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 무지개 나라 아프리카를 꿈꾸다 문학동네 세계 인물 그림책 7
알랭 세르 지음, 자위 그림, 정지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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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넬슨 만델라란 인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솔직히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그에 대해 상세히 알지 못했다. 좀 더 관심이 있었다면 평전을 이미 들춰봤겠지만 아직 그럴만한 기회를 갖지 못해 나에게 불쑥 다가온 이 책을 스스럼없이 펼쳐들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아!'하고 감탄사를 터트릴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도 이 그림책이 충분히 각인될 거란 생각과 함께.
 

  나를 먼저 사로잡은 것은 그림이었다. 책 표지가 노란색 배경을 하고 있어 유난히 눈에 띈다 싶었는데, 글과 함께 실린 그림들이 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림책을 볼 때 그린이는 거의 잘 보지 않는데, 책을 읽다 말고 뒷장을 펼쳐 그린이 소개를 볼 정도로 무척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다. 40년 동안 어린이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개성 넘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던 그는 아프리카란 땅을, 남아공의 처절한 흑인들의 삶을, 그리고 넬슨 만델라의 일생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에 만든 남아공 국기의 의미처럼 '다양한 주민, 역사, 풍부한 천연자원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이었다. 글 속의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과 색감만으로도 감정과 상황들을 온전히 읽어낼 수 있는 강렬한 그림들이었다.

 

  넬슨 만델라의 어린 시절부터 길고 긴 투옥생활을 끝내고 석방이 되기까지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인 내가 읽어도 유익할 정도로 알찼다. 그림책을 정독하고 있다는 사실도 신기한데 읽다 눈물이 맺힐 정도로 나에겐 특별한 책이 되어갔다. 초원에서 양떼를 돌보던 롤리랄라라는 영특한 소년이 교육을 받고, 자유를 위해 고향을 떠나고, 도시에서 본 흑인들의 비참한 삶을 지켜보는 과정까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듯 했다. 그러다 1960년, 남아공의 극단적인 인종 격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던 시위대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그는 분노한다. 오래전부터 흑인들의 권익과 자유를 위해 싸워왔던 터라 그때 벌어진 폭력에 대해서는 훨씬 더 비난하고 증오하며 맞서 싸웠다.

 

  하지만 자신의 비폭력인 싸움을 모두에게 납득시키긴 힘들었고, 한 사건으로 인해 그는 수배자 신세가 되어 숨어 지내게 된다. 그러다 1962년 그는 체포되어 5년 형을 선고받지만, 판결과 흑인들의 투쟁을 막으려는 세력에 불만을 품고 일어난 테러 행위에 대한 비난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게 된다. 그가 46세 때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27년의 긴 감옥생활이 시작된다.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은, 끈기 있고 힘들지만 감옥 밖의 흑인들에게 힘이 되는 그의 감옥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그는 힘든 노동도, 가족과의 이별도, 수없는 억압과 제약도 모두 이겨냈다. 단순하게 감옥 안에서의 생활만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끊임없이 남아공의 운명과 인권을 향해 싸웠다.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위해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며 그 길고도 힘든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변화를 느끼면서도 여전히 그는 자유롭지 못했다. 가로세로 3미터, 여섯 개의 창살, 깔개 하나, 담요 세 개가 있는 좁은 공간에서 그는 자유를 갈망했고, 인종 차별이 사라지길 원했다. 그 긴 세월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넬슨 만델라의 감옥 생활을 알 수 있도록 정리하고 그 시간을 글로 알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자주 들 정도로 이 책은 나에게 온전히 한 사람의 인생을 들려주었다.

 

  그가 1만 번의 낮과 1만 번의 밤을 감옥에서 보내고 석방되었을 때 눈물이 맺혔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기구할 수 있다는 것보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이 살아낸 삶으로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뭉클했다. 그는 남아공의 첫 번째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증오도 복수심도 없이'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여전히 남아공에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넬슨 만델라가 보여준 자유를 향한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27년간 그를 가둔 장벽 안에서 그는 용기와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의 삶만으로 오롯이 증명된다.

