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ue Day Book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 개정2판 블루 데이 북 The Blue Day Book 시리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지음, 신현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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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답답했다. 비 오는 날은 뜨뜻한 방바닥에서 뒹굴 거리는 것이 최고인 줄 알고 있던 내가 과감히 밖으로 나섰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우산을 쓰고 한참을 걸었다. 이런 내 모습에 눈앞이 흐려지고 있었는데 비에 감춰질 거라 생각하자 안심이 되었다. 이럴 땐 타인에게 속마음을 드러내면 좋으련만 내가 먼저 방황을 한 다음에 걸러낸다. 우울했다. 한없이 우울했고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몰랐다. 정처 없이 걷다 집에 돌아와 젖은 운동화를 벗으며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한참을 멍하니 욕실 거울을 바라봤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걸었더니 조금, 무언가 빠져나간 것 같다.  

 

  기분이 울적하면 발랄한 분위기를 즐기며 기분 전환을 시켜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비슷한 분위기를 느껴야 오히려 그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발랄한 책은 마다하고 이 책을 꺼내든 것은 그런 연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물들의 사진을 보면 나의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싶다가도 달랑 한줄의 글을 보고 그 절묘함에 놀라고 있었다. 동물들이 이런 글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이런 표정을 지은 것도 아니고 저자도 그런 생각으로 이 사진을 담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풍부하게 살아있는 동물들의 표정과 절묘한 묘사 한 줄이 정말 이 상황을 말하기 위해 존재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처음엔 깔깔거리며 웃다가 짧은 글 안에 우리의 삶을 그대로 녹여낸 것 같은 구절을 만날 때면 마음이 철렁거렸다. 지금의 나를 말하는 구나 싶어서였다. 동물들의 사진과 묘사 한 줄이 나를 위로하는 구나 싶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 나와 있는 사진과 구절들이 어떤 이어짐을 가지고 그려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도 순간순간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듯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즐거움과 슬픔, 고난을 묘사해 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의 굴곡처럼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과 다를 바 없구나,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먼저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봐요. 더 이상 도망치지 말고 (158쪽)

 

  어쩜 이 말을 내 마음속에 새기기 위해 이 책을 펼쳤는지도 몰랐다. 많은 메시지 가운데 현재 나에게 해당되는 상황과 묘사에 더 마음이 울리고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나의 마음이 또 다른 방향으로 요동칠 때 이 책의 어떤 문장이 나에게 울림을 줄지 모른다. 이 책의 색깔은 하나라고 말하기 어렵다. 쉼 없이 변화하는 우리의 마음과 요동치는 삶처럼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평안할 때보다 위로받고 싶고 쓸쓸하고, 조금은 힘이 없을 때. 이 책이 어둠으로 꽉 찬 마음에 조그마한 빛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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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모리 에토 지음, 고향옥 옮김, 장해리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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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집에서 쉬고 있으려니 마치 여름방학을 맞은 유년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사유키처럼 해야 할 숙제도 없고 엄마의 잔소리도 없다는 점이다. 사유키보다 조금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으나 유년시절 내가 꿈꾸던 일에 다가가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어 마음이 더 무거워져 버렸다. 오히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사유키가 부러울 지경이다.

 

   사유키는 큰집 둘째인 신지 오빠를 굉장히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의미에는 이성의 의미보다 신뢰의 의미가 더 짙다. 큰집을 또 하나의 우리 집이라고 할 정도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난히 좋아하던 사유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변해만 가는 모습에 씁쓸함을 느낀다.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입시공부에 바쁘고 그나마 신지 오빠만이 사유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 신지 오빠는 고등학교 입학도 포기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한다. 큰아빠와 큰엄마는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할 위기에 처하고, 입시 공부 때문에 날카로운 언니는 늘 신경질적이다. 학교생활은 어떤가. 소꿉친구라는 이유로 울보에 소심한 데쓰야까지 종종 챙겨줘야 한다.

