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집 7 - 대초원의 작은 마을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석희 옮김 / 비룡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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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가 너무 좋아 종종 산책을 나가곤 한다. 며칠 전 나간 산책에서 아이가 감기에 걸려 3일째 복도도 한 번 안나가보고 갇혀 있는 신세다. 감기만 나으면 다시 집근처 산책을 시작하마 다짐하면서 그 허전함을 책으로 달래고 있다. 그나마 요 며칠 밤에 아이가 잘 자주어서『초원의 집』시리즈를 며칠 만에 독파했다. 책을 읽을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로라네 이야기,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잘 될 로라의 연애사에도 무한 관심이 갔다.

  혹독한 겨울을 보낸 로라네에게 봄이 왔다. 계절상으로 봄이 왔고 작은 마을은 서서히 활기를 띠어 도시화가 되어가고 있다. 로라네는 좀 일찍 그곳에 자리를 잡아서 이제 막 도착한 사람들보다 조금 나았지만 그래도 계획대로 농사를 짓고 수확하려면 자연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늘 열심히 일하는 아빠 덕분에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고 로라도 틈틈이 일을 해서 도움을 주었다. 로라는 선생님이 되기 싫지만 선생님이 되어 돈을 벌어야 언니가 맹인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교사 자격증을 딸 수 있을지, 과연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늘 걱정이었다. 그런 고민을 엄마 아빠에게 털어놓을 수 없어 조금 답답하기도 했지만 자신으로 인해 언니가 대학에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고운 로라였다.

  아직 학생이었기에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이 많이 실려 있었다. 그럴 때면 로라가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되었는데 열다섯 살을 향해가는 로라도 어느덧 숙녀가 되어 있었다. 읍내가 도시화 되어 가면서 사교모임 등 이런저런 문화체험이 늘어나고 그러면서 앨먼조와도 종종 마주쳤다. 앨먼조에게 아직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로라였고 앨먼조도 로라에게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앨먼조는 로라를 마음에 두고 있음이 짧은 만남에서도 드러났다. 이렇게 소소하면서 건전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울 정도로 잊어버린듯 하다가도 불쑥 로라 앞에 나타나는 앨먼조가 든든하면서도 애정이 갔다.

  로라는 언니의 대학과 교사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앨먼조를 특별하게 언급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야기가 왔다갔다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춘기의 싱숭생숭 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떠한 사건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다가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짤막하게 끝나버리거나 이후의 소식을 전해주지 않을 때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당황스러움보다 궁금증이 더 컸기에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읽는 내내 놀란 것은 당시의 모든 상황들을 세세하게 기록한 내용들이었다. 번역을 어떻게 이렇게 꼼꼼하게 했을까 싶을 정도로 신경 쓴 어휘들. 그리고 당시의 배경이 물씬 묻어나는 상세한 설명과 이야기들이 놀라울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로라의 고민들과 언니나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기록에만 그치지 않는, 문학의 힘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로라는 결국 교사자격증을 따낸다. 언니는 대학에 입학을 했으므로 로라가 교사생활을 착실하게 하면 언니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로라는 뛸 듯이 기뻐한다. 가족들도 모두 응원해주고 앞으로 로라에게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가 되었다. 혹독한 겨울을 보낸 뒤라 순조로운 나날들이 조금 불안하게 느껴졌지만 그간 보아온 로라는 어떤 일에도 꿋꿋하게 잘 이겨낼 거란 긍정정인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다음 이야기를 향해가는 손길에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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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집 6 - 기나긴 겨울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석희 옮김 / 비룡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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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집』여섯번 째 이야기의 소제목은 ‘기나긴 겨울’이다. 그래서 겨울에 이 책을 펼쳤건만 많이 읽지 못하고 책을 덮어 버렸다. 춥고 눈이 오고 바깥 활동을 자주 할 수 없는 배경은 비슷했을지 모르나 로라의 가족이 처한 환경과 내가 속해 있는 환경은 판이하게 달랐다. 나에게 이 겨울은 조금 견디면 봄을 맞이할 수 있고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로라의 가족이 살고 있는 다코다 주의 작은 마을은 그야말로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개척농지라 황량했고 기차가 와서 식량을 조달해 주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어서 계절이 같다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읽어나갈 수 없었다. 로라의 가족에게 닥친 혹독한 겨울이 잔인할 정도로 안쓰러웠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의 로라네였지만 이번 겨울은 그야말로 가장 견디기 힘든 날들이 아니었나 싶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로라의 아빠나 엄마가 어떤 식으로 일을 해서 가족들을 건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마을에서 고립되다시피 하면서 기나긴 겨울을 보내야 했기에 일을 할 수도 없었고 개척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라 식량을 많이 확보할 수도 없었다. 늘 서로를 아끼고 아끼는 로라네 가족이었지만 겨울이 길어지고 외부와 단절이 되자 그야말로 힘든 나날들이 이어졌다.

