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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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하루키의 신간 혹은 개정판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어 예기치 않게 그의 작품을 나름대로 열심히 읽고 있다. 그러다 이 책의 출간소식을 들었고 여행에세이라고 하기에 기대감은 폭발했다. 하루키를 썩 좋아하지 않던 내가『먼 북소리』와『하루키의 여행법』을 읽고 호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여행에세이. 어떤 이야기로 채워질까 기대감에 책장을 펼쳤는데, 보스턴 첫 번째 이야기를 마주하자마자 김이 조금 새버렸다. 마지막은 조금 달랐지만 마라톤 에세이에 나왔던 내용이었고 이 책에 실린 에세이가 모두 새로운 에세이가 아님을 알아버렸다.


 

그 사실을 알고 책을 마주하는 내 눈빛에 생기를 좀 잃어버리긴 했지만 하루키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중복된 이야기일지라도 빨려들게 만드는 힘. 그리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힘 앞에 결국 두 호흡 만에 이 책을 완독했다. 몇몇 이야기는 낯이 익었지만 나머지는 새로운 이야기였고 어떠한 목적을 띠고 어떤 곳을 여행하든 그가 경험한 생생함이 남겨 있었다. 그래서 마치 단기간에 그 모든 장소를 다 여행한 것 같은 착각이 일었고 순식간에 그 모든 걸 경험하다 보니 인생이란 게 여행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달리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137쪽)’는 하루키의 철학처럼 여행지에서 봉착한 난관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풍경에 대해, 이방인의 시선으로 보는 있는 그대로의 그 나라를 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여행기를 읽는 동안 나와 저자의 국적을 잊고, 단지 한 사람의 안내자를 따라 세계 곳곳을 누비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예능 <꽃보다 청춘>에서 잠깐 마주했던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부분이 좋았다. 신기하고 재밌는 나라였고 자연에 순응하며 최대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루키 스스로도 굉장히 개인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듯이 종종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말투를 쓰고 있긴 하지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 에세이가 아닌 경험을 기록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 안에는 새로운 곳에 가면 자신이 좋아하는 연결고리를 찾고(마라톤, 음악, 와인 등) 그것을 어떻게 즐겼는지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한 곳만 줄줄이 나열한 여행기라는 것이 애초에 하루키와 잘 연관이 되질 않지만(유명하지 않는 곳을 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곳에 가더라도 자신만의 색깔로 이야기 하기에) 현장감이 느껴져 그곳을 직접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다. 이상하게 저긴 꼭 가봐야지 하는 바람보다 하루키를 통해 이미 다 경험해 버린 기분이 들었다. 아마 내가 어떤 장소에 갔을 때 문득 ‘어, 이건 하루키 책 속에서 보았던 풍경과 비슷한데?’ 라고 생각하며 동질감을 끌어낼 그런 느낌을 가진 이야기들이었다.


 

어떤 이는 이 책을 읽고 당장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들 수도 있을 것이고 미래의 여행을 꿈꾸며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내가 여행을 한다면 이 책 속의 하루키와 어떤 공통점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건 바로 책이었다. 저자처럼 영어원서를 읽을 수 없으니 그런 경지는 아니더라도 번역된 훌륭한 작품들을 들고 여행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 저자가 여행지에서 자신의 좋아하는 연결고리를 찾았던 것처럼 그 장소에 어울리는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순간 스쳐지나가 멋쩍은 웃음이 났다. 그래서 좋은 호텔에서 느긋하게 책을 보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인상 깊었고 신혼여행 중 묵었던 풀빌라에서 남편은 혼자 수영을 하고 폭신한 침대에 누워 책을 보면서 각자 여유를 즐겼던 시간이 떠올라 이미 나도 그런 여행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도 신혼여행에서의 멋진 관광지보다 풀빌라에서 느긋하게 누워서 책을 보며 바라보던 바다, 책 읽기에 적합했던 폭신했던 침대(남편은 이 글을 보지 않을 것이므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남편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각자의 취향을 존중할 때 오히려 서로에 대한 여유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그런 여행을 또 경험해보고 싶다. 꼭 국외가 아니더라도 근교에서도 그런 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 여행 철학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비중이 크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는 여행은 일단 즐거울 것 같다.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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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 장석주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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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변하지 않는 것은 밥, 돈, 잣대에 매이지 않은 마음이다. 무엇에도 매이지 말아라. 매이지 않은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고, 행복이 깃을 접으며 내려앉을 곳이다. (107쪽)


