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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중고 신입사원이던 시절, 뭐든 열심히 해보겠다며 내 입장보다 상대방 입장을 더 생각하다 보니 갈수록 일에는 더 서툴러져 갔다. 적당히 선도 지키면서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하는데 알겠다고만 하고 뒷감당을 못하니 답답증만 늘어갔다. 관광객을 글자 그대로 ‘접대’하는 마음으로 발족된 고치 현청 관광부 접대과의 가케미즈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났다. 의욕은 넘치는데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던 시절. 야심차게 접대과가 생겼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헤매는 모습을 보니 남 일 같지가 않았다. 특별할 것 없는 조그만 시골 고치 현을 어떻게 관광객을 끌어 들이고 그들을 접대 하겠다는 건지 뼛속까지 공무원인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잘 하고 싶어 누군가 조언이나 아이디어를 주면 귀담아 듣던 시절이 있었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허리가 꼿꼿이 세워지던, 긴장감이 팽배하던 시기. 지금은 너무나 푹 퍼져버려 그때의 느낌은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관광홍보대사로 임명 된 작가 요시카도 씨에게 전화가 걸려올 때면 긴장하게 되는 가케미즈를 볼 때마다 괜히 내 등줄기가 서늘해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똥찬 아이디어 없이 타 도시에서 하는 현 출신의 유명인사들을 모조리 관광홍보대사로 임명했는데 유독 요시카도란 작가는 접대과가 떠 안고 있는 문제점과 느슨함을 그야말로 너무나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적했다. 또렷한 목표의식도 무얼 하겠다는 의지도 없던 접대과에겐 그야말로 피곤한 홍보대사지만 가케미즈는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속이 쓰리고 힘이 빠지긴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이 토시하나 틀리지 않을뿐더러 그들이 맹물 같은 회의를 계속해도 나오지 않던 아이디어를 그는 지나가는 말로 툭툭 흘리곤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케미즈였대도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주는 요시카도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매달렸을 거다. 내 능력이 부족하다면 타인의 힘을 빌려서라도 잘 해보고 싶은 것. 그 일을 좋아하고, 나로 인해 내가 속한 곳이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을 나 또한 경험해 보았고 가케미즈에게서도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느른하게 전화를 걸어 지적하고 따지고 충고를 해대도 결코 미워할 수 없고 오히려 그에게 기대는 모습, 그러면서도 뭐라도 해보려는 마음이 가케미즈에게는 있었다. 그렇다하더라도 정말 작은 도시의 고치 현을 관광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은 여전히 먼 이야기 같았다. 어떠한 계획도 예산도 열정도 없었기에 요시카도가 관광홍보대사 건으로 접대과에 자꾸 전화를 걸어 일거리를 만든 게 후에 엄청난 일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멀리 내다보고 가능성을 끌어들여 현실로 만들려는 시각과 계획을 가진 사람. 20 몇 년 전에 고치 현청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동물원 신설 계획을 논하던 때 판다를 데려오면 고치 현은 관광도시로 부상할 수 있을 거라며 꼼꼼한 계획을 가진 자가 있었다. 하지만 일을 벌이기 싫어하는 지방 현에서 그의 의견을 들어줄 리 없었고 결국 그는 철저히 배제 당해 결국 퇴사까지 하게 되었다. 전설 같은 이야기의 인물을 요시카도는 찾아가보라고 했다. 그 사람이라면 고치 현이 어떻게 해야 관광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지 잘 알거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인물을 찾아내고 그가 도와주기로 마음을 굳히고 그야말로 폭탄 같은 계획이지만 실현가능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접대과는 생기가 돌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을 정도로 조금씩 현실성을 띠어가는 계획. 그 계획의 끝이 어딘지 너무 궁금해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말단 현청 직원 가케미즈가 고치 현 출신의 작가 요시카도를 만나고 요시카도는 오래 전 현청 직원이었던 기요토란 인물을 끌어들이자 고치 현이 발전 가능성이 보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았던 계획에 모두가 합심하자 실현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았고, 반면 야비하고 얍삽한 권력의 힘을 철저하게 맛보아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요토가 현 전체를 레저타운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를 가케미즈란 인물로 인해 차근차근 발전해 나가는 모습으로 대신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서 가케미즈는 사랑도 얻고 일도 더 잘하게 되지만 딱 한가지, 고치 현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했는지를 보여주지 않아 그 점이 아쉬웠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과정을 보여주는 책인데, 계획실현을 위해 단계를 밟아 정직하게 나아가는 모습이 든든할 만큼 보기 좋았다. '모두가 행복했습니다'란 동화같은 끝은 보지 못했지만 과정을 충분히 보았기 때문에 그 끝도 분명 좋았으리라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쉼 없이 책장을 넘기면서도 가케미즈처럼 열정을 다해 일을 해보았던 적이 언제인지, 과연 내가 잘 하고 싶고 나로 인해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지 그 부분을 내내 고심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 과정을 잘 견디고 노력한 가케미즈가 대단하면서도 부러웠다. 또한 과거의 상처에 짓눌리지 않은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하게 한 요시카도와 기요토란 인물에게도 진정한 내공의 힘을 보았다. 나는 그들처럼 과거에 짓눌리지 않은 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일을 전심전력을 다해 밀고 나갈 수 있을까? 이야기는 긍정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왠지 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 것만 같은 이 기분.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나쁜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