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읽은 책 중에서 열 권의 책을 뽑아봤다.

 

 

 

1. 에브리맨 - 필립 로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책 읽는 기쁨을 다시 상기시켜 본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꼭 그랬다. 필립 로스란 작가에 대해 익히 알고 있고 그의 작품을 읽었지만 이 작품에 대한 정보는 없어 그냥 읽었다. 책 제목처럼 보통 남자, 죽음을 맞이했고 젊은 사람도 아닌 노인의 내면이 드러나고, 때론 삶에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너무나 덤덤하게 이어갔던 이야기들. 왜 나이든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 했는지, 나도 늙어가고 있는데 왜 부정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미 생을 마감한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말이 어떻게 될지 정신 팔지 않아서 씁쓸하면서도 덤덤한 심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 얀 마텔

 

영화가 개봉하지 않았더라면 책장에서 얼마나 묵혀 있었을지 모를 책이다. 100페이지 넘게 읽다가 만 책이었지만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고 싶어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절반 정도 읽었을 때 영화가 내리기 직전이라 만삭에 가까워져 앉아있는 것이 힘들었음에도 혼자 영화관을 찾았다. 관객이 별로 없어서 더 느긋하게 볼 수 있었고 바다 위에서의 영상은 백미였다. 보통 영화를 보고 책을 보면 이미지가 박혀 상상이 가지 않는데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일러스트와 비교하자 더 생생하게 다가와 풍부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다. 태평양을 호랑이와 건널 수 있을 거라 누가 상상했겠는가. 바다 위에서의 공포와 좌절, 절망이 너무나 처절하게 그려졌지만 주인공도 말했듯이 리처드 파커가 없었더라면 절대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린 리처드 파커의 뒷모습이 내게도 아직 생생하다.

 

 

 

3. 샬롯의 거미줄 - 엘윈 브룩스 화이트

 

 

 

고향으로 다시 내려와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그나마 여기에서 큰 서점에 가는 일이었다. 막상 가보니 서점은 더 크기가 작아졌고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서가를 몇 바퀴 돌다 지켜 나올 때쯤 어린이 책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싶었던 터라 냉큼 집어왔는데 정말 마음이 뭉클해져서 혼났다. 윌버를 최고의 돼지로 만들어 주기 위한 샬롯의 눈물겨운 사투와 우정이 가슴속에 여전히 맴돈다. 혼자라고 느낄 때 누군가 다가와 손 내밀었던 적이 있었을까? 분명 있었을 텐데 내가 기억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너는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허투로 살아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샬롯 앞에 서면 꼭 그런 느낌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떠난 샬롯. 돼지와 거미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란 의문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정말 훈훈하고 가슴 찡한 이야기다. 

 

 

 

 

 

4. 양을 쫓는 모험 - 무라카미 하루키

 

 

작년 3월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책만 읽어댔다. 지인과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초기작이 읽고 싶어졌고 그렇게 시작된 읽기가 절정에 달해 9일 동안 9권의 책을 읽어 버렸다. 임신중독증으로 인한 갑작스런 출산이 아니었다면 아마 모든 작품을 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지만 크게 공감가거나 좋아지지는 않았다. 지인의 애정 어린 추천으로 초기작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에서 <1Q84>의 시작을 본 것 같았다. 이 작품에서의 독특하고 흡인력 있는 상상력이 <1Q84>에서 절정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장 인상에 남았다.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란 작가와 첫 대면을 해서 내게는 썩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그 뒤로 몇몇 작품을 읽어도 첫 대면의 충격은 크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초기작을 통해 하루키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엿보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고 나자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 이 작품이었기에 기회가 된다면 <1Q84>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5. 그저 좋은 사람 - 줌파 라히리

 

 

단언컨대 줌파 라히리의 작품은 조금만 읽어본다면 단박에 마음에 들 거라 장담한다. 이상하게도 여류작가는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을 꼽을 수 없었는데 줌파 라히리는 단박에 좋아졌다. 이민자의 삶을 주로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을 보고 있으면 이질감과 동시에 누구나 한번쯤 집을 떠나 느꼈을 그 낯섦과 적응,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저자처럼 생생하게 그림이 그려지도록 섬세하게 쓰는 작가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생각들, 너무 빨리 스쳐지나가 버려서 잡을 수 없었던 생각들을 군더더기 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 섬세함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온다.

