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이주은 지음 / 이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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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매일 책을 읽지만 과연 그 책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읽고 난 후 나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도, 무언가를 정리하고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 책을 읽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을 볼 때면 과연 저 책 속에서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내용이 가물가물 하기도 하고 아무리 기록해 남긴들 다시 읽지 않으면 내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소설 덕분이었다. 소설과 그림이 얽혀 들어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읽은 소설임에도 생경하게 들리고 내가 이미 본 그림인데도 다르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해서 열등감을 느낀다거나 자괴감을 갖는 다는 의미는 아니다. 같은 소설이 다르게 다가옴을 느끼고 나의 감정과는 달리 새롭게 얽히는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었다. 한 폭의 그림과 한편의 소설이나 영화 혹은 화가의 삶이 모두 뒤섞이는 글임에도 어지럽지 않았다. 오히려 질서정연하게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림을 음미하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그림은 몇 초밖에 보지 않을 때가 허다했다. 그럼에도 그렇게 본 그림이 허투로 다가오진 않았다. 이야기에 얽힌 그림은 더 진중하게 다가왔고 그 이면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다양하게 상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진실에 근거하고 없고 보다 비슷한 그림과 소설을 보면서 연결시키고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신선하게 다가왔다.

 

  모든 것을 연결시키고 끝이 났다면 이 책을 이토록 즐겁게 읽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의 소소한 사색과 경험이 들어가 있고 그림과 연관이 되건 아니건 독자들에게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도 좋았다. 그 메시지가 억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고 생각할 수 있어 한참을 멍하니 책장을 붙들고 있기도 했다.

 

당장은 시간낭비처럼 여겨지는 사소한 모험들이 하루하루 누적되어 스스로의 운명을 써가는 것이리라.(71쪽)

 

  이런 문장도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내가 경험해 본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냥 책이 좋아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책을 읽던 날들이 있었다. 보상을 받고자 언젠가는 빛을 발하겠지 하며 지낸 날들이 아님에도 그런 날들은 쌓여 나에게 되돌아왔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나는 저 문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한 행동들이 나중에 또 어떤 빛을 발할지 알 수 없기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진실을 갈구한다 해도, 기억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행히도 완벽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62쪽)

 

  이 문장은 어떤가. 요즘 들어 부쩍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렇게 행복하게 자랐다고 할 수 없는 그 시절을 무작정 그리워하는 것에 대해 분명 어떤 모순을 느꼈다. 그러다 이 문장 앞에서 해답을 얻은 듯 조금 후련해졌다. 불완전한 내 기억이 좋은 것만 기억나게 하고 아련함으로 포장시켜 그 시절을 현재보다 낫게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불완전한 기억에 기대는 것을 그만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 불완전함에 기대 더 맘껏 상상하고 포장하게 되었다. 나만의 기억이니 내 안에서는 그럴만한 자유가 있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수많은 그림을 보았고 다양한 소설과 영화, 그리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보면서 예술의 몸을 빌려 드러낸 인간의 불안함, 고독, 기쁨, 불확실성을 보았다. '유럽의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세기말, 세기 전환기, 또는 좋은 시절이라는 뜻의 벨 에포크로 불'렸다고 한다. 이 책 속에 드러난 수많은 이야기가 마냥 '좋은 시절'의 이야기라곤 할 수 없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긍정과 부정적인 면모를 속속들이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세기말이라고 해서 불안할 것도 없고 세기 전환기라고 해서 찬란한 것도 없었다. 좋은 시절은 내가 만들어 낸 일상 속에 묻혀 있음을 이 책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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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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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

매일 밤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으면 성공한 삶이다. (140쪽)

 

  지금껏 내가 생각한 성공이란 게 과연 이런 것이었을까? 하다못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거나, 무언가 뿌듯한 결과물이 드러났을 때 작은 행복을 느낄 뿐 그런 감정의 잔유물이 성공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들 수 있’는 일이 ‘성공한 삶’이라고 수긍하게 된 것일까? 이 문장을 보는 순간 크고 작은 일에 맘 졸이며 잠 못 들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힘으로 결과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밤새도록 기도하던 일.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 때문에 한숨만 짓고 신세를 한탄하던 일. 말 못할 어려움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잠들어야 했던 날들을 떠올리자 비로소 평화로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조금은 거창하지만 ‘성공한 삶’에 한 발짝 다가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때로 외로움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 같은 때도 있지만, 외로움에 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91쪽)