 

   사유키는 신세한탄을 하면서도 주변의 친구들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모두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지만 사유키를 통해 다시 한 번 듣게 되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정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나만 이렇게 투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온 세상이 나란 존재를 잊어버린 것처럼 은둔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사유키는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가장 크게는 신지 오빠가 이사 한다는 사건을 발단으로 주변의 친구들과 사람들로 인해 좀 더 넓은 마음과 이해심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신지 오빠에게 의지하고 함께 하는 시간은 많았지만 신지 오빠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까이 하지 말라는 가족들의 말에 어른들의 편견을 맛보고 말았다. 그럼에도 꿋꿋이 신지 오빠를 믿어주는 사유키가 기특할 정도였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던가를 떠올려보니 선뜻 어떤 기억이 박차고 올라오진 않는다. 누군가를 한없이 믿고 따랐던 적. 그런 믿음이 나이를 먹을수록 왜 옅어져만 가는 걸까?

 

   사유키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 평범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 같은 아이로 보이지만 곳곳에서 어떤 아이인지를 도드라지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명력이 강한 나무가 되고 싶다며 말하는 사유키. 그런 사유키를 핀잔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늘 나약하고 챙겨주어야 할 것 같은 데쓰야가 자신을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주려는 모습에서 누구든 변할 수 있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신지 오빠의 ‘나한테 노래가 있듯이, 너한테도 있을거야. 너만 할 수 있는 것. 그건 네가 찾아야 하지만, 틀림없이 있어.’란 말에 도리어 내가 힘을 얻으면서도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언젠가 바다를 보러 가자는 약속을 이사 가기 전날 지키며 신지가 해준 말이어서 그런지 조금은 억지스럽게 마무리하려는 의도가 느껴지기도 했다. 드럼 스틱을 주면서 너만의 리듬을 찾으라는 말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어느 누가 타인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온전히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말을 되돌려하는 것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민하고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희망의 메시지를 찾게 유도하면서 말이다. 때론 무너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는 것. 어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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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나체들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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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사회와 접촉하는 것이 겉이며 외측이라면, 모자이크에 가려진 쪽은 안이며 내측이다. 이런 발상 때문에 인터넷 세계는 늘 간단히 내면화 된다. 15쪽

 

  언젠가 개인 블로그를 본 내 지인들이 혀를 끌끌 찬 적이 있었다. 내가 만들어 놓은 블로그 속의 내 모습을 보고 나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찬사를 던지자 나온 반응이었다. 내 지인들은 이곳에 너의 실체(?)를 폭로해도 되냐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었다. 단점은 싹 가린 채 장점만 부각되게 만들어 놓은 온라인 공간 그 자체가 나의 실체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없는 것은 온라인이 아닌 현실세계에게 나와 만나고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형성한 온라인의 이미지 또한 반박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나의 실체는 '이러이러하다'라고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오프라인에서 맘에 들지 않는 모습을 온라인에서는 조금이나마 가리고 싶은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리고 나를 봐준다는 기대감도 내포되어 있다.

 

  좋아하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고 사람들과 자유자재로 만나는 모습은 오프라인에서 나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온라인에서 나는 유독 자신감이 높아졌다. 어느 정도 나를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음을 부각시켜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주인공 요시다 기미코와 나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로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거닐었고, 요시다 기미코는 '미키'란 이름으로 얼굴이 가려진 채 나체 사진으로 유명세를 타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주요 종목(?)이 다를 뿐 온라인 세계에서 요시다 기미코와 내가 얻었던 무언의 자신감은 쉽게 간과할 수 없었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주목을 받는 다는 사실만큼 짜릿한 것도 없다. 물론 현실의 나의 모습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짜릿함은 고조되겠지만 요시다 기미코는 최상의 짜릿함을 맛보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너무나 평범해 지루할 정도로 굴곡 없이 살아온 요시다 기미코. 지방의 한 중학교 교사인 그녀는 우연히 알게 된 인터넷 공간에서 가타하라 미쓰루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를 통해 그녀의 숨겨왔던 성적 본능과 위험한 거래가 점점 고조되는데, '빵'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 질주하는 모습이 씁쓸했다. 새로운 자신을 만나는 것이 아닌 익명성이 가져다 준 위험한 자신감이었다.