시를 한 토막씩 읽어가는 게 영 익숙지 않았다. 한 편의 시를 읽는 것보다 이렇게 몇 줄의 시가 보다 많은 사람에게 다가는 게기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개인적으로 익숙해지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하이쿠처럼 짧은 시가 아니라 시 한 편에서 저자가 골라낸 시구와 그에 따른 느낌이 적힌 글을 읽어가다 보면 내가 시를 제대로 읽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 읽어가는 쪽수가 늘어감에 따라 한 토막씩 읽는 시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입 안에서 서걱거리던 시가, 어느 순간 내 입안에 착 감겨 넓고 넓은 세계를 누빌 수 있게 되었다.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 /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

김경미,『밤의 입국 심사』

나는 이미 라일락과 은행나무보다 더 높은 곳에 살고,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밝아 보이는 스탠드 아래서 이 시를 읽었다. 그랬기에 ‘벌이가 시원치 않고, 누추한 집에 산다고, 살이 밋밋하다고 상처받지 말라.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날의 삶에 자족하고 범사에 기뻐하며 웃어라.’고 말하는 장석주 시인의 조금은 빤한 충고가 공감이 갔다. 저 시를 쓴 시인처럼, 그 시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시인처럼 조금만 주의 깊게 둘러보면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과 뿌듯함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식구들, 늦은 저녁 날벌레 달려드는 전구 아래 둘러앉아 양푼 가득 삶은 감자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송찬호,『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마치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을 바라보는 듯 울컥했다. 식구도 많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늘 간식거리로 배가 고팠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숙명 같은 식탐을 지녀버렸다. 삶은 감자를 배불리 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백열전등 아래 날벌레를 쫓으며 형제들과 경쟁하듯 간식을 먹던, 잊고 있던 순간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기적인 생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 우리 안에는 당신이라는 모든 매미가 제각기 운다

이규리,『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이런 시는 어떤가! 내 안의 이기적인 마음들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님에서 오는 안도와 ‘사랑한다는 말은 곧 내 안의 사람이 아프다는 뜻이다. 당신이라는 매미가 내 안에서 그치지 않고 우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사랑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이타적인 것이다.’ 라 말하는 장석주 시인의 말에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사랑(가족의 의미가 가장 크다)이 많이 아팠지만, 아픔이 없는 것보다 내 안의 매미가 쉬지 않고 우는 것은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시가 내게 들어온 순간, 내 삶의 의미도 달라짐을 느꼈다. 늘 고만고만하던 마음의 어지러움을 사랑의 아픔으로 받아들였고, 각박한 세상에서 작은 소망을 품는 법도 배웠다. 꼭 시 전체를 읽어야만 더 깊은 이해를 하거나 의미를 제대로 부여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그러므로 시인들이 얼마나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쓰고 있는지를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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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허밍버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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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치찌개에 다진 마늘 한 숟갈을 넣으면서 내일은 꼭 오일 파스타를 해 먹으마 다짐했다. 엄마가 항상 마늘을 찧어서 비닐봉투에 납작하게 펴서 돌돌 말린 걸 냉동상태로 주시는 바람에, 결혼해서 지금껏 마늘을 찧어본 적이 없다. 쓰던 마늘이 다 떨어져서 엄마가 준 마늘을 녹이면서 찧었을 때의 색깔이 그대로 살아나는 걸 보며 단박에 오일 파스타가 생각났다. 원래는 여기에 샐러드 채소와 토마토를 잔뜩 얹어서 먹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마늘만 넣어서 먹어보기로 했다. 좀 뜸했던 파스타를 다시 떠올린 건 온통 먹음직스러운 파스타 이야기만 해 대는 이 책 때문이다.