 

  그가 아직 나와 함께 숨 쉬며 살아있다는 사실이 감격으로 다가온다.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바쁘다고 버둥대는 하잘것없는 내 삶과 그를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이런 인물들로 인해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싶어진다. 넬슨 만델라에 대해서 잘 모른다며, 그림책을 펼쳐 들었던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도 역시나 고마움을 느낀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포기해 버리고 싶었던 순간들마다 넬슨 만델라를 떠올리려 한다. 27년 동안 감옥에 갇혔던 그의 삶보다 어려운 내 삶이 더 평안하다고 감사하려 한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보여줬던 희망과 인내, 공동의 자유를 향한 노력은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편하게 숨 쉬고 살아가는 것도 그의 노력 때문일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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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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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알게 된 외국인 친구에게 메신저로 더듬더듬 말을 건넨다. 월요병이 있어 주말이 좋다고. 이 말에는 외국인이라도 공감하는가보다. '하하' 웃어주는 친구를 뒤로하고, 정말 가끔은 그냥 내 맘대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 앞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 할 수 있다면!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바틀비씨는 정말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요즘 말로 '용자'라고 하는데, 그를 온전히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독특한 매력을 지닌 사람이다.
 

  허먼 멜빌의 유명한 단편에다 보르헤스가 적극 추천을 한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 밀려오던 감정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기이한 이야기지만 쓸쓸하고 고독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틀비씨가 못 견디게 안타까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올 정도였다. 분명 내가 바틀비씨의 이야기를 전해줄 화자인 변호사라고 해도 바틀비씨가 용납이 안 됐을 것 같다. 그의 행동으로 인해 짜증도 나고 화가 나다 그가 쓸쓸하게 감옥에서 죽어갔다는 것에 한탄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가 바틀비씨를 온전히 대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물음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화자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혹은 일했던 필경사들 중에서 바틀비 만이 전기를 쓸 수 있는 자료가 없다고 했다. '내 두 눈으로 본 것, 그것만이 내가 그에 관해 아는 전부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바틀비는 독특함을 넘어 삶을 통틀어 만날 수 없는 사람의 축에 들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는 독보적인 강렬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오전 오후로 번갈아가며 일을 산만하게 처리하는 직원보다 성실하고 묵묵하게 일하는 바틀비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는 단 사흘 만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자잘한 심부름도, 일에 관한 것도 모두 안하겠다니. 화자도 처음엔 바틀비씨를 이러 저리 신경 써 주었지만 점점 모든 것을 거부만 하는 바틀비씨를 참아줄 인내는 금방 바닥나고 말았다.

 

  결국 바틀비씨를 두고 이사를 가야 할 지경으로 그의 태도는 심각해졌다. 필사까지 거부하자 해고를 했음에도 한 발짝도 떠나지 않는 바틀비씨를 어느 누가 용납하고 이해하겠는가. 이상하다 못해 무서워지기까지 한 바틀비씨를 피해 이사를 했을 때는 그쯤에서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건물에서도 절대 움직이지 않는 '불가해한 타자' 일 뿐인 바틀비씨로 인해 한바탕 사건이 터지고 만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는지 알고 싶었으나 그는 감옥에 끌려가면서도 어떠한 말로도 자신을 옹호하지 않음은 물론 피해만 주는 '불가해한 타자'란 인식만 깊이 심어 줄 뿐이었다.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를 몰아붙이면 잘못을 뉘우치거나 정신을 차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예상을 깨고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음식도 거부한 채 어떠한 말도 없이 그렇게 쓸쓸하게 죽어갔다. 화자는 그가 죽은 뒤 몇 달이지나 진실인지 아닌지 들리는 소문을 얘기하며 의미심장하게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바틀비와 인류를 동시에 놓고 한탄할 정도로 그의 죽음과 삶은 베일에 싸여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바틀비씨 같은 사람을 철저히 외면한 적이 있다고, '안 하는 편을 선택'하고 싶어도 당연한 듯이 하는 편을 선택하며 살았다고, 현재도 바틀비씨 같은 안타까운 삶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나를 향해 외쳐대는 것 같다.

 

