식이다. 나사를 풀어서 해체하고 조립해야 하는데, 침대 자체가 너무 무거워서 진땀을 뺐다. 침대를 빼고 보니 바닥에 먼지가 장난이 아니어서(몇 년 간 청소한 일이 없다. 그 먼지를 내가 다 먹었다 생각하니 바로 기침이 나올 것 같았다.), 청소하는데 만 한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침대를 거실에 빼놓고 빈 벽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지저분해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역시나 10년 전에 이사 오면서 도배, 장판을 안해서인지 무척 우중충했다.
 

  4시 반에 도착한다는 책장이 6시가 되서야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책장이 3개였는데, 아저씨 혼자서 낑낑대며 올라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작아 책장이 들어오지 않아 아저씨는 계단으로 올라오셨다. 그래도 2개가 남자 엘리베이터 천장을 뜯어내고 책장을 겨우겨우 실을 수 있었다. 나도 따라 내려가서 책장을 실고 내리는데 약간 도왔다. 드디어 내 방으로 옮기는데 집에 어른은 나뿐이라서, 배송 온 아저씨와 둘이서 날랐다. 책장을 나르다 발등에 영광의 상처를 입었지만, 책장이 들어온 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해서 대충 반창고만 붙여 두고 계속 도왔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들이고 보니, 집이 오래돼서인지 수평이 맞지 않았다. 바닥과 벽이 삐뚤어서 나무판 얇은 것을 대어 책장이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켰다. 그렇게 십 분여를 실랑이를 하고나서 책장이 드디어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말복인 오늘, 땀을 뻘뻘 흘리며 책장을 날라다 준 아저씨가 고맙고 미안해서 물 한잔과 땀 닦을 수건, 아저씨도 발가락을 다치셨기에 대일밴드를 드렸다. 아저씨는 가시기 전에 거실의 책장과 내 방의 책장을 보시더니, 온 집에 책뿐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아,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장 정리만 남았다.
 

 

 

원래는 책장을 천장까지 맞추고 싶었으나 거실 책장 높이를 2.2m을 한 바람에 계단으로 옮긴 기억이 있어서인지 형부가 급구 말리셨다. 그래서 10cm를 줄인 2.1m로 했는데 위 공간이 조금 보기 싫게 남아 버렸다. 칸을 막기가 그래서 오픈 형으로 했는데, 저기에 무엇을 올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급한 건 그것이 아니라 저 책장 안에 쌓인 책들을 내 맘에 들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책꽂이에 넣을 책은 약 600권 정도였고, 장르별로 구분해서 넣고 싶었다. 거기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나의 손길이 자주 가는 곳에, 안 읽는 책들은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넣고 싶어 책이 장르별로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음에도 한 권씩 꽂을 때마다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선은 책장에 책을 넣으면서 분류를 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꽤 많이 걸렸는데, 맘에 드는 곳에 꽂아도 옆 칸과 책들이 맞지 않거나 분류할 장르가 너무 많아 계속 책장 안에서만 헤매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오늘 다 못 끝낼 것 같아 잠시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책이 절반 쯤 들어갔을 때, 당황하고 말았다. 다름이 아니라 책장에 책이 많이 꽂혀 있음에도 꽂아야 할 책이 너무 많이 남아 버린 것이 아닌가. 거기다 제일 아래 칸은 침대 높이 때문에 일부러 가장 크게 만들어서 책을 꽂을 수가 없어 공간은 더 줄어들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책을 꽂다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 못 꽂을 것 같았고, 세분화된 책 정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운이 빠져 버렸다. 정말 고대하던 책장을 주문하고, 이렇게 책이 왔건만 다 못 꽂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우울했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기존에 있던 책장에서 빼 버린 책장 하나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책장은 동네 책방이 폐업할 때 얻어온 <CCTV 작동 중> 스티커가 붙어 있는 책장이었다. 기존의 책장을 25cm 옆으로 당기는 바람에 너무 답답해서 빼 버린 책장이었는데, 책장이 부족하다 보니 그 책장이 아쉬웠다. 그래서 궁리 끝에 침대의 머리가 들어올 곳에 넣어봤는데, 침대 높이 때문에 책장 3칸을 고스란히 쓰지 못함에도 위로 5칸을 쓸 수 있어 그대로 넣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침대와 책장 사이의 약간의 공간이 있어서 그 책장이 들어와도 문제가 없었다. 그 책장까지 포함해서 책들을 넣으니 공간이 얼추 맞아, 멈췄던 책 분류에 다시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책장 정리를 위해 집에 좀 빨리 퇴근해 4시가 조금 못 되어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책장 정리를 끝내고 보니 11시 반이었고, 저녁은 대충 책장 정리하면서 때운지라 고스란히 청소하고 정리하는데 7시간 이상을 쏟아 부은 셈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대충 정리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고대하고 기다린 만큼 내가 만족하는 책장의 모습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비교적 느긋하게 정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러버린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책장을 보니 너무 뿌듯했다. 발바닥이 부서질 것처럼 아파왔지만, 책장이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온통 책들뿐이라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당분간은 소원이 없어도 될 정도로 뿌듯하고 기쁘고, 자극적이고, 낭만적이기까지 한 나만의 책장이 드디어 완성 되었다.


 

 

이것이 7시간을 투자한 완성된 책장이다. 청소하는 데 1시간 이상, 고심하고 이리저리 책장을 재보는데 시간이 꽤 걸렸으므로 온전히 책 정리만으로 7시간이 든 것은 아니었다. 제일 아래 칸은 침대 매트리스가 들어오면 어차피 쓰지 못할 칸이므로 그동안 내 방에 굴러다니던 짐들을 모두 넣었다. 어찌나 깔끔한지 오히려 책장 덕에 다른 짐들도 수납이 되어 내 방이 단순하고 정리가 잘 된 방으로 변모해 갔다. 

 

 

 

매트리스를 넣었다. 이것이 완성된 나의 방 모습의 최종이다. 그야말로 내가 상상했던 방 그대로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이고 가운데 침대가 있는 방. 방이 넓지 않아 책장을 먹고 들어가지만, 침대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이런 모습으로 완성 된 내 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리 굴러도 저리 굴러도 온통 책뿐이니 부지런히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장에 원래 읽은 책과 안 읽은 책이 같이 있었는데, 안 읽은 책들을 모두 빼버리고 읽은 책들만 새롭게 정리했다. 이 책장 정리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는데, 안 읽은 책이 더 많아서 빈 책장들이 보인다. 그 책장에는 오늘 새로 들어온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 이사 올 예정이다. 어떠한 책들이 이사 올지 나 역시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이젠 책장이 디카에 다 찍히지도 않는다. 아, 정말 책으로 둘러싸인 방이다. 내가 원하는 방이었고, 내가 꿈꾸었던 방이었다. 너무 좋다! 형부는 내 방을 보시더니 "완전 책판이군!" 하셨지만 난 그 소리도 듣기 좋다. 이 책들을 이제 잘 관리하고, 읽고, 사랑하며, 동고동락 할 생각을 하니 몸은 부서질 것처럼 피곤해도 기분은 끝내준다. 책들에게 제대로 된 집을 선물해 주었고,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이 책들이 무척 고맙고 살갑다. 앞으로도 책이 나와 계속 인연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잠잘 곳을 줄여서라도 너희들을 편안하게 해줄 테니, 책들아 내게로 오렴!
 

 

  책장 정리 체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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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짱 2012-06-2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하세요!!
진정한 애서가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