 

 또한 ‘계속해서 사랑하는 것’이 ‘외로움에 지지 않은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이나 해봤을까? 무엇보다 이런 문장을 곱씹으며 내가 종종 외로웠던 이유가 ‘계속해서 사랑’하지 않았음을 알아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태생적으로 지닌 외로움을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상대방이 뼛속 깊이 각인된 외로움까지 포용해주길 원했고 그렇지 못할 때 좌절하고 깊은 외로움에 빠졌다. 그런데 그 원인이 내 사랑이 부족했음을 인지하니 사랑하는 사람이 달리 보였고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왜 나에게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예전의 나였다면 타인의 생각으로 치부하고 지나쳤을 텐데 왜 이런 문장들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이러한 대답을 듣기 위해 질문을 해야 하는 특수한 배경이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기원후 1099년 7월 14일, 십자군이 쳐들어 와 패배가 자명한 상황에서 도시에 남은 자들의 이야기였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질문을 하면 콥트인이 답변을 해주었다. 내일이면 전멸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질문은 다양했다. 패배, 고독, 자격과 쓸모없음, 변화의 두려움, 사랑, 우아함 등 마치 삶의 끄트머리에 다다른 사람들처럼 인생에서 맛보았던 모든 것을 곱씹고 되새김질 하려는 듯 보였다. 그에 반해 콥트인은 모든 것을 통달한듯 담담히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대답했다. 콥트인의 대답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차치하고라도 콥트인의 대답을 듣는 제 삼자는 제각각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콥트인의 대답은 마음속에 가진 근심과 맞닥뜨렸을 때 빛을 발했다. 콥트인의 대답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음에도 내가 멈추었던 문장들을 생각해보면 알게 모르게 감추었던 고민이었음이 드러났다. 마음이 평안했다면, 이런저런 어려움과 행복, 환희를 겪지 않았더라면 지나쳤을 문장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콥트인의 존재, 콥트인의 대답, 군중의 질문을 여러 가지로 대입시켜 볼 수 있다. 콥트인을 현자로 또는 예언자로 볼 수도 있고 현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빗댄 질문과 대답으로 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대입시켰을 때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다. 모든 질문과 대답이 완벽한 혜안으로 다가올 수 없듯이 제각각 느끼는 부분도 다르고 깨닫는 부분도 다르다.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때 모든 것이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단정지어버리면 이 책속의 질문과 대답들이 지난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숙제를 안듯 무심히 지나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나에게 부족한 지혜, 통찰력, 인내, 기다림 등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 고민으로 남겨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 대해, 그 안에서 우리가 직면해야 했던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24~25쪽)’고 했듯이 콥트인의 대답이 그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면 그것만큼 귀한 얻음도 없을 것이다.

 

기쁨. 전능한 신께서 주시는 큰 축복 중의 하나가 기쁨이다. 스스로 행복하고 기쁘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65쪽)

 

  현재 내가 가고 있는 길,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길을 갈 때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구할 때 도움이 내려올 거라 생각한다. 매일의 삶에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구하며 기쁨을 맛보는 일. 콥트인의 대답 속에서 내가 찾은 첫 번째 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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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다시 만나면
게일 포먼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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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이 떨리도록,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가 있었다. 제발 무사히 지나가도록 기도하고 기도하던 순간들. 세상을 바라보는 중심이 그 하나이던 순간들. 나의 간절한 바람대로 무사히 지나간 순간이면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러나 사람이란 게 얼마나 간사한지를 알게 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감사하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만다. 마치 추억 하나를 떠올리듯 무심코 지나쳐 버리고 뻔뻔하게 또 다시 그런 순간을 바라게 된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애덤에게 간절히 기도했던 순간은 미아가 사고를 당했을 때였다. 그의 바람대로 기적적으로 깨어난 미아. 그렇게 다시 재회한 그들이었기에 절대 헤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당연하게 믿어 버렸다. 첫사랑의 아픔이 지나가면 ‘영원히’란 말을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을 나 역시 경험하게 되었는데 애덤과 미아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네가 있어준다면』두번째 이야기에서 애덤과 미아가 헤어진 것이다. 그것도 뭔가 석연치 않다. 그들이 헤어질 거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첫번째 이야기의 여운마저 가셔 버리는 듯했다.