  스파게티라곤 오로지 토마토소스만 고집하고, 피클이 맛있다는 이유로 스파게티를 먹으로 갈 만큼 무지했던 내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식당에 가서 먹으면 양도 적고 비싸고 맛도 각양각색이라 그럴 바엔 푸짐하게 해서 집에서 먹자 싶었다. 완제품 토마토소스를 그냥 면에다 비비기만 했으니 스스로도 요리가 아니라 조리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먹는 스파게티 맛이 나름 괜찮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다 TV에서 알려준 레시피를 따라 오일 파스타를 만들어 보았고, 거기다 채소와 토마토를 얹은 후 파마산 치즈를 잔뜩 부려 먹는 걸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달랑 오일 파스타 하나만 만들어 먹었을 뿐인데 ‘혹시 내가 이탈리아 요리에 관심이 있고 재능이 있나?’라는 얼토당토않은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한 종류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으면서 어이없는 착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레시피가 담긴 이 책을 호기롭게 꺼내 읽으면서 적어도 내가 더 만들어 볼 수 있는 파스타가 있겠지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세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단순하게 이탈리아 곳곳의 파스타를 설명하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직접 발로 뛴 생생함이 느껴졌다. 그 생생함에는 이방인의 시선에서 보는 이탈리아와 파스타의 이야기가 그대로 묻어났다. 그럼에도 저자가 정말 파스타를 좋아하는 마음이 느껴졌던 건 이탈리아의 광활한 파스타 세계를 재미있게 안내해 준 이유가 컸다.


  자칫 따분할 수도 있는 파스타의 유래나 종류, 파스타에 관한 궁금증과 요리법에 관한 이야기도 저자의 에피소드와 함께 버무려지니 여행기를 읽는 것 같아 지루할 틈이 없었다. 파스타 이야기가 지역에 따라 달라지니 그럴 수밖에!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먹을 때 피클이 없다는 생활밀착형 정보도 그렇고,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파스타는 미국식이거나 한국인 입맛에 맞춰 변형되었으며, 정통 이탈리아식은 맛도 모양도 많이 생소해 먹기 힘들 수 있다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종류의 파스타를 따라가며 그 맛을 충실히 알리려 노력한다.

 

  나에게는 끼니와 끼니 사이에 출출할 때 가끔 먹는 파스타가 이탈리아인의 삶에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지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면과 소스로 치부해 버리기엔 그 안에 깃든 손길과 세월과 재료를 길러냈을 땅의 생명이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기분이다. ‘음식은 추억과 기억의 매개체인 게 분명하다.(61쪽)’는 말처럼 그 요리를 즐긴 사람만큼 수많은 추억과 기억을 저장하고 생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단순한 음식으로만 보게 하지 않았다.


  책을 덮고나니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를 꾹꾹 눌러 밟은 기분이 든다. 직접 맛본 게 하나도 없으면서도 모두 맛본 것 같은 착각이 일고, 지역 특색이 드러나는 다양한 파스타를 보면서 어릴 적 내가 먹고 자란 엄마의 음식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시골에서,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먹었던 음식들이 빤했지만 추억을 담고 있어서인지 종종 아련해진다. 아침을 못 먹고 학교에 갈 때면 가마솥에서 바로 긁어내 공처럼 말아 손에 쥐어주던 누룽지, 떡을 하는 날 가마솥 옆에서 밥그릇을 들고 있으면 한 주걱씩 퍼주던 쫀득한 밥, 유과 반죽이 아랫목에서 부풀어지고 있으면 엄마 몰래 훔쳐 먹고 간격을 맞춰놨던 기억들. 그 기억들이 이탈리아의 시골에서 이름모를 손맛으로 버무려진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떠올랐다. 그런 음식을 먹었기에 나는 이렇게 건강하게 자랐나 보다. 문득, 나를 이렇게 키워준 엄마와 한 번도 같이 먹어보지 못한 파스타를 먹어보고 싶어진다. 이건 꼭 실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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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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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이 넘도록 소설을 써 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을 읽으면서 처음 드는 생각은 그간 좀 오해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하루키 소설을 읽고 성性에 관한 부분이 너무 노골적이라서 불편하다는 이유로 등한시하다 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의 작품에 좀 더 다가갔지만 더 많은 오해를 하지 않았나 싶다. 재즈 바를 운영하던 중 야구장에서 홈런볼을 보면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첫 소설이 상을 받고 몇 년 뒤에는 소설가로 전업을 한 게 물질적인 뒷받침이 되어주었기 때문이 아니냐고(<상실의 시대>의 성공이 밑받침이 되어주었는데도 말이다), 미국에서는 강연도 잘 하고 사인회도 하면서 한국에서 이렇게 책이 잘 팔리는 데 한 번도 오지 않은 게 괘씸하다는 둥 뭐 이런 사적인 오해였다. 소설가의 하루키를 존중하지 못한 데서 나온 억지였다.