  그래서 바틀비씨의 죽음이, 잘 알지 못하는 그의 삶이 쓸쓸하다 못해 살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사람을 분명 감당할 수 없음에도 단칼에 잘라버릴 수도 없다는 사실이 착잡하게 다가온다. '필경사 바틀비'의 삶은 그냥 잊어버릴 수도 없는, 지나칠 수도 없는 무언가 걸림돌이 되는 이야기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걸림돌인지는 우리 스스로가 느꼈던 불편함으로 연결해 보면 될 것이다. 그런 불편한 감정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바틀비씨가 아닌 자신을 만나더라도 놀라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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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그림 좋은 생각 - 조곤조곤 전하고 소곤소곤 나누는 작은 지혜들
조정육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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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에 만나보는 미술 에세이인지 모른다. 미술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보는 건 좋아하는 터라 정기적으로 미술에 관한 책을 만나왔는데, 요즘 들어 통 못 읽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이 내 손에 쥐어지자마자 바로 펼쳐들었고 외출하는 길에 읽기 시작한 책을 돌아오는 길에 다 읽을 정도로 오롯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만큼 흡인력 있게, 그리고 친근하게 다가와준 책이었다.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먼저 서두를 붙이는 것은 깊이 때문인데, 이런 책을 만나면 내가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림을 보게 되면 마치 다른 세상을 만난 듯 즐거워진다. 비록 내가 깊이 있는 조예를 가지지 못했더라도 그림에게 한 발짝 다가가는 느낌. 이토록 자연스럽게 그림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거기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더 의의를 두게 되는 부분은 그림들이 대부분 국내 작품이라는 점이다. 현대그림과 서양화 몇 편 섞여있긴 하지만 우리의 고전 화가들이 그려낸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다. 작자미상인 작품도 있는데, 그린이가 누군지 알 수 없더라도 그림 속에 담긴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이 신기했다. 고전 화가들의 그림이라고 하면 보지도 않고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일상에서 자연스레 끌어와 부담감 없이 접목시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교과에서만 보던 그림, 견학을 가서 억지로 보는 그림들일지라도 일상과 만나면 이처럼 색다르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에 놀라울 것이다. 평상시에는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감상하기 어려운 그림들을 이렇게 편안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지난 3년 동안, 「그림으로 보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좋은생각』에 연재한 글이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총 4장으로 나뉜 글들은 단락마다 포근한 제목들을 달고 있다. 1장은 '함께 갈 때 더욱 행복하다'인데 정선의 「장안사」를 보면서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나를 돌아보게 될 줄은 몰랐다.  「장안사」란 그림의 일부분만 보면 감동이 잘 전해져 오지 않는데,  「금강전도」를 보고나면 그제야  「장안사」가 어떤 그림인지가 보인다. '골짜기 골짜기를 직접 발로 밟아보고' 그린 그림이라는 느낌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장안사」만 봤을 때는 절대 느끼지 못할 웅장함과 섬세함을 보았다. 저자는 목적지를 잃어버렸을 때, '그럴 때는 잠깐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해보라고 말한다. '처음 출발할 때 어떤 각오였는지, 어떤 길을 가려고 생각했는지 차분하게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무심코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그림에서, 현재 나에게 꼭 맞는 충고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되었다.

 

  또한 꼭지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명언들도 눈에 띄었다. '함께 보는 그림이 더 아름답다'란 꼭지에서는 '우리의 짧고 덧없는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건 고립된 자신을 벗어나 서로에게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힘과 위안과 용기를 발견하는 능력이다.(마사 베크)'란 말을 만났다. 어쩜 나에게 이렇게 꼭 맞는 말일까. 어쩜 나를 향해 이토록 적나라하게 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림을 통해서, 이렇게 짧은 명언을 통해서, 일상을 지배하는 평범하지만 순수한 글을 통해서 나의 내면을 낱낱이 들여다 본 기분이었다. 책 제목의 부제처럼 '조곤조곤 전하고 소곤소곤 나누는 작은 지혜들'이 알알이 내 안으로 박히는 느낌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2장 '사랑할 수 있을 때 힘껏 사랑하자'에서는 엄마에 관한 부분이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저자의 어머니는 한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께 한글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죄스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때 만약 엄마가 글자를 깨우치셨더라면 엄마 인생은 어땠을까. 방 안에 앉아 책만 읽어도 그 안에 온 세상이 가득 들어 있다는 희열을 아셨더라면' 이 부분에서 마음이 저릿해졌다. 소학교도 나오지 못한 나의 엄마가 생각났고, 늙어서 한글 배우는 것이 소용 있다며 한글쓰기 책과 동화책을 종종 사다주면서도 많이 신경 써주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이렇듯 저자는 일상의 소소함에서 그림들을 끌어왔고,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에게 처해있는 부분을 한번쯤 돌아보게끔 만들어 주었다. 뿌듯한 마음, 복잡한 마음, 무언가 나를 더 깊이 바라보아야 할 것 같은 감정만이 책을 덮고 난 다음에도 잔여물처럼 남아 있었다.

