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에세이의 장점이자 단점은 글쓴이의 감정 상태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마음 상태가 고르지 못하고 삐딱하게 바라보며 쓴 글은 읽는 이의 마음도 불편하게 만든다. 반면 상쾌하고 기분 좋게 쓴 글은 주제를 떠나 읽는 이의 마음까지 환하게 만든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연달아 몇 편씩 읽고 있지만 여행에세이는 세 번째였다. 하루키를 따라 여행을 하다 보니 책의 권수가 아닌 타국, 지역으로 구분하면 엄청나게 많은 곳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그렇기에 여행하면서 느꼈던 기분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는데 하루키도 밝혔듯이 이번 여행은 순조롭고 즐거웠으며 보기 드물게 말썽이 거의 없는 여행이었단다. 그래서였을까? 글에서도 묻어나는 평화로움과 즐거움이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내 마음속에도 스며들었다.

 

  글에서 묻어나는 즐거움은 좋았는데 여행의 목적은 다름 아닌 술, 그것도 마셔본 적도 없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위스키에 관한 것이었다. 술이라곤 스무 살 때 주량 테스트 해본다고 마셔본 게 전부라 그쪽 세계에 관해서는 외계인 취급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가끔 정말 더운 여름에 시원한 맥주 광고를 보면 ‘정말 저걸 마시면 시원할까?’란 호기심을 품어보긴 하지만 그렇다고 행동으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무리 하루키의 글이라도 위스키에 관한 여행기를 읽어야 한다니(공장 견학 2탄이라도 되는 듯, 역시 재미났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늘 그랬듯 금세 하루키의 글에 빠져들었고 술을 좋아하지도 마시지도 않는 내가 위스키란 도대체 어떤 맛일지 무척 궁금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위스키를 찾아서 마셔보겠다는 소리는 아니고 위스키란 술을 통해 스코틀랜드의 작은 섬 아일레이까지 찾아간 열정에 감탄을 더할 뿐이다. 여행에 목적이 있어야 여행이 순조롭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하게 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길을 떠나면 모든 과정이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작가를 좋아 그 작가의 고향을 찾아간다거나 좋아하는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 음악이 좋아 음악가가 태어난 나라를 방문하는 것과 똑같은 목적의식이 술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말이다. 그 목적이 타인에게 해를 주거나 범죄에 악용되지 않는 거라면 한번쯤은 뚜렷한 목표를 가진 여행도 좋을 것 같았다.

 

  먼저 찾아간 아일레이 섬은 맛 좋은 위스키를 만들어 낼 조건을 갖춘 데다 아름답기까지 하지만 점점 인구는 줄어들고 섬 생활의 한계를 갖고 있기도 한 곳이었다. 거기다 훌륭한 위스키를 만들어낸다는 주민들의 자부심과 장인정신은 묘하게 맞물려 보는 이로 하여금 그곳의 풍경에서 묻어나는 평온함과 위스키의 향기가(맡아본 적이 없음에도 왠지 달콤할 것 같다. 모두 저자의 황홀한 묘사 때문이다.) 느껴졌다. 우리나라 술로 따지자면 소주공장에는 가공된 향이 난다면, 막걸리 공장에는 구수한 냄새가 날 것 같은 순전히 어떠한 근거도 없는 내 생각일 따름이지만.

 

  저자는 위스키의 황홀경에 빠져 음악에 비유하기도 하고 곧바로 아일랜드에 찾아가서는 <율리시스>를 떠올리며 비교하기도 한다. 위스키 맛을 모르니 비유에 맞장구를 쳐줄 순 없었지만 왜 그러한 비유를 드는지는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종류의 위스키 중에서도 섬세하게 다른 맛이 나는 것들을 구별하고 드러내려는 노력. 위스키에 대한 애정(사심도 가득했다.)이 듬뿍 담긴 글이었다.

 

  아일레이 섬에서는 그곳의 풍경과 술이 빚어내는 향기와 섬사람들의 삶이 엉켜 뭔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면 아일랜드에서는 좀 더 개인적이고 사유가 담긴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그곳을 떠나서야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깨달았다고 했듯이 아일랜드 풍경을 보자 아일레이 섬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스키와 잘 맞는 곳인지를 나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순조로운 여행이어서 그런지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 때문에 떠나기를 망설여 하는 나에게도 여행의 묘미를 잔뜩 주었다고나 할까? 일단은 저자처럼 순조로운 여행을 하려면 떠나는 목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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