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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의 나를 떠올려보면 정말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면 좀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 가면, 지금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이 아닌 다른 직장을 다닌다면. 온통 이런 만약에 때문에 20대의 나는 심적으로 심각한 방황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원했다면 그에 상응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니가 책 읽는 거 외에 하는 게 뭐 있냐는 뒤통수를 때렸던 말처럼 20대를 떠올려보면 5년의 긴 연애 뒤의 차임(그것도 군대에 있는 녀석한테. 이런.), 그로 인해 신앙을 갖게 되고 책에 더 빠지게 된 것. 그것밖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다. 그렇다고 신앙을 갖고 책을 읽게 된 게 첫사랑의 실패 때문이라는 게 아니라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나마 20대의 나를 건사시켜줬다는 말이다.
미래를 꿈꾸는 건 자유지만 지금 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
미래의 자신이 진짜고, 지금은 임시라고 생각하는 거네. (34~35쪽)
이 문장 때문에 20대의 내 모습, 혹은 현재를 중요시하지 않고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으며 지금보다 나을 거라며 무한한 희망만 갖았던 나를 떠올려보게 되었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찔렸다. 20대의 나는 정말 임시라고 생각하고 미래만이 내 진짜 모습이 드러날 거라 생각했다. 그런 미래의 내가 현재 내 모습이다. 과연 그때는 지금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내 일은 갖지 못한 채 아이를 키우며 너무나 평범하게, 때때로 남편 바가지 긁으며 감정조절 못해서 짜증 부리고,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을 한탄하면서 살아가는 내 모습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운 마음도 든다. 현재의 나를 바라보고 재정비하며 과거를 반성하는 건 좋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또 희망고문이 시작되려고 한다.)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나아질 기미가 없을 거다. 미래를 대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거. 과연 그게 뭘까? 뭘 해야 과거의 나보다 낫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걸까? 그건 생각하기에 따라 정말 작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뭔가 거창한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도 미래의 내 모습도 진짜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현재의 ‘나’에게 충실 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수짱이나 친구 마이코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그녀들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해진다. 일기를 쓰면서 무심코 흘러가버리는 생각과 자신의 모습을 담아보려는 수짱.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과감히 떨쳐내지 못했던 마이코. 그들 각자, 혹은 서로가 함께 나눈 이야기들 속에서 그녀들이 꿈꾸었던 미래의 모습에 현재 모습을 대입했을 때 과연 그녀들도 밝게 웃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만은 평범한 사람이면 그렇듯 최선을 다하려 살아가려다가도 이리 저리 흔들리다 다시 다잡기를 반복하면서 나이를 먹고 인격과 취향, 성향이 형성되어 가는 것 같다.
‘나’를 구성하는 것에 인격, 취향, 성향만 고려한다면 조금은 밋밋한 삶이 될 것 같다. 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내면과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 그러다 어느 지점에 안착하는 게 내 모습이고 그런 나를 구성하는 걸 일일이 따져 보지 않는다면 마음이 좀 더 편할 것 같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읽으면서 주인공들이 고민하고 고뇌하는 것들에 마음이 끌려 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는 사실만 확실해져 조금 힘이 빠졌다. 다만 이런 생각을 나 혼자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보다 미래의 나에게 너 괜찮냐고 묻고 싶어지는 이 불안감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