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소설보다 하루키의 에세이가 더 좋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런 느낌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읽은 하루키 에세이 중에 이 책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오래 된 유럽여행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사진에서 종종 드러나는 촌스러운 모습임에도 그의 글에서 있는 그대로의 하루키가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초반부터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중 후반을 넘어가면서 어느 순간 이 책을 좋아지고 이 분위기를 계속 느끼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별거 아닌 에피소드에 웃음을 터트리곤 한다. 그런 변화도 쏠쏠했고 꼭 그곳을 경험하지 않아도 충분한 경험이 되는 그런 사실적이고 꽉 찬 유럽 기행기였다.



2. 저지대 - 줌파 라히리





단 몇 장을 읽고 단박에 그녀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신간 소식을 들었을 때 꽤 두툼한 두께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기존의 작품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지만 주로 이민자의 삶을 중심으로 그려냈던 소재와 달리 인도의 역사, 그 역사로 인해 가족과 남편을 잃은 두 주인공의 삶(역시 이민자의 모습을 그려냈다.)을 철저히 그려낸 것이 달랐다. 그럼에도 두툼한 책은 쉼 없이 넘어갔고 역시 줌파 라히리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녀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의 짜릿함과 흥분은 덜했지만 현재 그녀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으로 다가왔던 시간이었다.



3. 지금 이 순간의 행운 - 매튜 퀵





기대하지 않았던 데서 오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 그런 감정을 느낄 때 독서의 보람을 느끼곤 한다. 우연히 읽게 된 이 이야기는 책장을 덮는 마지막까지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게 만들었다. 책의 내용은 결코 밝고 희망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저자의 글 솜씨가 평범하고 어쩌면 흔히 보았던 소재로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잘 풀어낸 느낌이었다. 그래서 사회에 절대 섞일 수 없는, 오히려 평범한 인간의 밖에 존재할 것 같은 그들의 이야기가 더 따뜻하고 공감 가며 알고 싶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기대 없이 읽어서인지 더 좋았던 책이었다. 이런 책을 이 순간에도 놓치고 있다 생각하지 괜히 마음이 조급해져 이 책 저 책 뒤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4. 여행, 혹은 여행처럼 - 정혜윤






겨우 올해에 들어서야 이 책의 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이 책이 출간 될 당시 현장에서 저자와 책 속의 주인공들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제대로 읽게 되어서 좀 민망하긴 하지만 그만큼 책이 내게 오고 싶어 할 때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책 제목을 보며 여행서로 착각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러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장소 이동의 여행이 아닌 우리가 전혀 신경 쓰고 관심 갖지 않을 수도 있는 분야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의 삶의 여행을 담아낸 책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놀랐던 건 타인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신념대로 꿋꿋하게 열정을 채워나간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무엇에, 어떤 일이 저런 열정을 쏟았는지 기억조차 없는데 그들의 삶을 보고 있자니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충실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독특한 책이었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그만큼 소중한 시간이 된 책이기도 했다.



5. 환상의 빛 - 미야모토 테루






우연히 알게 된 작가였고 우연히 읽게 된 작품이었으나 단번에 작품의 매력 속에 빠져 버렸다. 이 책을 추천해준 지인의 말마따나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묘사가 뛰어난 소설이었다. 단편집이지만 이미 영화로 국내 팬들에게 익숙한 <환상의 빛>이 가장 인상 깊었다. 주인공이 그려낸 소설의 배경 속에 마치 내가 서있는 기분이었고 그만큼 주인공이 느낀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단 열망이 강해 책을 읽는 도중에 그녀의 다른 작품을 주문하는 시간들마저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작가와 작품이 아닌, 전혀 배경지식도 없지만 작품으로 매료되는 이 시간들이 독서의 매력을 가중시킨다.




- 개인적인 취향대로 다섯 권의 책을 고르긴 했지만 별 네 개, 혹은 네 개 반의 책들도 많았다. 입덧으로 인해 거의 석 달간 책을 읽지 못했지만 2014년에는 87권의 책을 읽었다. 예전에는 연초에 목표 권수와 어떤 분야의 책을 읽을지 세세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올해는 손이 닿는, 내키는 독서를 했다. 그렇다보니 해외소설에 치중했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웹툰도 많이 읽었다. 권수에 포함하기 민망한 책들도 많았지만 어차피 권수에 치중한 독서를 하지 않기에 이렇게 읽다 질리면 또 다른 분야를 찾아 읽겠지 하는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둘째를 가진 이후로 아이가 태어나면 당분간 독서는 나와 먼 얘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책 저 책 꺼내서 읽었던 책들이 후반부에 강했다. 올해는 책도 많이 구입하지 못했음에도(정말 내 책장에는 몇 년간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읽어야 할 책이 가득하다.) 읽은 책보다 들어온 책이 더 많다. 자꾸 예전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이런 상황에 민감했던 시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무덤덤하다.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책을 대하고 있다.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가늠하긴 힘드나 이것 또한 그간 독서를 통해 경험한대로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독서 소망은 한가지다. 권수보다 틈틈이 책을 읽으면서 손에 놓지 않는 것. 그러다보면 정말 좋은 책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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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2-31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에 놓지 않으려는 마음이 제일 중요해요. 그 마음이 강렬해지면 원하는대로 책을 읽고 싶은 생각도 많아질겁니다. 그런 시간이 무척 소중합니다. 책 읽는 시간이 즐겁게 느껴진다면 좋은 책을 만났다는 증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