  식량과 땔감이 없는 상황에서도 절망으로 치닫지 않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 로라의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훈훈함이 여기까지 전해져 오는 듯 했다. 땔감이 떨어지자 건초를 꼬아서 땔 생각을 하고 밀을 커피 분쇄기에 빻아서 겨우 연명해 간다. 그 일들이 로라를 비롯한 자매들에게 할당되어도 어느 하나 불평하지 않고 그야말로 끈끈한 유대감을 갖게 된다. 로라의 엄마 아빠가 늘 그런 모습을 먼저 보여주었고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아이들도 그 영향을 받고 자랐다. 모든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진리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밝은 로라네 가족도 우울하게 만들어 버리는 지긋지긋한 눈보라. 끊겨버린 철길 때문에 기차가 오지 않아 먹을 것을 구할 수도, 봄에 심을 종자들도 구할 수 없을 거란 불안감. 이 모든 것이 엄습했지만 그야말로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식량이 정말 모두 떨어져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왔다. 밀을 구할 수 없다면 로라네 가족뿐만 아니라 읍내의 많은 사람들이 겨울을 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앨먼조와 그의 친구 캡은 밀을 찾아 위험한 여행을 떠난다. 어떤 농부가 밀을 수확해 저장해 놓았다는, 그야말로 위치도 정확성도 없는 소문만 듣고 용감하게 떠난 여행에서 그들은 밀을 구해왔고 그 밀로 많은 사람들이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전부터 앨먼조의 성실함과 정직함이 마음에 들어 로라와 얼른 진도가 나가길 바라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앨먼조에 대한 신뢰가 더 높아졌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기차가 들어왔고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다. 로라의 가족에겐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배달되고 우울하고 길었던 겨울이 끝나 나조차도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 따스한 봄이 온 것처럼 긴 겨울의 추억을 털어 버리고 좀 더 희망찬 이야기들이 이어지길 바랐다. 안 그러면 그 우울의 여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겨우내 이 책을 묵힌 보람을 찾듯 너무 재미있게 그리고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결혼할 때 선물 받은 이 시리즈를 2주년을 한 달 앞두고 읽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책인데 느낌이 충만하면 묵혔던 시간이 민망할 정도로 후루룩 읽어 버린다(그래서 책장에 묵히고 있는 책들에 대해 늘 당당하다.). 한편으론 결혼 선물로 받은 이 책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나는 로라의 가족처럼 다정한 가족을 꾸리고 있는지 생각하자 바로 고개가 저어진다. 늘 남편 탓만 하고 있는 내가 많이 부끄러우면서도 나 먼저 다정다감해지자 하면서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 로라의 가족이 얼마나 화목하고 끈끈한 가족애를 갖고 있는지 더 절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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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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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 전 중고 신입사원이던 시절, 뭐든 열심히 해보겠다며 내 입장보다 상대방 입장을 더 생각하다 보니 갈수록 일에는 더 서툴러져 갔다. 적당히 선도 지키면서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하는데 알겠다고만 하고 뒷감당을 못하니 답답증만 늘어갔다. 관광객을 글자 그대로 ‘접대’하는 마음으로 발족된 고치 현청 관광부 접대과의 가케미즈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났다. 의욕은 넘치는데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던 시절. 야심차게 접대과가 생겼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헤매는 모습을 보니 남 일 같지가 않았다. 특별할 것 없는 조그만 시골 고치 현을 어떻게 관광객을 끌어 들이고 그들을 접대 하겠다는 건지 뼛속까지 공무원인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잘 하고 싶어 누군가 조언이나 아이디어를 주면 귀담아 듣던 시절이 있었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허리가 꼿꼿이 세워지던, 긴장감이 팽배하던 시기. 지금은 너무나 푹 퍼져버려 그때의 느낌은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관광홍보대사로 임명 된 작가 요시카도 씨에게 전화가 걸려올 때면 긴장하게 되는 가케미즈를 볼 때마다 괜히 내 등줄기가 서늘해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똥찬 아이디어 없이 타 도시에서 하는 현 출신의 유명인사들을 모조리 관광홍보대사로 임명했는데 유독 요시카도란 작가는 접대과가 떠 안고 있는 문제점과 느슨함을 그야말로 너무나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적했다. 또렷한 목표의식도 무얼 하겠다는 의지도 없던 접대과에겐 그야말로 피곤한 홍보대사지만 가케미즈는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속이 쓰리고 힘이 빠지긴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이 토시하나 틀리지 않을뿐더러 그들이 맹물 같은 회의를 계속해도 나오지 않던 아이디어를 그는 지나가는 말로 툭툭 흘리곤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케미즈였대도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주는 요시카도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매달렸을 거다. 내 능력이 부족하다면 타인의 힘을 빌려서라도 잘 해보고 싶은 것. 그 일을 좋아하고, 나로 인해 내가 속한 곳이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을 나 또한 경험해 보았고 가케미즈에게서도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느른하게 전화를 걸어 지적하고 따지고 충고를 해대도 결코 미워할 수 없고 오히려 그에게 기대는 모습, 그러면서도 뭐라도 해보려는 마음이 가케미즈에게는 있었다. 그렇다하더라도 정말 작은 도시의 고치 현을 관광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은 여전히 먼 이야기 같았다. 어떠한 계획도 예산도 열정도 없었기에 요시카도가 관광홍보대사 건으로 접대과에 자꾸 전화를 걸어 일거리를 만든 게 후에 엄청난 일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멀리 내다보고 가능성을 끌어들여 현실로 만들려는 시각과 계획을 가진 사람. 20 몇 년 전에 고치 현청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동물원 신설 계획을 논하던 때 판다를 데려오면 고치 현은 관광도시로 부상할 수 있을 거라며 꼼꼼한 계획을 가진 자가 있었다. 하지만 일을 벌이기 싫어하는 지방 현에서 그의 의견을 들어줄 리 없었고 결국 그는 철저히 배제 당해 결국 퇴사까지 하게 되었다. 전설 같은 이야기의 인물을 요시카도는 찾아가보라고 했다. 그 사람이라면 고치 현이 어떻게 해야 관광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지 잘 알거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인물을 찾아내고 그가 도와주기로 마음을 굳히고 그야말로 폭탄 같은 계획이지만 실현가능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접대과는 생기가 돌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을 정도로 조금씩 현실성을 띠어가는 계획. 그 계획의 끝이 어딘지 너무 궁금해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말단 현청 직원 가케미즈가 고치 현 출신의 작가 요시카도를 만나고 요시카도는 오래 전 현청 직원이었던 기요토란 인물을 끌어들이자 고치 현이 발전 가능성이 보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았던 계획에 모두가 합심하자 실현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았고, 반면 야비하고 얍삽한 권력의 힘을 철저하게 맛보아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요토가 현 전체를 레저타운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를 가케미즈란 인물로 인해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는 모습으로 대신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서 가케미즈는 사랑도 얻고 일도 더 잘하게 되지만 딱 한가지, 고치 현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했는지를 보여주지 않아 그 점이 아쉬웠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과정을 보여주는 책인데, 계획실현을 위해 단계를 밟아 정직하게 나아가는 모습이 든든할 만큼 보기 좋았다. '모두가 행복했습니다'란 동화같은 끝은 보지 못했지만 과정을 충분히 보았기 때문에 그 끝도 분명 좋았으리라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쉼 없이 책장을 넘기면서도 가케미즈처럼 열정을 다해 일을 해보았던 적이 언제인지, 과연 내가 잘 하고 싶고 나로 인해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지 그 부분을 내내 고심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 과정을 잘 견디고 노력한 가케미즈가 대단하면서도 부러웠다. 또한 과거의 상처에 짓눌리지 않은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하게 한 요시카도와 기요토란 인물에게도 진정한 내공의 힘을 보았다. 나는 그들처럼 과거에 짓눌리지 않은 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일을 전심전력을 다해 밀고 나갈 수 있을까? 이야기는 긍정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왠지 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 것만 같은 이 기분.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나쁜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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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법 - 사진편 - <하루키의 여행법> 에세이편의 별책 사진집, 개정판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마스무라 에이조 사진 / 문학사상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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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서를 글로 읽는 것과 사진과 함께 보며 읽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다. 글로 읽을 때는 묘사에 의지해 나름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반대로 그 상상이 글을 읽는 풍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사진과 함께 읽는 글은 내가 상상할 틈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단점이 있는 반면 어떤 의문을 달 여지없이 정확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하루키의 여행법』을 다 읽고 봐야 하는지 아니면 함께 봐야하는지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하루키의 여행법』을 읽으면서 그곳이 궁금할 때 이 책을 펼쳐 현장감을 느끼도록 했다.

