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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성공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
매일 밤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으면 성공한 삶이다. (140쪽)
지금껏 내가 생각한 성공이란 게 과연 이런 것이었을까? 하다못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거나, 무언가 뿌듯한 결과물이 드러났을 때 작은 행복을 느낄 뿐 그런 감정의 잔유물이 성공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들 수 있’는 일이 ‘성공한 삶’이라고 수긍하게 된 것일까? 이 문장을 보는 순간 크고 작은 일에 맘 졸이며 잠 못 들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힘으로 결과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밤새도록 기도하던 일.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 때문에 한숨만 짓고 신세를 한탄하던 일. 말 못할 어려움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잠들어야 했던 날들을 떠올리자 비로소 평화로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조금은 거창하지만 ‘성공한 삶’에 한 발짝 다가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때로 외로움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 같은 때도 있지만, 외로움에 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91쪽)
또한 ‘계속해서 사랑하는 것’이 ‘외로움에 지지 않은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이나 해봤을까? 무엇보다 이런 문장을 곱씹으며 내가 종종 외로웠던 이유가 ‘계속해서 사랑’하지 않았음을 알아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태생적으로 지닌 외로움을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상대방이 뼛속 깊이 각인된 외로움까지 포용해주길 원했고 그렇지 못할 때 좌절하고 깊은 외로움에 빠졌다. 그런데 그 원인이 내 사랑이 부족했음을 인지하니 사랑하는 사람이 달리 보였고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왜 나에게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예전의 나였다면 타인의 생각으로 치부하고 지나쳤을 텐데 왜 이런 문장들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이러한 대답을 듣기 위해 질문을 해야 하는 특수한 배경이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기원후 1099년 7월 14일, 십자군이 쳐들어 와 패배가 자명한 상황에서 도시에 남은 자들의 이야기였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질문을 하면 콥트인이 답변을 해주었다. 내일이면 전멸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질문은 다양했다. 패배, 고독, 자격과 쓸모없음, 변화의 두려움, 사랑, 우아함 등 마치 삶의 끄트머리에 다다른 사람들처럼 인생에서 맛보았던 모든 것을 곱씹고 되새김질 하려는 듯 보였다. 그에 반해 콥트인은 모든 것을 통달한듯 담담히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대답했다. 콥트인의 대답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차치하고라도 콥트인의 대답을 듣는 제 삼자는 제각각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콥트인의 대답은 마음속에 가진 근심과 맞닥뜨렸을 때 빛을 발했다. 콥트인의 대답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음에도 내가 멈추었던 문장들을 생각해보면 알게 모르게 감추었던 고민이었음이 드러났다. 마음이 평안했다면, 이런저런 어려움과 행복, 환희를 겪지 않았더라면 지나쳤을 문장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콥트인의 존재, 콥트인의 대답, 군중의 질문을 여러 가지로 대입시켜 볼 수 있다. 콥트인을 현자로 또는 예언자로 볼 수도 있고 현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빗댄 질문과 대답으로 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대입시켰을 때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다. 모든 질문과 대답이 완벽한 혜안으로 다가올 수 없듯이 제각각 느끼는 부분도 다르고 깨닫는 부분도 다르다.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때 모든 것이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단정지어버리면 이 책속의 질문과 대답들이 지난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숙제를 안듯 무심히 지나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나에게 부족한 지혜, 통찰력, 인내, 기다림 등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 고민으로 남겨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 대해, 그 안에서 우리가 직면해야 했던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24~25쪽)’고 했듯이 콥트인의 대답이 그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면 그것만큼 귀한 얻음도 없을 것이다.
기쁨. 전능한 신께서 주시는 큰 축복 중의 하나가 기쁨이다. 스스로 행복하고 기쁘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65쪽)
현재 내가 가고 있는 길,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길을 갈 때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구할 때 도움이 내려올 거라 생각한다. 매일의 삶에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구하며 기쁨을 맛보는 일. 콥트인의 대답 속에서 내가 찾은 첫 번째 해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