 

  우리가 어떠한 것을 보며 알지 못한 것을 알아가고, 느끼지 못한 것을 느껴간다는 것은 축복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매개물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면 더 즐겁게 만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좋아하는 그림으로 이렇게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성장해갈 때 진정한 즐거움과 삶의 참 맛을 알게 된다. 그래서 책을 더 사랑하게 되고, 내 삶에서 빼놓지 못하는 것이리라. 책으로 그득한 나의 내면이 참으로 고마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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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천왕기 1 - 형제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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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천왕기』를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 『퇴마록』의 말세편을 읽고나서였다. 고등학교때부터 20대 초반까지 열심히 『퇴마록』을 읽다 <말세편>을 2004년 말에야 읽었다. 『퇴마록』을 좋아하는 팬으로 결말을 아껴둔 둔 것이었는데, 읽고보니 그 여운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읽게 된 것이 『치우천왕기』였고 기다림끝에 8권을 읽은 것이 2005년 1월, 그리고 2011년 4월에 드디어 완결을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 반가워 이미 8권까지 읽었음에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줄거리가 가물거린 탓도 있었고 무엇보다 새롭게 나온 책을 소장하고 싶었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내게, 그것도 한국형 판타지에 푹 빠지게 해주었던 『퇴마록』. 나의 고등학생 생활을 떠올릴 때면 꼭 생각나는 책이 『퇴마록』이다. 자연스레 『치우천왕기』까지 뻗어나간 재미와 놀라움은 국외소설에만 심취해 있던 내게 절대 뒤지지 않을 한국 판타지 세계를 펼쳐주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였고,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나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가는 세계이기도 했다. 『치우천왕기』를 다시 읽어가면서 잊혔던 세계가 생생히 재현되는 듯 했고, 묻혔던 나만의 잠재 공간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그 정도로 나에겐 추억이 깃든, 이루 말할 수 없이 벅찬 경험이 아닐 수 없다.

 

  1권을 다시 읽으면서도 잊을 수 없는 이름 희네와 나래(후일 치우천, 치우비)를 만나자 옛 친구를 만난 듯 모든것이 반가웠다. 그들이 수 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어떻게 성장해 갈지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해내고, 그 과정을 낱낱이 함께하고 싶어 조바심이 일었다.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흥미로웠고 꿋꿋하게 신념을 지켜가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듬직했다. 희네와 나래는 동북아 일대에서 가장 큰 나라인 주신의 십삼대 사와라 한웅의 행차에 함께하는 사울아비로 등장한다. '태산에서 있을 부족 간의 대회의'에 참석한 사와라 한웅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고,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어 가까이에서 보필하지 않는 사울아비였다. 태산회의가 얼마나 큰 모임이고, 얼마나 많은 부족들이 모이는 것인지 그들의 등장부터 점진적으로 뻗어나가는 이야기에 나의 상상력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치우천왕기』 1권의 부제가 <형제>인 만큼, 희네와 나래가 얼마나 끈끈한 형제애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대해서 수없이 드러난다. 아직은 미미한 존재인 그들을 앞세워 주신이란 나라를 필두로 다양한 족속들의 모습과 그들이 이끌어나갈 새로운 세계, 그들이 맞이할 드넓은 세계를 어김없이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당면한 소소한 일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는데, 무엇보다 희네가 선인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절맥으로 인해 절게 된 다리때문인데 그런 희네를 위해 신수 곁에 자라는 아홉구비를 구하고 그들의 어머니는 목숨을 잃게 된다. 그렇게 어머니의 목숨과 맞바꾼 아홉구비를 희네는 동생 나래에게 먹인다. 나래는 형이 자신에게 아홉구비를 먹인 이유를 알기에 다리를 꼭 고쳐주고 싶었고, 주신의 사울아비라는 신분 때문에 형의 비밀을 무조건 감추어야 했다. 그래서 태산회의 도중 몰래 선인을 찾아 나섰던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발귀리, 지나족의 염제신농인 유망, 카린족의 쑤앙마이까지 찾아가게 된다.

 

