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cm+ 일 센티 플러스 - 인생에 필요한 1cm를 찾아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여정 ㅣ 1cm 시리즈
김은주 글, 양현정 그림 / 허밍버드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깊은 밤, 책상에 앉아 작은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읽다 만 책도 있었고 읽으려고 가져다 놓은 책도 있었다. 20권이 넘는 책들을 꺼내서 읽다 안 읽히는 책들은 도로 집어넣고 마음이 가는 책들은 계속 읽었다. 그러다 이 책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1cm art>를 읽고 좋아서 구입한 책인데 마음이 동하지 않아 계속 책장 신세만 지고 있었던 책이었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저 책은 정말 내 마음이 힘들거나 혹은 위로 받고 싶을 때 꺼내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금방 읽힐 책이지만 아무 감흥 없이 쉽게 읽어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시간에 보답하듯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이 책을 담담히 읽고 있는 나를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았다. 느긋하게 읽었지만 책장은 쉼 없이 넘어갔고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메모지를 붙이고 잠시 음미하기도 하고 혼잣말처럼 자책과 다짐을 되뇌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책 속의 말들이 내게 콕 박히는지 곰곰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쌓여 있던 감정을 격하게 남편에게 모두 쏟아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얘기한 직후라서 그랬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그 행위가 무척 부끄럽게 여겨지는데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에 더 이상 자존심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서로 상처를 좀 받더라도 싸매고 있는 것보다 풀어내는 게 더 낫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순간의 분노, 순간의 오해, 순간의 욕망, 순간의 좌절, 순간의 유혹...... 악마는 순간을 지배한다. 순간을 지배함으로써 모든 것을 지배하는 법을 안다. 반대로 순간이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곧 지나가 버릴 순간에 구속당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과 인생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17~18쪽)
나의 순간의 분노를 곱게 포장하긴 했지만 감정을 쏟아내는 것에 좀 더 솔직해지기로 다짐한 뒤 이 글귀를 보니 많이 부끄러웠다. 감정을 쏟아내기 직전에 나는 순간의 유혹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내 자신에게 순간을 참지 못해서 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순간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잠시 심호흡을 하거나 잠시 공간을 이동한다거나 하는 행동으로 조절해 보기로 했고 좀 더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대부분 현실보다 상상이다.(26쪽)’란 말에도 적극 공감하면서 머릿속에 온갖 상상력을 현실로 끌어들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또한 ‘오늘 밤 자기 전, 당신이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것이 이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과, 아침에 일어나 처음 바라보는 것이 이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서부터(중략) 더불어 당신이 잃었던, 잊고 있던 중요한 몇 가지 것들을 되찾기 시작(58쪽)’하는 운동에 동참해 보기로 했다. 이것은 스마트 폰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스마트 폰에 시간을 뺏기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특별히 들여다 볼 일이 없는데도 수시로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과 메일, 블로그를 확인했다. 심지어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도 그랬는데 어느 날은 큰 아이가 ‘엄마 핸드폰 그만하고!’ 하면서 핸드폰을 뺏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모습을 보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이가 스마트 폰을 만질라치면 엄마가 허락한 적 없다며 무서운 얼굴을 하면서 나는 내 스마트 폰이란 이유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그 시간에 아이들을 좀 더 들여다보고 세심하게 쓸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잠들기 전 스마트 폰을 멀리 떨어뜨려놓고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마트 폰을 멀리하려고 애썼다. 며칠 안 되었지만 그렇게 하고 보니 정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몇 년 전에도 이것 없이도 아주 잘 살았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당근과 채찍을 한꺼번에 받는 것 같아 하나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아서 좋았다. 위로에 잠시 마음이 촉촉해지면 금세 이런 마음을 채찍질 한다. 내가 무언가에 회피하려 TV를 보거나, 핸드폰 게임에 빠져 있거나, 쇼핑에 빠져 있는 행위를 ‘마음의 커튼’에 비유해서 공감시켜 주었고 그 커튼의 이면에 진짜 무엇이 있는지 정면으로 바라볼 시선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약간’ 해본 것, 성공, 기쁨, 만족, 사랑 등등에 위안 받지 말고 두려워하라고 말한다. 나쁜 버릇(소파 위 게으름, 인스턴트식품, 나쁜 뉴스, 거짓말 등)에 적응하는 것도 말이다.
저자가 말한 것들을 모두 공감하며 실행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말들이 내게 와 닿았는지 생각해보면 현재 내가 안고 있는 문제가 어떤 건지 알 수 있다. 나는 너무 생각이 많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으며 스스로를 미화시키는 경향이 짙다. 그런 행위를 좀 줄여볼까 한다. 일상의 작은 것부터 시도해 적어도 스마트한 기술력과 물질에 지배당해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아이들을 더 많이 바라보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