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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03년(tv, 책을 말하다)의 올해의 책으로 발표된 후부터 찜해두고 올 1월에 구입한 책이였다. 대충 훑어볼때 왜 그리 책이 안 땡기던지. 그래서 지금까지 방치하였는데 우연한 계기로 내 책 꽂이에서 내 손으로 간택(?)되었다.
그리고 잊지 못할 훌륭한 책이 되어 버렸다.
정민의 '책 읽는 소리'를 읽고 우리의 고전이 너무 읽고 싶어 나의 책 꽂이를 살펴 보았지만 비슷한 책이 한권도 보이지 않았다.
죄다 외국 문학 아니면 현대 국문학이 전부였다.
그러던 찰나 이 책이 보였다. 그래 시기라도 비슷하니 이 감흥을 이어가자며 꺼냈던 책인데 너무나 놀라웠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자랑스러워질 정도였다.
띠지의 찬사가 허황된 것이 아닌 제대로 드러맞는 책.
그런 책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난 딱 만나버린 것이다.
예전에 책 정리를 할때 내가 좋아하는 책은 왼쪽부터 정리해갔고 장편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습관을 아무 의심 없이 지나쳤는데 어느날 태백산맥 세트를 시켰더니 오른쪽부터 순서가 되어져서 온 일이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잘못 끼워진건가?' 하며 거꾸로 마추려다가 문득 낯설지가 않아 그대로 두었었다.
그러다보니 조정래님의 책끼리 모아서 정리할때 태백산맥 덕분에 자연히 다른 장편들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순서를 다 바꿔야 했다.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왼쪽에서부터 꽂지만 장편들은 순서가 다 오른쪽부터 시작이 된다.
책을 정리하고 보니 그게 조금 뒤죽 박죽인 느낌은 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전의 나의 습관이 낯설게 느껴졌었다.
이러한 석연치 않은 의문을 나는 단순히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서예를 할땐 오른쪽에서부터 쓰니까 라며 지나쳐 버렸는데 이 책을 읽고 잊고 있던 그 의문이 풀어져버렸다.
왜 책의 번호를 오른쪽부터 나열해야 편안한지를 말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활자가 가로가 되어버렸지만 예전에 세로로 된 책들과 신문을 기억할 것이다.
일본은 세로와 가로의 쓰임이 자연스럽게 복합적인데 우리는 왜 세로 쓰기를 다 버리고 가로쓰기가 되었을까?
보기가 불편하고 쓰기가 불편해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은 서양식이다.
서양의 그림은 네모 반듯한 캠버스에 시선이 자연스레 좌상左上에서 우하右下로 가지만 우리의 시선은 우상 좌하이기 때문에 족자나 병풍의 글과 그림들이 긴 것이다.
그러니 내가 느꼈을 책정리에서의 평안함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의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던 이유가 서양식의 시선 때문이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조들의 유명한 그림을 보면 이러한 시각의 방향을 모르더라도 자연스레 우상, 좌하의 시선으로 눈이 좇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을 몰랐을때 그림의 백미를 놓쳐버리는 경우도 많다.
책의 순서에 관한 나의 의견이 억지스럽고 충동적인면이 있더라도 우리의 옛 그림에서는 이렇게 그림 보는 방법을 알아야 진정한 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감상하는 방법을 몰랐으니 외국의 화려한 그림과 비교했을때 우리의 그림이 초라하고 고리타분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외국의 그림을 잘보는 것도 아닌데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우리의 그림을 대충 본 것이나 우리의 미를 알지 못했던게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특히 저자는 김홍도의 그림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의 그림을 열정적으로 알리고 있는데 읽고 있는 나에게 그러한 열정이 그대로 전달되어 오고 오래된 그림들에서 풍겨져 나오는 숨겨진 아름다움에 놀랄 따름이였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그림을 볼때마나 커다란 수수께끼를 풀듯 풀려나가는 의미와 섬뜩함은 이 책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울 지경이였다.
책을 읽기전, 제목의 '특강'이라는 말이 있었음에도 알아보지 않고 편견에 사로 잡혔던 우리 그림에 대한 고리타분함이 그대로 이 책에도 전달되어 있었다.
이 책은 여러 군데에서 저자가 강의를 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처음엔 그러한 형식이 적응이 안되어서 얕잡아 보기도 했었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했던 것만큼 책으로도 쉽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오로지 그림을 그림만으로 보는 것이 아닌 그림 속에 담겨 있는 우리의 풍속이나 역사 문화까지 고루 담겨 있어서 그러한 재미가 더 쏠쏠했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음양오행 같은 경우는 '뿌리 깊은 나무'에서 자세히 설명된 걸 읽었음에도 이 책에서 설명된 것이 내 마음속에서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아 조금은 혼란스럽고 어려웠지만 따로 공부를 해봐야 겠다라는 생각이 든 배경에는 저자가 재미나고 열정적으로 강의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특히 그림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닌 시와 그림과의 절묘한 조화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한 것들이 무지한 나에게 바로 보이면 더 좋았을 거라는 배부른 생각도 해보았지만 역시 숨겨진 백미의 맛이였다.
그래서 충동적인 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랑이 아닌 이렇게 책으로 볼 수 있는 우리의 멋과 미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터였다.
늘 우리의 것은 팽개치고 외국의 문학, 외국의 그림에 감탄하며 홀렸던 것이 사실이나 이러한 계기로 서서히 우리의 옛 것에 관심을 두고 애정을 쏟는 것이 참 좋다.
오로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우리의 문화, 아름다움에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렇게 커다란 것들이 보인다.
그 가운데는 분명 우리가 있을 것이고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기백이 넘칠 것이다. 그 희열의 중심부로 들어와 보라.
이 책을 통한 경험은 그만큼 소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