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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처음 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간단하게나마 기록을 남겨놓았는데, 다시 찾아보니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난 솔직히 그냥 평범한 얘기인데 왜 그렇게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잘 모르겠다. 정말 인종차별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교육에 대해 잠깐 나왔는데 1930년대 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의 교육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처음 국민학교에 들어와서 글을 다 알고 와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상태에서 스스로의 의지와 함께 읽히는 것이 난 인상 깊었다.’ 기록은 이랬다. 인종차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봤다고 하면서 평범한 얘기라며 모순적으로 말하고, 그럼에도 교육의 다름에 대해서 인지하고(난 국민학교 세대다) 있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이런 이유로 21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니 완전히 새 책으로 읽힌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200쪽
젬과 스카웃 남매를 키우고 있는 핀치 변호사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평소의 신념에 대해 망설임 없이 낱낱이 말한다.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스카웃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아빠가 위험을 무릅쓰며 흑인을 변호한다는 사실이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게 당연할 것이다. 1930년대에, 그것도 집안의 내력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류인 메이콤이란 곳에서 그런 아빠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아빠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강간죄를 뒤집어 쓴 톰을 변호하고 있었고, 그 일을 왜 해야만 하는지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양심에 빗댄 아빠의 말은 아이들이 사회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흑인을 비롯한 약자(래들리 씨 등)에게 편견을 갖지 않게끔 가르친다. 그런 아빠 때문에 놀림도 당하고, 욕도 먹고, 목숨이 위험할 뻔도 했지만, 인간은 평등하다고 알려주는 어른들(아빠, 모디 아줌마 등)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째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213쪽
이 책에서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들은 다양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온 건 바로 용기였다. 직업의 영향이 있더라도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용기를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용기가 날 때도 있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릇된 행동과 사고를 가진 사람들도 많이 봐왔다. 나 역시 후자일 때가 많아서 핀치 변호사와 아빠의 가르침을 따라 내적 성장을 이룬 아이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당장 눈앞에 어려움과 피해가 고스란히 보이더라도 양심과 용기를 따라가는 것. 그것은 이 소설이 내게 보여준 가장 큰 신념이었다.
이 나라에는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도록 창조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중략) 배심원 여러분, 그 제도가 바로 사법 제도입니다. 380쪽
수많은 역경과 불합리함을 이기고 핀치 변호사는 톰의 무죄를 위해 성심성의껏 변호한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봐도 톰이 아무런 죄가 없음을,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에 섰음이 확실한데도 배심원들은 유죄를 확정한다. 단지 유죄를 이끌어내기까지의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에 작은 변화를 봤다고나 할까? 당시 미국사회의 편견이 원망스러웠지만, 과연 현재에도 그런 일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톰이 유죄를 받고, 핀치 변호사가 상고하자고 했지만,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감옥에서 탈출하다 총을 맞고 사망했을 때의 절망감이란. 한 사람의 인생이, 남겨진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뽑혀 버린 것이 씁쓸하고 씁쓸해서 용기고 뭐고 다 팽개치고 싶었다.
스카웃, 결국 우리가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멋지단다. 517쪽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아이들과 독자에게 씁쓸함만 남겨줄 순 없는 노릇이다. 재판에 대한 결과는 그렇게 끝이 나버렸지만, 아이들은 특히 스카웃은 장난의 대상으로 삼았던, 25년 간 은둔하고 있던 옆집에 사는 래들리 아저씨를 달리 바라보게 되었다. 작은 물건들로 아이들과 소통하려 했고, 스카웃과 젬이 목숨을 잃을 뻔 했을 때 용기를 내 아이들을 도와준 래들리 아저씨. 그런 아저씨를 처음으로 마주하고, 집으로 바래다주면서, 밖에서가 아닌 아저씨네 현관에서 바라 본 풍경을 보며 스카웃은 래들리 아저씨 입장이 되어보았다. 그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봐야 한다는 사실을 스카웃은 생생하게 경험했다. 그런 경험을 안고 성장한다면, 비록 현실은 죄 없는 톰을 풀어주지도 살리지도 못했을지라도, 스카웃의 세대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부조리와 불합리함은 존재한다. 차별이 넘쳐나고, 약자를 향한 공격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런 세상을 탓하고만 있을 것인가? 당장 내가 변화시킬 수 없더라도, 끊임없이 그런 약자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왔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그리고 나 또한 그런 편견에 찌들지 않는 것. 내 아이들에게도 그런 시선을 갖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감히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