  사진이 떡하니 실려 있으니 글에 의지한 나의 상상력이 빈약했음이 단박에 드러났다. 그러나 그런 움츠러든 모습으로 글을 읽어나간다면 이도저도 아닌 소심한 접근법이 될 것이 뻔해 내가 상상한 것과 사진을 비교해갔다. 그랬더니 오히려 편안히 볼 수 있었고 글에서 보지 못한 생생함으로 저자의 여행지를 더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저자와 함께 동행한(고베 도보 여행만 제외하고) 마쓰무라 에이조의 사진은 오글거리는 감성을 일깨울 정도로 멋을 부리지 않아 편안했다. 분명 보통 사람과 다른 시선을 가졌다는 것은 알겠지만 문외한인 나의 시선과 거리감이 깊지 않아서 느긋하게 볼 수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며 찍었을까 하는 사진도 많았고 저자가 묘사한 부분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부분도 있어 놀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사진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 생각되어지는 장면들도 있었다. 전쟁의 상흔 때문인지 노몬한의 모습이 특히 그랬고 사살된 늑대의 모습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정도로 마음이 찡했다. 새끼 호랑이를 안고 찍은 사진은 웃음을 자아냈지만 저자의 글과 사진이 크게 초점이 흔들리지 않아 이 책을 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다.

