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필코 서바이벌! 살림 YA 시리즈
박하령 지음 / 살림Friends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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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라는 건 원래 진실을 다루는 게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거라고 했다. 17쪽


어느 날 갑자기 누명을 쓰고 왕따가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참담함으로 모든 게 싫어질 것 같다. 아무런 의욕도 없고, 나를 도와주는 이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만으로도 절망감이 꽉 차 오른다. 평범한 여고생 장서란이 꼭 그랬다. 전학 간 친구 하늬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고, 그 아이 수첩에서 가해자인 것 같은 이름의 이니셜이 나왔는데 하필 JSR이었다. 이니셜이 같다는 이유로 장서란은 하루아침에 하늬를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는 사람 하나 없고, 서란을 몰아붙이자 스스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로 한다.

그런 서란의 용기가 대단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좌절하거나 쉽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는데 서란은 자신을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방법을 모색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자신에게 악플처럼 쏟아진 종이비행기를 옥상에서 날리면서 결코 이 싸움에서 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서란이 눈물겨울 정도였다. 조금만 살펴보면 서란이 하늬의 전학, 교통사고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소문은 자기가 믿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거라고 했다.’는 말이 참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경험하고 인지하고 있는 타인을 향해 다른 소문이 들려왔을 때 과연 나는 어떻게 했던가? 용기 있게 믿어주지 못했고, 우왕좌왕 하며 시류에 쓸려가도록 내버려둔 때가 허다했다. 그래서 서란의 용기가 당연한 건대도 대단하게 여겨졌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는 시영에게서 내 모습을 가장 많이 본 듯 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부른다. 그래서 거짓말을 늘 패거리로 다닌다. 108쪽

서란이 왕따 당하는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하늬가 그렇게 된 이유를 캐가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소설 같았다. 여자아이들과의 만만치 않은 밀당부터 시작해서 구슬리고, 정보를 알아내고, 과감히 시도하고, 진심을 다하는 모습까지, 정말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절절하게 배어났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서란의 그 고독한 싸움이 아니었다면 많은 아이들이 상처받고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는 사실을 보며 섬뜩하기까지 했다. 정작 당사자들은 회피한 상태에서 반성은커녕 서란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웠다. 그게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 가장 편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과정까지 또 다른 피해자인 서란이 동분서주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했다. 그럴 용기도 없고, 문제를 정면 돌파 하지 못하는 통찰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어서였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일에 거짓말이 보태지고, 부풀려지고 사람들이 소문으로 믿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른들조차도 도와주지 못했고, 잘 드러내지 않았으며, 마지막에 아이들을 화해시키러 나오는 과정에서도 매끄럽지 못했다. 자식을 키우고 있다면 가장 기본적인 생각, 내 자식이 귀한 만큼 다른 아이도 귀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서란이 동분서주해서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아이들이 화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음에도 결국엔 어른들의 손을 거쳐야 했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학교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임에도 개인을 탓하고,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또한 이런 상황이라면, 내가 학부형이었대도 뚜렷한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막막했는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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