 

  그들이 헤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3년이 지나도록 진심을 숨긴 채 겉돌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마음의 분노를 분출하지 못하고 반복하는 모습에 종종거렸다. 여느 연인에게서 볼 수 있는 권태기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운명적인 재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너그럽게 생각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보니 ‘너희는 이러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절대 헤어져서는 안 돼!’ 라고 틀을 정해놓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한참이 지나서도 그들의 마음을 쉬이 이해해주지 못했다. 책을 볼 때마다 ‘왜 그랬을까? 왜 첫번째 이야기의 여운을 가져가 버렸을까?’라며 그들의 이야기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두번째 이야기를 만난 지 일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 닥쳤던 어려움과 운명에 맞서려면 더 단단해져야 했고 그 과정 중의 하나가 헤어짐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니 처음 가졌던 내 상상속의 로맨스가 아니라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사랑이야기로 다가왔다. 흔히들 연애하다 결혼하면 환상이 깨진다고 하는데 소설 속에서만 묶어두었던 환상을 깨뜨리는데도 어떠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나의 바람대로 애덤과 미아가 더 깊이 사랑하고 자신들의 꿈을 향해 함께 다가갔더라면 어쩌면 더 밋밋했을지도 모른다. 내면의 갈등을 겪고 그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며 충분한 시간을 가진 뒤에 서로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헤어짐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애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은 채 떠나버린 미아의 행동이 완전히 옳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녀가 가졌을 마음에 무게를 어렴풋하게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린 모두 호된 시련을 거치면서 벼려진 거야.(270쪽)

 

  두번째 이야기에서 애덤과 미아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어쩜 이 문장일지도 모른다. 애덤과 미아가 겪었던 첫번째 시련은 죽음과 삶의 경계였고 두번째 시련은 둘의 헤어짐이었다. 그 시련을 함께 겪거나 혹은 따로 겪었더라도 그들에게 충분히 벼려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의 벼려짐으로 인해 그들이 다시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그렇지 못한 수많은 인연들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도 시련을 거치면서 깨닫게 되는 하나의 진실이다. 그렇기에 나와 함께 그 시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을 원망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먼 시간을 돌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시련을 함께 견뎌야만 행복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굉장히 오랫동안 곱씹었기에 나온 생각의 전유물에 감사한다. 틀 안에 묶지 않는 것. 생각이든 사람이든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을 때 진정한 사랑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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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처럼 - 조선 최고의 리더십을 만난다 오래된 만남에서 배운다 1
김병일 지음, 한국국학진흥원 기획 / 글항아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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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좀 많아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퇴계이황의 업적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내려고 애쓴 흔적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다룬 퇴계 이황의 중점은 무엇인지 조금 애매해지고 말았다. 총 3장으로 이뤄진 책의 제목만 보더라도 '퇴계가 받든 여인들' '퇴계를 만든 여인들' '퇴계, 백성을 받들다' 인데 그간 자세히 알지 못했던 소재라서 흡인력이 굉장했다. 특히 퇴계의 부인들과 어머니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퇴계의 삶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간 잘 몰랐던 퇴계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퇴계는 어떤 사람인지 약간은 겉핥기가 된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감출 수 없었다.

 

  퇴계는 두번의 결혼을 했는데 첫번째는 사별을 하고 두번째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부인을 맞이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두번째 부인과의 만남은 자세하지 않지만 그런 부인을 받아들이고 받들었던 모습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때로는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탄하는 모습도 그려지기도 했다. '나도 무척 불행하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닌 법! 어찌 내 생각만 하면서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겠는가?(69쪽)' 라며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면서도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퇴계에게 행복이란 가족과 친족 더불어 이웃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생각한 행복도 이런 것이다. 세상의 물질과 권력, 탐욕에 마음을 두지 않고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 나만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지인들, 혹은 모르는 타인들에게도 내가 가진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만 늘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오로지 내 생각만 하면서 정작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만 든다.