  글과 사진의 관계는 늘 결론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묘사를 풍부하게 해도 한 장의 사진이 더 정확하게 보여줄 때도 있고 사진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을 글이 표현해내는 것도 있다. 글과 사진을 함께 보았지만 역시나 그런 느낌이 들었고 그런 괴리는 어떤 글과 사진이라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저자가 설명한 멕시코의 작은 마을은 대도시와는 또 다르다는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말았는데 사진으로 만나니 쓸쓸함과 적막감, 시골이라는 특수함이 주는 짠한 마음이 단박에 드러났다. 거기다 시골에서 자란 나의 추억까지 더해져 부모님만 두고 자취방으로 홀로 돌아와야 했던 유년시절의 기억까지 떠올랐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런 기억의 추적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때 사진이 잘 찍고 싶어 열심히 셔터를 누르다보면 나도 좀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겠지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셔터를 눌러도 사진이 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후에 마음가짐의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가짐을 고쳐먹어도 사진은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진다. 기술보다 사물을 보는 마음가짐. 그리고 뷰파인더 안을 넘어 그 이면까지 보려는 시도가 있을 때에 한발 더 나아지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지 않다. 그러다 내가 그런 사진을 찍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런 사진을 자주 보는 게 더 빠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조금씩 사진집을 들춰보고 있다. 그래서 콕 집어 이 사진은 이러이러하다 말은 못하지만 대강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찍었는지 짐작할 수는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이긴 하지만 이 사진집을 보면서 왜곡된 마음가짐과 시선으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설명할 능력이 없는 나는 편안하고 좋았다는 표현으로 자꾸 이렇게 다른 소리를 늘어놓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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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법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마스무라 에이조 사진,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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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의 여운 때문인지 하루키의 여행서가 더 읽고 싶었다. 그래서 읽게 된『하루키 여행법』은『먼 북소리』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단기간으로 여러 곳을 방문하고 체험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여행을 하게 된 계기가 어떠냐에 따라 글의 분위기도 미묘하게 달랐다. 맨 먼저 실린 작가, 배우들의 성지로 알려진 이스트햄프턴의 이야기는 저자도 썩 내켜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으나 그곳의 특성상 쉽게 접근할 수 없고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이상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곳. 그런 곳이어서 그런지 겉도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반면 꼭 그런 곳에 살아야 대단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도 아님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이스트햄프턴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자는 무인도에도 가고 멕시코, 우동 맛여행, 전쟁의 흔적을 따라 나선 노몬한 탐방, 아메리카 대륙 여행기, 그리고 고베까지의 도보 여행기가 펼쳐진다. 한권의 책에 실린 여행 이야기로는 굉장히 다양한 노선이다. 그래서 글의 분위기가 그때그때 달랐고 여행의 목적을 갖고 떠나는 저자의 관심과 마음 상태에 따라 그곳의 이야기는 더 진하게, 때론 고독하거나 관람자의 시선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해 준 지인은 무난히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했고 특히 손님에게 직접 파밭에서 직접 파를 뽑아다 먹게 하는「우동 맛여행」이 재미날 거라 했다. 우동이나 실컷 먹자고 떠난 여행이기에 졸지에 우동가락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매일 우동을 먹는 여행이었지만 굉장히 신나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동을 좋아하고 여행을 떠나는 목적이 정확했기에 고장마다 다른 우동맛을 느끼는 것이 즐거웠을 것이다. 지인의 말마따나 파밭에서 직접 파를 뽑아다 먹는 우동에 저자도 흥분했고 나도 너무너무 궁금할 정도였다.