 

그 무렵 교실 한가운데에서 모든 이의 인기를 끌었던 학생들이, 아무리 사사로운 정보도 빠뜨리지 않고 모조리 집적해놓은 듯한 인터넷 세계에서는 하나같이 실마리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이름을 잃었다는 사실이 '요시다 기미코'에게는 불가사의하게 다가왔다. 75쪽

 

  가타하라 미쓰루라는 남자 덕분에 인터넷 세계에서 '인기'를 얻게 된 그녀의 욕망 분출은 멈춰지지 않았다.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된 채 성인 사이트에서 나체 사진 및 성관계를 맺는 모습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도 묘한 쾌감을 느꼈다. 가타하라 미쓰루가 아니었다면 내면 깊이 숨어있는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겠지만 위험한 자신감을 얻으면서 맞게 될 비극적인 결말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어쩜 그녀는 이미 위험을 감지했음에도 멈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멀리까지 와 버린,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한 남자와의 만남을 끊을 수 없었다.

 

   학교의 운동장에서 그들이 벌인 사건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행각은 들통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들이 누구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왜 늘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여성이 더 큰 피해자로 부각되는지 모르겠지만 교사의 신분인 그녀가 그동안 벌려놓은 일이 만천하에 공개되자 그녀의 설자리가 없어진 것은 당연한 이치다. 다만 인간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저자가 그려낸 인물은 잔인할 정도로 냉철하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평범하고 반듯한 삶을 살아왔던 중학교 교사. 짧은 소개만으로도 그녀를 어떻게 파멸시켜버릴 지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어도 의도가 농후했다. 그에 반해 가타하라 미쓰루는 분명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님에도 '정신 나간 사람' 정도로 취급하고 건너뛰어 버릴 정도로 후한(?) 무관심을 유발시켰다. 그녀를 파멸시킨 원인 한가운데는 그가 있는데도 왜 그는 쉽게 간과되고 그녀는 파멸당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일까? 원인 제공자는 그럴 수도 있다고 단정 짓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평범한 여성의 선택의 올바름의 여부는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온라인 세계의 폭력성, 익명으로 인한 쓸데없는 자신감과 흠집 내기, 책임감 결여 등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상기하지 못했다면 그들이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한 추측이 그대로 들어맞은 결말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과정에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말하고 싶은 데는 두 인물의 그릇된 행동은 물론 그들의 학창시절까지 더듬어가는 세심한 배려 때문이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에 수긍하면서도 수긍할 수 없는 이유가 과정 안에 담겨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는 누구를 비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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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집
가토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아우름(Aurum)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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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때면 공부를 한답시고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배게며 간식이며 라디오며 살림을 따로 차릴 정도로 늘여놓고 널브러져 있는 게 일과였다. 공부는 늘 뒷전이고 잠자고 책 읽기 바빴지만 그때 바라본 풍경들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나는 어렸었고 하늘을 보며 무한한 꿈을 꾸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걱정도 앞섰지만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하면서 공상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두려웠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가늠되지 않아 늘 두려웠던 것 같다. 그 두려움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무언가를 잃고 나니 내 마음은 피폐해져 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달달한 제목의 소설을 꺼내들었는지도 모른다.

