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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평점 :
조금만 날씨가 추워도 집밖으로 나가지 않던 내가 요즘은 자주 밖에 나가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햇살이 좋아서다. 게으른 나도 밖으로 이끌어내는 햇살을 볼 때마다 공원에 한가로이 앉아 차를 홀짝이며 재미난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이 인다. 이제 돌 지난 아이와 함께 그 모든 것을 충족하기란 여간 벅찬 일이라 그냥 유모차를 끌고 집 앞에 나가는 정도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여유를 즐긴들 정말 행복했을까? 자신 있게 대답은 못하겠다.
드라마에서 결혼을 하니 뭐가 좋냐는 질문에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어서 좋다.’라고 대답하는 걸 보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20대 중반부터 남자친구가 없는 내게 주변에서 슬슬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서른이 넘어버리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기 시작했다. 수도권에서는 워낙 결혼이 늦어 서른을 넘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지방에서는 서른이 넘어서도 애인이 없다고 하면 큰 일이 벌어진 것처럼 군다. 그리고 사람을 달달 볶아대는데 그 잔소리를 견뎌내기란 쉽지 않다. 서른두 살에 결혼을 하고 일 년 후 아이를 낳고 나자 그제야 조금 안도감이 들긴 했다. 그럼에도 뭔가 다른 사람과 발맞추기 위해 쫓아간다는 조급함이 내게 있다는 것을 지우지 못했다.
이 책의 제목에서 묻어나는 것처럼 내가 했던 고민들과 걱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걸까? 나에겐 적금이 얼마나 있고, 아이를 낳아서 잘 키울 수 있으며, 노후대책은 문제없을까 등등 나이를 먹고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그런 걱정과 고민들은 늘어만 갔다. 내가 여전히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낳지 못한 상태였다면 엄청난 히스테릭한 상태에 빠져 있었을 거라 장담한다. 짝이 없는 모든 남자들과의 로맨스를 상상하면서도 그럴 리 없다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해버리는 조울증. 아마 책 속의 인물들보다 내가 더 훨씬 건강하지 못한 생각들과 걱정들로 시간을 더 허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그려진 연애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 나보다 먼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친구들을 보며 드는 조급증, 그리고 유서 써보기는 내가 경험해 본 것들이었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인생 2막을 시작하자 결혼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었던 새로운 걱정거리들이 찾아왔다. 가정이라는 공간에 아내, 엄마, 며느리, 딸이라는 틀에 속박되어버리는 반자유가 그랬다. 반대로 그로인해 결혼 전에는 알 수 없었던 행복을 맛보기도 하지만(남편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반대로 내 옆에 있음으로 밉기도 하며 아이가 태어나자 너무 너무 사랑스럽고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거리 등)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현재의 내 모습을 변화시킬 무언가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잔잔하면서도 섬세하게 파고드는 인물들의 내면 이야기들이 뭔가 찡하고 울림이 왔다. 이미 그런 과정을 거쳐 왔고 그 다음 단계를 살아가고 있는 나여서 그런지 청승맞아 보이기보다 건강한 고민과 자기성찰로 느껴졌다.
잠든 아이 곁에서 이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책 속에 마음을 뺏겨 내가 한 남자의 아내이고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몇 번이고 멈춰서 반복해서 읽고 잠시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모두 공감을 이끌어낸 순간들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부분을 이곳에 옮기지 않은 이유는 그런 순간들을 옮긴 순간 그런 상황에 놓여있던 나로 깊이 빠져 들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고 과거보단 미래를 보아야 할 상황이기에 지나온 상념들에 너무 깊이 묻히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그런 과정을 거쳐 온 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좀 더 밝게 나의 현재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내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