 

  타인의 삶에서 감동을 얻고 또 그와 같이 살기를 갈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오래도록 칭송받고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면 오히려 나와는 너무 다르다는 이질감 때문에 멀리하는 경우도 있다. 퇴계 이황이 나에겐 그런 존재였다. 정작 나는 퇴계 이황이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데 너무 유명하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만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만난 퇴계는 혼자서 덧나지 않고 어울리는 삶, 소박하고 겸손한 삶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또렷이 알 수 있었다. 그가 남긴 업적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갔고 추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만 알아도 한발짝 다가간 느낌이다. 이 느낌을 나의 삶에 접목시키면 환상적이겠지만 늘 그렇듯 하루가 어렵고 내게 주어진 삶이 버겁다고 두려움을 먼저 드러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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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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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멀어지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돌아올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멀어진 거리만큼 되돌아오는 일에서 나는 탄성을 얻는다. 그 탄성은 날이 갈수록 딱딱해지는 나라는 존재를 조금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함부로 혹은 지속적으로 잡아당겨지더라도 조금쯤은 다시 나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안녕 다정한 사람』 17~18쪽

 

  여행이란 그런 것 같다. 내가 속한 곳에서는 못 떠나서 안달하면서도 막상 여행을 떠나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된다. 여행을 통해 충전을 얻기도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다. 멀어졌다 되돌아오는 것. 비단 거리뿐만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기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에 읽은 『그저 좋은 사람』을 읽고 배낭여행을 가고 싶은 욕망이 심하게 일었다. 목적지는 늘 가보고 싶었던 프랑스. 파리가 아닌 고흐의 흔적을 좇아 남쪽으로 여행하고 싶어졌다. 고흐가 프랑스에서 활동했을 때의 작품들이 강렬했기에 고흐라면 네덜란드가 아닌 늘 프랑스가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 나에게 가고 싶은 곳을 다녀오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프랑스를 선택했을 것이다. 고흐에 흔적을 좇아 느리게 여행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 실린 열편의 여행기는 참 부럽다. 열 명의 유명인들의 여행기를 보는 것도 설레지만 개인적으로 이 모든 여행에 동행하고 사진을 찍은 이병률 시인이 가장 부러웠다. 평소에 좋아하던 분들과의 동행이었다고 하니 그 설렘이 어땠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듯 했다. 첫 여행기는 은희경 작가의 호주 여행기였는데 여행에 관한 문구를 보고 나서 단박에 마음을 뺏겨 버렸다. 드넓은 호주에서 와인에 흠뻑 취하면서도 마음속의 들뜸과 감상을 나긋하게 들려주어서 마음이 무척 평안해졌다. 그래서일까. 직접 갔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었다.

 

  이 여행은 가고 싶은 곳을 누비는 여행이었기에 10명의 여행가들에게서 이곳을 잘 설명하고 전달해야겠다는 느낌보다, 있는 그대로 스스로가 만끽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마음을 두었던 곳을 골라 그곳에서 가고 싶은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 좋아하는 배우가 그리워 걷는 이도 있었고, 좋아하는 음악의 흔적을 따라 거닐기도 하며, 식도락 여행을 하는 이도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이라는 타이틀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여행기를 보고 있자니 서툰 면도, 생각을 전달하려는 애씀도 편안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여행의 목적이 다양하겠지만 혼자만의 여행이라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떠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종종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여행의 목적을 가진 글들을 만나기도 한다. 혹시 그런 글들에 익숙해져 있다면 이 책을 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여정과 느낌에 다소 생소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낯선 것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낯섦을 느끼는 건 익숙함에 의해서이다. 그래서 낯선 것 가운데에 들어가면 간혹 내가 더 또렷이 보인다. 내 삶의 틀 속에서는 자연스러웠던 것들의 더러움과 하찮음도 보게 되고, 무심했던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도 깨친다.(42쪽)'라는 말처럼 낯섦 속에서 또렷한 자신을 만나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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