 

  읽고 있는 책이 많았지만 뭔가 내 마음을 다스려 줄 책이 필요했다. 나와 비슷한 상황, 아니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었다.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보여주는 놀라운 소설!' 이 문구에 끌린 이유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위로를 해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었고 이 소설을 만났다. 그리고 빠져들었다. 동거하던 남자친구가 집을 나가 친한 친구와 사귀고, 자살한 아버지, 사이가 좋지 않은 어머니 사이에서 리에는 도피했다. 산골에 자리한 꿀벌의 집에 찾아가 면접을 보고 거처를 옮겨오기까지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다. 벌을 키우고 꿀을 채취하는 일은 도쿄에서만 살아온 22살 리에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녀가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된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도피라고 할지라도 자신을 내려다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자연은 늘 배신하지 않는 것 같다. 살아 쉼 쉬는 자연 속에 있다 보면 인간도 미물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어느 곳에 있던지 그 사실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지 가르쳐 주는 것 같다. 리에는 양봉 일을 하면서 그 과정을 충실히 경험했다. 리에 뿐만 아니라 상처 받은 사람들과 그곳에 붙박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평화로운 곳을 보며 도시의 치열함과 냉정함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잔잔하면서도 소소하게 써 내려간 그곳의 풍경과 일상들이 나에게도 평안을 주었다.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빤히 보인 구성에는 조금 아쉬웠지만 리에가 변화되는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어 과정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받았다.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받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도쿄에서 살아온 22살의 리에가 그런 삶을 살수도 있겠다는 들여다봄이 아니라 나에게도 다양한 삶이 펼쳐져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리에처럼 그런 산골에 찾아가 자연과 마주할 수 없지만 리에를 통해 마치 내가 그곳에서 생활한 듯한 간접경험을 했다. 독서의 효과를 제대로 충족한 셈인데 책으로 치유 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 과정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작품이었다.

 

사람의 일생이란 말이지, 땅속에서 솟아나온 물이 구불구불 흘러서 마침내 바다로 흘러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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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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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질녘에 읽으면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름밤에 더 어울리는 소설이다. 책을 다 읽을 즈음에 날이 저물고 창밖으로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고즈넉한 밤을 맞으면 '나의 아버지'가 또렷이 떠오를 것이다. 많은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 소설은 아버지에 관한 책이다. 잔잔하게, 절제하면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기 때문에 '나의 아버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열린다.

 

  대부분이 그렇듯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 늘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다. 먼저는 못난 자식으로 부모를 대하는 죄책감과 당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죄책감을 잔뜩 실어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 작품처럼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온 세월을 되짚어볼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탓하지 않고 아버지와의 추억을 그대로 꺼내놓을 수 있는 일.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는 담담하게 아버지를 미화시키지 않으면서도 함께한 세월 속에서 아버지의 위치를 그대로 드러낸다.

 

  무뚝뚝하고 살갑게 대해주지 않는 아버지. 그렇다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왔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되짚어 보면서, 아버지가 열망했던 삶에 닿아있는 자신을 보면서 아버지를 바라보자 그 간극은 더 멀어져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고 함께 한 시간들의 방향이 전혀 다름에도 같아질 수 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봤을 때 고독하지 않고 서글프지 않다면 좋았을 것을. 나의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이 작품속의 아버지와는 다르게 어느 누구에게도 회자되지 못하는 나의 아버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지만 어느새 함께했던 시간과 추억이 사그라져버린 나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아무런 죄책감없이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책이나 음악은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난 살아가는 데 그런 거 필요없다. 92쪽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아버지는 경험하지 못했다고,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고 무시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한마디가 나의 아버지를 아프게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곁에 있건 없건 그렇게 해왔던 순간들을 무마시킬 수 없다. 하나의 기억이 똑같을 수 없고 나의 생각을 관철시킨다고 해도 기억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기억을 조각조각 붙여넣더라도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마웠다. 내 기억속에 잊혀지고 있던 아버지를 다시 꺼내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어떠한 삶을 살아왔건 어떠한 상처를 받고 어떠한 환희를 느꼈던 나의 아버지에게 죄책감과 미안함을 동반하지 않고 추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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