  아직 어떠한 힘을 갖추지 않은 희네와 나래의 형제에게 태산회의는 단순히 사와라 한웅을 보필하는 역할만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앞으로큰 힘이 될 다양한 종족의 벗들을 사귀게 되고, 맥달을 만나기도 하며, 다리를 고치려다 오히려 위험에 빠지고, 그로 인해 유망이 품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된다. 유망은 다른 부족을 공격하여 주신을 누르고 지나족을 가장 강대한 부족으로 만들려는 뜻을 품고 있었다. 그것을 제지하려는 사와라 한웅을 공격하는데에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고 1권의 끝에서 위험에 처한 한웅의 모습이 그려져 긴박감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음모 가운데에 희네와 나래가 중요한 인물로 얽히기 때문에 그들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1권의 내용은 앞으로 펼쳐질 대장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많은 일들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1권이라 아직 커다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인지, 태산회의 도중 많은 종족들이 모여 흥겹게 어울릴 때 희네의 총명한 두뇌와 나래의 괴력이 발휘되는 부분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그 과정에서 한웅님께 형제의 오랜 걱정이었던 성인식을 치룬것으로 인정받고, 새로운 이름까지 얻은 것이 큰 수확이었다. 희네의 비밀이 드러나도록 혹독한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것이 무척 다행이었고, 오래전에 지어놓은 이름이지만 희네는 치우천, 나래는 치우비로 새로운 세계로 나갈 준비를 마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무나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이라서 그런지 내용을 요약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반면 2권이 읽고 싶어 몸이 달아 오른다. 하지만 한 권씩 정리를 해 나가지 않으면 이 이야기를 쉽게 잊어 버릴 것 같아 불안하다. 이제 겨우 『치우천왕기』 속으로 한발짝 걸음을 뗐을 뿐이니, 이 시작을 잘 간직하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낙이 생기는 것 같아 무척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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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고나서 혁명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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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황금 같은 휴일. 나에겐 책 보면 뒹굴 거리는 것이 최고의 휴일이기에 정말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 거렸다. 책 보다 잠들고, 밥 먹고 책보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음에도 허무하지 않은 것은 아지즈 네신의 책을 만난 탓이다. 한참 아지즈 네신에 빠져 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 책이 출간 된 것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제목의 '혁명' 때문에 잠시 구입을 망설이다 지인이 무척 재미나게 읽었다고 해서 바로 구입했다. 역시나 아지즈 네신 다웠고, 오랜만의 나의 독서에 탄력을 받은 것 같아 무척 반가웠다.
 

  아지즈 네신의 작품들은 정치적인 요소가 짙게 배인 풍자문학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처음 아지즈 네신의 작품을 접한다면 배경의 이질감에 글 속의 의미들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글을 쓴 시대의 배경지식을 조금만 알고 읽게 된다면, 혹은 이러한 풍자소설을 한 번쯤이라도 접해봤다면 부담감 없이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깔깔거리다가도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에 씁쓸해 질 것이다. 그럼에도 아지즈 네신의 작품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내 삶을 무엇이 지배하고 있는가를 정곡을 찔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 단편 「우리는 외메르 영감을 뽑지 않겠다」만 보더라도, 외메르 영감은 부도덕하고 무능력하니 이장으로 선출하지 말자고 동네 사람들 모두가 입을 맞췄다. 그럼에도 도리어 외메르 영감의 꾀에 넘어가 그를 선출하고 마는 어수룩함을 유머러스하지만 씁쓸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붕 위에 미친놈이 있다」에서는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지붕에 올라간 한 남자가 점점 높은 지위를 시켜주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고 하자 한 노인은 "저 사람은 절대 내려오지 않네. 난 저런 미친 사람들을 아주 잘 알아. 당신들도 장관 시켜주면 남의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을걸."이라고 날카로운 비판을 한다. 「민주주의 영웅 되기, 참 쉽죠?」는 거짓을 쓸 때 영웅이 되었다가 진실을 말하자 도리어 감옥에 가는 기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맘껏 웃어젖힐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비극적이던가.

 

  아지즈 네신의 작품을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멈칫거리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현실을 제대로 짚어주고 있는 날카로움 때문이다. 혼자서 어이없는 웃음, 씁쓸한 웃음, 바보 같은 웃음을 짓다가도 그대로 넘겨버릴 수 없는 것은 단편 속의 주인공들이 우리의 자화상이라 거부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에서는 한 반정부 인사가 출소를 해서 어느 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그가 도저히 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 이사를 가려 하자 주민들이 제발 떠나지 말라고 말린다. 그는 이제야 자기의 신념이 빛을 보게 된 거라고 좋아하지만, 그를 감시하러 온 경찰들로 인해 시장이 형성되자 수입이 사라질까 두려운 주민들의 속셈이었다. 「우리 집에 미국인 손님이 온다」를 보면, 외국인에게 잘 보이려는 허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드러냄의 파국이 어떻게 치닫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소설을 읽으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맘껏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침울해 있을 수도 없다. 오로지 아지즈 네신 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에 경의를 표할 뿐,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는 메시지들을 다 소화할 수 없어 어지럼증을 느낀다. 옮긴이는 '그의 작품에 담겨 있던 비판의 뿌리가 진심어린 애정과 열정으로 가득 찬 순수라는 점을 이해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작품에서 지적하고 주장하는 바가 참되고 올바른 것이었다는 평가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라고 했다. 오로지 재미로만 이 책을 대한다면 그런 저자의 의도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지나쳐버린 웃음과 생각 속에는 저자의 이러한 뜻이 묻히지 않기를 기억하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저자가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자신의 신념을 굳히지 않았던 지난 모습들이 빛을 발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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