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했다. 비 오는 날은 뜨뜻한 방바닥에서 뒹굴 거리는 것이 최고인 줄 알고 있던 내가 과감히 밖으로 나섰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우산을 쓰고 한참을 걸었다. 이런 내 모습에 눈앞이 흐려지고 있었는데 비에 감춰질 거라 생각하자 안심이 되었다. 이럴 땐 타인에게 속마음을 드러내면 좋으련만 내가 먼저 방황을 한 다음에 걸러낸다. 우울했다. 한없이 우울했고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몰랐다. 정처 없이 걷다 집에 돌아와 젖은 운동화를 벗으며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한참을 멍하니 욕실 거울을 바라봤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걸었더니 조금, 무언가 빠져나간 것 같다.
기분이 울적하면 발랄한 분위기를 즐기며 기분 전환을 시켜보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비슷한 분위기를 느껴야 오히려 그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발랄한 책은 마다하고 이 책을 꺼내든 것은 그런 연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물들의 사진을 보면 나의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싶다가도 달랑 한줄의 글을 보고 그 절묘함에 놀라고 있었다. 동물들이 이런 글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이런 표정을 지은 것도 아니고 저자도 그런 생각으로 이 사진을 담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풍부하게 살아있는 동물들의 표정과 절묘한 묘사 한 줄이 정말 이 상황을 말하기 위해 존재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처음엔 깔깔거리며 웃다가 짧은 글 안에 우리의 삶을 그대로 녹여낸 것 같은 구절을 만날 때면 마음이 철렁거렸다. 지금의 나를 말하는 구나 싶어서였다. 동물들의 사진과 묘사 한 줄이 나를 위로하는 구나 싶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 나와 있는 사진과 구절들이 어떤 이어짐을 가지고 그려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도 순간순간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듯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즐거움과 슬픔, 고난을 묘사해 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의 굴곡처럼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과 다를 바 없구나,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먼저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봐요. 더 이상 도망치지 말고 (158쪽)
어쩜 이 말을 내 마음속에 새기기 위해 이 책을 펼쳤는지도 몰랐다. 많은 메시지 가운데 현재 나에게 해당되는 상황과 묘사에 더 마음이 울리고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나의 마음이 또 다른 방향으로 요동칠 때 이 책의 어떤 문장이 나에게 울림을 줄지 모른다. 이 책의 색깔은 하나라고 말하기 어렵다. 쉼 없이 변화하는 우리의 마음과 요동치는 삶처럼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평안할 때보다 위로받고 싶고 쓸쓸하고, 조금은 힘이 없을 때. 이 책이 어둠으로 꽉 찬 마음에 조그마한 빛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