  저자는 스스로를 ‘너무도 개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간 써온 소설에 관한 이야기도, 자신의 소설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문단을 멀리하는 것도, 이 책 속에서 말하는 소설 쓰는 노하우도 모두 개인적인 사고방식 안에서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개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저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소설에 관한 독자의 입장이 아닌 그 밖에서의 저자를 내 멋대로 판단하고 비난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스스로를 장편 소설가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가 더 좋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으며(이건 취향의 문제라 변함이 없을 것 같지만 이 책을 계기로 장편 소설가로 인식하기로 했다) 싫은 소리를 더 해대면서도 신간이 나오면 꼬박꼬박 구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긴 시간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와 나름대로의 소설 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려준다. 소설 쓰기가 즐거웠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있었고, 자신의 책을 읽어주는 독자와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어서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마감과 청탁에 얽매이지 않고 쓰고 싶을 때 쓰지만 마감시한은 넘겨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더한 생활습관이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그 안에서 꾸준히 글을 쓰며 체력을 기르는 일. 작가가 그런 생활을 한다는 게 좀 유별나게 보이긴 하지만, 그래서 평범한 듯 특별해 보이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마감과 청탁에 얽매이지 않은 글을 오랫동안 쓸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스스로도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게 운명이었다고 말하지만 어느 정도의 운도 있고 여러 가지 요인들이 긍정적으로 다가와 주어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말 소설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열심히 소설을 써왔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저자의 그 모든 이야기를 담담히 들고 난 뒤에도 나와 저자의 거리가 확 좁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되어지는 게 더 만족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 소설 이야기, 그 안에 녹아든 해명 아닌 해명도 있어서 그를 더 잘 알게 된 기분이다. 저자도 갑자기 확 다가오는 게 아닌 적정한 거리에서 여전히 약간의 의심의 눈초리를 하면서 지켜보는 걸 더 좋아할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이번 소설을 유감스럽게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다음번에는 더 좋은 소설을 써달라고 한 독자의 편지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그 독자만큼 행동하지는 못하겠지만 오해는 풀렸을지언정 여전히 적당한 거리에서 그의 글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 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것. 그걸 잘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좀 오글거리지만 그를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창하게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온전히 소설에 관한 기술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삼십 년이 넘도록 소설을 써 온 저자의 회고록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설가란 직업을 가진 하루키를 만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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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일 센티 플러스 - 인생에 필요한 1cm를 찾아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여정 1cm 시리즈
김은주 글, 양현정 그림 / 허밍버드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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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책상에 앉아 작은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읽다 만 책도 있었고 읽으려고 가져다 놓은 책도 있었다. 20권이 넘는 책들을 꺼내서 읽다 안 읽히는 책들은 도로 집어넣고 마음이 가는 책들은 계속 읽었다. 그러다 이 책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1cm art>를 읽고 좋아서 구입한 책인데 마음이 동하지 않아 계속 책장 신세만 지고 있었던 책이었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저 책은 정말 내 마음이 힘들거나 혹은 위로 받고 싶을 때 꺼내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금방 읽힐 책이지만 아무 감흥 없이 쉽게 읽어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시간에 보답하듯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이 책을 담담히 읽고 있는 나를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았다. 느긋하게 읽었지만 책장은 쉼 없이 넘어갔고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메모지를 붙이고 잠시 음미하기도 하고 혼잣말처럼 자책과 다짐을 되뇌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책 속의 말들이 내게 콕 박히는지 곰곰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쌓여 있던 감정을 격하게 남편에게 모두 쏟아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얘기한 직후라서 그랬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그 행위가 무척 부끄럽게 여겨지는데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에 더 이상 자존심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서로 상처를 좀 받더라도 싸매고 있는 것보다 풀어내는 게 더 낫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순간의 분노, 순간의 오해, 순간의 욕망, 순간의 좌절, 순간의 유혹...... 악마는 순간을 지배한다. 순간을 지배함으로써 모든 것을 지배하는 법을 안다. 반대로 순간이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곧 지나가 버릴 순간에 구속당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과 인생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17~18쪽)


