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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법 ㅣ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마스무라 에이조 사진,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먼 북소리』의 여운 때문인지 하루키의 여행서가 더 읽고 싶었다. 그래서 읽게 된『하루키 여행법』은『먼 북소리』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단기간으로 여러 곳을 방문하고 체험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여행을 하게 된 계기가 어떠냐에 따라 글의 분위기도 미묘하게 달랐다. 맨 먼저 실린 작가, 배우들의 성지로 알려진 이스트햄프턴의 이야기는 저자도 썩 내켜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으나 그곳의 특성상 쉽게 접근할 수 없고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곳. 그런 곳이어서 그런지 겉도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반면 꼭 그런 곳에 살아야 대단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도 아님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이스트햄프턴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자는 무인도에도 가고 멕시코, 우동 맛여행, 전쟁의 흔적을 따라 나선 노몬한 탐방, 아메리카 대륙 여행기, 그리고 고베까지의 도보 여행기가 펼쳐진다. 한권의 책에 실린 여행 이야기로는 굉장히 다양한 노선이다. 그래서 글의 분위기가 그때그때 달랐고 여행의 목적을 갖고 떠나는 저자의 관심과 마음 상태에 따라 그곳의 이야기는 더 진하게, 때론 고독하거나 관람자의 시선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해 준 지인은 무난히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했고 특히 손님에게 직접 파밭에서 직접 파를 뽑아다 먹게 하는「우동 맛여행」이 재미날 거라 했다. 우동이나 실컷 먹자고 떠난 여행이기에 졸지에 우동가락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매일 우동을 먹는 여행이었지만 굉장히 신나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동을 좋아하고 여행을 떠나는 목적이 정확했기에 고장마다 다른 우동맛을 느끼는 것이 즐거웠을 것이다. 지인의 말마따나 파밭에서 직접 파를 뽑아다 먹는 우동에 저자도 흥분했고 나도 너무너무 궁금할 정도였다.
목적이 따르는 여행을 하는 저자라는 사실을 언급한 것처럼 무인도에 가든 멕시코에 가든 나름의 목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어나는 변수가 여행을 더 풍부(?)하게 해주었다. 무인도에서 며칠 묵겠다는 야심찬 포부와 함께 섬으로 가지만 정작 벌레 때문에 학을 떼고 하루만에 철수하는가 하면 왜 하필 멕시코를 여행하게 되었는지 타인이든 스스로든 궁금증이 일 정도의 여행을 하고, 운명에 의해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그곳까지 갔다고 할 수밖에 없는 노몬한 방문기, 아무런 특색 없는 모텔방과 기나긴 고속도로만 생각났던 아메리카 여행, 그리고 고향으로 쉽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던 도보 여행이 그랬다.
하루키의 여행서를 읽다보면 그의 감정대로 고스란히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은 과하게 포장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만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감정 상태에 따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경우에도 그것 또한 그곳에 있었던 당사자의 시선이니 그러려니 하고 봐지는 것이다. 시각적, 내면적, 공감각적인 시선이 섞여 그곳에 내가 있는 듯하지만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지켜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저자가 어느 곳에 가든지 낯선 느낌보다 어떤 시선으로 풀어낼지가 더 기대되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어떤 곳에 내놔도 꿋꿋하게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해줄 것 같은 질긴 근성이 오히려 독자를 안도하게 만든다.
저자는 여행을 하면서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사진기가 된다.’고 했는데 그런 노력이 있어서인지 억지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때론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것들, 글이 아니면 표현해 낼 수 없는 것들을 느낀 그대로 그려내는 모습이 종종 청승맞아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랬기에 더 인간미가 넘쳤던 것 같다. 저자가 했던 여행을 해보라고 하면 단박에 거절을 할 나지만 혼자서 여행을 해 본적이 없는 내게 가끔은 이런 여행이 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