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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모리 에토 지음, 고향옥 옮김, 장해리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무더운 여름, 집에서 쉬고 있으려니 마치 여름방학을 맞은 유년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사유키처럼 해야 할 숙제도 없고 엄마의 잔소리도 없다는 점이다. 사유키보다 조금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으나 유년시절 내가 꿈꾸던 일에 다가가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어 마음이 더 무거워져 버렸다. 오히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사유키가 부러울 지경이다.
사유키는 큰집 둘째인 신지 오빠를 굉장히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의미에는 이성의 의미보다 신뢰의 의미가 더 짙다. 큰집을 또 하나의 우리 집이라고 할 정도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난히 좋아하던 사유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변해만 가는 모습에 씁쓸함을 느낀다.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입시공부에 바쁘고 그나마 신지 오빠만이 사유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 신지 오빠는 고등학교 입학도 포기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한다. 큰아빠와 큰엄마는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할 위기에 처하고, 입시 공부 때문에 날카로운 언니는 늘 신경질적이다. 학교생활은 어떤가. 소꿉친구라는 이유로 울보에 소심한 데쓰야까지 종종 챙겨줘야 한다.
사유키는 신세한탄을 하면서도 주변의 친구들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모두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지만 사유키를 통해 다시 한 번 듣게 되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정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나만 이렇게 투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온 세상이 나란 존재를 잊어버린 것처럼 은둔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사유키는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가장 크게는 신지 오빠가 이사 한다는 사건을 발단으로 주변의 친구들과 사람들로 인해 좀 더 넓은 마음과 이해심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신지 오빠에게 의지하고 함께 하는 시간은 많았지만 신지 오빠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까이 하지 말라는 가족들의 말에 어른들의 편견을 맛보고 말았다. 그럼에도 꿋꿋이 신지 오빠를 믿어주는 사유키가 기특할 정도였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던가를 떠올려보니 선뜻 어떤 기억이 박차고 올라오진 않는다. 누군가를 한없이 믿고 따랐던 적. 그런 믿음이 나이를 먹을수록 왜 옅어져만 가는 걸까?
사유키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 평범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 같은 아이로 보이지만 곳곳에서 어떤 아이인지를 도드라지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명력이 강한 나무가 되고 싶다며 말하는 사유키. 그런 사유키를 핀잔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늘 나약하고 챙겨주어야 할 것 같은 데쓰야가 자신을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주려는 모습에서 누구든 변할 수 있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신지 오빠의 ‘나한테 노래가 있듯이, 너한테도 있을거야. 너만 할 수 있는 것. 그건 네가 찾아야 하지만, 틀림없이 있어.’란 말에 도리어 내가 힘을 얻으면서도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언젠가 바다를 보러 가자는 약속을 이사 가기 전날 지키며 신지가 해준 말이어서 그런지 조금은 억지스럽게 마무리하려는 의도가 느껴지기도 했다. 드럼 스틱을 주면서 너만의 리듬을 찾으라는 말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어느 누가 타인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온전히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말을 되돌려하는 것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민하고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희망의 메시지를 찾게 유도하면서 말이다. 때론 무너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는 것. 어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