  목적이 따르는 여행을 하는 저자라는 사실을 언급한 것처럼 무인도에 가든 멕시코에 가든 나름의 목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어나는 변수가 여행을 더 풍부(?)하게 해주었다. 무인도에서 며칠 묵겠다는 야심찬 포부와 함께 섬으로 가지만 정작 벌레 때문에 학을 떼고 하루만에 철수하는가 하면 왜 하필 멕시코를 여행하게 되었는지 타인이든 스스로든 궁금증이 일 정도의 여행을 하고, 운명에 의해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그곳까지 갔다고 할 수밖에 없는 노몬한 방문기, 아무런 특색 없는 모텔방과 기나긴 고속도로만 생각났던 아메리카 여행, 그리고 고향으로 쉽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던 도보 여행이 그랬다.

  하루키의 여행서를 읽다보면 그의 감정대로 고스란히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은 과하게 포장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만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감정 상태에 따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경우에도 그것 또한 그곳에 있었던 당사자의 시선이니 그러려니 하고 봐지는 것이다. 시각적, 내면적, 공감각적인 시선이 섞여 그곳에 내가 있는 듯하지만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지켜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저자가 어느 곳에 가든지 낯선 느낌보다 어떤 시선으로 풀어낼지가 더 기대되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어떤 곳에 내놔도 꿋꿋하게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해줄 것 같은 질긴 근성이 오히려 독자를 안도하게 만든다.

  저자는 여행을 하면서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사진기가 된다.’고 했는데 그런 노력이 있어서인지 억지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때론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것들, 글이 아니면 표현해 낼 수 없는 것들을 느낀 그대로 그려내는 모습이 종종 청승맞아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랬기에 더 인간미가 넘쳤던 것 같다. 저자가 했던 여행을 해보라고 하면 단박에 거절을 할 나지만 혼자서 여행을 해 본적이 없는 내게 가끔은 이런 여행이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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