  나의 순간의 분노를 곱게 포장하긴 했지만 감정을 쏟아내는 것에 좀 더 솔직해지기로 다짐한 뒤 이 글귀를 보니 많이 부끄러웠다. 감정을 쏟아내기 직전에 나는 순간의 유혹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내 자신에게 순간을 참지 못해서 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순간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잠시 심호흡을 하거나 잠시 공간을 이동한다거나 하는 행동으로 조절해 보기로 했고 좀 더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대부분 현실보다 상상이다.(26쪽)’란 말에도 적극 공감하면서 머릿속에 온갖 상상력을 현실로 끌어들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또한 ‘오늘 밤 자기 전, 당신이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것이 이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과, 아침에 일어나 처음 바라보는 것이 이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서부터(중략) 더불어 당신이 잃었던, 잊고 있던 중요한 몇 가지 것들을 되찾기 시작(58쪽)’하는 운동에 동참해 보기로 했다. 이것은 스마트 폰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스마트 폰에 시간을 뺏기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특별히 들여다 볼 일이 없는데도 수시로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과 메일, 블로그를 확인했다. 심지어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도 그랬는데 어느 날은 큰 아이가 ‘엄마 핸드폰 그만하고!’ 하면서 핸드폰을 뺏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모습을 보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이가 스마트 폰을 만질라치면 엄마가 허락한 적 없다며 무서운 얼굴을 하면서 나는 내 스마트 폰이란 이유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그 시간에 아이들을 좀 더 들여다보고 세심하게 쓸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잠들기 전 스마트 폰을 멀리 떨어뜨려놓고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마트 폰을 멀리하려고 애썼다. 며칠 안 되었지만 그렇게 하고 보니 정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몇 년 전에도 이것 없이도 아주 잘 살았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당근과 채찍을 한꺼번에 받는 것 같아 하나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아서 좋았다. 위로에 잠시 마음이 촉촉해지면 금세 이런 마음을 채찍질 한다. 내가 무언가에 회피하려 TV를 보거나, 핸드폰 게임에 빠져 있거나, 쇼핑에 빠져 있는 행위를 ‘마음의 커튼’에 비유해서 공감시켜 주었고 그 커튼의 이면에 진짜 무엇이 있는지 정면으로 바라볼 시선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약간’ 해본 것, 성공, 기쁨, 만족, 사랑 등등에 위안 받지 말고 두려워하라고 말한다. 나쁜 버릇(소파 위 게으름, 인스턴트식품, 나쁜 뉴스, 거짓말 등)에 적응하는 것도 말이다.


  저자가 말한 것들을 모두 공감하며 실행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말들이 내게 와 닿았는지 생각해보면 현재 내가 안고 있는 문제가 어떤 건지 알 수 있다. 나는 너무 생각이 많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으며 스스로를 미화시키는 경향이 짙다. 그런 행위를 좀 줄여볼까 한다. 일상의 작은 것부터 시도해 적어도 스마트한 기술력과 물질에 지배당해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아이들을 더 많이 바라보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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