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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고나서 혁명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오랜만의 황금 같은 휴일. 나에겐 책 보면 뒹굴 거리는 것이 최고의 휴일이기에 정말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 거렸다. 책 보다 잠들고, 밥 먹고 책보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음에도 허무하지 않은 것은 아지즈 네신의 책을 만난 탓이다. 한참 아지즈 네신에 빠져 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이 책이 출간 된 것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제목의 '혁명' 때문에 잠시 구입을 망설이다 지인이 무척 재미나게 읽었다고 해서 바로 구입했다. 역시나 아지즈 네신 다웠고, 오랜만의 나의 독서에 탄력을 받은 것 같아 무척 반가웠다.
아지즈 네신의 작품들은 정치적인 요소가 짙게 배인 풍자문학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처음 아지즈 네신의 작품을 접한다면 배경의 이질감에 글 속의 의미들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글을 쓴 시대의 배경지식을 조금만 알고 읽게 된다면, 혹은 이러한 풍자소설을 한 번쯤이라도 접해봤다면 부담감 없이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깔깔거리다가도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에 씁쓸해 질 것이다. 그럼에도 아지즈 네신의 작품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내 삶을 무엇이 지배하고 있는가를 정곡을 찔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 단편 「우리는 외메르 영감을 뽑지 않겠다」만 보더라도, 외메르 영감은 부도덕하고 무능력하니 이장으로 선출하지 말자고 동네 사람들 모두가 입을 맞췄다. 그럼에도 도리어 외메르 영감의 꾀에 넘어가 그를 선출하고 마는 어수룩함을 유머러스하지만 씁쓸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붕 위에 미친놈이 있다」에서는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지붕에 올라간 한 남자가 점점 높은 지위를 시켜주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고 하자 한 노인은 "저 사람은 절대 내려오지 않네. 난 저런 미친 사람들을 아주 잘 알아. 당신들도 장관 시켜주면 남의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을걸."이라고 날카로운 비판을 한다. 「민주주의 영웅 되기, 참 쉽죠?」는 거짓을 쓸 때 영웅이 되었다가 진실을 말하자 도리어 감옥에 가는 기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맘껏 웃어젖힐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비극적이던가.
아지즈 네신의 작품을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멈칫거리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현실을 제대로 짚어주고 있는 날카로움 때문이다. 혼자서 어이없는 웃음, 씁쓸한 웃음, 바보 같은 웃음을 짓다가도 그대로 넘겨버릴 수 없는 것은 단편 속의 주인공들이 우리의 자화상이라 거부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에서는 한 반정부 인사가 출소를 해서 어느 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그가 도저히 생활을 이어갈 수 없어 이사를 가려 하자 주민들이 제발 떠나지 말라고 말린다. 그는 이제야 자기의 신념이 빛을 보게 된 거라고 좋아하지만, 그를 감시하러 온 경찰들로 인해 시장이 형성되자 수입이 사라질까 두려운 주민들의 속셈이었다. 「우리 집에 미국인 손님이 온다」를 보면, 외국인에게 잘 보이려는 허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드러냄의 파국이 어떻게 치닫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소설을 읽으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맘껏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침울해 있을 수도 없다. 오로지 아지즈 네신 만이 쓸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에 경의를 표할 뿐,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는 메시지들을 다 소화할 수 없어 어지럼증을 느낀다. 옮긴이는 '그의 작품에 담겨 있던 비판의 뿌리가 진심어린 애정과 열정으로 가득 찬 순수라는 점을 이해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작품에서 지적하고 주장하는 바가 참되고 올바른 것이었다는 평가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라고 했다. 오로지 재미로만 이 책을 대한다면 그런 저자의 의도를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지나쳐버린 웃음과 생각 속에는 저자의 이러한 뜻이 묻히지 않기를 기억하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저자가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자신의 신념을 굳히지 않았던 지난 모습들이 빛을 발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