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얼굴 없는 나체들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현실 사회와 접촉하는 것이 겉이며 외측이라면, 모자이크에 가려진 쪽은 안이며 내측이다. 이런 발상 때문에 인터넷 세계는 늘 간단히 내면화 된다. 15쪽
언젠가 개인 블로그를 본 내 지인들이 혀를 끌끌 찬 적이 있었다. 내가 만들어 놓은 블로그 속의 내 모습을 보고 나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찬사를 던지자 나온 반응이었다. 내 지인들은 이곳에 너의 실체(?)를 폭로해도 되냐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었다. 단점은 싹 가린 채 장점만 부각되게 만들어 놓은 온라인 공간 그 자체가 나의 실체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없는 것은 온라인이 아닌 현실세계에게 나와 만나고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형성한 온라인의 이미지 또한 반박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나의 실체는 '이러이러하다'라고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오프라인에서 맘에 들지 않는 모습을 온라인에서는 조금이나마 가리고 싶은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리고 나를 봐준다는 기대감도 내포되어 있다.
좋아하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고 사람들과 자유자재로 만나는 모습은 오프라인에서 나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온라인에서 나는 유독 자신감이 높아졌다. 어느 정도 나를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음을 부각시켜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주인공 요시다 기미코와 나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로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거닐었고, 요시다 기미코는 '미키'란 이름으로 얼굴이 가려진 채 나체 사진으로 유명세를 타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주요 종목(?)이 다를 뿐 온라인 세계에서 요시다 기미코와 내가 얻었던 무언의 자신감은 쉽게 간과할 수 없었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주목을 받는 다는 사실만큼 짜릿한 것도 없다. 물론 현실의 나의 모습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짜릿함은 고조되겠지만 요시다 기미코는 최상의 짜릿함을 맛보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너무나 평범해 지루할 정도로 굴곡 없이 살아온 요시다 기미코. 지방의 한 중학교 교사인 그녀는 우연히 알게 된 인터넷 공간에서 가타하라 미쓰루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를 통해 그녀의 숨겨왔던 성적 본능과 위험한 거래가 점점 고조되는데, '빵'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 질주하는 모습이 씁쓸했다. 새로운 자신을 만나는 것이 아닌 익명성이 가져다 준 위험한 자신감이었다.
그 무렵 교실 한가운데에서 모든 이의 인기를 끌었던 학생들이, 아무리 사사로운 정보도 빠뜨리지 않고 모조리 집적해놓은 듯한 인터넷 세계에서는 하나같이 실마리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이름을 잃었다는 사실이 '요시다 기미코'에게는 불가사의하게 다가왔다. 75쪽
가타하라 미쓰루라는 남자 덕분에 인터넷 세계에서 '인기'를 얻게 된 그녀의 욕망 분출은 멈춰지지 않았다.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된 채 성인 사이트에서 나체 사진 및 성관계를 맺는 모습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도 묘한 쾌감을 느꼈다. 가타하라 미쓰루가 아니었다면 내면 깊이 숨어있는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겠지만 위험한 자신감을 얻으면서 맞게 될 비극적인 결말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어쩜 그녀는 이미 위험을 감지했음에도 멈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멀리까지 와 버린,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한 남자와의 만남을 끊을 수 없었다.
학교의 운동장에서 그들이 벌인 사건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행각은 들통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들이 누구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왜 늘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여성이 더 큰 피해자로 부각되는지 모르겠지만 교사의 신분인 그녀가 그동안 벌려놓은 일이 만천하에 공개되자 그녀의 설자리가 없어진 것은 당연한 이치다. 다만 인간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저자가 그려낸 인물은 잔인할 정도로 냉철하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평범하고 반듯한 삶을 살아왔던 중학교 교사. 짧은 소개만으로도 그녀를 어떻게 파멸시켜버릴 지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어도 의도가 농후했다. 그에 반해 가타하라 미쓰루는 분명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님에도 '정신 나간 사람' 정도로 취급하고 건너뛰어 버릴 정도로 후한(?) 무관심을 유발시켰다. 그녀를 파멸시킨 원인 한가운데는 그가 있는데도 왜 그는 쉽게 간과되고 그녀는 파멸당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일까? 원인 제공자는 그럴 수도 있다고 단정 짓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평범한 여성의 선택의 올바름의 여부는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온라인 세계의 폭력성, 익명으로 인한 쓸데없는 자신감과 흠집 내기, 책임감 결여 등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상기하지 못했다면 그들이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한 추측이 그대로 들어맞은 결말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과정에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말하고 싶은 데는 두 인물의 그릇된 행동은 물론 그들의 학창시절까지 더듬어가는 세심한 배려 때문이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에 수긍하면서도 수긍할 수 없는 이유가 과정 안에 담겨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는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