 

 

 

 

 

 

 

 

6. 여덟 단어 - 박웅현

 

저자는 두 달여 간 이십여 명의 20,30대와 함께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봐야 하는 여덟 가지 키워드에 대해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놓았다.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었는데 30대의 나에게 와 닿는 것이 무척 많았다. 얼핏 보기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주제일지 모르나 막상 저자의 글을 만나보면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에 촘촘히 박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다 갖추며 삶을 살아가기란 어렵다는 생각이 들므로 이 가운데 나에게 와 닿는 몇 가지만이라도 건져내서 집중한다면 조금은 풍부한 마음을 가지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음악도 찾아보게 되고 집필한 다른 책을 검색하게 될 정도로 호소력 있는 문체에 반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글쓰기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음을 알기에 더 애정이 가는 책이다.

 

 

 

 

 

7. 모래 그릇 - 마쓰모토 세이초

 

 

마쓰모토 세이초의 명성에 대해서 익히 들어왔음에도 저자의 작품은 여태껏 만나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두 권임에도 쉽게 놓을 수 없는 흡인력과 흥미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배경은 1960년대라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발로 뛰는 수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검색만으로도 수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전화도 발달하지 않았고 다른 경찰서에 협조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굉장히 느린 수사임에도 끈질긴 인내를 가진 형사 이마니시로 인해 끝끝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자극적인 사건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밋밋할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완성도 높은 장르소설을 만나서 정말 즐겁게 읽은 작품이었다.

 

 

 

 

 

 

8. 도자기 박물관 - 윤대녕

 

 

해외소설을 좋아하는 터라 국내문학 작품에 많이 소홀하고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번역체에 지칠 때면 국내문학을 읽곤 하는데 그때마다 우리글의 익숙함과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다. 오랜만에 마주한 윤대녕 작가의 단편집을 읽고 보니 그간 국내문학을 소홀히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질 정도였다. 우리 문학의 단편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고 문체의 편안함 속에 진정한 이야기를 만난 것 같았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 작품을 통해 단면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박에 저자의 글에 반해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 몇 권을 구비해 놓았다. 우리 문학이 그리워질 때 이 느낌을 잊지 않고 만나 보려 한다.

 

 

 

 

 

 

 

9.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 이주은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해 이런 책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어 이번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마주했는데 정말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글들을 만났다. 그림과 함께 어우러지는 소설 작품과 문화,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가 부담스럽지 않고 좋았다. 내가 읽은 작품들이 다르게 해석되고 대입되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을 보는 것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작품이라고나 할까? 천천히 느긋하게 읽고 싶었는데 너무 재미있어 순식간에 읽어 버린 게 아쉬울 정도다.

 

 

 

 

 

 

10. 징비록 - 유성룡

 

그간 나는 임진왜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겨우 이순신 장군의 활약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임진왜란의 실상을 그대로 알게 해주었다. 당시의 재상 유성룡이 보고 느낀 임진왜란은 너무나 처참했다. 관군들이 자신의 자리를 조금만 더 지켰더라면 일본군이 수도를 탈환하는 데 그렇게 짧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며, 나라를 지키겠다는 백성들과 이순신 장군의 활약이 아니었더라면 훨씬 더 처참했을 전쟁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화도 나고 안타깝고 한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자연스레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구입해서 읽었는데 책 속에 등장한 여수의 지명에 괜히 더 마음이 찡해진다. 임진왜란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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